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108년 10월 17일
경계 : 엄마의 말
동생이 숙박권을 주어서 엄마를 모시고 덕산 리솜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가기 전 엄마는 몇 차례 전화해서 가는 날짜를 확인하신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모든 기능이 약해지니 어떤 일에 대해 반복해서 묻는 일이 잦아졌다. 방금 묻고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하고. 그리고 귀도 어두워지니 큰 소리로 말해야 하고 잘 들리지 않으면 엉뚱한 내용의 말로 답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걱정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반복해서 설명하고 대답해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였다.
마음공부 덕분에 엄마에 대한 나의 분별성과 주착심을 조금씩 털어내게 되니 이제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에 경계가 있어도 엄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지고 받아들여진다. 반복된 질문에 답하는 것도 그대로 크게 요란함 없이 대답하게 된다. 100% 완벽하진 않지만,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나 스스로 느끼게 되니 엄마와의 관계가 편안해졌다.
교무의 의견
어머니께서 연세가 드심에 따라 귀가 어두워지니 말을 잘 못알아듣고 그러니 큰소리로 말해야 하고 못알아들었다고 다시 묻고 그러지요? 그리고 조금전에 한 말을 또 하시기도 하고 말씀드렸는데 못들었다고 하곤 하지요?
좋은 말도 한두번이라고 하는데 여러번 대답을 하고 큰 소리로 말해야 하니 싫은 마음도 들지요?
그런데 어머니 입장에서 생각하면 무슨 말인지 모르니 다시 묻는 것이고 작은 소리로 말하면 안 들리니 큰 소리로 말할 수 밖에 없는데 어머니가 우리를 미워해서 그런게 아니라 현실이 그래서 그런 것인데 정상적인 우리는 귀찮을 수 있지요?
알고보면 어머니는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을 못알아들으니 갑갑하고 다시 묻기도 미안하고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딸의 입장에서 어머니의 세정은 몰라주고 어머니께 화를 낸다면 어머니는 얼마나 서글퍼하시겠습니까?
우리도 언제 늘으려는지 모릅니다. 부처님께서 생노병사는 빈부귀천 누구나 겪게되는 필연적 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귀가 어두워 잘 못듣는데 딸들이 귀찮아하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면 우리가 알아드리지 못함이 미안하고 어떻게든 돕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지요.
이 마음이 든다면 어머니와 함게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고 그렇게라도 옆에 계신 어머니가 고맙게 생각이 되어지리라 믿습니다.
원기 108년 10월 24일
경계 : 죽음
요즘 마음이 심란하다. 뭔가 뻥 뚫려있는 거 같고 왜 살고 있나? 싶다.
나를 들여다본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한 달 조금 못 돼서 어머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일주일 동안 대학병원에 계셨다가 지금은 재활 치료를 받고 계신다. 한두 달 사이에 이런 일이 있고 보니 감당하기가 힘든 거 같다. 나도 나지만 남편은 얼마나 견디기가 힘들까 싶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 했지만 공부가 덜된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고 버겁고 두렵고 무섭다. 내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상태에서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나이에 내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신 거는 처음인 거 같다. 죽음 앞에서의 허탈감, 아등바등 살 게 없다는 생각~
그동안의 죽음은 먼 훗날 얘기 같아서 와 닿지 않았는데 지금은 내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니 이런 게 눈에 들어오나 보다.
50이 넘은 나이가 되고 보니 주위 분들이 하나둘씩 곁을 떠나게 되는 거 같다.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그러면서 친정 부모님도 언젠가 떠나가시겠지라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아프면서 남편의 심정이 이해가 가진다.
요즘 들어 부쩍 여기저기 아프시다고 하시는 아빠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더 자주 찾아 보여야지^^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날이 내게 올까?
열심히 공부해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다음 생을 기약할 힘이 있는 건가?
진리를 알아가고 있는 나에게도 힘에 부치고 두렵다.
뭔가 허전하고 텅 빈 거 같은 뭔가 모를 무력감마저 든다.
주변에서의 일들로 우리의 일상이 흩어지는 것을 보면서 화려하지 않지만 평범한 일상생활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알겠다.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을 보면서 이 법을 모르시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면서 죽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그래도 나는 이 공부를 알게 된 것 다행이다 싶다.
부지런히 공부해서 참나를 알아가고
생과 사가 둘이 아님도 깨우쳐 해탈의 자유를 얻고 싶다.
교무의 의견
부처님께서 죽음의 고라고 하셨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모르고 가는 길이 두렵겠지요?
특히나 늘 모시고 있던 아버님이 열반하시고 어머니도 쓰러지셔서 언제 가실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옆에 있지요
교당에서 영은 죽지 않는 것이며
생사는 거래라 이사를 하는 것과 같다고 배우기는 했지만
그것을 확인할 수 없으니 믿기지 않지요
함께하던 사람이 떠나고 나면 너무 허전하다고 합니다.
골프를 함께 치던 친구가 먼저 가서 골프를 못 치게 되면 엄청 슬프고 언제까지 함께할 것 같은 배우자가 가면 우울증이 온다고 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죽지 않는 사람은 없고
죽음의 길은 십이인연 따라 갔다 오는 것이라고 하셨으니
생사를 연마하여 믿음이 생겨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생을 마치고 떠날 때 나 잘 다녀올 게 그러면서 떠난다면
그리고 다음 생에 새 몸을 받아 올 수 있다면
마치 헌차를 폐차시키고 새 차를 사는 것과 같을 것이니
오히려 기쁨으로 맞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원기 108년 10월 17일
경계 : 남편의 말
남편과 토요일 엄마 생신이라 오수를 가는 도중에 남편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부정적인 말만 한다. "당신은 늘 부정적인 말만 하네~~, 좀 긍정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 남편은 넌 무슨 말만 하면 꼬투리를 잡는다고 한다.
남편의 마음을 내가 어찌 다 알까?
내가 듣기 싫은 건 내가 또 분별하면서 들었기 때문이었다.
동생 집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조카와 함께 타고 있는데
"지연~~ 너 많이 늙었네~~, 여기서 보니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하면서 엄청나게 웃는다.
"당신 왜 그렇게 비아냥대면서 말하는 거야~~"
"그냥 재밌으라고~~"
"당신은 그게 재밌어~~, 난 안 재밌어~~,
기분이 나빠, 날 조롱하는 것 같아서"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미안하다"
남편은 그냥 말한 건데
난 또 비아냥거리면서 조롱한다는 분별로 남편에게 또 짜증을 냈다.
토요일 저녁 약간 체기가 있어서 약을 먹고 자는데 일요일 새벽 토사곽란이 났다.
남편은 다락방에서 자길래 나 혼자서 1시간 넘게 토하고 설사하고 죽을뻔했다.
토하는 건 멈췄으나 뱃속에서 천둥소리가 나고 설사가 힘들다.
아침에 내려온 남편에게 내 상황을 말하고 일요일이어도 약국 연 데가 있으니 약 좀 사다 줘 하고 부탁하니, 남편은 견뎌봐~~하면서 나간다.
약을 사다 주려면서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는다.
12시가 넘어가자 배는 아프고 다른 증상들도 가끔 나와서 그냥 잠만 잤다.
시간이 갈수록 남편에게 원망심이 나온다.
어쩌면 저러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 남자와 늙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점점 생각이 커간다.
난 전화해서 "난 견디라는 말이 장난인 줄 알고 약을 사다 줄거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5시가 넘어도 오지를 않네~~, 너무 서운하고 서운해~~"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에 남편은 약을 사 와서 준다.
먹기가 싫다. (그 마음엔 네가 사준 약 먹느니 차라리 아프고 말겠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다시 마음을 돌린다. 안 먹으면 나만 손해니 먹자
남편은 그렇게 심한 줄 몰랐다고 한다.
나는 새벽에 자기를 배려해서 안 부르고 혼자 힘든 상황을 겪었는데,
아침에 내려왔을 때는 새벽보다는 심하지는 않았지만 약을 사다주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냥 그대로 그냥 그대로
그들이 아니면 그들을 어찌 알리?
그들 속에서 들어보라!!
이 말씀에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난 남편에게 아직도 내 마음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해 주기를 기대하고,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남편을 탓하고 있다.
교무의 의견
서로 간에 소통의 제일 수단은 말입니다.
말로써 내 마음을 전하고 그 말을 듣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고
말하는 걸 듣고 상대의 마음을 알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간에 오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평소에 대화하면서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말을 듣고 나름으로 해석하여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게 됩니다.
말을 할 때 이 말을 하면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할지 생각해 보지 않고 자기 말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반응을 보지도 않고 나의 말만 계속하기도 합니다.
특히 싸울 때는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나의 주장만 펴기도 합니다.
남편이 말을 하면 남편이 왜 그 말을 하는지 그 마음을 읽기보다는
왜 그렇게 말하느냐고 꼬투리를 잡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개는 나의 분별성과 주착심에 의해서 상대의 말을 평가하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토사곽란으로 심히 아픈데 그것도 남편이 자다가 깰까 봐 참고 있었는데 그 세정도 모르고 약 좀 사다 달라는 걸 참으라고 했으니 서운하셨지요. 그러나 남편은 사정을 모르니 참으라고 한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을 하면 경청을 하고 경청하면서 공감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알게 되고 마음을 읽어주면 고맙고 감사함이 오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