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마음 제10차 백일릴레이명상 제 48일 (1122 화)
나를 괴롭히는 습관적 패턴
아이가 어제부터 기침을 하기 시작하더니 밤이 되니 목이 많이 아프다 하고 코도 막힌다 합니다. 감기 증상인가, 코로나 감염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지요. 다행히 밤새 기침은 멎어 잠은 잘 잤고, 미열과 인후통은 계속되어서 오전에 아이 학교를 제끼고 이비인후과 의원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 안도했지요.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갔습니다. 아이는 알약을 삼키기 힘들어 합니다. “가루약으로 해 주세요” 합니다. 약사 선생님은 앞으로 서방정, 즉 약 성분이 몸에서 천천히 녹아서 흡수되는 제형으로 약이 처방되면 갈아서 주기 어렵다며, 아이에게 이번에는 아주 작은 알약이니 한번 삼켜 먹어보라고 권유하십니다. 아이는 강하게 거부했지요. 이전에 알약을 삼키다가 한번 목에 걸려서 애를 먹은 경험 때문에 아이는 알약을 갈아 쓰디쓴 가루약으로 삼키는 걸 마다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미역, 고사리 같은 나물을 씹다가 목에 걸렸다며 켁켁거리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경험이라고 해서 그게 모두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되지는 않는데, 엄마인 저는 왜 그런지 궁금하고 걱정입니다. 화장실 불안도 같은 맥락으로 보이고요.
아이와 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약사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가 알약을 삼킬 수 있다는 데도 굳이 부모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아이는 알약으로 달라는 데, 부모가 가루약으로 달라고 하더라니까요.” 웃고 말았지만, 돌아서서 보니 부모가 굳이 나서서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제 자신에게 찔리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알약을 거부하는 아이에게 알약을 먹여보려고 애쓰다가 실패했던 기억이 되살아났지요.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지금도 그때의 일을 자신을 방어하는 방패로 삼습니다. “엄마가 화내면서 억지로 먹으라 했었잖아.”
아이와의 문제에서 또 하나의 유사한 패턴을 발견합니다. 알약을 먹겠다고 하는 아이에게 굳이 가루약을 먹이겠다고 알약을 못 먹게 했다는 부모와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라는 사실도요.
제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자꾸만 아이를 끌고 가려는 습성은 질기고 질긴 것 같아요. 그런 저의 성향과 습관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있는 아이는 나름대로 그것에 반응하는 방어기제의 습관이 생긴 것일까 추측해 봅니다. 아이가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어떤 과제를 제 나름대로는 잘게 쪼개고 또 쪼개서 가장 작은 덩어리로 만들어 제시하는 것인데, 그것마저 아이가 거부하고 회피할 때, 저는 이내 낙담하고 힘들어합니다. 이건 넘어서야 한다, 이건 극복해야 한다며, 아이에게 권유를 가장한 윽박을 지르기도 하지요. 아이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엄마는 다 계획이 있다고. 이것만, 이렇게만 하면 된다고 유인하는 길 끝에는 엄마의 계획을 끝내 완성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이런 심리라면 계속 마음의 빗장을 걸어 두고, 그 빗장을 더 단단하게 하려는 방어적 시도를 지속하게 되는 거 아닐까.
그 음모의 의도가 아무리 선하고, 그것의 결과가 아무리 좋은 것에 가 닿는다고 해도, 저는 멈춰야 하네요. 멈춰야 하는 것은, 멈출 수 있는 것은 제 자신뿐이니까요.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충돌로 아이의 방어적이기만 한 태도에 매번 힘이 빠질 때면, 악순환의 고리를 느슨하게 하고, 변화를 도모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이제 겨우 조금 알아차리기 시작한 제 안의 이 질기고도 질긴 습성의 패턴을 인정하는 것부터, 저 스스로와 화해하고 편해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어렴풋이 희망의 빛을 더듬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