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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신명기26장1~19절
제목 : 여호와를 인정하는 삶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토지소산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며 은혜를 고백하고, 삼년마다 십일조를 드리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음을 아뢰라고 하십니다.
1. 소산의 맏물을 드리는 규례(1~11절).
1) 지정된 장소에서 봉헌(1~4절)
(1)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에 들어가면, 무엇보다 가장 먼저 잘 지켜야 할 법도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예배입니다(1,2절).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 같은 말이 두 번 반복되고 있음은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6:3;11:9)을 차지하게 되는 것은 결코 그들의 공로나 강함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들의 열조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 때문(창 13:14,15)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3절).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도가 영적 가나안 땅인 천국을 기업으로 얻게 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언약(요3:16)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엡 2:4-9).
맏물(레쉬트). - 시간이나 장소, 서열 그 밖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첫째' 또는 '시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수확한 최초의 첫 열매(first fruits).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민 18:12).
따라서 이것을 하나님께 헌납한다는 것은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 및 통치권을 인정한다는 행위입니다.
광주리. – 이에 해당하는 '테네'는 본서에만 나오는 고대 광주리(4절;28:5,17)로서, 버들과에 속하는 낙엽 관목을 꼬아 짠 듬성한 바구니를 가리킵니다.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 이스라엘의 유일 중앙 성소를 가리킵니다(12:5).
당시 이방인들을 그들의 다신교적(多神敎的) 사상과 예배 양식에 따라 예배 처소를 도처에 두었고, 또한 자주 바꾸었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들의 기호(嗜好)에 따라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요 4:20-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방 풍습을 완전 배제하기 위하여 특별히 한 곳을 지정하시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곳에서만 제사 드리도록 규정하셨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12:5 참조.
(2)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습니다(3졸).
“[3]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그 때의 제사장. – 여기서 '제사장'은 중앙 성소에서 그날의 제사와 기타 직무를 맡아 수행하던 당직 제사장을 의미합니다(Keil,Pulpit Commentary).
한편 이 말은 인간 제사장의 유한성을 시사해 주는 말인데, 실제로 아론 자손 제사장들은 그 제사장 직이 시한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항존자(恒存者)이시니, 그의 대제사장 직분 역시 영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히 7:23,2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 '나의 하나님 여호와' 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가 아니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 칭한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는 곧 당시의 이스라엘이 아직 하나님과 일대 일의 온전한 교제관계를 이루지 못했음을 시사해 줍나다.
즉 당시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중재자인 제사장을 통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제 관계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열조 아브라함(창 12:7;13:15;15:18-21;17:8)과 이삭(창 26:2,3)과 야곱(창 28:13-15;35:12)에게 하셨던 언약의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를 찬양하며, 그분께 가나안 땅에서 거둔 첫 열매를 드려 감사할 이유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3) 제사장은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입니다(4절)
“[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 백성들이 가져온 가나안 땅의 토지 소산의 첫 열매를 제사장이 하나님께 소제물(素祭物)로 봉헌하는 의식을 가리킵니다. 한편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감사를 상징하는 제사인 '소제'에 관하여서는 <레위기 서론,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를 참조.
2) 구원과 축뵥에 대한 찬양(5~11절).
(1) 내 조상은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다(5절)
“[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내 조상...아람 사람. – 뒤이어 나오는 하반절을 볼 때, 여기서 '내 조상'이란 이스라엘 12지파의 직접적인 조상인 야곱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람(Aram)은 셈의 다섯 아들 중 한 사람(창 10:22)일 뿐 야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셈의 아들 중에서도 아르박삿의 후예이기 때문입니다(창 11:10-26).
그런데도 야곱을 가리켜 '아람 사람'으로 부르고 있는 까닭은 아마 그가 아람 지방 곧 '밧단 아람'에서 20년간이나 생활하였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아람 사람 라반의 딸인 레아 및 라헬과 결혼, 자녀들을 낳아 가문을 형성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창 28-31장).
이밖에도 야곱의 어머니인 리브가 역시 밧단 아람 출신이란 점은 그 의미를 더해 줍니다(창 25:30).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 야곱의 집 사람으로서 애굽에 이른자는 모두 70명에 불과했었습니다(창 46:27).
그러나 그들이 모세의 인도하에 애굽을 떠날 때에는 어린아이와 여자, 레위 지파를 빼고도 60만 명이 넘었습니다(출 12:37;민 1:46,47).
이스라엘이 애굽에 체류하는 400여년 동안 유아 살해 등과 같은 각종 박해가 있었음을 감안 한다면, 그 와중에서도 70명의 인구가 60만 명으로 불어났다는 것은 실로 큰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같은 열조들에게 약속한 자손 번성의 축복이 온전히 성취된 결과입니다(창 12:2;15:5;22:17;26:4;28:14).
(2) 애굽 사람이 학대하며 괴롭히며 중노동을 시켰습니다(6절).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이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수확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칠 때,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뼈저린 과거를 고백토록 한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인식시키기 위함입니다.
즉 그들은 과거 애굽의 압제하에서 고된 강제 노역에 시달려야 했으며(출 1:8-14;2:11;5:6-14), 자녀를 낳되 남자 아이인 경우에는 집에서 기르지 못하고 하수(河水)에 던져야 했었습니다(출 1:15-22).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새 땅에서 자유롭게 살면서, 그 땅의 소산을 풍성히 맛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은혜를 늘 잊지 않고 생생히 기억하여야 할 것이었습니다.
(3)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7절)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 이스라엘이 '언약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신실성에 의지하여 간구했음을 뜻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셨던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권념하여 주셨습니다(출 2:24,25).
고통과 신고와 압제. –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생활하는 동안 애굽인들로부터 받은 갖가지 고난과 학대를 3중적으로 강조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를 보다 세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고통'에 해당하는 '오니'는 주로 정신적인 고통, 고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역본 KJV,RSV 등은 이를 'affliction'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신고'에 해당하는 '아말'은 '심하게 일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대개 혹독한 '육체적 노고'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압제'에 해당하는 '라하츠'는 '누르다','강제하다'는 말에서 유래된 단어로, 인간의 자유로운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oppression'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돌아 보사 애굽에서 건져 내셨는 바, 오늘날에는 온갖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고통 받고 신음하는 인류를 그 죄의 사슬 및 고통으로부터 구원에 주고 계십니다(롬 6:22).
(4) 여호와께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8절).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강한 손과 편 팔. – 이미 4:33,34에서 언급되었던 의인법적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수많은 병거와 마병(馬兵)을 갖춘 애굽 군대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시기 위하여 능동적이고도 다이나믹(dynamic)하게 역사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큰 위엄. -'위엄'에 해당하는 '모라'는 '두려운 것'또는 '공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4:34에는 '두려운 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렸던 10대 재앙을 의미합니다.
이적과 기사.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연 법칙과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시면서 까지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가리킵니다.
상세한 내용은 4:33,34 참조.
(5)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9절)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이곳으로 인도하사.– 8절의 '인도하여 내시고'와는 의미상 차이가 있습니다. 즉 8절의 '인도하여 내다'에 해당하는 '야차'는 어떤 곳에서 '끄집어 내는 것'을 의미하지만, 본절의 '보'는 '들어가게 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탈출하였으며, 하나님의 펴신 팔에 의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거하게 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후일 이 사실을 가리켜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시 80:8)라고 노래하였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가나안 땅이 풍요롭고 축복된 땅임을 강조하는 수사학적 표현입니다(Wycliffe).
그러나 이 표현은 어디까지나 천지 만물의 주인이시고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애 3:38)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언약적 측면에서 이해하여야지, 단지 물질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하여서는 곤란합니다. (11:9).
(6)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그를 경배할 것입니다(10절).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 – 이스라엘이 새롭게 거하게 된 가나안 땅과 그곳에서 거두는 모든 수확물들이 다 하나님의 소유임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대상 29:11)라고 한 다윗의 고백은 이 땅에서 청지기적 삶을 사는 모든 성도들이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대명제입니다.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 가나안 땅의 토지소산의 '맏물'을 여호와의 단에 바칠 때, 그 헌물과 더불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신앙 고백(5-10절,내 조상은...가져왔나이다)을 하도록 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비록 그들이 허락하신 땅 가나안에서 기름진 열매를 풍성히 맛보며 평안하게 살아간다 할지라도, 결코 자신들의 과거 비참했던 처지와 또한 그 처지를 권고(眷顧)하여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출애굽의 감동을 생생히 재현시키며 계속 보존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한편 이 신앙 고백의 내용에는
(1) 과거 비참했던 애굽 생활에 대한 겸손한 회고(5,6절),
(2) 바로의 권세를 꺾으시고 이스라엘을 그 손에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찬양(7,8절),그리고
(3)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9절) 등이 담겨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 두고. – 여기서 '여호와 앞'이란 구체적으로 제물을 놓는 제단 위를 가리킵니다(4절).
그런데 하나님을 경배하기에 앞서 이처럼 예물을 바치는 것은 예배드리는 자가 먼저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가 곧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임을 교훈해 줍니다(시 50:14;골 3:16,17).
(7)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즐거워 하라 하십니다(11절)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 – 여기서 '복'에 해당하는 '하토브'는 직역하면 '그 좋은 것들'(NIV,the good things)이란 뜻입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기름진 땅 가나안에서 생산되는 오곡백과(五穀百果)를 가리킵니다.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 하나님께 바쳐진 첫 열매들(4절)이 레 2:1-3의 규정에 따라 소제물(素祭物)로 사용되지 않고, 레위인 및 객과 더불어 감사 잔치를 여는 데 사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표시로 당신께 봉헌된 자기 백성의 소출이 모든 사람에게, 특히 가난한 이웃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나눠 주는 용도로 사용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교회 헌금 역시 가난한 형제들을 위한 구제 사업이나 복지 사업에 중점적으로 사용되어야 마땅함을 교훈 받을 수 있습니다(Matthew Henry).
2. 매 삼년 십일조 규례(12~19절)
1) 매 3년의 십일조 봉헌(12~15절)
(1) 3년 해 십일조는 사회 약자를 부양하는 데 있습니다(12절).
“[12]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 – 안식년을 기준으로 세 번째 해가 되는 때, 곧 제 3년과 제 6년째를 가리킵니다.
이때에는 이스라엘이 '제 2의 십일조'<14:22,23>로 중앙 성소에서 감사제를 드리는 대신,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한 구제비로 사용하였는데 이를 일명 '제 3의 십일조'<14:28>라 합니다. 14:22-29 주석 참조.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 – 여기서 '모든 소산'이란 논밭의 식물 뿐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생축(生畜)까지 의미합니다(14:23).
이스라엘은 이러한 모든 것들의 한 해 총수입 중 1/10을 '제 1의 십일조'로 레위인들에게 내야 했으며, 그 나머지 9/10에서 다시금 1/10을 '제 2의 십일조'로 구별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 – 여기서 '객과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른바 이스라엘의 3대 약자 계층입니다(14:29;16:11,14;24:17,19-21 등).
그런데 여기에 또한 레위인들이 포함된 것은, 이들 역시 이스라엘 12지파 중 기업이나 분깃이 없는 자들로 오직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십일조(十一條,tithe)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14:27).
먹어 배부르게 하라. – 이미 14:28,29에서 언급된 바 있는 규례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 3의 십일조'로 이스라엘의 예배 생활을 돕는 레위인들을 공궤(供饋)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러나 객과 고아와 과부 역시 돕도록 명령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객'(게르)은 귀화한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의 일원으로 인정은 받았어도 떳떳하게 기업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곤궁하고 빈한한 자의 위치에 머물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도 전에 애굽에서 이방인으로 생활하였음을 들어 귀화한 이방인들을 선대하도록 명하셨던 것입니다(출 22:21;레 19:33,34).
다음으로 '고아와 과부'(야툼 웨 알마나)는 뒤에서 그들을 돌보아 주는 자들이 없는 약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고아의 아버지로, 과부의 재판장으로 자처하시고 그들을 돌보십니다(시 68:5).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그분의 뜻을 받들어 그러한 불우 이웃들을 돕는 것은 마땅합니다(고후 9:8,9;약 1:27).
(2)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습니다(13~14절).
①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습니다(13절)
“[13] 그리 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 유대 랍비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때(5-10절)에는 그분의 영광을 기리기 위하여 큰 소리로 고하여야 했지만, 자신의 떳떳함을 밝힐 때(13,14절)에는 개인의 공덕이 강조되지 아니 하도록 낮은 음성으로 고하여야 했다고 합니다.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 '성물'(聖物)에 해당하는 '코데쉬'는 '바쳐진 분깃'(RSV,NIV,the sacred portion)으로도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십일조'를 십일조라 하지 아니하고 이처럼 '성물'로 칭하고 잇는 까닭은 고백자가 자신의 힘으로 이웃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구제하는 것 뿐임을 인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 여기서 '범하다'에 해당하는 '아바르'는 단순히 법률 따위를 '어기다'는 뜻 뿐 아니라, 정도를 넘어서 '지나쳐 달리다'란 뜻도 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적으로 거역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과도하게 만용을 부리는 것도 역시 잘못임을 깨우쳐 줍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한 잘못은 아예 하나님의 명령을 망각해 버리는 일입니다.
이러한 자는 단순히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을 만홀(慢忽)히 여기는 자이니 큰 죄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② 십일조를 결코 사적인 일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14절).
“[14]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 여기서 '애곡하는 날'이란 초상(初喪) 기간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인들은 대개 7일정도의 장례 기간을 가졌는데, 이때에는 초객들을 위한 많은 음식이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를 충당하기 위하여 행여 하나님께 구별해 놓은 십일조를 유용코자 할 수 있는데, 전혀 그러하지 아니하였다는 뜻입니다.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 시체나 기타 이유로 의식상(儀式上) 몸이 부정해진 중에는 성물(聖物)을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였다는 뜻입니다(민 19:11-19).
그 까닭은 몸이 부정(不淨)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성물에 가까이 하는 것은 율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레 22:3).
이는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금을 드리되, 구별되고도 성결한 마음으로 드리지 아니하고 형식적으로 바치기 일쑤인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경종을 울려 줍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 공동 번역은 "그것을...죽은 혼령에게 바친 일도 없습니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죽은 자(故人)의 기일(忌日)을 맞이하여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데 여호와께 구별된 십일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 이는 고백자가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한편 선지자 말라기는 이러한 십일조와 관련하여 과부와 고아 및 나그네 등을 돌보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하는 행위라고 언급하였습니다(말 3:5-10).
이는 가난한 이웃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십일조 정신이며(호 6:6), 형식적으로 바치는 십일조는 무의미함을 교훈해 줍니다.
(3)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 3년의 십일조를 봉헌할 때에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15절).
“[15]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 – 히브리인들은 하늘이 3층천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우주개념을 지녔었습니다(욥 26장 강해,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그중 1층천은 새가 날아다니는 공간이고,
2층천은 해와 달과 별이 붙어 있는 우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높은 하늘인 3층천은 하나님과 천사들이 거처하는 장소로 생각하였습니다(고후 12:2).
하나님께서는 지고자(至高者)이시자 가장 거룩한 분이시니 세상에서 제일 높은 하늘에 거할 것이라는 이러한 생각은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창 28:17;욥 22:12;시 2:4;115:3).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9)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보시고(솨카프). -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사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은밀히 지켜보시고 그 행위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마 6:3, 4).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 기도의 제목이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를 위한 것임에 유의해야 합니다.
본래 개인의 번영이란 그 개인이 속해 있는 집단 전체의 번영과 병행될 때 참된 의의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드림에 있어서도 개인의 유익을 구하기에 앞서 먼저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입니다(고전 10:23, 24, 33).
2) 그 땅에서 요구되는 순종의 삶(16~19절)
(1)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면 그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약속이 반복됩니다(16절).
“[16] ○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걸쳐 지켜야 할 계명임을 시사해 주는 말입니다(Keil).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존재합니다(마24:35).
따라서 과거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모든 말씀은 그 세대에만 해당되었던 유한한 규례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규례와 법도. – 4:1참조.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 여기서 '그런즉'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 줍나다.
그것은 곧 천하 만물의 주권자이자 이스라엘의 구속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규례와 법도를 친히 주사 그것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는 '아니오'란 있을 수 없고 오직 순종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명령을 지키되 '마음과 뜻을 다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전인격과 모든 정성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6:5을 참조.
(2)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17절)
“[17]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 여기서 '인정하다'란 말은 그 의미상 '고백하다'로 번역함이 더 적절합니다.
왜냐하면 '인정하다'는 말속에는 이전에는 그렇지 않은 것을 이제는 그렇다고 간주하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 아닌 다른 어떤 것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그들은 영원 전부터 계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진정 고백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 도를 행하고. - '그의 길 또는 그의 뜻을 따르고'로 의역할 수도 있는데, 이는 곧 하나님을 자신의 인도자로 전적 의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 이는 곧 하나님이 자신의 주권자이심을 행동으로 입증해 보이는 것입니다.
누구든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일을, 마귀에게 속한자는 마귀의 일을 하기 마련입니다(요일 3:8-10).
그 소리를 들으리라. – 자신의 온 마음과 의식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해 있음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연인끼리는 마음과 정신이 온통 상대방에게로만 쏠려 있어, 단 한 마
디의 말도 놓쳐 버리지 아니하고 단순한 동작 하나조차도 예사롭게 보지 않기 마련입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백성되게 하셨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확언하셨습니다(18절).
“[18]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
보배로운 백성. - '보배로운'에 해당하는 '세굴라'는 '특별한 소유'를 의미합니다(출 19:5).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열국 가운데서 '특별히 구별하여' 자기백성으로 삼은 선민(選民)인 것입니다(사 43:1).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도는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특별히 구별해 놓으사,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인(印)치신 그리스도의 특별한 소유입니다(요 17:6-10).
(4) 너를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성민 되게 하셨습니다(19절).
“[19]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 여기서 '찬송'(테힐라)은 '찬미'와 '찬양'을, '명예'(쉠)는 '높은 지위'와 '명성'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영광'(티프아라)은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러한 어휘들은 본래 하나님께만 합당한 수식어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높이드사 다른 어떤 나라보다 위대하게 만들고 찬송과 영광과 명예를 취하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이 본절의 의미입니다(렘 13:11;33:9;습 3:19,20)
성민(암 카도쉬). - '구별하다'(카도쉬)와 '백성'(암)이 합쳐진 말로서, 곧 '보배로운 백성'(18절)과 같은 의미입니다(출 19:5,6).7:6참조.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가나안 땅의 풍성한 소산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1~11절).
하나님이 애굽의 종이었던 그들을 속량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을 광야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인도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지않으셨다면, 척박한 천수답에 때를 따라 햇빛과 지를 내리지 않으셨다면 결코 맛볼 수 없을 은총의 선물입니다.
내 소유는 내가 땀 흘린 결실이라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면 기꺼이 드리고 나누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삼 년마다 십일조를 구별하여 레위인, 객, 고아와 과부에게 주라고 명령하십니다(12~15절).
이들은 약속의 땅에서 기업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소산의 맏물 일부와(11절), 소산의 십일조를 나누어 받아(12절) 약속의 땅의 축복을 함께 누릴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사회적약자를 돌보는 의무를 다했을 때에야 비로서 “말씀을 청종하고”, “명령대로 행했다”고 고백하고, “복을 내리소서”리고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사회적 약자들이 배려와 섬김을 받지 못하고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면, 나와 우리 공동체는 아직 계명을 온전히 순종했다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성민’으로 삼아 온 세상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십니다(19절).
그것은 선민이라는 특권을 부여하는 완장이 아입니다.
오직 순종하는 백성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과 명예로 삼을 만한 백성에게 주실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성민(벧전2:4~10)이 될 자격을 갖추었습니까?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언약의 당사자가 각각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때 언약은 유효하게 지속될 수 있습니다(16~18절).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의무이고, 이스라엘을 보배롭고 으뜸 되는 민족이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무입니다.
나는 성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언약적 의무를 다하는 백성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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