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지
주제: 사회적 나와 진정한 나의 이항대립으로 인한 심리적 갈등
랜덤 박스는 박스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열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종이상자를 말한다.
랜덤박스는 나의 사회적 자아의 은유이다. 출세의 사회적 욕망, 가문의 대소사, 내가 속한 회사, 각종 유관 집단을 챙겨야 하는 사회적 자아들이 랜덤박스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허들은 사회적 목표를 상징한다.사회적 자아를 위한 허들이므로 무한한 의무감, 부담감을 준다.
현대의 시간은 구조, 제도에 맞춰진 시간이다.하루는 24시간을 잘게 쪼개서 근대적 시간으로 들여다보면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아침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먹고 저녁에 퇴근한다. 집에서는 가장이고 아버지고 남편이다.조금 확장하면 형님이고 누나고 동생이다. 사회적으로 확장하면 직장내에서는 대리이고 부장이고 전무일 것이다. 여기에 걸맞추어서 해야 할 역할이 많다. 그 역할은 나의 정체성과는 관계없이 행해지는 모든 행위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것을 이 시의 화자는 광대라고 은유한다.진정한 나이외의 다른 나다. 조직사회에 걸맞게 가공된 나이다. 사회적 페르소나이다.이 사회적 페르소나는 매우 바쁘고 치열하다.전쟁터에서 싸우는 전사들이다.
진정한 나를 찾으려는 자아, 반성하는 자아와 항상 대립한다.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뛰어다니고, 또 조직발전과 개인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 뛰어다닌다. 사회적 성공을 위한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이 욕망에 끌려다니며 결국 진정한 나를 마주하지 못하고 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랜덤박스 / 류휘석
내겐 매일 허들을 넘다 실패하는 광대들이 살아요
(내겐 매일 목표(자신의 목표가 아닌 회사, 가정 등 비본질 목표)을 넘다 실패하는 광대들(각종 집단에 맞추어진 나들)이 살아요.)
불필요한 기념일이 빼곡한 달력, 숨 쉴 날이 없어요
(필요한 기념일이 몇번이나 될까. 진정한 나는 숨을 쉴 수가 없다.)
나 대신 종이에 누워 숨 쉬는 사람들
(나 대신 달력종이에 누워 숨쉬는 사람들 (페르소나들), 나를 대신하여 조직에 걸맞게 가공된 페르소나들)
밤이 되면 광대는 잠을 자고 나는 일어납니다
(광대의 역할은 해가 뜨고 사람을 만나는 역할이다.밤이 되면 그 역할은 마무리되는 것이고, 진정한 나는 자기 반성을 하거나 생각을 해본다)
나는 허들을 치우고 부서진 광대들을 주워 종이 상자에 집어넣습니다
(밤에 나의 역할은 허들을 치우고 부서진 광대를 종이상자에 넣는 것이다.진정한 나의 의지와 목표와 관계없이 시간을 저당잡혀 먹고산다는 문제에 치우친 광대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종이상자에.넣는다는.것은 사회적 자아에 대한 반성을 하며 일기를 쓴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늘을 뿌리는 거대한 인공 나무, 물을 줘요 잘 자라서 더 크고 뾰족한 허들을 만들어내렴
(광대들이 키운 인공나무. 어두운 면, 회의를 거느린다.나의 사회적 자아에 대한 욕망을 키운다)
그렇지만 모든 게 나보다 커져서는 안 돼,
(그렇지만 사회적 비본질적 욕망이 진정한 나의 본질적 욕망보다 커져서는 안 돼.그러면 반성도 사라지고 나도 죽는다)
광대들은 일도 하지 않고 아침마다 이불을 걷어냅니다
(광대들은 밤의 반성의 시간에는 목표가 사라져서 일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한다.아침이 되면 전투의 광장에 가기 위해 이불을 걷어낸다)
나는 토스트처럼 튀어 올라 침실을 접어 내던져요
(광대로서의 나는 바삐 나갈 준비를 한다. 아침의 분주함을 묘사)
나를 어지럽히는 벽시계와 발목에 생긴 작은 구멍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커집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해진 시간에 나를 독촉하는 근대적 시간, 사회적 가면을 쓰라고 재촉하는 시간,하고 싶지 않은 발걸음에 상처를 입어 발목에 생긴 구멍이 점점 커집니다. 출근하기 싫어하는 진정한 나의 허무감을 묘사)
방이 비좁아서 나는 밖에 있습니다
(광대들이 실탄을 장전하는 등 부산한 방은 비좁아 진정한 나는 튕겨져 나간다)
밖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상자를 만들어야 해요
(밖의 전투가 끝나면 집에 돌아가 상자를.만들어 광대들을 잠재워야 한다)
재사용 종이는 거칠고 단단해서 반성에 알맞습니다
(밤의 반성의 시간, 일기를 쓰는 시간은 밤마다 반복해서 광대에 대한 생각이 과격해지고 부정적 강도가 높아진다)
천장에 붙어 기웃거리는 가녀리고 얇은 나의 광대들
(사회적 욕망이 크지만 천장을 뚫을 수는 없다.불쌍한 나의 광대들)
반성이 시작된 집은 무덤 냄새가 나는 요람 같아요
(자기를 성찰하는 반성이 시작된 집은 사회적 가면을 부정하고 죽인다. 그러므로 무덤냄새가 난다. 그리고 한편 진정한 나는 탄생시킨다. 그래서 요람이다)
나는 탄생부터 기워온 주머니를 뒤집습니다
(우리는 탄생부터 집단에 맞게 숙성되고 키워지고 재교육된 광대가 새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기워온 주머니를 뒤집습니다.반성합니다)
바닥은 먼지로 가득찹니다
(주머니에는 진정한 나는 없고 바닥에 쓸모없는 먼지만 가득합니다.)
도무지 채워지질 않는 상자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실패와 실종
(현대 사회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채워지지않고 광대가 다치면 치료해서 다시 전장에 내보내는 삶의 연속이다.괘도수정이 불가능한 반복만 있어서 실패와 실종만 있다)
내가 죽으면 광대들은 허들을 넘을까요
(진정한 나, 반성하는 나가 죽으면 사회적 욕망들은 목표를 이룰까요? 라깡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말하므로 결코 욕망을 성취할 수 없다고 했다.욕망이 계속 크도록 자신 뿐만 아니라 사회가 부추기므로 성취할 수 없고 갈증만 남는다)
궁금해서 죽지도 못합니다
(사회적 자아와 진정한 나의 갈등을 묘사한다. 사회적 자아는 속삭입니다.혹시 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욕망을 잘 통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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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2019 신춘문예 시 당선작]
랜섬박스 / 류휘석
내겐 매일 허들을 넘다 실패하는 광대들이 살아요
불필요한 기념일이 빼곡한 달력, 숨 쉬는 날이 없어요
나 대신 종이에 누워 숨 쉬는 사람들
밤이 되면 광대는 잠을 자고 나는 일어납니다
나는 허들을 치우고 부서진 광대들을 주워 종이 상자에 집어 넣습니다
그늘을 뿌리는 거대한 인공 나무, 물을 줘요 잘 자라서 더 크고 뾰족한 허들을 만들어내렴
그렇지만 모든 게 나보다 커져서는 안 돼
광대들은 일도 하지 않고 아침마다 이불을 걷어냅니다 나는 토스트처럼 튀어 올라 침실을 접어 내던져요 나를 어지럽히는 벽시계와 발목에 생긴 구멍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커집니다
방이 비좁아서 나는 밖에 있습니다 밖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상자를 만들어야 해요
재사용 종이는 거칠고 단단해서 반성에 알맞습니다
천장에 붙어 기웃거리는 가녀리고 얇은 나의 광대들
반성이 시작된 집은 무덤 냄새가 나는 요람 같아요
나는 탄생부터 기워온 주머니를 뒤집습니다 바닥은 먼지로 가득찹니다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상자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실패와 실종
내가 죽으면 광대들은 허들을 넘을까요
궁금해서 죽지도 못합니다
▲1994년 충남 서산 출생.
▲단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예정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시 당선작-심사평
실패·실종을 겪은 자만이 그릴 수 있는 우리시대 음화
우울한 판타지에 가까운 그의 시들은 특히 ‘허’나
‘허기’, ‘죽음’ 등에 예민한 촉수를 대고 있다. “매일
허들을 넘다 실패하는 광대들”처럼 종이상자에 갇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현대인의 일상은 부단한 실패와 실종을 겪은 자만이 그려낼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음화(陰畵)가 아닐까.
당선을 축하드리고, 그 갇혀 있음과 미끄러짐을 앞
으로도 치열하게 살아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