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진기한 골프취미 ‘홀인원 3회 이글 27회의 소회’-박양우
이 회고는 대열임관50주년 기념책자 (가칭: 대열 반세기 여정) 3부에 포함시킬 예정인 <취미생활 동기생들의 활동 약사>를 수록하기 위해, 그간 대열카페 공지사항과 갤러리에 등장했던 기록들을 정리한 것 외에, 추가로 모은 동기생 취미활동 이야기의 하나입니다.
대열 골프회가 가장 많은 동호회 멤버를 자랑하지만, 이 글의 주인공 박양우 동기의 일평생 골프운동 기록은, 스스로 “골프에 있어서 큰 행운아”라고 기뻐하는 것처럼 진기하고 하느님 앞에 은혜로운 것이라 할 것입니다. 지면 제한에 구애받지 않는 인터넷 카페이기에 그의 골프사랑과 진기한 기록을 동기생 모두 감탄하며 축하해주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위원 김명수 (註)-
홀인원 3회의 골프 소회(素懷)
2021.06.22. 박양우
골프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는 이 말이 더욱 실감 난다.
나는 골프를 많이 좋아했으나 실력이 남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골프 인생에 홀인원 3번, 이글 27번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글(Eagle) 횟수는 우리 대열 동기회 기수와 우연히 동일하다.
나는 43년 전인 1978년 10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미래지향적 정책으로 육군 소령 예편과 동시에 국가공무원 행정사무관으로 임용되어, 이성원 동기와 함께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 발령받아 새로운 환경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1986년 3월, 과장(서기관)으로 승진하여 그해 8월 미국 뉴욕 무역관에 부임할 때 당시 차관 주최 축하 식사 자리에서 “해외 근무 시 열심히 복무하는 것은 기본이고, 뉴욕에 가면 골프는 필수이니 미리 골프 에티켓도 익혀 행운의 홀인원도 하고 오길 바란다”라는 덕담을 들었을 때 솔직히 홀인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골프 문외한이었다.
뉴욕에 부임하니 아니나 다를까 주말 골프는 필수였다. 그러나 주말마다 서울에서 출장 오는 상공부 선배 간부들이 많아 몇 달 동안 필드는커녕 연습할 시간조차 없었다. 수개월이 지난 후 연말연시에는 고국에서 오는 출장 팀이 거의 없는 터라 약 3개월여 연습에 열중한 결과 87년 3월 초 필드에 나가 드디어 생애 최초 골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 당시 뉴져지 집 근처 퍼블릭 골프장은 미화 10불이면 18홀 라운딩과 간단한 식사까지 가능하여 하루 36홀까지 라운딩 하다 보니 골프 실력도 불과 6개월여 만에 보기플레이어로 발전했다.
나의 첫 번째 홀인원은 입문 후 1년여밖에 안 된 시점인 1988년 3월 20일, 뉴욕 총영사 주최 친선행사 (8팀) 때, 뉴욕 블루힐CC 10번 홀, 159야드에서 7번 아이언으로 티 샷한 것이 온 그린 되어 한 번 튀어 구르더니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운 좋게 홀인원이 된 것이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상황이 일어난지라 어안이 벙벙했으나 동반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홀 속에서 볼을 직접 꺼내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홀인원을 하면 골프장 경내에 값 비싼 기념식수를 하고 동반자들과의 기념라운딩, 음주 가무(?) 등으로 수백만 원의 개인 비용이 지출되는데, 미국은 홀인원 행사를 스마트하게 한다. 클럽하우스에서 함께 식사 중인 골퍼들에게 생맥주 500cc 한 잔씩 돌리는 것으로 액땜(?)을 치른다.
오히려 미국골프협회와 골프 다이제스트로부터 홀인원 공식 인증서와 기념 골프공, 기념 우산 등을 받았다.
두 번째 홀인원은 2005년 5월 28일, 내가 한국기계산업진흥회 상근부회장 재직 시에 상공부 후배들과의 친선 라운딩할 시, 경기도 가평 소재 운악산 자락 썬힐CC, Sun 코스 2번 홀, 154야드에서 7번 아이언으로 티샷 한 것이 홀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두 번째 홀인원 사고(?)를 쳤다.
세 번째 홀인원은 2012년 8월 23일, 동여주 CC, 5번 홀, 145m를 9번 우드로 홀인원 작품을 만들어 냈다.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은 대열 동기회 황소 중대 이종은 동기, 석용문 동기와 함께한 부부동반 라운딩에서이루어낸 결과였다. 당초 박정학 동기도 함께하기로 했는데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불참한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나의 골프 발자취를 돌아보면 나는 누구보다도 골프를 좋아한 편이었다. 나의 골프 전성기는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던 1987~89년 뉴욕 근무 시절이었다. 골프 입문 1년 만에 홀인원도 경험했고, 이글도 많이 하며 주 UN 대표부와 뉴욕 총영사관 직원 50여 명 외교관과의 춘·추계 골프 친선 행사 때 두 차례나 메달리스트를 하고 귀국했으니 여한이 없다.
그 후 국내에서도 골프를 즐기긴 했으나 YS 시절 공무원 골프 금지령으로 한동안 골프채를 놓다 보니 실력이 줄어들었다. 더구나 2006년 1월 어느 추운 날, 뉴서울 CC, 내리막 코스 홀에서 얼어버린 뒤땅을 치는 바람에 허리 근육 파열 사고로 6개월 치료를 받은 후부터는 아이언 대신 우드만 사용하게 되니 스코어도 줄고 흥미도 잃어 몇 년 전 부터는 골프를 아예 접어버렸다.
인생에도 부침(浮沈)이 있듯이 그리 좋아했던 골프도 일정량의 쿼터를 채우면 재미가 없어지는 듯 싶다.
나는 체구도 작고, 힘도 세지 않은데도 홀인원과 이글을 많이 기록한 걸 보면, 골프는 힘이나 비거리가 아니라 정확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골프는 3C(Correctness, Confidence, Comfortability)라는 말이 새삼 기억났다.
나는 골프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큰 행운아(幸運兒)이다. §
첫댓글 기막힌 행운이네!
골프 계속하면 두세번은 더할것같은데!
박양우 대단하구만!
동기생골프회에 나왔으면 합니다.
자랑할려고쓴것이 전혀 아닌데ㆍ쓰다보니 자랑한셈이 된거같아 송구하네요ㆍ
격려해주신 동기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