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열왕기상17장1~7절
제목 : 비를 멈추시는 하나님
‘가뭄에서 승천(왕하 2장까지)’엘리야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엘리야는 야합에게 수년 동안 비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예고대로 가뭄은 곧 현실이 됩니다.
1. 가뭄의 시작(1절)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1) 길르앗에 우거하던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예언 합니다.
길르앗 - '길르앗은 '증거의 돌무더기'라는 뜻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암흑기인 아합 시대에 여호와 신앙의 증거자 엘리야가 이 지방에서 배출된 점은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한편 길르앗(Gilead)이라는 지명은 넓게는 남쪽 아르논 강에서 북쪽 야르묵 강에 이르는 요단 동편 일대를 가리킵니다.
이곳은 곡창 지대와 목축지로 유명하였는바 일찍이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이곳을 자신들의 기업(基業)으로 요구할 정도였습니다(민 32:1-5).
디셉 - 디셉(Tisheb)은 엘리야의 고향으로 여섯번이나 언급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길이 없습니다(21:17, 28; 왕하 1:3, 8; 9:36).
다만 길르앗 북방 산악 지대에 위치한 현재의 리스팁(Listib)일 가능성이 있습니다(Cohen).
만일 '디셉 사람'이란 말이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면 엘리야는 디셉에서 출생하여 길르앗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 - '엘리야'(또는 엘리야후)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엘리야의 생애는 그 같은 이름의 뜻을 구현하는 데 바쳐집니다.
한편 성경에는 엘리야(Elijah)의 가계(家系)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B.C. 9세기의 유명한 선지자로서 아합 왕(B.C. 874-853) 때부터 아하시야 왕(B.C. 853-852) 때까지 북왕국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예언 활동을 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모세에 버금가는 인물로서 유대인들의 추앙을 받았는데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세례 요한의 정체를 확인하면서 그가 엘리야인지 물어 볼 정도였습니다(요 1:21).
2)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이 짧은 어구에 함축된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즉 본절은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1)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새삼스러운 것 같지만 실상은 바알 숭배가 만연한 당시의 상황에 대해 강한 거부의 뜻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즉 이는 이스라엘의 참 신은 여호와이지 바알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말입니다.
(2) 그리고 그 여호와가 바로 '내가 섬기는' 하나님 이시다는 뜻입니다.
이 말에는 바알을 섬기는 무리가 다수인 당시의 형편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그 속에서 자신의 현주소와 입장을 밝히는 신앙 고백인 동시에 자신이 여호와께로부터 보냄 받은 대사(大使)의 자격임을 밝히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3)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러한 표현은 구약 시대 당시 일반적인 맹세의 형식이긴 합니다(18:10; 렘 5:2; 16:14; 호 4:15).
*18:10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
*렘5: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렘16: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호4:15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그러나 단지 상투적 어구만이 아니고 당시 상황 하에서의 진솔한 신앙고백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의미는 절실해집니다.
즉 바알 및 우상 숭배 세력이 지배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있는 참 신은 여호와'라는 이 어구의 한자는 담대한 도전의 성격을 띤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4)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때를 따라 적절히 내리는 단비는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결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신11:11,14;욥5:10; 28:26; 36:27;시147:8).
*신11:11,14 “[11]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14]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그리고 그 반면에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지면 하늘은 더 이상 비를 내리지 않아 생명을 쇠약하게 하며 땅을 메마르게 하리라는 경고도 아울러 언급되어 있습니다(신 11:17; 28:24).
*신11: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신28: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그런데 수년간 비가 없으리라는 본절의 가뭄 예언 역시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입니다(16:26-33).
더욱이 여호와의 말씀이 없는 한 가뭄이 가시지 않으리라는 엘리야의 선언은 바알 숭배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바알(Baal)은 땅에 비를 내리는 등 생산력을 주관하는 신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레 26:1-13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 참조.
그러므로 그 같은 능력조차도 여호와의 장중에 있다는 이 예언은
곧 바알이 생명 없는 거짓 신임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2. 그릿 시냇가에서 물과 양식을 공급받음(2~6절)
1)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습니다(2절)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임하여'('하야')는 원래 '되다', '존재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는 정적(靜的)인 상태를 의미하기 보다는 대단히 역동적인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기에 본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 그저 '있다'라고 하지 않고
'오다', '임하다' 등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한편 한 시대의 다수를 홀로 상대해야 할 신앙의 용사 엘리야에게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수시로 말씀을 통해 일거수일투족을 지시하셨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소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까지도 은혜 가운데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2)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었습니다(3절)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 앞서 엘리야는 아합을 찾아가 경고했을 것입니다(1절).
그러므로 '여기서'는 아합의 왕궁이 있는 사마리아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성경에서 '동쪽으로'는 일반적으로 요단 강 동편을 말합니다.
요단 앞. - '앞'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 페네'는 창 16:12에서 '동방'으로 번역되었는데 여기서도 '동쪽'으로 번역함이 더 타당할 듯합니다.
그릿 시냇가. - '그릿'(게리트)은 '분리', '잔절'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내는 어떠한 지역을 구분하는 경계선 구실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편 이 시내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입증되지 않고 있으나 엘리야가 길르앗 사람인 점(1절)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요단 동편 길르앗의 동굴 지대에 있는 시내 중 하나일 것입니다(Cohen).
'숨고'는 문자 그대로 '피하다', '감추다'는 뜻의 '사타르'에서 온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동사에서 엘리야의 심판 예언(1절)이 있은 후 아합과 이세벧의 즉각적인 위협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합의 입장에서 엘리야의 선포는 민심을 교란하는 유언 비어요 반 정부적인 도전으로 비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같은 위협만이 피신의 원인은 아닙니다.
아직은 여호와 신봉자와 이방신 숭배자간의 정면 대결(18장)의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는 당분간 엘리야에게 몸을 숨기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3) 시냇물을 마시게하고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엘리야를 먹게합니다(4절)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까마귀들에게 명하여. - 혹자는 까마귀가 부정한 조류(레 11:5)라 하여 '까마귀'(오르빔)를 '아랍인들'(아르빔)이나 '상인들'(오리빔) 또는 '오렙 사람들'(오레빔)로 수정할 것을 제안합니다(Hammond, Kimchi).
그러나 이러한 견해와는 달리 오히려 본문은 까마귀로 읽어야 할 강조점을 지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온통 바알 숭배로 돌아선 시점에 여호와 신앙의 용사 엘리야를 지탱해 준 것은 까마귀, 이방인 과부(9-16절) 등 이라는 역설의 강조점을 본문은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부정한 것들로 여긴 요소들이 되려 이스라엘의 구원과 정화에 한몫 기여한 것입니다.
4)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룹니다(5절).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여호와의 맡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 엘리야가 예언 선포 이후(1절) 이처럼 잠적해버린 사실을 놓고 그 당시 비웃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피신을 수치로 꺼리지 않고 즉각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즉 엘리야는 사람의 취향과 기질에 영합하여 영웅이 되기보다 자신을 잊은듯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는 것입니다(갈 1:10).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5) 까마귀가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가져와 먹었다(6절)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까마귀들이...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 까마귀는 본래 매우 게걸스런 날짐승으로 시체와 썩을 것들을 즐겨 먹어치웁니다.
그런데 그런 까마귀가 엘리야에게 음식을 고스란히 날라주었다는 데에서 기적적인 성격이 한층 더 강조됩니다.
한편 이처럼 까마귀도 순종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엘리야에게 깊은 감명과 용기를 주었을 것입니다.
즉 여호와 신앙의 열의가 대단한 엘리야의 눈에는 당시 우상 숭배에 열중하는 백성의 모습이 마치 부패한 시체를 탐하는 까마귀 떼처럼 가망 없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까마귀조차도 순종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와의 강권적 은총으로 말미암아 변화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은 엘리야의 심령에 선지자적 소명을 더욱 강화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3. 시내의 마름(7절)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 18:1과 야고보서 5:17에 의하면 당시 이 같은 가뭄은 3년 6개월 동안이나 지속되었음을 알 수있습니다. 1절주석참조.
*18: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약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의 시대(16:30)에 가장 위대한 선지자를 세우십니다(1절).
*16: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하나님은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 수년 동안 이스라엘에 가뭄이 있을 것이라고 전하게 하십니다.
여호와가 멈춘 비를 바알이 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여,
무능한 신, ‘바알 종교의 하구’를 만천하에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상실과 결핍은 그동안 내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할 것입니다.
허탄한 곳에 빼앗긴 시선과 마음을 다시 주님께 모으도록,
주님은 오늘도 말씀과 사람과 상황을 통해 우리를 일깨우십니다.
2) 엘리야를 사마리아(“여기”)에서 그릿 시냇가로 보내셔서 이제 다가올 가뭄과, 아합과 이세벨의 위협에서 지켜 주십니다(1~4절).
하지만 그릿 시냇가의 체류는 단지 위기를 모면하는 시간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큰 영적 전투(18장)를 치르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재(主宰)요, 순종이 생명의 길임을 배우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3)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 전하고 떠나고 순종합니다(2,5,6절).
그릿 시냇가에 숨어 까마귀가 날라 준 음식으로 연명하라는 명령에도 군말 없이 순종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엘리야를 하나님은 먹이시며 돌보십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구하고 살 길이 비와 양식이 아니라 말씀과 순종임을 알게 하십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엘리야는 풍요의 신 바알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의 악행을 보면서 우로가 내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1절).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고통스럽지만 ‘비 오지 않기’를 구한 것입니다.
세속에 물든 교회가 회심하도록 ‘가뭄’(고난)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2) 그릿 시내마저 말랐습니다(7절).
생명이 충만하던 땅이 황폐해져 갈 때, 선지자는 자신의 목숨만 돌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일어나(9절) 죽음의 땅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내가 누리는 안정이 사명을 잊은 안주가 되지 않도록 주님의 부름에 민감하고, 시대의 아픔에 공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