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술
술
신근식
술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민감하다. 술은 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다. 소량의 술을 꾸준히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되고, 다양한 질병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지나친 음주는 수많은 질병을 유발하며, 조기 사망에 이른다. 불행하게도 술을 먹는 것은 일부 사람에게 편중되어 있다. 인구의 10퍼센트 정도가 전체 술의 50퍼센트를 소비한다. 바로 이들 10퍼센트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술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여 신이 나게 하고, 없던 힘이 생기게 한다. 뇌세포의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지만 때로는 엉뚱하게도 도가 지나치면 자신이 생각지도 않은 말이나 행동으로 실수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주변에도 유난히 술을 좋아하고 즐겨 했던 형님들이 예순을 조금 넘어 며칠 사이로 먼 길을 떠났다. 술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은 진리다. 사람이 술을 먹고, 술이 술을 먹고,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동서고금에 술 먹고 건강 좋아졌다는 사람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열심히 사셨다. 내가 태어난 영산면(경남 창녕)은 네 개의 리(里)가 있다. 성내리, 서리, 동리, 구계리다. 아버지는 성내리 이장이다. 이장을 맡아 하면서 몇 번을 연임하였다. 집에서는 근엄하고 자상하지 않은데 밖에만 나가면 성격이 호탕하여 술도 잘 먹고 노래도 잘 불러 동네 아줌마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매일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온다. 술을 덜 먹고 집에 들어올 때는 기분이 좋아서 사탕이나 과일 등을 사서 우리 형제에게 나누어 주면서 자상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떤 날은 너무 많이 취해서 들어오면 잔소리 심하게 퍼붓는다. 그리고 동갑내기인 어머니와도 큰소리가 오고 가면서 잘 싸운다. 어릴 때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누구도 술 먹는 사람을 싫어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는 운 좋게 정미소를 값싸게 인수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꾼을 데리고 어머니가 도와주어서 운영이 잘되었다. 정미소 업도 벼 찧는 개인 기계가 나와서 사양산업이 되었다. 일꾼을 내보내고 아버지가 직접 벼 가마 가대기도 하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집 앞 점방(구멍가게)에서 술을 마신다. 안주는 김치 조각으로 해서 하루 3회 정도 쉬면, 소주 3병을 매일 먹는다. 정미소를 그만둘 때까지 계속해 왔으니 당신의 몸이 남아날리 없었다. 결국 전립선 비대증으로 앓다가 수술도 하지 못한 체 허파로 전위 되어 79세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동네에 당숙(오촌)은 고등학교도 가기 힘든 시절에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나와 우리 마을 중학교 역사선생님 이었다. 당숙은 너무 완고하고 융통성이 없다. 그 학력에 교감 진급을 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술로 세월을 보냈다. 결국 다리 하나를 절단하고, 얼마 안 있어서 술병으로 돌아가셨다.
집안(辛家) 내력에 조상들 모두 술을 좋아하며 말 술이었다. 할아버지도 그랬고, 아버지도, 우리 형제들도 잘 먹는다. 처음에는 아버지 때문에 술을 싫어하였지만. 그 당시 집에서 매실주와 포도주를 많이 담아 먹었다. 술은 어른이 먹고, 포도알은 우리 형제들의 간식이었다. 한번은 포도알이 하도 맛있어서 너무 많이 먹었다. 머리가 빙빙 돌고, 어지럽고 정신이 없었다. 배고픈 시절에 술지게미도 좋은 음식이었다. 술 찌꺼기가 달달하여 먹기 좋아서 많이 먹었더니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그것이 술에 대한 면역이다. 어릴 때 나의 술 이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술을 먹을 이유는 차고 넘친다. 어제저녁에 한잔 했으니 해장으로 한잔, 아침에 날씨가 흐려서 한잔, 일은 많은데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아 술의 힘을 빌려야 해서 한잔, 별로 탐탁지 않은 사람한테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어서 한잔, 무료해서, 기분이 좋거나 나빠서, 축하주, 위로주 등 어떻게든 술 먹는 핑계를 둘러댄다.
젊은 날에 나는 저녁형 인간이다. 오전에 비실비실 조용하다가 오후쯤에는 분주하다. 더군다나 마칠 때쯤이면 괜스레 술 한잔하자는 전화를 기다리며 마음이 초조하다. 역시나 술꾼들의 마음은 통한다. 여지없이 약속이 정해진다. 술자리엔 언제나 약방 감초처럼 등장하는 직장상사에 대한 사사건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울분을 삭이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때는 술 먹는 것만이 이 비루하고 지친 일상의 유일한 위안이자 당연한 보상이라 여겼다.
그 당시에 모임이 많았고 취미생활도 많았다. 산악회, 테니스회, 마라톤회, 볼링회 등 이 많은 모임을 어떻게 소화 시켰을까? 생각해 보니 그 뒤에는 술의 힘이 있었다. 술을 잘 먹기 위해서 운동하고, 모임도 하고 그야말로 인생의 멋과 낭만을 즐겼다. 술자리를 많이 접하고 보니 마냥 좋은 기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술은 역시 양면성이 있다. 적당하게 마실 때는 좋은 관계가 이루어 지지만, 그 도가 지나칠 때는 기억도 하기 싫은 뼈아픈 실수를 한다.
나에게 술에 대한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내력으로 술 마시는 자리는 한 번도 거절한 적도 없으며, 술을 많이 좋아한다. 처음에는 술을 적게 자주 술잔을 꺽어서 마신다. 실수하지 않고 오래 마시기 위한 나의 전략이다. 한 번은 동네에서 1차 호프집, 2차 시장에 막걸리집, 3차 민속주점, 4차 다시 처음 갔던 호프집 5차 노래방, 6차 마지막 입가심으로 끝내고, 집에 가는 도중 오르막을 올라가지 못해 넘어지고, 또 넘어져서 얼굴을 갈아서 곤란한 적도 있었다. 또 한번은 외부에서 술을 많이 먹고 동료들이 아파트 앞까지 데려다주었는데 다시 배웅하다가 정신을 잃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서 어쩔 줄 모르고 헤매고 있을 때 겨우 가족을 만나 집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이외도 셀 수없이 많다. 아내가 술 먹고 실수가 잦아, 술에 질려서 휴대폰에 “술이 싫어”라는 메시지를 넣어 휴대폰을 켜면 제일 먼저 보이게 하여, 술에 대한 경각심 보이도록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 사는 L씨와 우연히 휴대폰 메시지에 대해서 이야기 했더니, 갑자기 L씨도 자기 휴대폰을 보여주며, 거기에는 “술은 이제 그만”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술로 일상을 해결하려는 남성들의 한심함을 드러내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해마다 다이어리에 단골로 절주와 금주의 계획을 세워보았으나 작심삼일이 되었다.
은퇴 후 술을 끊게 될 계기가 왔다. 그동안 술로써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병원에서 아버지가 앓았던 전립선 비대증이 위험수위라고 하였다. 당장 소변 보는데 문제가 생겨 심할 때는 소변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응급실에 가는 일도 몇 번이나 있었다. 아버지 전처를 밟지 않기 위해서 결국 수술을 단행하였다. 다행히 수술이 잘되어 정상적으로 돌아왔지만, 일 년 동안 술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하여 참고 또 참았다. 수술 일 년 후 덤으로 산다고 또다시 부풀어 나는 술에 대한 자만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은퇴 8년, 만나는 사람도 하나, 둘씩 떨어지고 모임도 몇 개 남기면서, 자연히 술자리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아침형 인간이 되어 있었다. 두 시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덤으로 받은 두 시간을 아침 걷기운동과 책 읽기로 했다. 책 읽는 습관이 익숙해져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책의 영향을 받아 급한 성격도 고쳐져 한결 여유로워졌다. 무엇보다도 밖에서 술 먹는 일이 줄어들어 저절로 절주의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요즈음 일과가 마무리된 저녁, 요리 교육에서 배운 안주 한 상 차려 놓고 책을 읽으면서 홀짝홀짝 마셔대는 것이 나만을 위한 삶의 유일한 휴식이다. 술을 마셔 건강도 좋아지고 가정이 행복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20240709)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