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하다 – 조선후기 삼군영(三軍營)의 하나인 어영청(御營廳)에서 유래
우리가 보통 ‘아무런 의지도 없이 되는대로 행동하는 모양’을 일컬을 때 ‘어영부영‘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어영부영‘은 뜻밖에도 조선후기 삼군영의 하나인 ’어영청‘에 그 어원이 있다고 하네요.
‘어영부영’은 ‘어영비영’으로부터 나온 말인데 조선말기 ‘군기가 풀린 어영청 군대는 군대도 아니라는 뜻’의 사자성어 ‘어영비영(御營非營)’이 발음하기 편하게끔 바뀐 말이라고 합니다.
왜 하필이면 삼군영 중 어영청일까 하는 의문은 있습니다. 비록 1894년 갑오개혁 때 오합지졸로 변해 폐지되는 수모를 겪지만 1624년 인조가 창설할 때만 하더라도 군기가 사뭇 삼엄하였다고 합니다.
어영청은 훈련도감, 금위영과 더불어 조선후기 한양 도성을 지킨 삼군영 중의 하나입니다. 인조가 반정을 통해 왕이 된 다음, 자신을 지지하는 서인 세력의 무력 기반을 강화하고, 국왕을 경호하며 새로운 반정을 막기 위해 창설한 군대이지요. 어영군은 ‘이괄의 난’ 때 인조를 호위하며 충남 공주의 공산성까지 갔으며, 환도한 후 왕의 친위부대로 군사의 수도 늘리고 명칭도 어영청으로 바꿉니다.
효종 때는 청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북벌군으로 재편되며 북벌의 선봉대의 역할을 맡을 정도로 정예부대가 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청나라 정벌의 의미가 사라지자 어영청의 사기는 급격하게 떨어지고, 점차 양반 자제로만 구성된 지휘부가 들어서면서 주색잡기로 소일하는 부대가 되어 버립니다.
실제로 고종 때에는 어영청을 비롯한 군졸들의 군기가 문란하고, 병기마저 너무 낡아 도저히 군대라고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지요. 여기에 1881년 일본의 도움을 받아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조직하면서 이들은 후한 대우를 받고, 구식군대는 봉급조차 받지 못하자, 이듬해인 1882년 구식군대의 군인들이 봉기하여 임오군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당시 어영청은 기강이 문란해진 탓에 많은 지탄을 받았는데 ‘군기가 풀린 어영청 군대는 군대도 아니라’는 표현이 이로부터 나왔다고 합니다. 이 또한 역사가 일러주는 ’새겨들을 이야기들‘ 중 하나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