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집 만들기 가을호를 출간 하면서
회장 김순효
새벽녁 빗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도르릉 도르릉 떨어지는 빗 소리를 한 참이나 들어보았습니다
긴 여름의 끝에 가을을 알리는 비가 내림니다
죽을 것 같이 더워서 가을이 올 것 같지 않았는데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다시금 감탄 합니다
다시금 컴 앞에 앉습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글을 쓰지 않은마음을 애써 변명 하여 봅니다
글을 쓰는데 무슨 핑계가 저리도 많았던지 부끄러운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고자 합니다
여름이 아쉽다고 글을 쓰고
가을이 왔다고 글을 쓰고
운암뜰 작은 시집 두번재인 가을호를 부끄럽지 않게 내 놓으려고 합니다
마음속에 담아둔 글들이 반짝이는 언어로 탄생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적시는
따뜻한 말이 되기를 바라면서.
초대시인의 시
김선우(시인협회 회장)
#가시꽃이 피었다
그 사랑
너무 아름다워
세상에 내 놓을 수 없고
그 사랑
너무 애틋하여
가슴에 고이 간직하였더니
깊은 슬픔에
그리움이 사무쳐
가슴을 찌르는
가시꽃이 피었다
#내 마음의 별
님의 그 모습은
늘
내가슴에 별이 되어
방실방실 웃고 있습니다
님의 그 음성은
늘
내 가슴에 메아리로 남아
슬픈 노래가 되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하나, 둘 세어 보는날은
무척이나
님이 그리운 날입니다
회원 작품
김순효
#공자를 죽이는 여자
날마다 공자를 품에 안고 살던 그녀는 가슴에 비수를 품었습니다.
오랜 전통과 윤리에 절대 복종이었던 자신을 해방 시키기로 했습니다.
오랜 세월 갈아온 칼날은 번쩍이는 푸른 빛을 뿜어 내고 가슴속에 품은 독 또한 모든 것을 녹여버릴 만큼 맹독이었습니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살아온 인고의 세월 만큼이나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날카롭게 공자를 죽일 생각 이었습니다
검은 눈이 내리던 어둡고 음슴한 섣달 그믐날 밤에 그녀는 가슴속의 비수를 꺼내 조용히 공자 앞에 갔습니다
공자여 이제 당신의 명령에 절대 복종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윤리와 당신의 정통 따위는 무시 하렵니다
당신을 위한 눈물도 더이상 없습니다
그녀는 날카로운 칼 끝으로 공자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러나
수백년 수천년을 그녀안에 살아온 공자는 한갓 허상뿐인 칼날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공자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도
공자를 죽이는 꿈을 꿈니다
#불면
내안에 개구리 한마리가 살고 있어
이 놈의 개구리가 밤만 되면 침대 속에서 꾸륵 꾸르륵 울어 통,
잠을 이울 수가 없어
어떤 날은 내 몸 안에서 흐린 날의 저녁처럼 울어 되기도 해
종종 이놈을 잡으려고 이불을 들추고
침대 매트를 내려놓고 스프링 사이사이를 샅샅이 들추어 보기도 하지만
놈은 좀처럼 보이지 않아
그런 날은 내 늑골사이에서 시냇물 소리처럼 울어대는 거야
가끔은 내가 개구리가 아니가 하기도 해
내몸이 개구리처럼 가슴 벌렁 거리며 울다가
천천히 개구리로 변하는 꿈을 꾸기도 해
#제목: 배추벌레
구름을 헤집고 나오시는 어머니 등은 곱추다
어머니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함지박을 내려 놓으신다
배추잎을 갉아 먹어 푸르팅팅한 벌레 한마리가 느릿느릿 기어 나온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어머니 수건을 어 몸에 붙은 지푸라기를
탁 탁 털면서 한숨을 무겁게 내 뱉는다
어머니 한 숨 소리에 배추 냄새가 베어 있다
올 배추 농사 헛 졌다야...
푸른 안개가 배추벌레를 삼켜 버린다
사방은 온통 고요한 검은 빛이다
#희망 한송이
도심 한복판 콘크리트 깨진 틈새로
삐죽이 생명을 밀고나온 풀 한포기를
만났다
희망 한송이
왈칵ㆍ 눈물이 솟는다
건조한 내 삶을 들여다본다
하루 열두시간 등골휘는 노동에
희망도
잃어 버렸던
가난한 시간들이
소낙비 그친후 무지개같은
아름다운 희망으로 뜨는 순간
다시금
꿈꿀수 있는
삶의 순간으로
메케한 먼지와 건조한 시멘트사이
끈질긴 생명의 경이로움 고귀함
무한의
감사를 한다
희망을 엿보다
# 머리를 빗다
갈 햇살
고즈넉하여 머리를 빗다
거울 속에 또 하나의
내가 들어앉아
투명하여 뼛속까지도 비추어 지다
동백기름
촘촘히 빗질하던 어머니
가리마 곱던 이마에
주름이 촘촘하다
흑백의 세월 속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거울 속
여인네는 가만히 눈 감는다
한세월 속절없는
시간들도 눈을 감고
살깊이 너울대다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김봉용
#소먹이가 나물이 되는 순간
갑자기 나물캐러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기를 들어 버튼을 눌렀다.
우리 내일 나물 캐러 갈래요?
약속을 하고 나니 더욱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봄노래가 입술로 흘러 나오고 혼자 빙긋 웃기까지 하면서 마흔이 넘어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봄처녀가 느끼는 설레임에 얼굴이 따뜻해져왔다.
눈만 뜨면 앞에도 산 뒤에도 산이 나즈막이 올망졸망 붙어있는 산골에서 자란 나는
봄은 참 외로운 계절이었다.
봄을 알리는 잡초가 밭두렁 논두렁 또는 길섶 묵은 풀 사이로 밀치고 올라오면
아버지는 나에게 다랭끼와 호미나 낫을 주며 이름도 모를 풀을 캐어오거나 잘라오라고 시키신다.
이풀은 뿌리채로 캐어 오고 이풀은 낫으로 순을 잘라오라고 한번 알려 주시고
해마다 봄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는 날씨에도 풀을 채취해야했다.
물론 가족이 먹을 나물이 아니었다.
우리집 보물 1호 황금 송아지의 먹이다.
물론 송아지도 아니다. 소의 우리 문에는 황금 송아지의 집이라고 누군가 장난으로 써놓은 글이
소를 더이상 키우지 못하게 되었을때까지 남아 있었다.
산골이지만 지역 특성상 시골 같지 않은 광산촌에는 늘 사람이 북적였던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소풀을 뜯으러 나갈때면 너무 부끄러워
봄이 너무 미웠다.
멀리 가지 않고 빨리 풀을 뜯고 놀고싶어 가까이 뚝방에 있는 풀들을 비료푸대에
담고 있을때 얼굴이 하얗고 머리는 늘 단정한 남학생이 오고 있을때 봄이 원망 스러웠다.
그뒤로 웬만하면 뚝방에서 소풀 채취를 하지 않고 좀 멀지만 산자락이나
밭 한가운데 잡초들을 캐기 시작했다.
바람이 따스하게 볼을 스치고 지나가면 외로운 소리가 들렸다.
봄볕이 따스한 오후에 혼자 소풀을 채취하며 모든 외로움을 십대에 다 느껴본 기억이
봄을 더욱 얄밉게 했다.
그렇지만 가물거리면 기억나는 기분좋은 추억들이 있기에 이 늦은 나이에도
나물 캐는처녀를 노래하며 내일을 설레게 하나보다.
3월 봄바람이 손등을 트게해도 재잘거리며 냉이와 달래를 같이 캐던 친구들이 있었고
소풀로 채취했던 그풀이 내키만큼 자라서 하얀 꽃잎에 노란 수술이 예쁜 계란꽃이 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마냥 즐거워 하며 소꼽놀이 하며 놀던 친구들이 있어 행복한 봄으로, 설레는 봄으로
기억 될수 있나보다.
약속한날 버스를 타고 시내를 빠져나와 밭두렁에 파롯이 나와있는 풀들을 바라보며
행복한 기분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아니, 처음이지 않을까!
풀이 아닌 나물로 바라보니 일이 아닌 놀이고 즐거움이다.
아직 밭을 갈지 않은 밭에 망초와 개망초가 흐드러져 있었다.
띄엄띄엄 민들레도 보이고 씀바귀 달맞이싹도 보였다.
이것들을 나물로 먹는다니...
아버지가 달맞이싹은 뿌리 까지 뽑게했는데 그 식물이 꽃향기 그윽한 달맞이 싹인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망초와 개망초는 싹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지만 다 자라면 꽃이나 가지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열심히 나물 캐는 아줌마로 취해 다니다 키다리꽃이란 화초무더기를 밭두렁에서 발견했다.
나물로 먹기도 하고 쌈으로 먹어도 좋다고 해서 열심히 뜯고 있다가
밭 주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우리에게 심어놓은 거니 돌아 가라했다.
미안한 마음에 돌아 섰지만 무척 아쉬웠다.
보물을 만난 기분 이었는데..~^^
순간 농부로 평생을 사신 아버지를 보는것 같았다.
아버지의 밭에 사람들이 이것저것 채취하러 들어오면 어이~어이~하시며 쫒아냈던 아버지.
나물 캐러 왔다 너무 많은 추억들을 담아가나보다.
주로 망초를 채취해서 집에 돌아와 다듬고 삶고 나물로 무쳐질때까지
꼬박 삼일이나 걸렸다.
농사일로 늘 바쁘던 아버지는 나물 캐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나는데
이유를 알것 같았다.
망초는 삶아서 너무 오래 물에 재워 놓으면 향이 사라지고
살짝데쳐 물기 빼고 살짝 볶아 들기름에 소금간해서 깨소금 뿌려 먹으면
독특한 향이 입안 가득하고 너무 오래 볶으면 질겨진다는 사실을 체험 하고나서야 알았다.
망초는 국화과 식물로 1910년쯤 한일합방때부터 우리나라 지역에 빠르게 번식해
조선이 망해가는 시기에 꽃이 피기시작하자 망초라 불렀다고 하는데 실제 꽃말은 화해라고 한다.
음식으로 먹으면 해독, 염증완화, 풍맞은 사람한테도 좋다고 하는걸 보면
혈행 개선이 되는가보다.
이봄에 화해의 꽃나물을 요리해 맛있게 먹고
좋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쓸쓸헸던 기억 마저도 아름 다운 추억으로
회복되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봄이 되면 가슴 설레고 즐거운 일이 생길것 같은게 아니라
즐거운 일을 내가 만들고 내가 남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되면 좋지 않을까
하면서 가슴 설레어 본다.
많이 남아 있는 망초 나물은 맛있게 볶아서식기전에
누구에게 주면 좋을까 ...?
행복한 고민을 해본다!
김보배
#어느 가을 편지
흩어진 채 현실을 떠난 어느 가을날
날짜도 모르는 날 이름모를 가을에
낙엽처럼
한장의 편지를 띄우고 싶네
푸른 꿈 채색된 나의 마음에
가을의 공허만 쌒여가네
내 꿈은 슬픔을 이태했던
가을의 편지는 흩어진 채
현실을 떠난 마음에
어느 가을날 편지는
추억의 한 폐이지가 되어 버렸네
# 초원의 꽃 한 송이
초원에 꽃 한 송이
피빛 우울속에 라일락 향기는 무르익네
계절의 여신이여 오월에 푸르름
파랑새의 여움만이 짙어지누나
여심의 마음은
공원에 핀 한떨기 코스모스인가
고독과 외로움에 뿐이어라
사막인듯 메마른
여심의 마음은
가날픈 꽃 망울만 맺어 놓았네
파랑새의 메아리만 울려 퍼지는
넓고 넓은 초원에서
이제는
더 피울래야
피울수 없는
초원의 꽃 한 송이
김혜경
#비오는 날
그 옛날 전쟁중에
부족한 물 사정을
쌀로 말을 씻는 눈속임으로
적을 농락한 곳
세마대 정자 아래
누군가 자비로운 맘으로
좁쌀 한 됫박 보시 했네
산사에 찾아든
노래하는 작은 영혼
젖은 공양미 한 톨에
억겁의 시름
내려 놓네
#비가
매일 아침 걸어서 출근하는 길
마을 골목길을 돌고 돌아 큰 길로 나오면
보도블럭 끝나는 길옆으로 잡초가 터를 잡고
그 속에서 겨우 숨쉬는 고들빼기의 외로운 더부살이,
길고 험난한 여정속에 피어난 고독한 청춘
여름날 뙤약볕에 활화산처럼 분출하고
점점 수액조차 짜낼 수 없어 말라 비틀어지는 거죽
그 줄기를 기둥서방 삼아 가냘픈 몸 의지하며
날마다 행복을 먹고 성장하는 그녀, 나팔꽃
쇠퇴하는 것과 물오르는 것의 관계 속
이른 가을 아침 눈부신 햇살 받아
붉디붉어 요염한 그녀의 몸뚱아리
다가오는 이별에 몸으로 울부짖는 애환의 노래
#애기똥풀(동시)
시골 할머니 집
들어가는 길목에
샛노란 얼굴로
방싯방싯 웃는 꽃
글쎄! 애기 똥 풀이래
어여쁜 꽃이
왜 하필 구린내 나는 이름일까?
줄기를 꺾으면
방울 맺히는 노란 진액이
애기 응가 닮았다나봐
나영란
#감기
입안 가득 베어 물던 냉기는
가슴 밖으로 터져나와 하얗게 부서진다
빛나는 얼음덩이 온몸 휘감더니
엿처럼 살갗에 쩍쩍 달라붙었다
열흘간 고여서 타오른 불꽃들
알약 몇 알
입 속으로 털어 넣고도
식지 않은 언 몸이었다
이빨사이 쓴 냄새 가득 고여
혼잣말만 뱉어 내고
입문조차 꼭 닫고 말았다
#구절초
음력 구월구일이면
어김없이 꽃 이삭 따시고
입 줄기 훑어 모았습니다
햇볕 잘 들고 바람이 마실 오는
곳간 통로에 짚방석 내어 쭈그려 앉으시고
한마당 구절초를 널어 말리셨던 어머니!
사랑도 팻말로 꽃말을 붙이셨습니다
해마다 식구들 가슴으로 헤아리시며
낱낱이 한지로 봉투 만들어 이름 쓰시고
손끝으로 살짝 살짝 구절초 만져서
햇살 고르게 뿌리시며
바람도 한줌 섞어 담으셨던 어머니 사랑!
가슴에 이름표로 달았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위장을 도와
혈액을 순하게 흐르게 하여
피를 맑게 온몸을 돌보는 명약이라며
손등이 부슬부슬 하얗게 갈라지도록
구절초와 내외 하셨던
어머니 사랑!
몸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강물이 되었습니다
#거실에 미끄러진 햇살처럼
거실에 미끄러진
햇살처럼
오늘은
해죽해죽 웃음
보내온다
부산스런 아침
비워낸 자리
자욱한 먼지
오롯이 앉을 때
창문 반만 가리고
납작이 누워
얼굴 내민다
잠시 숨고르기 하고
거실에 미끄러진 햇살처럼
눈길 주면
낯익은 세간살림
주름 접힌 시간들
거미줄로 고요하다
#출장
남편이 집 비운지 수십 일이 지났어도
대자로 뻗어 누운 잠자리 핫바지처럼 헐렁하다
일상의 어깨는 깃털처럼 가벼워 부드러웠고
예전처럼 서둘거나 밀물처럼 철썩이며 파도치지 않았다
이른 아침도 고무줄처럼 늘어났지만 두렵지 않았고
도둑고양이가 슬그머니 집안 곳곳으로
기어들어 와도 식구처럼 품었다
날마다 이 꽃 저 꽃 탐하느라 바쁜 벌 나비처럼
향기도 몸에 바르고 가슴 귀 번쩍 열고 나무의 늠름한 소리까지 들었다
자연과 잎새로 메일을 선물처럼 주고받으며 살았다
명남희
#아이스크림(동시)
나는 딸기맛이 좋아
껍질도 분홍색, 마음에 들어
내 이마엔 땀이 주르르
내 입안엔 아이스크림 사르르
코끝도 달콤해서 나도 한입,
입안도 행복해서 동생 한입
#송편(동시)
예쁘게 빚어야 예쁜 동생 나온대요
보름달에 소원도 열심히 빌었지요
드디어 내동생 태어나는 날
고구마 같은 내 동생 귀에 대고 고백했어요
"미안해, 엄마가 빚은 송편, 사실 내가 밟았다."
홀쭉해진 보름달 턱에 대고 속삭였지요
"조금 예쁘게 태어나도 될뻔 했어요."
#젊음
괜찮다, 아직은
실수한 어제를 만회할
내일이 너에게 있으니
#변
변함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더니,
변명만 늘어 놓다 끝난 사랑
지금 생각하니 참 변변찮다.
변상 받고 싶었다
변한 사랑에 대한 내 상처
변이라도 갖다 뿌리고싶지만,
변 당한 그사람, 차마
지켜보는 내마음이 참변될까 두려워
변심하고 말았다
신경애
#화가 난 일이 있으면 오산천에 간다
화가 난 일이 있는 날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우려 줄 오산천에 간다
되도록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아무도 없는 곳을 선택하지만
그것은 번번이 내 생각일 뿐이었다
둑방 위에 보금자리를 가진
개망초와 그 이웃에 애기똥풀,
이제 막 낮잠에서 깨어나 눈 부비는 달맞이꽃
물속엔 그 동안 내가 쏟아놓은 하소연에
귀가 닳을 대로 닳아 반들반들해진 조약돌이며
이번엔 또 무슨 말을 늘어놓을 것인가
놀란 듯한 눈망울로 모여든 송사리 떼
어느새 내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어 에워싼
서로 다른 풍경들의 표정을 하나 둘 살피다 보면
내 하소연은 나도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들과 다른 내 얼굴에 미소를 띄울 수 있는
이 여유, 오산천은 내 인생의 스승이다
#서글픈 미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오산에서
보따리 서너개의 세간을 순번대로 정리하고
골목길이 눈에 익을 때 쯤
이웃사촌에서 친구로 정붙인 그녀
구태여 꾸미지 않아도
원탁처럼 둥그스름한 얼굴이 복스러워 좋았다
바짝 마른 송판 결이 터지듯
보기 좋던 얼굴에 짠한 삶의 지도를 그려 놓고
게눈 감추듯이 허겁지겁 자장면을 비우는 모습에서
재도 꽃다운 처녀시절이 있었나 싶다
빈그릇 옆으로 밀어 놓고
한 조각 남은 단무지를 우물거리며
독하게 버텨온 지난한 날들을 토해내듯
트림을 시원스레 곁들안다
집 옮기며 빌린 돈 ,이자 갚느라고
햇볕 가릴 커튼은 언감생심이라
뽁뽁이 비닐로 대신했다며
둥근 얼굴 위에 그믐달 같은 미소를 얹는데
보따리 몇 개 정리하던 어느 날의 내 모습도
이런 미소가 아니었나 싶어
피식, 나도 따라 웃는다
이재경
#봄은 생명의 계절
따스한 햇살과 함께 녹음이
푸르른 생명을 자아내는 계절,
긴 하품을 하면서 새로이 태어나는
생명의 기쁨에,어린 생명들이
큰꿈을 노래하며, 두팔을 벌리고
포근한 품안에서이 쉼없이 재잘거리는
자연과 하나되어 푸르름으로 가득 채워 노래한다
그 꿈에 어린 생명들은,봄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춘다
새로이 태어나는,생명의 봄의 계절,
기쁨이 행복을 자아낸다
계절을 벗삼아,예쁜 추억들도,
가득채워 보련다
임종례
#가족의 힘
두 아들이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내 머리엔 어느새 희긋희긋 서리발이 내렸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지난 세월이 아련하다
처음 유치원을 입학하던날
의젓하게 초등학교 졸업하던날
내 추억속에는 여전히 아기인데
군대 가는날 큰 절 올리던 아들
눈 시울이 뜨거워졌다.
하루 종일 장사하고 천근의 몸으로 집에오면
"힘드시지요?"
어깨를 주물러 주는 그 손이 이제는 믿음직하다
가족이 있기에
오늘도 내가 살아 가는 원천이 된다
이은영
#남매
어릴적 울 남매
엄마 장사하러 가며
손에 10원 짜리 3게씩 쥐어주면
주인집 점방에서
만화책이며 tv를
하루 종일 보고 있었네.
년년생은 엄청 싸운다더니
밥상에 앉아서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다
결국 흰눈 펑펑 내리는 눈밭으로
쫓겨나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네.
뭉게구름 벗삼아
광한루 나룻배에 실린
이도령과 성춘향
낡은 사진 속에서도 울고 있는데
오십을 넘기고서야
오빠와 나
말없이 서로를 챙기다네
산에서 딴 약초며 산나물을
슬며시
내 앞에 내 놓는다네.
#낚시
맑은 하늘 벗삼아
바늘에 지렁이 꿰어
낚싯대 드리우고
돌무더기 하나
낚싯대 잡고 있으라 그러고
그 사이 맥주 한 캔
야금 야금
세월아 너 가는줄 모르겠구나
한참있다 건져올린
낚싯줄에
쬐그만 추억하나
팔딱 팔딱
#유부초밥
꼭두 새벽 부산스레
유부봉지 벌려 초밥싸고
김치 볶음밥에 베이컨 말아
도시락에 차곡차곡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던 고운 손
남친 입에 넣어줄 속셈에 설레고 있다.
흥분과 기대 뒤이은 실망에도 웃어주는 남친.
싱그런 꽃내음 가득한
공원 벤치 옆에서
까르르
패랭이가 웃어댄다.
위선영
#
시련
태풍이 지나간 새벽 숲
시퍼렇게 날 선 작두처럼
차가운 음성이 흐느낀다
잘려나간 팔다리가 널브러져 있다
형체도 없는 그놈과 밤새
맞서 싸운 너는 처참한 몰골이다
핏덩이마저 삼켜버린 굶주린 아귀는
자비란 걸 모르는 원흉의 사신이었나
인생에 억새풀 한 가닥 같은 시간이
처절함에 대해 학습해보라 한다
살을 파고드는 시퍼런 이빨이
사지를 갈라놓을 때
나무는 두려웠을까
골절된 뼈다귀 사이로
파열된 동맥은 비릿한 액체를 쏟아내고
뿌리는 온 힘으로 지혈을 준비한다
어느 날에 우리는 이렇게
억새풀 한 가닥 같은 시간을
형체도 없는 그놈과
처절하게 싸워야 했다
#이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