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욱
서울 출생. 민족사관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당선작
개기월식 외 2편
검은 구름이 자욱한
아늑한 겨울밤에
안개처럼 몰려든 어스름한 인파들은
무엇을 보고자 함인가
어둠 속에서 사라지는
하얀 달빛을 찾는 이와
아련해진 달의 흔적을 좇는 이들 사이에서
작렬하는 태양의 꿈틀거리는 아집을
나는 온몸으로 등지고 섰다
걷혔다가 들쳤다가
서성이는 검은 구름에
깜박이며 점멸하는
달의 웃음에
차오르다가 빠지다
빠지다가 차오르다가
스스로를 지우고 비우는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달을 모시지 말자고
달을 모시고 있는
저수지나 연못의 고요함이여
출렁이며 파도치는 물이 되자
달을 갈갈이 찢어
말갈기처럼 빛나게 하면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기뻐하는
열정으로 출렁이는 물이 되자고
그래서 이 밤
나는 달을 모시지 않기로 한다
나를 바라보다
설원의 순록마냥
숨이 차오르는 날에는
가는 실바람 한 오라기에
잘 접은 종이비행기 되어
크게 한 숨 날아나 볼까
찰나의 비행 후에 내려다 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위에
빈약한 물뱀의 입에 물린 개구리,
숨넘어가는 고통을 안고 있는 동안
나무 위에서는
하늘다람쥐가 이 광경을 즐기고
숲 속 호숫가
산과 나무가 드리운 잔잔한 수면,
그 속의 나를 보면
호수 밖을 응시하는
또 다른 내가 있다
검은 양말을 걸쳐놓은 듯
철책선 위에 올라앉은 까마귀처럼
경제지표
분수대 물줄기처럼
주가는 오르다 떨어진다
화려한 쇼를 장식할
계기판의 핏빛 조명
객장에는 개미군단의 한숨소리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를 짊어지고
굳어버린 얼굴의 주름살 계곡 따라
노동의 땀을 식혀줄 산들바람은 없는 것인가
상궤를 벗어난 일개미 한 마리,
철교 위에 우뚝 서
입질 온 낚싯대의 미끼마냥
강물에 몸을 던진다
출렁이는 순간
한강변 초고층 벌집들은 위태롭게
하늘로 솟구친다
∥당선소감
누군가의 차가운 가슴도 함께 녹여내는 시
산속에서의 기숙사 생활은 많은 생각과 느낌을 줍니다. 늦은 새벽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노라면 방 한구석 커다란 창 밖으로 눈길이 가곤 합니다. 그러면 하얀 창틀은 액자가 되어 한 폭의 그림을 담아내고 그것은 내게 어떤 의미가 되어 다가옵니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자동차는 구불구불 먼 길을 따라 흐르고, 병풍 같은 산맥과 눈 덮인 들판은 그림 밖으로 끝없이 펼쳐집니다. 내가 지쳤을 때 그들은 위로가 되었고, 내가 넘어졌을 때 그들은 구원이 되었습니다. 내 앞에 창문처럼 놓일 백지 앞에서, 힘들 때 쓰곤 했던 시가 오히려 나를 괴롭게 할까 두렵습니다. 나의 지친 발걸음을 담아낸 한 편의 시로 황량한 먼 길을 걷는 모든 이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나의 외로운 시선을 녹여낸 한 폭의 그림으로 누군가의 차가운 가슴도 함께 녹여내고 싶습니다. 시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게 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곳 덕고산 아래 소사리에도 하얀 눈을 밟으며 봄이 오고 있습니다.
∥심사평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최근 우리 시단은 그 형식과 내용에서 새로움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경향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그런 시들이 평자로부터 좋은 시로 평가받는 것은 물론 독자로부터 큰 박수를 받는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알맹이가 빠진 속 빈 강정처럼 허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시를 이루고 있는 언어가 남발되는 관념어들에 갇혀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는 우리의 정신과 사물을 연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언어를 사용하며, 사실을 보다 더 사실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가치화된 언어를 활용한다. 이는 삶의 실재와 밀착된 언어를 통해서 구체적인 삶의 결을 형상화시키는 것이라 사료된다.
그런 점에서 강현욱 씨의 「개기월식」외 2편은 용동하는 삶을 시라고 하는 형식 속에 담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돋보인다. 더욱이 「개기월식」이나 「나를 바라보다」에서는 시인의 치열하게 타오르는 시적 감성을 “작렬하는 태양의 꿈틀거리는 아집”이나 “검은 양말을 걸쳐놓은 듯/철책선 위에 올라앉은 까마귀처럼”이라는 표현을 얻어 자신의 의도를 시적 언어로 잘 소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지표」에서는 “철교 위에 우뚝 서/입질 온 낚싯대의 미끼마냥/강물에 몸을 던진다/출렁이는 순간/한강변 초고층 벌집들은 위태롭게/하늘로 솟구친다”라고 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한 현실을 지켜보는 안목이 번뜩인다. 이런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은 강현욱 씨가 앞으로 시를 쓰는 데에 중요한 씨앗이 되리라 믿는다. 당선을 축하하는 바이다.
심사위원/전기철(시인, 숭의여대 교수)
양문규(시인, 본지 상임고문)
─문학 무크 『시에티카』 2012년 · 상반기 제6호
첫댓글 꿈틀거리는 아집을
나는 온몸으로 등지고 섰다...어제의 달과 오늘의 달과 내일의 달을 숭숭 송곳으로 구멍을 내 듯
심사의 변에서도 일고했 듯...냉정한 시대적 담판을 읽게 되네요. 기성시인 못지않게 큰 시를 봅니다.
축하를 마음으로 하겠습니다! 수정합니다. 나비넥타이...^^* 고론 기운으로 다시금 축하 드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