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價性比)
손 원
얼마 전, 경작하고 있는 밭에 울타리를 쳤다. 160평 밭 둘레에 울타리를 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야산에 연접하고 있어 해마다 야생조수의 피해를 입고 있었으나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버님은 수십 년간 고추 지주대에 그늘 망을 두른 간이 울타리를 설치해 농사를 지으셨다. 수시로 울타리를 보수해 가며 야생조수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아버님이 농사일을 접은 후로 밭농사는 나의 차지가 되었다. 아버님께서 설치하신 간이 울타리가 몇 년은 버텨 주었지만 곳곳이 뚫리고 주저앉아 울타리 구실을 못 하게 되었다. 야생조수가 드나들었지만 그대로 수년을 지냈다. 아버님이 끝까지 애지중지 가꾸시던 밭을 묵힐 수 없었고, 아버님도 여전히 밭에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버님 생전에는 밭을 가꾸어야 할 형편이다.
허술한 울타리기에 작물도 가려 심어야 했다. 멧돼지가 좋아하는 고구마, 땅콩, 옥수수는 심을 수가 없었다. 대신 품이 덜 가고 멧돼지, 고라니 피해가 적은 작물을 심었다. 콩, 들깨, 마늘, 감자, 가지, 배추 정도였다. 어깨너머로 배운 농사기에 작물 선택에 시행착오도 있었다. 멧돼지가 좋아하는 고구마, 옥수수, 땅콩을 심기도 했다. 야생조수 피해의 심각성을 간과했던 것이었다. 밑거름을 넣고 고랑을 짓고 검정비닐을 깐 후 모종을 했다. 모종이 활착을 잘해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늦여름이 되어 옥수수가 제법 달려 여물기 시작했고, 땅속의 고구마와 땅콩도 여물어 갈 즈음이었다. 다 된 농사, 혹시라도 야생조수의 피해를 입을까봐 조바심이 났다. 며칠만 무난히 넘기면 수확을 할 수가 있었다. 가끔 매체를 장식하는 멧돼지 피해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우리 밭은 피해 갈 거라는 믿음과 함께 피해를 입기전에 서둘러 수확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정상 밭에 자주 갈 수 없어 주말에만 들리곤 했다. 수확을 며칠 앞두고 밭에 들렀는데, 눈을 의심할 만큼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 옥수수는 알갱이는 고사하고 잎줄기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고구마 골도 모두 파헤쳐져 흔적조차 없었고, 여기저기 움푹 팬 구덩이만 남겨져 있었다. 멧돼지의 소행치고는 너무나 완벽한 초토화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식재된 작물이 적어 피해는 적었지만, 유해조수 피해의 심각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울타리가 허술하면 야생조수의 피해가 덜한 작물을 재배하여야 하나 이를 간과한 결과다. 그 후로 고구마 옥수수 재배를 회피하고 있었다.
울타리 설치를 고민하게 되었다. 기껏 자급할 소량의 밭작물을 보호한다며 철제 울타리를 설치하여야 할까말까 망설여 졌다. 가성비가 낮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려면 울타리는 해야했다. 텃밭에 이것저것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친구도 있다. 기왕이면 야생조수 피해ㄷ를 방지하여 제대로 경작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생활에 가성비를 따질 이유는 없다.
올봄에 비로소 울타리를 설치했다. 철망 울타리로 멧돼지, 고라니의 침입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다. 이제 어떤 작물을 심어도 안심이다. 장날 모종을 구입해서 심었다. 그간 멧돼지, 고라니 때문에 회피했던 고구마, 옥수수, 땅콩도 거리낌 없이 모종을 했다. 텃밭 농사에철재 울타리는 다소 과하지만, 앞으로 피해를 방지할 수 있기에 만족스럽다.
소비생활에도 가성비를 따진다. 우선 가성비가 높은 쪽으로 지출을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금전적 가성비가 있다면 마음의 가성비도 있다. 가성비란 가격에 비해 성능이나 품질이 우수함을 이르나, 활용도가 높은 것도 해당 된다고 하겠다. 옷 한 벌 샀는데 자주 입으면 만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가성비도 높다고 하겠다.
인간관계에도 가성비가 있다. 상대를 위해주고 챙겨주고,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은 가성비가 높다고 하겠다. 효자는 부모님께 가성비가 높은 자식이다. 친절한 사람, 예쁜 사람도 그렇다. 그런 사람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성비는 심성과 역할이 크게 작용한다. 예를 들면, 축구팀에서는 기량이 출중한 선수, 일 잘하는 직장인, 잘 가르치는 교사,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지도자 등은 가성비가 높은 사람들이다. 사람마다 가성비를 따져 볼 수 있다면, 나의 가성비는 어떤가? 가장으로서의 역할, 사회인으로서의 역할 등을 고려하면 답이 나온다. 좋은 아버지, 좋은 친구, 배려심이 높은 사람은 상대방에게 도움을 더 많이 줄 수 있고, 만족감을 줄 수 있기에 가성비가 높다고 하겠다. 누구나 마음먹기에 따라 가성비가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다.
※ 2024. 8. 수필춘추 여름호 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