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 선산김씨 시조 김선궁 묘(시조 묘는 언제까지 발복을 주는가?)
1. 선산(善山, 옛 지명 一善)김씨
시조 김선궁(金宣弓)은 김알지의 30세손이자 문성왕의 8세손으로 호족이었는데 고려 왕건이 후백제를 치러갈 때 참여하여 왕건으로부터 활과 이름을 하사받았다. 생몰년도는 불명이나 삼중대광문화시중이 되었으니 950년경? 卒로 추정할 수 있다. 인구는 145,000명(2015년, 72위)이고 김종직 선생과 김건희여사가 선산 김씨이다.
2. 묘소
구미시 금호리(金湖里)464-1일원에 있다. 대구 팔공산이 배틀산 연봉을 거처 창림리 산30에서 90도로 좌회전하여 낙동강변으로 내려가 미석산을 만들고 멈추었다. 미석산은 큰 잉어로 꼬리에 연못(해평리마을의 쌍암고택이 연화부수라고 한다)이 있고 김선궁의 묘는 잉어의 입부분이다. 잉어가 연못에서 뛰어 올라 낙동강으로 들어가려는 형상이다(모란반개라는 견해도 있다). 대와 중(大窩中) 유(乳)에 혈이 맺혔고 입수가 2중으로 사성을 만들고 전면에 사격들이 굵고 아름답다. 백대명당에 들어간다. 신도비(1862년 건립)를 보면 사좌원(巳座原)에 상하(上下) 2기가 있는데 어느 묘가 공(公)의 묘인지 알 수 없다고 적혀 있으나 문중에서 치장 관리하는 것을 보면 위의 묘를 공의 묘로 보고 있다.
어떤 풍수는 청룡쪽으로 5~6미터 아래를 진혈처라고 하는데 글쎄. 지금의 자리에서 후손들이 번성하여 시조로 봉사받고 있는데 5~6미터 옮긴다면 20위권내의 대성이 된다는 보장이 있을가?
3. 시조가 천년 후의 후손에게 발복을 줄 수 있을가?
혹자는 김여사가 김선궁시조 묘의 발복이라고 한다. 발복이 체백의 영향력이라는 견해에 의하면 체백이 흙으로 변한 뒤에는 효력이 없을 것인데 천년 동안 썩지 않고 있는 미이라가 있을 수 있으나 대개는 흙으로 돌아 갔다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더욱이 미이라 상태는 풍수상 좋지 않다고 보아야 된다. 경주 성문 아래 땅속에서 300년경 성벽공사 인부들의 황골이 수십구 발견된 사실이 있다. 그들은 무거운 돌 밑에 깔려서 얼마나 괴로웠을 가. 가령 혼령이 발복을 주도한다고 쳐도 최영장군과 같은 위인의 혼령이면 몰라도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위력을 발휘하는 혼령이 있겠는가. 대체로 4~5대까지 발복효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결록을 보면 대명당일 경우 7~10대 정도 효력이 있다고 보는 것 같고 그 이상은 과장으로 보아야 된다.(2024.11)
4. 관련 지도와 사진
* 지도---미석산
* 김선궁 묘---
* 김선궁 상하장---
* 봉분 뒤에서---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
잘 보았습니다 .
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