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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민주열사묘역(모란공원묘지) 마석에 일이 있어 오늘 찾았는데 엊그제가 얼마전 타계하신 노회찬님의 49제였다고 언론에서 소개를 하여 마침 돌아오는 길에 모란공원묘지를 지나게 되어 찾았다. 모란공원묘원은 여러번 다녀온 곳으로 특별한게 없는한 포스팅을 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예전에 묘만 있었던 김근태님의 묘역도 돌아볼 겸, 노회찬님의 49제도 확인할 겸 인사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찾았다. 평일이라 문상객은 없고 추석이 가까워 벌초하시는 분들만 묘역을 왔다갔다 분주하다. 노회찬님의 묘역은 모란공원묘지 민족민주열사묘역의 중앙에 모셔져 있다. 그만큼 민주주의 발전에 공헌을 했다고 생각든다. 엊그제 행사때 쓰던 노란 현수막이 걸려있고 참배 분향 때 쓴 국화꽃이 묘지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다. 행사가 격식있게 치러진듯한 흔적들이다. 노회찬님의 묘는 사각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다른 묘와 달리 봉분조차도 대리석으로 완전히 덮어져 있다. 일반인 묘는 둘레는 대리석으로 했더라도 봉분은 잔디를 심었는데 노회찬님 묘는 봉분이 없는 셈이다. 봉분을 둥글게 하고 잔디를 심는 것은 전통 음양에서 유래한다. 음양학에서는 돌아가신 분의 집 즉 묘지를 음택이라 하여 집에서 기거 한다고 생각하고 양기와 음기가 어느정도 조화롭게 깃들어야 시골이 편안하고 후손에게 동기감응을 좋게 전해준다고 보는데서 양기를 받기 위한 방법으로 둥글게 하고 잔디를 심는 것이다. 그런데 봉분이 없이 시멘트나 대리석 돌로 봉분을 대신하면 양기가 부족하게 된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이치에서 나온 것인데 봉분은 둥글게 하는게 바른 방법이다. 일부러 봉분없게 한 것 같은데 생각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된다. 예전 김근태님 돌아가셨을 때 아직 묘지가 조성되지 않을 때 다녀오고 그 이후 묘역을 올리지 않아 이번에 함께 다녀와서 사진을 올린다. 묘역이 급하게 채워지고 있다. 민족민주열사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시다 보니 묘역도 곧 만원이 될듯 싶다. 이곳이 민주주의, 노동운동의 성지가 되다보니 이곳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인듯 보인다. 어떤 기준과 대책들이 있겠거니 하고 날씨 좋은 날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내려왔다. |
노회찬(魯會燦, 1956년 8월 31일 ~ 2018년 7월 23일)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나 풍요로운 유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3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왔으며 당시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제작, 배포하는 것을 시작으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1979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노동운동을 위해 1982년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을 취득하고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현장에 뛰어들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인천과 부천 지역의 노동운동 단체들을 모아 인천지역민주노동자동맹(인민노련) 출범에 앞장서며 인민노련 중앙위원으로 활동을 주도하던 중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1989년 수감됐다. 만기 출소한 이후에도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 90년대 진보정당 추진위원회 대표를 역임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2004년에는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17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2005년 8월 삼성 X파일(안기부 X파일) 사건(문화방송 이상호 기자가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테이프를 입수해 삼성과 정치권, 검찰의 유착을 폭로한 사건)에서 떡값 검사 실명을 공개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당내 계파 갈등으로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노 의원은 진보신당을 창당했으며 2010년에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통합진보당으로 서울 노원병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대법원이 떡값 검사 실명 공개에 대해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확정판결을 내리면서 2013년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2016년 경남 창원 성산에서 정의당 소속으로 3선에 성공하면서 의원직에 복귀했고 20대 국회에서는 정의당 원내대표와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민주평화당과의 공동교섭단체) 대표를 역임했다. 특히 노 의원은 정의당 원내대표를 지내며 1%였던 정의당 지지율을 10%까지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또 국회의원 특수활동비를 자진 반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거침없고 대중 친화적인 화법으로 인기를 얻으며 진보 진영의 간판스타로 활약했다.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서 판이 새까맣게 됐습니다. 이제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합니다. 그러나 드루킹 일당이 노 의원 측에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의혹이 일었고, 특검 수사 중이던 2018년 7월 23일, 노 의원은 자신의 어머니가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이후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회찬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김근태(金槿泰, 1947년 2월 14일 ~ 2011년 12월 30일) 1947년 2월 14일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다. 1965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1960년대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하여 손학규, 조영래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까지 각종 재야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수배와 투옥을 반복하였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5년 9월에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 이적 단체로 규정되면서, 23일간 안기부의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에게 고문을 받았다. 1996년부터 제 15, 16, 17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등을 지냈다. 2008년 제18대 선거에서는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과 겨뤘으나 낙선했다.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역임하였다. 지병인 파킨슨 병이 민주화 운동 도중 당한 고문으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2011년 12월 초 뇌정맥혈전증 투병사실을 공개하였고, 12월 말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2011년 12월 30일 오전 5시 30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별세하였다. <위키백과사전에서 인용> |
문화재지정 | 비지정 |
문화재명칭 | 민족민주열사묘역(모란공원묘지) |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묘지 |
관리자(연락처) | 모란공원묘지 |
▼ 민족민주열사희생자묘역도...
▼ 모란공원묘원에 걸려있는 노회찬 추모 정의당 현수막...
▼ 민족민주열사추모비...
▼ 민족민주열사추모비 옆에 계훈제님 묘가 있다.
▼ 민족민주열사묘역 이정목에 붙어있는 노회찬의원 묘소 안내문...
▼ 민족민주열사희생자묘역 거의 중앙에 위치한 노회찬님 묘소...
▼ 묘역에는 이틀전에 거행된 49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 그대가 바라보던 곳을 향해, 우리는 걸어갑니다.
▼ 노회찬님 묘소... 옆서함도 만들어져 있다.
▼ 노회찬님 묘소... 봉분 없이 대리석으로 완전히 둘러싸게 되면 양기(陽氣)를 받지 못하여 음양조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 묘소에는 행사때 분향 참배했던 국화꽃이 그대로 놓여있다.
▼ 노회찬 묘 백호쪽 언덕위에는 문익환목사 묘소가 있다.
▼ 노회찬 묘 청룡쪽... 오른쪽 끝지점에 김근태님 묘소가 있다.
▼ 묘소 사각둘레대리석은 평평하게 하지 않고 뒤가 더 높게 하여 앞을 향하도록 하였다.
▼ 노회찬 묘 후경...
▼ 묘역은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햇볕이 많이 들어서 아늑하고 양명해 보인다.
▼ 민족민주열사희생자묘역에서 청룡쪽 끝에 위치한 김근태님 묘소...
▼ 예전에 이 부근에는 묘가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거의 들어차 있다.
▼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묘...
▼ 김근태 묘소 측경...
▼ 김근태 묘비 뒤에 기록된 약력
▼ 김근태 묘소 후경...
▼ 김근태 묘소는 민족민주열사희생자묘역에서 청룡쪽 끝에 위치한다.
▼ 김근태 묘소에서 바라본 민족민주열사희생자묘역... 노회찬님 묘소와 달리 봉분에 잔디를 심었다.
첫댓글 지난번에 조안면으로 해서 북한강 구경하고 되돌아 오면서 마석 공원묘지에 들렸었는데
그때 모란공원민주열사 묘역을 참배했습니다. 고 노회찬의원,고 김근태의원등 몇분께 인사드리고
커피한잔 올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