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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겔 28장1~26절
제목 : 두로와 시돈의 심판
두로와 시돈은 풍랑 앞에 가라앉는 배처럼 허무하게 몰락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늘까지 높았지만,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그들이 한낱 사람인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1. 교만한 두로 왕의 심판(1~10절)
1) 징계 이유(1~5절)
(1) 말씀의 계시(1절)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본절은 26, 27장에 이어 계속적으로 두로의 멸망을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27장이 과거 화려한 두로 왕국이 이제는 패망하게 되었음을 묘사한 것이라면 본장은 주로 두로의 멸망 원인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2) 두로의 말을 인용해 교만을 고발합니다(2절)
“[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두로 왕 - '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기드'는 문자적으로는 '지도자' 또는 '방백'등을 뜻합니다.
이는 본절과 단 9:25, 26을 제외하면 이스라엘의 왕을 묘사할 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삼상 9:16;10:1;13:14;25:30).
이 단어를 근거로 혹자는 두로 왕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그의 직임을 수행하는 것임을 나타낸다고 주장합니다(Wycliffe).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두로 왕국이 당시 지방 자치의 성격을 띤 상업 국가였던 바, 그 왕을 상인 귀족 정치의 우두머리 정도로 묘사한 것을 나타낸 것이라 합니다(Kilefoth).
한편 A.D. 1세기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본 구절에 소개된 두로의 마지막 왕은 이토바알 2세(Ittobaal II, B.C. 585-573년경)라고 합니다.
나는 신이라 - '신'(엘)이란 직역하면 '전능자', '강한 자'란 뜻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할 때 쓰이기도 했습니다(창 14:20, 22;35:3, 11;49:25;신 4:31;시 52:1, 5).
이 용어는 고대 셈족 계통의 족속들에게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가나안 족속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을 이같이 불러, 지고(至古)의 신으로 여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로 왕이 자신을 '신'이라 함은 경제적인 부로 교만하여 자신을 최고 존재로
높인 행위입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주요 이유가 됩니다(12-19절).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 이는 두로 왕국이 바다로 둘러싸여 어느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완전한 곳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말인 듯합니다(Hengstenberg, Cooke).
이 사실은 14, 16절에도 암시되고 있습니다.
(3) 두로는 다니엘보다 더 지혜로워서 그를 놀랍게 할 비밀은 없다고 합니다(3절)
“[3]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한마디로, 두로의 지혜는 세상 최고였고, 그 지혜가 두로에게 성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물론 두로의 지혜는 장사꾼의 지혜였습니다.
다니엘 - 유다 귀족 출신으로 B.C. 605년 여호야김 3년, 바벨론의 제1차 침공 때 끌려간 자입니다(단 1:1-7).
그러나 그는 바벨론에서도 그의 신앙을 지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 특히 지혜를 얻어 각종 꿈과 문제들을 해석, 해결하고 미래에 대한 일들을 환상 등으로 받고 알게 됩니다(단 2:1-45;4:4-27;5:1-28;6:1-8:27;10-1-12:13).
그러나 혹자는 본절에 언급된 다니엘이 고대 근동에서 발견된 라스 솨마라(Ras Shamara) 토판에 등장하는 인물(Dan'el)을 가리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나(Cooke, Wycliffe) 그 근거가 너무 희박합니다(14:14 참조).
(4) 두로 왕은 자신의 지혜와 총명을 단순히 재물만을 얻는 데 소비하였다(4절).
“[4]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이는 그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신을 단장하며 자신의 영광과 유익만을 위해서 살아왔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그의 생활 자세는 음녀 바벨론이 자신만을 영화롭게 하며 살았던 것과도 비교될 수 있습니다(계 18:7-20).
(5) 두로 왕이 교만하게 된 원인과 그 배경을 설명해줍니다(5절).
“[5]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지중해의 중계 무역을 장악한 두로는 넘쳐흐르는 재물에 현혹되어 지혜의 한계를 망각했습니다.
그는 재물의 취득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지혜와 수단을 사용했는데, 이 재물은 결국 자신을 자고(自高)시키는 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 심판 선포(6~10절)
(1) 두로 왕이 얼마나 교만했던가를 보여줍니다(6절)
“[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 마음을 높이는 교만의 마지막 단계는 자기 지혜를 신의 자리에 앉히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기는 두로의 교만에 이제 하나님께서 반응하십니다.
(2)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들 가운데 가장 잔혹한 민족을 데려와 두로를 치게 하실 것입니다(7절)
“[7] 그런즉 내가 이방인 곧 여러 나라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이방인 곧 여러 나라의 강포한 자. - '강포한'(아리츠)은 '두려운 마음을 일게 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 '아라츠'에서 유래된 말로 '두려운', '난폭한' 등의 뜻을 갖습니다.
에스겔 당시 이들은 고대 근동 지방을 패권하였던 바벨론 군대를 가리킵니다(7:21, 24;30:10, 11;32:11, 12).
하나님은 당시 바벨론 군대를 당신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 종으로 사용하셨습니다(렘 27:6;43:10).
지혜의 아름다운 것. - 이는 두로 왕이 지혜로써 취득한 재물을 가리킵니다.
(3) 바다 가운데에 있다고 안전을 자신하던 두로가 바다 가운데서 죽임을 당합니다(8절)
“[8]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를 바다 가운데에서 죽임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가운데에서 죽게 할지라”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 여기에서 '구덩이'(솨하트)란 형식적 의미대로 단순히 땅에 판 구덩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생각한바 모든 자들이 사후에 가게 되는 음부, 곧 사후 지하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26:20, Wycliffe, Cooke).
바다 가운데에서 죽게 할지라. - 이는 바다로 둘러싸인 두로 왕국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스스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2절) 패망하게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27:27).
(4) 적들이 성벽을 무너뜨리고 들어와 거리를 내달리며 칼로 주민들을 죽일 때에야 두로는 자신이 신이 아닌 사람(아담)임을 깨닫게 됩니다(9절)
“[9] 네가 너를 죽이는 자 앞에서도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들 앞에서 사람일 뿐이요 신이 아니라”
네가 너를 죽이는 자 앞에서도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 - 이 두 가지 표현은 상호 병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이 신이 될 수는 없습니다.
흙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의 지혜는 그를 지의신 하나님의 지혜에 비견될 수 없습니다.
(5) 두로는 이방인의 손에 넘겨져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죽음’을 맞습니다(10절).
“[10] 네가 이방인의 손에서 죽기를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셨다 하라”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하리니. - 이것은 매우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죽음을 당하는 것을 뜻하는 듯합니다(31:18;32:19, 21, 24).
당시 베니게 사람들은 할례를 시행했었는데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을 야만인으로 여겼다 합니다(Herodotus).
그러나 이 표현은 그들의 관습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히브리인들의 사상에 근거한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되었듯이, 두로 왕은 그 축복에서 제외되어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는 두로의 멸망을 선언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의 권위를 부여하시는 말씀입니다.
2. 두로 왕을 위한 애가(11~19절)
1) 도입부(11절)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는 앞 부분(1-10절)에 이어 계속적으로 두로 왕의 교만과 멸망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 부분이 경제적 부로 인해 교만하게 된 두로 왕의 모습과 그 심판을 다룬 것이라면 본문(11-19절)은 두로 왕의 근본적 모습, 즉 그의 온전했던 과거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그에 근거하여 교만하게 되고 심판받음을 열거해주고 있습니다.
2) 완벽했던 두로 왕(12~14절)
(1) 두로 왕은 ‘완전한 도장’으로 지혜와 아름다움에서 완벽한 존재로 창조돼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살았습니다(12절)
“[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슬픈 노래(애가) - 19:1 주석을 참조하라.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아타 호켐 토크니트) - 본 구절은 본서에서 해석상 상당히 어려운 구절 중 하나입니다.
혹자는 본 구절을 두로 왕이 두로를 그 당시 해상의 중심지로 이룩할 수 있었던 것과 연관시키고 있습니다(Ralph H. Alexander).
이와 유사하게 쿡(Cooke)도 본 구절을 '지혜의 완전함'으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16:14;27:3;애 2:15 등에서 이와 유사한 병행 구절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해석을 취하면 본 구절은 두로 왕이 완전한 지혜로 두로를 잘 이끌어 해상의 중심지로 만들었음을 나타낸다고 봅니다(Kliefoth, Delitzsch).
그러나 이와 달리 어떤 사람은 본 구절을 두로 왕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속해 있음과 그 사람에게 주어진 권세가 큼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Walter Eichrodt).
이 해석을 취할 경우 본 구절은 두로 왕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수행하는 사역자로 삼으셨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과 잘 조화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첫 번째 견해가 더 타당합니다.
(2) 지음을 받는 날에 그를 아르답고 화려하게 꾸며줄 온갖 보석들도 함께 마련되었습니다(13절)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 혹자는 본 구절을 두로 왕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 안에 머물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Eichrodt).
이 해석은 12절의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란 구절을 하나님의 사역자와 연관시킨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본 구절은 두로 왕이 누린 영광을 에덴동산의 영광에 비유한 것으로, 그 영광으로 인해 그가 신적인 존재처럼 숭배 받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가 각종 보석으로 단장한 데서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 '소고와 비파'는 주로 준비 사용되는 악기입니다.
이런 악기가 두로 왕이 태어날 때 준비되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지위를 누리게 되었는지를 암시합니다.
(3) 하나님은 두로를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으로 임명해 ‘하나님의 성산’에 살면서 ‘불타는 돌들’를 거닐게 해주셨습니다(14절)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 '그룹'은 하나님의 지성소에 있는 법궤를 지키는 수호 천사입니다.
두로 왕이 그룹에 비유된 것은 그가 하나님 가까이에서 섬기는 사역자임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내가 너를 세우매. - 이 표현 역시 두로 왕이 하나님의 사역자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지으셨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여 자신을 신격화 하는 어릭석음을 범했습니다.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 이는 두로 왕이 하나님의 영광 안에 거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처소를 부와 권력을 근거로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치장했습니다.
3) 드러난 불의(15절)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본문은 두로 왕의 변절에 대해 대조적으로 부각시킵니다.
즉, 초기에 두로 왕은 순수하고 깨끗한 통치를 시행했지만,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되자 교만해져서 공의를 무시하고 폭정을 시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 이 말은 두로 왕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고자 했던 모든 일들이 성공적으로 잘 성취되었음을 가리킵니다.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 그는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번영을 누리게 되자 교만했습니다.
4) 고발과 징계(16~19절)
(1)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다고 고발당합니다(16절)
“[16] 네 무역이 많으므로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지키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냈고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두로가 ‘네 가운데에서’나오는 불에 타버려 재가 됩니다(참조 레10:1~2).
죄가 저질러지고 있는 곳에서 심판의 불이 나와서 죄를 범한 자를 태워버립니다.
멸망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임과 동시에 죄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절(17절)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2) 두로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영화로우므로 지혜를 더럽혔음으로 땅에 던져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습니다(17절).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 그에게 주어진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그가 무역을 통해 얻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는 그 무역이 앞으로도 번성하게 되어 자신이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계속 거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건설한 두로 성은 난공불락의 성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로 왕은 스스로 신적인 존재처럼 숭배받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 그는 자신이 누리는 권세와 영광을 최상의 것으로 생각했기에 더 이상 어떤 지혜도 사용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 영광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영광 가운데 머물러 있기를 원함으로써 두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 이 말은 하나님께서 두로를 멸망시키되 모든 족속에게 수치거리가 되게 하심을 가리킵니다.
두로가 이전에는 모든 족속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오히려 수치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3) 두로의 교만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18절)
“[18]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에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보고 있는 모든 자 앞에서 너를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 그중에서 본 구절에 언급된 것은 윤리적인 부패와 상업상의 부패에 대한 것입니다.
두로는 번영을 누리면서 온갖 죄악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번영했던 나라 어디에서든지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지도자들이 향락에 젖어들고 백성들도 타락합니다.
이런 윤리적 부패와 함께 상도덕(商道德)도 문란해집니다.
부패한 나라일수록 상도덕이 문란한 것은 세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부패는 어느 한 부분에서 끝나지 않고 인간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 '성소'를 단수로도 보나 여기서는 복수로 읽는 것이 타당합니다.
단수로 읽을 경우 하나님의 성소를 가리키나 복수로 읽으면 두로 왕이 세운 신전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다는 말이 아니라(Cooke) 두로 왕이 세운 신전들을 통해서 온갖 부패가 발생하게 되었음을 지적한 말입니다.
여기서는 그 부패가 어떤 것인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 그는 신전 안에 신상들과 함께 자신의 상(像)을 두어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을 숭배하게 했을 것입니다.
내가 네 가운데에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 죄가 저질러지고 있는 곳에서 심판의 불이 나와서 죄를 범한 자를 태워버립니다.
명망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임과 동시에 죄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4) 지혜와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두로의 철저한 멸망에 민족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질겁합니다(19절)
“[19]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말미암아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 본 구절은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네가 두려움의 본보기가 되고'(LB). 즉 두로의 멸망을 보고 그를 아는 자들이 두려워하게 됨을 뜻한다.
또 하나는 '네가 무시무시한 종국에 이르게 되고'(RSV, NIV). 이 말은 두로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가공할 만한 종말에 이르게 됨을 가리킨다.
본 구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발라호트 하이타'가 두 번째 의미로 번역됩니다.
따라서 개역 성경의 번역은 두 번째의 의미로 다시 고쳐 읽어야 합니다.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 두로는 느부갓네살의 13년간에 걸친 포위 공격에 의해 점령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Hengstenberg, Dreshler, Delitzsch).
그 후 두로는 바사 제국과 알렉산더가 이끄는 헬라 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화려했던 옛 명성과 영광을 모두 상실해 버렸습니다.
2. 시돈에 대한 예언(20~24절)
1) 도입부(20~21절)
“[20]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1] 인자야 너는 얼굴을 시돈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라”
두로의 죄악과 심판에 이어 시돈의 죄악과 그에 대한 심판이 선포됩니다.
너는 얼굴을 시돈으로 향하고. - 이에 대해서는 21:2 주석을 참조하라.
'시돈'은 두로의 북쪽 약 48km 지점에 위치했으며 두로와 함께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했던 도시국가입니다.
그렇지만 두로 보다 해상 무역에 있어서 그 역할은 빈약했습니다.
시돈은 주신(主神) 에쉬문(Eshmun)을 비롯해서 많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2) 심판 선포(22~23절)
“[22]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시돈아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가운데에서 내 영광이 나타나리라 하셨다 하라 내가 그 가운데에서 심판을 행하여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지라 “[23] 내가 그에게 전염병을 보내며 그의 거리에 피가 흐르게 하리니 사방에서 오는 칼에 상한 자가 그 가운데에 엎드러질 것인즉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겠고”
시돈에 대해서는 특이하게도 그 죄악상이 언급되지 않고 단지 심판에 대한 예언만 주어지고 있습니다.
본절에는 하나님께서 시돈을 심판하시는 방법이 언급되었습니다.
즉 단순히 다른 나라의 침공만 받는 것이 아니라 '염병'에 의해서도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시돈은 두로의 멸망 후 베니게의 도시 중에서 지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역할이 바사 제국 통치 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B.C. 33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했습니다.
3) 이스라엘의 위로(24절)
“[24] 이스라엘 족속에게는 그 사방에서 그들을 멸시하는 자 중에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으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주위의 이방 나라들과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와 바벨론을 상징합니다.
민족들의 심판이 이스라엘에 구원을 가져다줄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4.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25~26절)
여호와께서 한편으로는 유다의 멸망을 조롱한 민족들의 심판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 당신께서 민족들의 운명과 역사를 지배하시는 분임을 분명하게 과시하십니다.
1) 흩어진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고향 땅으로 모아 들여서, 야곱에게 준 땅에서 다시 살게 하실 것입니다(25절)
“[25]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족속을 모으고 그들로 말미암아 여러 나라의 눈 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그들이 고국 땅 곧 내 종 야곱에게 준 땅에 거주할지라 ”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 회복은 하나님께서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24절)를 제거하신 후에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 이 말은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시점이면서 동시에 회복되기 위한 조건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2) 귀향민들이 집을 짓고 포도원을 가꾸고 평안히 살 때에, 조롱하던 자들과 조롱받던 자들의 운명이 역전될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과 절대 주권을 인정하게 됩니다(26절)
“[26] 그들이 그 가운데에 평안히 살면서 집을 건축하며 포도원을 만들고 그들의 사방에서 멸시하던 모든 자를 내가 심판할 때에 그들이 평안히 살며 내가 그 하나님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이러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도의 부활을 통해서 완성될 것입니다.
두로의 왕은 하나님을 어느 신화 속 박제된 신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가 제 자리인 양 신 형세를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고 백성의 자리를 흔드는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물들지도, 밀려나지도 말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손을 덥석 잡아보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이 하나님인 양 행세하게 됩니다.
묵상 Point
1) 두로(의 왕)의 심판
두로 왕의 교만이 멸망을 가져왔습니다.
그의 교만은 흡사 아담의 교만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여 스스로 하나님 행세를 하였습니다.
실제로 지혜로웠고, 그것으로 많은 재물을 모았지만, 대신 하나님은 잃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그가 모든 아름다운 것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가 자랑한 신적 지혜는 그를 멸망에서 구원이 자초한 결과였습니다.
아담에게 생명의 나무로 나아가는 길이 막혔듯이,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았습니다.
‘모든 길에서 완전하던’ 두로가 불에 타버려 재가 되었습니다.
2) 시돈의 심판
하나님께서 시돈 가운데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심판을 통해 거룩하심을 드러내십니다.
전염병과 칼을 보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십니다.
유다를 멸시하고 아프게 한 그들의 잘못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십니다.
심판을 받은 후에야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향한 심판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순종에 화답하는 거룩한 통치에서 드러나게 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반영하지 않는 삶에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의 회복
유다의 멸망을 기뻐하고 조롱하고 하나님의 무능력을 즐러워하던 자들은 심판하시지만, 멸망한 유다는 회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증명하실 것입니다.
심판으로 흩어진 백성을 다시 한데 모아 한 나라를 이루실 그날에는 당신의 거룩하심을 유배민들을 통해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실 축복을 보고 열방이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10절 자신을 신처럼 여기는 교만한 두로 왕을 심판하십니다.
그는 스스로 바다 가운데 앉은 신이라 자처했습니다.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자기 앞에 거칠 것이 없는지라, 두로 왕의 마음은 다니엘보다 지혜롭다 자처하고, 급기야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임을 알게 하시려고 강포한 대적을 보내셔서 그의 무대인 ‘바다 가운데’에서 죽음을 맞닥뜨리게 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이라’던 두로 왕은 죽음 앞에서 비로소 자신이 한낱 연약한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높아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한숨도 참고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사람인데, 작은 성공에 목이 곧고 마음이 높아질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11-19절 두로 왕을 위한 애가를 지어 부르게 하십니다.
애가는 에덴동산을 가져와 두로 왕의 번영과 교만한 죄 그리고 몰락을 노래합니다.
그는 에덴동산에서 각종 보석으로 치장한 옷을 입고 그룹과 같은 지위를 부여받은 존귀한 존재였지만, 물질의 풍요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져서 불의와 죄악으로 자신을 더럽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산에서 쫓겨나 불타는 돌들(보석) 사이에서 망하게 됩니다. 에덴의 비극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던 두로 왕은 에덴에서 쫓겨난 사람을 따르는 교만한 인간의 전형입니다.
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려면, 나의 소유, 지식, 그리고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겠습니까?
20-26절 이스라엘을 멸시하고 학대한 시돈에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비록 자신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더라도 남에게는 학대받지 않도록 보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이스라엘을 모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지금 곤고한 날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에 집도 짓고 포도원도 경영하며 평화의 날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돈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일을 통해 그분이 여전히 ‘이스라엘의 주 여호와이심’을 알리십니다.
지금 내가 마주한 상황(고난, 회복, 축복 등)이 하나님을 알리는 통로가 되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기도]
공동체-하나님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늘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게 하소서.
열방-중미 국가에서는 부패, 가난, 범죄를 피해 많은 주민들이 자국을 떠나고 있다.
중미 지역에 부패가 척결되고 범죄 조직이 소탕되어 범죄와 가난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늘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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