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조실록 (47) 제15대 #침류왕 4
- 백제의 요서경략(遼西經略) 설 (2)
일설에 의하면 백제의 요서경략이 침류왕(제15대) 때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고이왕 (제8대), 근초고왕(제13대)이 아니라 침류왕 때에 백제 요서경략 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사실 좀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이긴 합니다. 침류왕 때의 백제라면 #근초고왕 , #근구수왕 (제14대) 때의 전성기를 겪은 직후이므로 국력 면에서는 상당히 강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때는 시기적으로 봤을 때에 요서경략을 시도하기에는 상당히 늦은 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류왕 때에 백제가 요서를 경략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연유는 무엇일까요.
침류왕 때의 백제가 요서를 경략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때의 백제가 전성기를 보내면서 상당한 수준의 국력과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국력과 자신감을 기반으로 충분히 #후연 (後燕)과 전쟁을 할 만한 수준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침류왕이 후연에 봉사하고 있던 부여출신 #건절장군 (建節將軍) #여암 (餘巖)에게 같은 혈통임을 내세워 #반란 을 모의하도록 사주하여, 여암이 반란을 일으킬 동안 백제가 후연을 제압하고 요서를 차지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제가 다시 요서에서 밀려난 이유는, 백제가 후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잠시 요서를 통치하였지만, 얼마 안가서 후연 측의 반격으로 인해 요서의 땅을 다시 잃었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백제가 요서의 #지배권 을 상실한 것은 #고구려 의 전성기 때입니다.
따라서 침류왕 때에 백제가 요서를 경략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백제가 후연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을 때 어째서 후연이라는 나라를 끝장내지 않았느냐 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침류왕의 #백제요서경략 을 주장하는 이들은 침류왕과 여암 등이 요서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즉위하여 19개월을 통치하고 죽은 침류왕이 그 짧은 기간에 중국대륙의 요서를 공략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도 사실상 의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이 시기의 백제는 전성기를 겪고 난 직후이므로, 침류왕이 요서를 경략할 당시의 백제가 후연을 능가하는 국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후연을 멸망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침류왕 때의 #요서경략설 자체가 상당히 부풀러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백제가 요서 전역을 차지한 것이 아니고, 일시적으로 요서지역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다는 중국 사기의 기록도 참조하고, 당시 백제와 후연의 국력을 비교해 보거나, 두 나라 간의 관계를 보자면, 실제로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기에는 어려운 여건이었다고 보기 때문에, 침류왕 때의 백제의 #요서경략 설은 잘못되었다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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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백제가 요서지방에서 물러나게 된 연유가, #내부적요인 에 있었다고 전술한바가 있는데 그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침류왕이 죽고 나서 새로이 백제의 왕이 된 사람은 #진사왕 입니다.
갑자기 침류왕 때에 백제가 #요서지방 을 경략했느냐 안했느냐의 진위를 따지는 마당에, 다음 왕인 진사왕 대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지는 백제가 요서에서 물러나게 된 내부적 요인이 #백제 안에서 일어난 갈등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보니 침류왕대가 아닌 다음 왕대의 상황으로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삼국사기 에 의하면, 진사왕 때부터는 #백제 와 고구려가 전쟁을 벌이게 되면 백제가 번번이 패했다고 가록되어 있는데, 이는 백제가 점차 몰락의 길에 접어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고, 사기의 기록상으로도 침류왕 이후부터 백제는 점차 쇠퇴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진사왕이 #사냥 을 무척이나 즐겨했다고 되어 있는데, 그의 죽음 역시 사냥과 관련이 있는듯하다는 내용의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비록 직설적으로 표현한 기록은 아니지만, 많은 사가들은 진사왕이 사냥을 나간 와중에 #암살 을 당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진사왕이 #용감 하고 #지략 이 많았으며 지혜로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용감하고 지략이 많고 #지혜로운왕 이긴 하였지만 고구려와의 싸움에서는 번번이 패하고, 끝내는 사냥을 나갔다가 암살을 당했다는 것 입니다.
아무튼 진사왕의 죽음에 대해서는 뭔가 의문점이 있습니다. 진사왕의 죽음이 백제 내부의 갈등에 기인한 것이었고, 그러한 조짐이 이미 침류왕 때부터 일어나고 있었다고 붙 수가 있지만, 내부의 갈등이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진사왕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