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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 대청봉] 등정기
- 설악산을 4번이나 방문했지만 정상정복을 하지 못했다.
직원들이 단체로 움직이는 관계로 도착한 날 저녁은 뒷풀이에 더 신경을 쓴다.
그러므로 다음날 정상정복은 아예 계획에 없다.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권금성'을 오르거나 기껏해야 ‘울산바위’까지 오르는 것이 한계였다.
연이어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남한 3위의 높이를 자랑하는 설악산 최고봉 ‘대청봉’을 2번이나 정복한 스토리 -
☞ 2002년 10월 3일(목) ~ 5일(토) 설악산 대청봉(1,708m)
금년에는 개천절 휴일과 토요일 사이에 낀 4일이 체험학습으로 인하여 4일간의 황금연휴가 이어진다.
때마침 서 부장 학교도 우리 학교와 일정이 같아서 두 집이 뜻을 모아 부부동반으로 대청봉 정복을 목표로 하여 출발을 하였다.
☞ 탐방 코스 : 포항 – 환선굴 – 정동진 – 설악산(1박) - 대청봉 등정 후 하산(2박) - 미시령(826m) - 백담사 - 제4땅굴 - 평화의 댐 – 군 시절 근무지 탐방(철원군 다목리 - 수피령 - 육단리 - [대성산] 우회 - 민통선 안에 위치한 1974년 고참병 심부름으로 동동주를 사러간 일이 있는 마을 [재건촌]과 [민촌]) - 소양강 강변도로 - 원주에서 밤8시 출발 - 새벽 1시 포항 도착
▶ 1일차 : 3일(목)
아침 일찍 출발하여 동해안 7번 국도를 이용하여 달리고 또 달리다.
1차 경유지를 강원도 삼척에 위치한 [환선굴]로 잡고 부지런히 북으로 달리다.
가는 길에 살펴본 강원도 일원의 지난여름 수해로 인한 피해는 매스컴에서 본 것보다도 더욱 비참하고 참혹하였다.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도로와 파손된 주택이 수해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었다.
수해가 일어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피해를 입은 사람이 항상 또다시 피해를 입는 현상이 되풀이 된다.
저지대 주택의 침수나 산자락에 붙어 있는 집들이 폭우에 밀려 내려온 흙더미에 주택이 파손되고 인명 사고가 일어나는 이유는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경제 사정이 좋은 집에서는 그렇게 조건이 열악한 곳에서 살아 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환선굴은 약 5억 3천만 년 전에 생성된 석회암 동굴로 동양최대의 크기이다.
동굴내부에는 미인상, 거북이, 항아리 등 여러 모양의 종유석과 석순, 석주가 웅장하게 잘 발달되어 있다.
- 환선굴 내부 모습 -
이곳에서 발견된 동물은 모두 47종이다.
이 중에서 '환선장님좀딱정벌레' 등 4종이 환선굴에서만 발견되거나 환선굴이 모식산지로 기록되어 있다.
굴의 길이는 4㎞이고 지층은 고생대 대석회암층에 속한다.
입구에서 150m쯤 들어가면 600평이 넘는 넓은 광장이 나타나고, 그 한편에는 한길이 넘는 폭포가 있으며, 광장 벽과 천장에는 검은 회갈색의 종유석 무리가 길게 뻗어 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제2의 광장이 나타난다.
동굴 속을 흐르는 물소리 때문에 상대방의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1966년에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이 되었다.
2010년 4월부터는 환선굴에 모노레일 운행을 시작하여 좀 더 쉽게 환선굴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모노레일이 없어서 도보로 굴 입구까지 가는 바람에 제법 땀을 흘린 일정이 되었다.
다음에 들린 곳은 [정동진]이다.
이곳은 1990년대 중반에 TV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래서 이곳은 꼭 봐야 한다는 사모님들의 뜻에 따라 어두워지는 정동진에 들리다.
이 일대에는 정동진역과 모래시계공원, 조각공원, 해수욕장 등 많은 관광지가 있다.
특히 전 세계를 통틀어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정동진역 구내에는 ‘고현정 소나무’라고 알려진 나무를 비롯해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있어서 관광객들의 기념사진 촬영장소로 널리 이용이 되고 있다.
정동진에서 가장 볼 만한 경치는 장엄한 일출이다.
소나무와 철길이 어우러진 해돋이는 정동진만의 자랑이다.
청량리역에서는 매일 정동진의 해돋이 시각에 맞추어 해돋이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매년 1월 1일에는 새해를 맞아 모래시계공원에서 모래시계 회전행사와 해돋이 행사가 열린다.
어두워진 정동진을 뒤로 하고 달리고 또 달려 설악산 한화콘도에 도착하여 1일째의 여정을 풀었다.
▶ 2일차 : 4일(금)
☞ 탐방 코스
# 산행·중식·휴식시간 포함 : 11시간 30분 소요 : 설악동탐방지원센터 출발(8시) - 신흥사 - 비선대 – 귀면암 - 양폭대피소 - 희운각대피소 - 소청봉 - 중청봉 - 대청봉- 같은 코스로 하산하여 한화콘도(2박)
아침 일찍 출발하여 산행에 나서다.
매표소를 조금 지나서 이〇〇교장선생님과 옛날 양학에서 같이 근무하였던 방〇〇주사등 양포초등학교 직원여행팀 일행을 만나다.
세상은 참 넓고도 좁다.
이곳에서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을 만날줄이야!
[비선대]에서 [귀면암]을 지나서 [양폭대피소]로 오르는 길에 곱게 물든 단풍은 과연 한국제일의 여유를 충분히 부리는 것 같이 아름다웠다.
아내는 연신 감탄사를 연발한다.
- 중국의 '황산'이나 '천계산'못지 않은 대청봉을 오르는 계단길 -
그러나 처음에 컨디션이 좋았던 아내가 정상인 [대청봉]을 2.5km 앞둔 지점인 [희운각대피소]를 지나면서부터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산행에 애로가 많았다.
정상까지의 남은 거리는 2.5km라고 이정표가 친절하게 알려준다.
남은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아내를 격려하면서 아내의 배낭을 받아서 메었다.
그러나 산길 2.5km는 장난이 아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길은 경사가 더 심하게 이어진다.
가파른 경사길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관계로 산행시간은 이정표에서 안내한 시간보다 3시간이나 더 소요된 아주 난코스였다.
아내는 계속 힘들어 하였다.
그러나 포기를 할 형편이 못되어서 쉬고 또 쉬어가며 정상을 향해서 전진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소청봉]과 [중청봉]에 이어서 [대청봉]을 정복하다.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중식을 해결하고는 서둘러 하산을 하였다.
내려가는 길이 멀어서 어두워질 것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코스도 올라갈 때의 코스로 내려오다.
통상적으로 산행 시 정상 정복 후에는 같은 코스를 택하지 않고 반대편 코스로 내려온다.
또 다른 길을 체험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타고 온 승용차가 1박을 한 호텔에 있으므로 다른 코스를 택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서둘러서 내려왔지만 길은 이미 어두워졌다.
[비선대휴게소]에서 후렛쉬를 구입하여 불을 밝혀서 내려오느라 애로 사항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중식시간과 휴식시간을 포함한 11시간 30분정도가 소요된 강행군에 아내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당일치기로 대청봉까지 올랐다가 하산까지 하는 것은 보통의 여자들은 절대로 도전하지 못할 곳이다.”
라고 한다.
그러나 남한 제3봉을 정복한 희열은 대단하였다.
▶ 3일차 : 5일(토)
일정의 마지막 날이다.
겨울철 눈만 오면 길이 막히는 우리나라 고개의 대명사, 해발 826m로 웬만한 산보다 더 높은 [미시령]을 넘어서 백담사로 향하다.
백담계곡 입구인 [용대리]에서는 승용차를 주차시키고 [백담사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길이 험하지만 엄청 빨리 다니는 총알 공용버스를 타면 15분이 소요된다.
버스를 타지 않고 8km정도를 걸어서 가는 방법도 있다.
이때는 쏜살처럼 달리는 버스 곁을 두어 시간 위험하게 걷는 모험을 해야 한다.
우리들은 일단 공용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버스를 탔는데, 아슬아슬하게 내달리는 버스 창밖에 비친 광경은 아찔한 벼랑이 계속되는 계곡 길이다.
겁이 많은 사람은 계속 마음을 졸여야 하는 아찔한 길이 장관이었다.
[수교]를 지나면 계곡 왼편으로 길이 100여 m 이어지다가 넓은 공터가 나온다.
이곳부터 상류 쪽은 도로사정이 나빠서 마을버스가 이곳에서 돌아서 내려간다.
요즘은 물론 도로를 잘 정비해서 그렇지 않다.
하지만 2002년 당시에는 이곳에서 하차한 뒤 백담사까지 4~50분 정도 걸어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살펴 본 계곡의 풍광은 일품이었지만, 걷는 수고도 함께였다.
도착을 하니 때마침 중식 시간이다.
절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잔치국수를 맛있게 먹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무는 바람에 더욱 유명해진 [백담사]를 구석구석 천천히 돌아보았다.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의 역코스로 내려오다.
♣ 백담사는?
백담사는 내설악에 있는 대표적인 절로 가야동 계곡과 구곡담을 흘러온 맑은 물이 합쳐지는 백담계곡 위에 있어 내설악을 오르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세웠는데 처음에는 한계사라 불렸다.
그 후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가 백 개 있어 백담사라 이름 붙였다.
십여 차례 불에 탓다가 6. 25이후 1957년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는 등 역사적 곡절이 많은 절이다.
암자로는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이 있다.
또한 이곳은 만해 한용운이 머리를 깎고 수도한 곳으로 유명하다.
만해 스님은 민족과 국민을 위해 그곳에서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집필활동을 하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는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참회를 하였다.
이곳 백담사에서 2년을 머무는 바람에 전국적인 명소로 부상되었다.
이후 백담사를 찾는 사람들이 그 이전에 비해 엄청 많이 늘어났다.
백담사로서는 전 대통령 덕분에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주민들 또한 관광수입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 용대리 주민들이 전 대통령을 원망하며 오지 못하게 시위까지 벌였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백담사 앞 계곡 한쪽으로는 무수한 돌탑이 있는데 백담사를 다녀간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쌓은 것이다.
- 수많은 소원이 모두가 이루어졌을까? -
백담사를 뒤로 한 우리들은 [제4땅굴] 견학 길에 오르다.
서 부장과 나는 이미 체험을 했었지만 아내들에게 구경을 시키려고 계획을 잡았다.
♣ 제4땅굴은?
북한이 새로운 침투 방법을 모색하려고 만든 땅굴이다.
1978년 제3땅굴이 발견된 지 12년 만인 1990년 3월에 양구 동북쪽 26㎞ 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되었다.
군사분계선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있다.
높이와 폭이 각 1.7m, 깊이가 지하 145m이며, 총 길이는 2,052m로서 지난 1974년 제 1땅굴의 높이 1.2m, 폭 0.9m, 길이 지하 46m와 비교해서 엄청 큰 규모다.
백두산 부대는 땅굴 발견 이후 1992년 2월까지 37억 원을 들여 안보기념관과 기념탑을 세우고 갱도 및 갱내시설을 설치해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땅굴 입구에는 발견당시 땅굴을 수색하던 중 북한군이 설치한 지뢰에 의해 산화한 군견을 위로하는 충견비가 세워져 있다.
땅굴 내부에는 투명유리 덮개로 덮인 15인승 전동차가 운행되고 있어서 앞서 발견된 1,2,3 땅굴에 비해 매우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다.
전동차에는 방송시설과 좌석별 헤드폰을 부착해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또한, 땅굴 내부에 화강암층을 통해 흘러내리는 비무장지대의 오염되지 않은 지하수를 마실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다음코스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떠들썩하게 매스컴을 타면서 착공을 한 '평화의 댐'을 둘러보았다.
위치상으로 상류에 있는 북한 쪽 댐을 폭파하면 하류에 있는 서울이 물바다가 된다.
그래서 대응댐을 만들어야 한다며 전국민이 성금을 냈었다.
나도 물론 성금을 냈었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홍보를 하여 성금을 낸 기억이 있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과 양구군 방산면 지역에 걸쳐 있는 댐으로 높이 125m, 길이 601m, 총 저수용량은 26억 3,000만 t이다.
1986년 전두환 정권 당시 북한의 금강산댐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로 축조하기 시작했다.
1단계 공사는 1987년 2월에 시작되어 1988년 5월에 완성되었는데, 이후 댐 건설의 당위성을 입증하지 못해 중단되었다.
문민정부 때 시행된 1단계 공사에 대한 감사 결과 댐 건설은 정권안보차원의 조급한 과잉대응이었던 것이 밝혀졌다.
이후 홍수 조절 기능의 역할로 댐 건설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어 2002년 9월에 2단계 증축공사가 시작되었고, 2005년 10월에 최종 완공되었다.
이어서 인근에 위치한 화천군과 철원군 일원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3년간 군 복무를 한 곳이다.
74년 초에 입대한 후 제대 시까지 복무한 왕년의 군 시절 복무지를 둘러보는 기분은 참으로 감회가 깊었다.
신병으로 처음 부임하여 쫄병 시절을 보냈던 부대 인근에 위치한 계곡은 옛날 그대로였다.
한겨울이었지만, 더운물도 없었고 고무장갑도 없던 시절 졸병들이 식기 세척을 하려고 계곡물에 오면 찬물이라 엄청 힘이 들었다.
돼지고기라도 나오는 날에는 고기는 구경도 못하고 기름이 잔뜩 낀 고참병들 식기까지 닦으려니 죽을 맛이었는데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교대로 식사당번을 하는 졸병 2명이 보병 제38연대 인사과 30명분의 식기를 닦던 시절의 얘기다.
옷 세탁은 개인 것은 개인이 해결했지만, 찬물에서 하는 손빨래는 지금 생각하면 빨래 흉내만 냈던 것 같다.
더운물이 없었고 세제도 신통찮았던 빨래를 계곡물에서 찬물로 했으니 제대로 되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50여년이 가까워오는 74년 전방시절 군대얘기 참으로 옛날 얘기다.
당시에 민간인들이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선) 출입을 하려면 농사일을 하는 등으로 일정한 자격요건이 있는 사람들만 출입을 허가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출입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민통선 안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방문을 해보니 완전히 달라져 있다.
우선 도로가 말끔하게 포장이 되어있다.
민간인 신분이었지만 군 초소에서 헌병이 관리하는 출입일지에 기록만 하면 통과가 되니 격세지감을 느꼈다.
날씨가 어두워지는 관계로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는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여정이었다.
[대청봉] 2차등정기
- 2002년에 ‘대청봉’을 처음으로 정복하고 3년 만에 다시 정복을 한 이야기다.
지난번에 설악동 코스로 올라갔다가 같은 코스로 내려온 데 반하여 이번에는 오색코스로 올라갔다가 백담사코스로 내려온 무박 산행 이야기 -
☞ 2005년 10월 1일(토) ~ 2일(일) 설악산 대청봉(1,708m) 무박산행
오늘 산행한 코스는 오색을 들머리로 대청봉에 올랐다가 소청삼거리 - 봉정암 - 수렴동을 거쳐서 백담사주차장까지 걸어서 내려오는 무박 당일 코스이다.
박부장과 대해초등 주〇〇행정실장이 함께 참여하다.
- 지도상 흰선을 따라 '오색지구'로 입산 '백담지구'로 하산한 등산코스 임 -
☞ 저녁 9시에 운동장 호돌이 탑 앞에서 [한동관광]에 탑승하다.
무박여행 참가비는 3만5천원이다.
밤새 달려서 '오색지구 등산코스' 출발지에 도착한 것이 새벽 3시가 조금 못되어서이다.
3시부터 입산을 시키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모두 이 시간에 맞추어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하여 밤새 달려서 관광버스들이 도착을 한다.
버스에서 잠시 대기하니 3시에 입산허가가 떨어졌다.
[남설악매표소] 앞에는 한밤중인데도 전국에서 모인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다.
매표소를 통과한 후부터는 등산로에 가로등이 없는 관계로 각자가 준비해 온 후레쉬불을 밝혀 등정을 시작하였다.
등산로가 험한 관계로 한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좁은 코스에서는 엄청난 적체현상이 일어났다.
올라가려는 사람은 많은데 길이 좁으니 병목현상이 벌어진 탓이다.
자동차만 병목현상으로 정체가 되는 줄 알았는데 사람들의 병목현상도 장난이 아니다.
그것도 새벽 남설악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에...
사람들로 정체가 너무 심하자 우리 일행은 오늘 정상코스인 [설악폭포]방면으로 향하지 않았다.
우리 가이드의 안내로 안식년제로 폐쇄중인 비밀루트를 이용하여 [끝청봉]을 향해서 등정을 하였다.
다른 팀들은 설악폭포 방면으로 향했지만, 너무 정체가 심해서 우리 가이드가 편법으로 이용한 등산로로 향하니 정체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오르는 도중에 일출을 보았다.
설악산 깊은 산중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정말로 감동이었다.
깨끗한 공기 탓에 떠오르는 태양은 엄청 멋이 있었다.
06시 50분에 [끝청봉]에 도착하여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부지런히 가던 길을 계속 걸어서 7시 30분에 [중청대피소]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아침을 해결하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날씨가 매우 변덕이 심했다.
10월 초인데도 고도가 높은 곳임을 실감하며 추위를 느껴서 겉옷을 걸쳐 입고 다시 올랐다.
드디어 [대청봉 정상]에 도착하다.
도착시간이 08시 10분이니 오색에서 출발하면 산행 중 정체만 되지 않으면 4시간 정도면 충분히 정상에 도착이 가능할 것 같다.
우리들은 엄청난 정체로 5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정상을 정복 했으니 이젠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내려가는 코스는 [백담사 코스]다.
지난번에 [설악동 코스]로 올랐다가 내려갔고, 이번에 [오색코스]로 올랐다가 [백담사 코스]로 내려가니 설악산 대청봉 등산 코스 3개를 모두 경험을 한 셈이다.
[소청봉]에는 8시 50분에 도착을 하다.
새벽 3시부터 시작된 일정이라 시간이 넉넉한 편이다.
대청봉 정상에서 7부 능선까지는 단풍이 절정으로 기암괴석과 어우러져서 풍경이 가관이다.
[소청대피소] 통과하여 조금 더 내려가니 [봉정암]이 나온다.
이 절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봉정암 뒤편에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단풍은 절정이다.
자연의 섭리가 정말로 대단하다.
또다시 길을 재촉한 우리들은 [수렴동 계곡]에서 중식을 해결하고 [수렴동대피소]를 지나 [영시암]에는 13시 30분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1시간 30분을 더 걸어서 드디어 [백담사 주차장]에는 15:00에 도착을 하였다.
식사와 휴식시간을 포함한 총 등산시간이 새벽 3시에 출발했으므로 12:00시간이 소요되었다.
출발지에서 정상까지를 제외하고도 내려오는 코스인 대청봉에서 백담사까지의 거리만도 12.9km로 당일 코스로는 힘이 들며 무박 산행을 자주해서는 무리라는 판단이다.
백담사 주차장에는 용대리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엄청 길게 줄을 서 있다.
1시간 30분이나 기다린 끝에 겨우 버스에 탑승하였다.(차비 편도 2천원)
[용대리 매표소]에 도착하여 [한솔산악회]측에서 준비한 막걸리·소주와 두부·김치를 곁들여 간단한 하산주를 하였다.
우리 일행 2대의 차량 중에서 공룡능선 코스와 우리팀에서 낙오한 사람을 제외하고 일찍 도착한 순서대로 탑승하여 1대는 오후 6시경에 출발하다.
입산 시에는 오색을 경유하여 한계령(1003.8m)으로 들어갔으나, 귀가 길은 차량정체를 우려한 기사님의 판단으로 백담사 입구에서 북쪽 미시령(825.7m)을 넘어서 오다.
속초 시내를 거의 다 들어올 무렵에 강원여객 시외버스의 뒷부분을 우리차가 경미하게 들이받는 추돌사고가 일어났다.
백미러 수리 때문에 30분 이상 지체를 하다.
어두워진 도로를 밤새 달려 새벽 1시가 넘어서 포항 종합운동장에 도착하다.
♣ 무박산행 후기
많은 등산객(2대 80여명)을 상대하려면 애로점을 많겠지만 석식정도는 준비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하산 후 잔치국수 준비를 해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3만5천원의 일일회비에 비하면 대접이 너무 소흘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영업이익이 목적인 관광버스를 이용한 산행은 어느 정도 감수를 할 각오를 했지만…….
무박산행은 수면부족으로 무척 피곤하다.
몇 번을 해 보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힘이 드는 것 같다.
아무튼 이젠 설악산 대청봉을 2번 오른 셈이 되었다.
비선대 경유 천불동계곡으로 처음으로 올랐고, 이번에 오색에서 대청봉을 올라 백담사 계곡으로 하산을 하였으니 이젠 설악의 비경을 어느 정도 섭렵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번에도 느꼈고 이번에도 느꼈지만 10월 초 설악산 단풍은 7부 능선 이상에서는 절정이었다.
중국의 황산이나 천계산과 비교해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첫댓글 오래전 남편과 풍물회원들이 갔는데 이튿날 행사가 있어 중간에서 컨디션 조정차
중간 포기하고 다른 회원 삼분의 일정도는
완주~~~
이제는 간다는 꿈도 꿀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답니다.
무박의 힘든 산행은 않해야되고, 못하는 상황이지요.
두집부부 다닐때는 일박하고 편하게 차가지고 다녔는데
그 또한 이제는 희망사항 입니다~~
[일장춘몽]입니다.
아내와 함께 오르던 일이 어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다 되었습니다.
지금은 엄두도 못냅니다.
젊은 시절의 기록을 보며 추억을 먹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