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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비레탄티 마을 & 내 하숙 롯지
► 안나푸르나의 원주민 구룽족 분포도
► 마을 어디에서나 마차푸차레 성봉이 언듯언듯 바라다 보인다.
► 안나푸르나 설산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모디콜라 강 건너로 옛 비레탄티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자료사진.
► 다리 위에서 짜이 한잔을 때리고 있는 필자
► 모디콜라 다리를 건너면 에켑[ACCP] 체크포스트가 트레커를 맞는다.
► ‘3년간의 내 하숙 롯지인, <뉴 리버 뷰 롯지(New river view lodge)>의 가족, 이웃들사진들
► 내 방의 단골손님인 리자드(Lizard)
► 내 방에서 그림 삼매경에 빠져 있는 드림팀 멤버들
► 한 여름 몬순철 폭우에 불어난 모디콜라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
► 동네 초상이 나면 다리 밑에서 화장하여 유해는 강물로 떠내려 보낸다.
► 포카라 행 만원버스. 지붕까지 승객이 짐짝처럼 실려 간다.
► 비레탄티의 일부 주민들은 라마승을 초빙하여 그들의 일생을 통하여 겪어야할 ‘삼스카라[冠婚喪祭]’를 불교식 힌두교식으로 혼합하여 치른다.
(1) 비레탄티 마을 소묘
“음~역시 이 맛이야!”
한국에서 휴가를 끝내고 오랜만에 돌아온 안나푸르나 설산 기슭의 마을 비레탄티 마을에 있는, 내 하숙집, 아니 하숙 롯지에서의 첫 아침은 ‘찌아(Chia)’ 혹은 ‘짜이(Chai)’ 한 잔 때리는(마시는) 일로 시작한다. 둘은 같은 말이지만, 일부 네팔인들은 앞 것을 주로 사용하고 일부 네팔인들과 외국인들은 후자를 즐겨 사용한다. 특히 ‘모닝 짜이’ 맛은 시세말로 죽여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찻자리’가 명당이다. 롯지 식당은 모디콜라 강가에 있는데, 멀리 세계 ‘3대 미봉’중의 하나로 꼽히는, 물고기꼬리를 닮은 멋지고 성스러운 성산(聖山,St) 마차푸차레 설산이 바라다 보인다. 그래서 롯지 이름도 <New River view lodge>이다. 이런 멋진 카페에서 마시는 차가 무언들 맛이 없겠느냐마는, 특히 우리 롯지 안주인의 짜이 솜씨는 인근에서도 소문이 나 있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짜이부터 끓인다. 우선 주전자에 맑은 물과 차[Black Tea] 한 숟가락과 허브향 잎[Dalchini ko Badda:Sinamon Tree leaf] 몇 개정도 넣고 세 숨 정도 끓이다가, 그 다음에 새벽에 배달되는 신선한 물소젖과 설탕을 적당히 넣고 다시 한 숨 더 끓이면, 짜이는 완성된다.
그러니까 짜이맛은 차 자체의 맛에 첨가되는 허프잎과 더불어 우유의 신선함과 설탕의 분량에 따라 맛의 편차를 보이는 것이겠지만,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이 같은 맛을 구경할 수 없는 것을 보면 끓이는 사람의 손맛도 상당부분 작용하는 것 같다. 그 외에 그녀의 차맛을 최고로 유지시키기 위한 노하우가 하나 더 있기는 하다.
"그게 뭐냐고?"
그건 특별 노하우~~. 오늘도 나는 차를 한잔 더 청하여 2잔이나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주방에다 대고 씩 웃어가며 엄지를 치켜 세워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 않다더냐? 이것이 마지막 비결이다. 음식 맛은 먹어주는 사람의 “미토처(Mitocher)” 한 마디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앞에 “엑덤”을 부처주면 금상첨화이다. “매우 맛있다.”라고…
나중에 본서 제7부, <먹거리 편>에서 다시 언급을 하겠지만, 우선 맛보기를 보자면, 네팔사람들의 '손맛예찬'은 알아주어야 한다. 그들은 음식을 우리처럼 색, 향, 미보다는 오히려 촉(觸), 즉 손맛을 더 중요시 한다. 그래서 밥도 손으로 먹는다. 그들의 주식인 백반정식인 '달밧(Dal-Bhat)’을 먹는 모양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우선 큰 놋쇠쟁반에 ‘밧(밥)’과 '달'(녹두스프)과 ‘떨거리'(밥반찬)’라는 여러 종류의 반찬을 담아 내오는데, 각자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그 재료들을 밥에 섞어 손으로 주물럭거려가며 4손가락을 주걱처럼 펴서 음식을 퍼서 엄지를 사용하여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말하자면 음식을 주무르는 동안에 식욕을 느낀다는 그들의 미각의식을 이방인들이 어찌 완전히 이해하겠냐마는, 우리가 김치 겉절이를 무칠 때나 먹을 때 칼로 싹둑싹둑 잘라 먹는 거 보다는, 손으로 쭉쭉 찢어서 먹고는 그 손가락에 묻은 양념마저 빨아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우리식의 논리로 그들의 음식 문화를 이해하면 될 것이다.
비레탄티 마을을 근본적으로 구룽족(Gulung)의 마을이다. 그들의 특징은 등에 ‘바굴룽(Bagulung)’이란 하얀 천보자기를 배낭처럼 매고 다닌다. 그러면 틀림없는 구릉족이다. 생김새는 일반 네와리하고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몽골계와 비슷하다. 인구는 마을 안에는 수백 명을 넘지 않을 정도가 살고 있지만 큰 행사 때가 되면 이 골짜기 저 능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비레탄티 마을을 비롯하여 안나푸르나 남쪽 기슭에 퍼져 사는 구룽족들은 전통적으로 농, 축산업을 생업으로 살아 왔다. 낮고 비옥한 땅은 네팔의 메이져 민족인 네와리(Newari)들이 차지하고 있기에 구룽족은 2~3천m가 넘는 높은 고산지대까지 밀려 올라가 벼농사, 밭농사가 가능한 곳이면 엉덩짝을 붙이고 살면서 근면 성실하게 자식들을 키워오면서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와서는 트레커들의 주머니를 바라보고 다른 민족들, 타칼리족, 따망족, 세르파족, 짜파이족, 라이족 등이 슬금슬금 구룽족의 터전을 잠식하고 들어오자 구룽족의 일부 젊은이들은 농사만 지어가지고는 살 수가 없기에, 쫓겨나가듯 큰 도시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고르카(Gorkha)용병에 지원하거나 또는 해외 근로자로 나가 돈도 벌고 견문도 넓혀서, 이른바 성공을 하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기에 대부분은 과도기적 혼란기에 머물고 있는 상태여서 네팔의 미레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비레탄티를 품고 있는 안나푸르나 일대는, 우리의 풍수지리학 관점으로 보면, 매우 인상적인 곳이다. 안나푸르나는 5개의 산군이 모여 이룬 형국인데, 모두 여신들이다. 그래서 ‘풍요의 여신’이란 닉 네임이 붙여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유일하게 남성 신격을 가진 마차푸차레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산은 특히 로드 시바(Lord Shiva)가 주석하고 있는 산이기에 인간의 출입이 금지된 성산인데, 모양이 물고기꼬리를 닮아서 일명 ‘피시 테일(Fish Tai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풍요의 여신 속에 유일한 남신이 꼬리만 내놓고 박혀 있는 모습은 마치 힌두 시바이즘(Shivaism)의 음양합일의 심벌인 링가(Linga:Liṅgam)과 요니(Yoni)를 자연적으로 배치해 놓은 것 같은 형국이어서 딴뜨리즘을 지형적으로 옮겨 놓은 듯하여 의미심장하다. 링가는 힌두교에서 시바 신을 상징하는 남근상(男根像)으로 힌두이즘에서는 생식력의 심벌로 숭배되어 인도와 네팔 전역의 사원에 아주 중요한 모티브로 모셔져 있는데, 주로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요니' 위에 꼿꼿이 곧추선 채로 서 있어서 힌두이즘을 이해 못하는 이방인들의 눈에는 해괴망측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링가'와 '요니'의 의미와 상징은 음양의 원리는 일체유정물의 탄생 그 자체이기에, 상반된 두 원리는 영원히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일종의 패러디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풍요의 여신이요 다산의 여신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힌두이즘에서 로드시바의 원래 신격은 파괴의 역할을 맡은 삼주신[Trimurti]이 하나이다. 창조는 파괴의 다음 단계이니 파괴가 더 중요하다는 힌두이즘의 논리는 정연하다.
내 3년 동안 하숙 롯지의 주인은 타카리 족(Takhali) 출신의 가젠드라 가우첸(Gajendra Gauchan) 부부이다. 그들은 이곳의 원주민인 구룽족은 아니고 무스탕 입구의 좀솜(Jomsom)이라는 곳이 본향(本鄕)이지만, 성격 좋고 부지런하고, 무엇보다 젊었을 때 홍콩에서 7년간을 노무자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영어를 꽤 잘해서 오래전부터 단골 트레커들이 많아서 롯지에는 여러 부류의 손님이 끊이지를 않는다. 이들은 모두 3형제인데, 큰 형은 고르카용병을 거처 현재 영국에서 영주권을 갖고 생활하고 있고 가운데 형은 포카라에서 역시 작은 호텔과 식당을 하고 있고 막내인 가젠드라만 비레탄티 마을에서 부친이 하던 롯지를 물려받아 지금 잘 끌어가고 있다.
이들 타칼리족은 오래 전부터 농사에서 손을 떼고 대개가 호텔이나 레스토랑같은 2~3차 서비스산업에 종사하기에 다른 이웃 부족에 비해 부유한 편이다. 이들 부부는 슬하에 쌍둥이 형제를 두고 있는데, 현재 모두 포카라와 카트만두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집에 갑자기 큰 팀이 들어와서 일손이 딸리면 집으로 달려와 부모를 돕는 아주 착하고 부지런한 아들들이다.
안주인 역시 같은 타칼리족이고 음식 솜씨가 역시 좋아 부부가 부창부수하며 적지 않은 규모의 레스토랑 & 게스트하우스를 잘 꾸려가고 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집 앞에서 버려진 벙어리 소녀를 키워서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는데, 지금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집안의 온갖 굿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 할머니 처녀는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만나면 뭐가 그리 좋은지 함박웃음을 날리는 우리 롯지의 행복 바이러스이다.
주인내외는 평소에도 아침마다 2층 사당에 들어가 푸쟈를 올리며 힌두교도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다. 그런데 돌아가신 모친의 기제사(祈祭祀), 즉 사라다하(Shraddha)에는 해마다 근처 사원의 라마승 3~8인을 초빙하여 성대한 푸쟈를 지낸다. 이 때 친척이나 이웃들도 약간의 돈과 여러 가지 먹거리 음식을 한 소쿠리 가져와 같이 참여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우리식으로 보면 음복(飮福)행사이다. 나도 한솥밥을 먹는 가족의 일원이기에 지난 3년 동안 꼬박 이 제사에 참가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현상 하나. 제사의 용어와 형식은 힌두교 스타일로 용어도 ‘뿌쟈(Puja)’라고 부르고 축복받은 음식을 ‘쁘라사드(Prasad)’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적인 의례는 라마승들이 집전하는 불교식이다. 그것은 이집만 그리 하는 것이 아니고 구룽족 등 대부분의 산악민족이 그렇다고 한다. 티베트불교가 네팔리의 ‘삼스카라[冠婚喪祭]’를 접수해 나가는 상황은 네팔의 미래에 큰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 방은 롯지의 3층인데, 일종의 옥탑방이다. 강과 다리를 내려다보는 조망이 좋아서 3년이나 한 방에서 살았는지 모르겠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낙수물소리가 듣기 좋고, 아침 해 뜨면 여러 종류의 새들의 지저귐 소리와 밝은 햇살 때문에 늦잠을 잘 수 없어서 좋고, 달이 뜨면 달빛이 창문으로 기어 들어오는 것도 좋다.
내방에는 방문객이 많다. 그중 단골손님은 뭐니 뭐니 해도 리자드(Lizard)를 첫손으로 꼽는다. 그게 누구냐고요? 비얌, ㅎㅎ 도마뱀.
그외 전갈, 거미, 모기, 바퀴벌레, 두꺼비, 풍뎅이 같은 이름 아는 방문객과 이름 모를 희한한 방문객들도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도마뱀이 최고의 진객으로 꼽는다. 누군들 이런 파충류 종류를 좋아하겠냐마는 저들도 먹고 살겠다고 한사코 방문하니 어쩌겠는가?
리자드는 낮에는 밖에서 놀다가 저녁이 되어 방안에 붉을 밝히면 용케도 벽의 구멍을 찾아서 방안으로 들어와 천정과 벽에 달라붙어 있다가 혀를 총알처럼 내밀어 모기나 나방 같은 날벌레를 낚아채서 입에다 털어 넣는다. 말하자면 밝은 전구 주변이 황금어장인 셈이다. 그러니 도마뱀 징그럽다고 보따리를 싸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 갈 수는 없는 노릇. 해서 배수진을 치고 악으로 버텨보는 수밖에….
나도 이런 불청객들 때문에 여러 번 놀라기도 했다. 자다보니 뭔가 내 배에 있는 것 같아 눈을 떠보니 아 글쎄 도마뱀이 내 배를 횡단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또 한 번은 자다가 전갈에게 눈 근처를 물려서 병원에서 해독제를 맞고 안대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이국만리 산골생활 오래 하다보니 나름대로 서로 규칙을 만들어서 지키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깨달음이야 꼭 보리수 아래에서만 가능하랴? 사바세계의 동업중생(同業衆生)으로 더불어 살자면 사소한 생존법칙도 깨달을 필요가 있는 법이거늘….
‘룰’이란 바로 이런 거였다. 침대머리와 아래에 부적(符籍) 쓸 때 사용하는 붉은 주사(朱砂)로 “에비~ 무서운 사람 1m 이내 접근금지~~~ ”라고 크게 써 붙여 놓았다. 그랬더니 정말 내 근처에는 안 오고, 지들끼리 놀다가 가는 것이었다. 대신 나는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을 매일 창문 밖에다 준비해주는 답례는 잊지 않고 있다.
네팔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일체의 생명체에 대해서 너그러운 품성이어서 도마뱀을 일부러 쫓아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웃 사람들처럼 도마뱀들도 그저 그런 이웃일 뿐이다. 같이 먹고 살아야하는, 같은 카르마(karma)를 타고난, 뭐 그런 이웃일 뿐이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나도 혹 도마뱀과 눈을 마주치면, 내가 먼저 “나마스테?” 하고 인사를 건넌다. 그러면 알아듣기라도 하듯 큰 눈방울을 연신 굴리면서 슬그머니 사라진다. 그러면 도마뱀의 뒤통수에다에다 대고 “Good night! Mr Lizard”라고 한 소리 덧 부친다.
그러나 나에게 살생을 강요하게 하는 단 하나의 예외는 있다. 바로 ‘주가(Juga)’, 즉 흡혈거머리이다. 이놈들은 여름철 몬순기간 내내 공포의 대상들이다. 땅 바닥에서 기어만 다니다가 몸으로 달려붙는 것이 아니라 나무 위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동물의 피냄새를 탐지하면 날아서(?) 정확하게 목표물에 떨어져 옷을 헤집고 들어가 기어코 그중 말랑한 살에다 흡혈판을 꽂고 빨아대기 시작한다.
그런데 당하는 동물들은 아프거나 가렵거나 하지 않기에 강제로 헌혈을 당하는지 눈치 채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일행들이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서야 헌혈행위를 하고 있는지를 알고는 질겁하고 거머리를 떼어내서는 발로 밟아 버리는데, 이 때 얼마나 많은 피를 빨아 뎄는지를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다.
“나뿐 놈들! 헌혈증서도 안 주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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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재미있어요.
태풍이 잘 지나가는지요?
네 별 피해없이 잘 지나갔나봅니다.
양말속으로 거머리가 기어들어가 피가 철철나는 발목을 늦은 밤에 도착한 롯지에서 확인하고 당황했는데, 피나는 부위를 물로 깨끗이 씻고 지혈제가 없어서 물기를 닦고 휴지 한 장을 피나는 부위에 붙여 응급처치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달콤한 짜이와 폐속까지 상큼한 공기와 머리 속까지 눈이 부신 새벽의 설산 풍경이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