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Τῷ ἀγγέλῳ τῆς ἐν Ἐφέσῳ ἐκκλησίας γράψον· Τάδε λέγει ὁ κρατῶν τοὺς ἑπτὰ ἀστέρας ἐν τῇ δεξιᾷ αὐτοῦ, ὁ περιπατῶν ἐν μέσῳ τῶν ἑπτὰ λυχνιῶν τῶν χρυσῶν·
『에베소 교회의 사자(토 앙겔러)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개역개정)
『에베소 교회의 메신저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등잔대의 한가운데를 거니는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헬라어 번역성경)
토 앙겔로는 메신저(교회 지도자)다. 일곱 별은 교회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일곱 금 촛대는 교회를 의미한다. 당시에는 일곱 교회를 지칭했으나, 오늘날 모든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시대별로 교회의 모습을 일곱개의 교회와 연계헤서 설명하는데, 요한은 신속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 것과 거리가 먼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종말적인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이는 종말적인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관계없는 언약적 관점에서 모든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2장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1장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등잔대의 한가운데를 거니는 이"
타데 레게이(Τάδε λέγει)는 마치 법정 형식의 소송장 처럼 ~가 말했다 라는 것이다. 편지의 형식을 넘어서 선지서의 말씀 형식을 띤다. 일곱은 언약의 완성으로 표현된다. 이기는 자에게 주는 상급을 언급한다. 경고의 말씀과 칭찬이 섞여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각 교회에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에베소 교회는 등잔대를 언급한다. 인내라는 의미를 가진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등잔대를 옮기겠다는 것이다. 교리를 잘 지키는데,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말이다. 진리의 핵심은 사랑인데, 말은 진리를 잘 지킨다고 하는 것이다. 니골라당이 등장한다.
서머나 교회는 몰약(죽음)을 상징한다. 환란가운데, 부요한 모습이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신다. 신실한 자가 되라는 것이다. 핵심 대적은 유대인이다. 유대인(율법주의)은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한다. 유대인이라는 표현은 오늘날 시대에도 율법주의로 적용된다. 그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버가모 교회는 날선 검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검으로 싸우시겠다는 것이다.
발람이 등장한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짐승(발락)과 거짓 선지자(발람)로 등장한다.
두아디라 교회는 눈이 불꽃같고 발이 풀무불에 단련된 것과 같은 모습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말한다. 그래서 불꼴같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살핀다.대적하는 자로 이세벨이 등장한다. 계시록 17장의 음녀를 상징한다.
사데교회는 일곱 별과 일곱 영으로 표현된다. 몇몇 사람 외에는 온전함을 찾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일곱영은 온전한 말씀을 의미한다. 사데교회 처럼 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포로기의 모습이다. 계시록 18장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나타낸다.
빌라델피아 교회는 다윗의 열쇠와 관련이 있다. 메시지는 열린 문이다. 열쇠를 열고 문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대적하는 자가 유대인(사탄의 회당)이다. 빌라델피아 교회는 승리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계시록 19장에서 예수님이 앞장서고 뒤따르는 성도들의 군대의 모습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충성된 증인으로 상징된다. 이기는 자에게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신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의 귀로에 서 있는 교회의 모습이다.
니골라당, 발람, 이세벨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니골라는 니콘(승리)관 연관된다. 백성에게 승리는 자가 니골라이다. 발람은 히브리어로 비르함(1077)이다. 실패, 부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백성을 부패시킨다. 히브리어 비르함이 헬라어 발람과 같은 것이다. 니골라당은 비진리로 백성을 미혹하는 무리들이다.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하는 것이다. 발람은 민수기에 등장하는데, 이스라엘을 행음에 빠지게 하여 더럽히게 만든 자이다. 이세벨은 악녀로 등장했다. 아합 왕의 왕비였다. 엘리야를 대적하고 죽이려 한 여자였다. 이세벨이 섬긴 신은 바알과 아세라 신이었다. 남자 신과 여자 신의 행음을 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들로 하여금 행음을 하게 하여 신을 깨워 풍요가 일어난다는 원리다. 농사의 신이였다. 위의 세사람은 행음과 우상과 관련이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서 다른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면 이와 같은 자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세상의 축복, 번영을 비는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 신앙을 갖는 자들이 다 이런 유형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기도와 찬양이 이런 자기를 위한 신을 깨우는 것이 될 수 있다. 초대 기독교에서는 이방인이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우상의 제물 먹는 것과 음행을 삼가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사도행전 12장). 니골라를 따르는 자들이 이런 것들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니골라당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율법의 때는 지나갔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다. 육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 은혜의 시대이므로 영의 시대라는 것이다. (영지주의) 은혜로 구원받기 때문에 육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니골라당은 율법은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이들도 영지주의의 한 분파이다. 영적지식으로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오직 이것만 추구하는 자들이 있었다. 특별한 지식이 없는 자들은 구원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특별한 지식이 있으면 하늘의 백성이 된다는 식이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라고 말한다.
자칭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유대교)를 나타내었다. 계시록은 이들을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 얼마나 극성을 떨었는지 알 수 있다. 복음과 율법주의로 혼합시키는 것이다. 주로 복음으로 들어왔지만, 할례도 해야한다는 식이었다. 율법주의는 율법의 규정을 철저히 지켜서 육을 통제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들도 영지주의와 연계된다. 그들은 금욕주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