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의 방법/ 마태복음 6:9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기도는 합심기도가 있고 개인기도가 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 그리고 국가 등의 구성원들이 같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마음을 모아 함께 하는 기도를 합심기도라고 합니다.
청주에 있는 00교회는 합심기도를 통해서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 교회가 예배당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교인들이 시험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청장년 30명 정도였습니다. 교회 건축 때문에 생긴 빚이 20억이었는데, 남은 사람들의 힘으로는 이자 감당도 어려웠습니다. 결국 회의를 통해서 교회를 매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담임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희들에게 기회를 주세요. 저희들이 기도하겠습니다.” 그때부터 학생들이 작정하고 기도했습니다. 금식, 철야, 새벽기도 등을 하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학생들을 보고 온 교우들도 힘을 얻어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외부에서 큰 금액의 헌금이 들어왔고 교회 부채를 다 해결했습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있고 하지 않으면 응답이 없습니다. 합심기도는 공동체의 성장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합니다.
개인기도는 하나님과 단독자로 대화하는 것입니다. 개인기도는 신앙생활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개인기도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많지만 그 중에 핵심적인 이유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①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신 4:7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할 때마다 가까이 해주셨습니다. 사람이 자주 만나면 친밀해지는 것처럼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과 만나고 가까워집니다.
②기도로 거룩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룩입니다. 우리가 가룩해지는 방법이 있습니다. 딤전 4:5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거하므로 거룩한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생활의 거룩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됩니다.
③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수많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들에게는 영육 간에 좋은 것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것과 땅에 기름진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 되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겔 36:37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이 말씀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나라가 망한 이후에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하여 말씀으로 기도를 촉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것과 황폐하게 된 예루살렘이 에덴동산처럼 회복 될 것과 예루살렘에 사람이 가득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회복의 비결입니다. 기도가 약속을 성취하는 비결입니다.
④기도로 영적 싸움에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혈과 육을 상대로 싸우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상대로 싸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상대는 악한 영들입니다. 마귀와 귀신들과 싸웁니다. 만약 이 영적인 싸움에서 지게 되면 마귀의 밥이 되고, 귀신의 역사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에 영적인 싸움에 승리하면 마귀의 눌림으로부터 자유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복음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악한 영들과의 싸움은 기도합니다. 막 9:29입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귀신들려 물에도 불에도 넘어지는 아이를 고치신 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해야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가 중요함을 압니다. 여러분들도 교회를 다니면서 기도에 관한 수많은 설교를 들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 않는 이유를 몇 가지만 정리하겠습니다.
①기도의 중요성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에 관심이 없습니다. 기도는 특별한 종교성을 가진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②영적인 게으름 때문입니다. 영적인 것을 사모하지도 않고 영적인 간절함도 없고 영적인 것을 위하여 대가를 지불할 생각도 없으니 기도하지 않습니다.
③우선순위가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들로 인하여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기도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입니다.
④기도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시고는 기도의 방법이 아닌 기도의 내용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님은 ‘주기도’를 통해서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 기도의 목적이 무엇인지, 기도하는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기도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등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몇 주 동안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의 방법’을 시리즈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레파토리 기도입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기도 순서를 정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순서는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범위를 확대해 나아갈 수도 있고 멀리서부터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순서로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로부터 기도의 범위를 확대해 나아가는 기도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때도 기도의 순서를 정하면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시고, 감사할 내용이 있다면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처리 받아야 할 죄가 있다면 자백하며 회개하시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하여, 건강을 위하여, 재정을 위하여, 관계를 위하여,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위하여, 안전과 보호를 위하여, 꿈과 비전을 위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위하여, 마음의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등 기도의 순서를 정하고 그 순서를 따라 기도하십시오.
자기를 위한 기도를 마치면 그 다음은 가정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가며 기도하면 좋습니다. 가족을 위한 기도 역시 자기를 위한 기도처럼 기도의 내용을 순서적으로 정하고 순서를 따라서 기도하면 됩니다.
그 다음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를 위하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거나 특별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영적인 상태를 위하여, 교회의 공통된 기도 제목을 위하여, 교회의 각 부서와 일군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나라를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우리 비전교회가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우리 교회가 나라를 위하여 하는 기도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민국이 기도하는 대한민국, 거룩한 대한민국, 가정이 회복되는 대한민국, 선교하는 대한민국, 전세대가 부흥하는 대한민국, 통일된 대한민국이 되도록(대한민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평화통일 복음통일)” 기도합니다.
제가 기도의 큰 테두리를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필요나 감동에 따라서 더 많은 내용을 삽입할 수도 있고, 변경시키거나 뺄 수도 있습니다. 기도의 초창기에는 레파토리 기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순서를 정해놓고 순서에 따라서 하십시오. 오랫동안 기도하려면 레파토리를 따라 2번도 할 수 있고 3번도 할 수 있습니다.
레파토리 기도는 깊은 기도는 아닙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드리는 깊은 기도는 아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이 사용하는 기도의 방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벽기도를 하거나 철야기도를 할 때에도 레파토리 기도를 하고 레파토리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고 있습니다.
2. 방언기도입니다.
방언은 하나님과 통하는 대신방언이 있고 사람과 통하는 대인방언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은 사람과 통하는 대인방언입니다. 120문도가 성령 받고 떠들썩하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절기를 맞아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성령 받고 방언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무식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외국어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때 사용된 방언은 대인방언으로 외국어입니다.
대신방언은 하나님과 통하는 방언입니다. 요즘 교인들이 하고 있는 방언기도가 대신방언입니다. 방언기도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방언기도는 성령의 은사 중에 하나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방언을 포함한 아홉 가지 은사를 말한 후에 그런 은사는 성령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전 12:11입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방언은 성령의 은사입니다. 은사란 선물입니다. 방언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은사를 부정하고 비판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언의 은사를 금하거나 꺼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습을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유튜버 한 사람은 유튜브에서 공개적으로 방언기도를 비판하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방언을 모두 외국어로 보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는 방언은 귀신의 역사로 취급합니다. 타종교에도 방언이 있기 때문에 방언기도는 귀신 역사랍니다. 그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귀신방언은 귀신이 역사해서 하는 방언을 말하고, 우리가 하는 방언은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하는 방언입니다. 배후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의사가 칼(메스)을 잡으면 사람을 살리는 도구이고, 강도가 같은 칼을 잡으면 사람을 해치는 도구가 됩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고전 14:2을 보겠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벙언기도를 하면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방언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기도입니다. 만약에 여기서 말하는 방언이 외국어라면 왜 알아듣는 자가 없을까요? 모두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알아듣지 않겠습니까? 왜 외국어가 하나님과만 통하는 언어입니까? 그건 사람과 통하는 언어입니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외국어가 비밀일 수 있지만 그게 어떻게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까? 제가 아주 쉬운 영어를 해보겠습니다. “Good morning everyone! believe in Jesus.” 이게 어떻게 하나님과만 통하는 언어입니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언어 아닙니까? 이게 어떻게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까?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방언기도입니다. 고전 14:14입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내가 외국어로 기도하면 나의 영만 열매를 맺습니까?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아닙니다. 방언기도를 하면 나의 영은 하나님과 통하기 때문에 열매가 있습니다. 하지만 방언기도의 내용을 내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방언은 하나님과 통하는 대신방언이며 우리가 하는 방언기도입니다.
방언기도는 대부분이 단순한 언어의 반복이기 때문에 고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인천에서 목회하시는 어떤 목사님은 방언기도를 부정했습니다. 어느날 그분의 어머니가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방언기도가 품위가 떨어졌습니다. “퉤퉤퉤!” 방언입니다. 그 어머니는 방언기도를 하는 것인지 침을 뱉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방언을 했습니다. “퉤퉤퉤! 퉤퉤퉤! 퉤퉤퉤!” 아들 목사님이 그걸 보고는 어머니를 혼냈습니다. 그 후에 그 목사님이 성령충만하여 방언이 터졌습니다. 방언이 터졌다고 표현하는 것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방언이 된다는 말입니다. 목사님이 어떤 방언을 했는지 아십니까? “퉤퉤퉤!” 방언이었습니다. 참 품위가 떨어집니다. 의정부에서 목회를 하시던 오목사님은 교인들이 기도하면 살벌하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그 교회 교인들은 “칼갈아” 방언을 받아서 통성기도를 시키면 여기저기서 “칼갈아 칼갈아 칼갈아”를 한다고 합니다. 오래 전에 제가 광교산 기도원에 갔을 때 어떤 전도사님이 강대상 바로 앞에 서서 방언기도를 하는데, 그 예배당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빵 터졌습니다. “밤바라 밤바라 푸샤! 밤바라 밤바라 푸샤! 밤바라 밤바라 푸샤!” 우리는 예배 시작할 때까지 그 전도사님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웃느라고 아무도 기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방언이 단순하고 다 똑같은 소리 같지만 하나님과 통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 알아들으십니다. 얘기가 울면 제3자가 듣기에 다 같은 소리 같지만 엄마에게는 그때그때 다르게 들리는 것입니다. 얘기는 “응애~”하고 울지만 엄마에게는 어떤 “응애~”는 “엄마! 배고파요. 젖 주세요.”로 들리고, 어떤 “응애~”는 “엄마 졸려요. 재워주세요.”로 들리고, 어떤 “응애~”는 “엄마 똥 쌌어요. 귀저기 갈아주세요.”로 들리는 것입니다.
고전 14:5입니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방언을 많이 했고 모든 성도들이 방언하기를 원했습니다. 방언이 가치 없는 기도라면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가 방언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고전 14:39입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사도 바울은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방언을 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방언기도는 내가 하는 기도이며 동시에 듣는 기도입니다. 사 28:11입니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하나님께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를 고전 14:21에서 방언기도를 말하면서 인용했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하나님은 방언기도를 할 때 우리의 영에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과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방언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방언기도를 할 때는 기도의 방향을 정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왼쪽 창문을 열면 산이 보이고 오른쪽 창문을 열면 강이 보인다고 가정합시다. 제가 산을 보려면 왼쪽 창문을 열면 됩니다. 제가 강을 보려면 오른쪽 창문을 열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특정한 일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면 기도의 방향을 정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때 기도의 방향은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방언으로 저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가정 합시다. 막연하게 저를 위한 기도보다는 저의 사역, 사역 중에서도 저의 설교 사역, 설교 사역 중에서도 복음적인 설교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기도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의 음성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방언기도를 원하시는 분들은 하나님께 구하세요.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은 성령의 은사를 주십니다. 가능하면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시는데, 주변 분들에게 기도부탁을 하여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언을 받았으면 방언기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언을 받으면 처음에는 신나게 기도합니다. 하지만 곧 회의감이 찾아옵니다. 무슨 기도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으니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방언기도를 중단하여 은사를 잃어버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도는 노동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도의 방향을 정하고 계속해서 기도하면 노동하는 사람에게 결과가 있는 것처럼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3. 드러내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자기 속에 있는 죄를 드러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조명해주셔야 내 속에 있는 죄가 보입니다. 자기가 행위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빛이 임하면 자기 속에 있는 죄들이 보입니다. 자기 속에 얼마나 많은 악하고 더러운 것이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럴 때 한 가지씩 끄집어내어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를 두리뭉실하게 자백하지 마시고 구체적으로 자백하십시오. “하나님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많은 죄 중에 구체적으로 한 가지 죄를 특정해서 그 죄를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마치 불럭을 쌓을 때 한 개씩 한 개씩 쌓듯이 그렇게 죄를 하나씩 하나씩 구체적으로 자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죄를 회개해야 하는데,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의 거룩함을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감추어진 죄를 드러내십니다. 이는 마치 구정물 통에 들어있는 물을 막대기로 휘젓는 것과 같습니다. 구정물을 그대로두면 찌꺼기들이 다 가라앉기 때문에 그 통에 있는 물이 깨끗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물을 막대기를 가지고 휘저으면 곧 속에 감추어진 온갖 더러운 것이 올라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면 우리에게 아픔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은 어려운 대인관계나 사건과 사고 등입니다. 그건 아픔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시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보여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픔을 최소화 시키며 죄를 처리 받는 방법입니다.
4. 명령기도입니다.
이 방법은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이나 사물이나 악한 영이나 환경이기 때문에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기도에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명령기도는 인간의 인격이나 능력을 의지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막 16:17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중에 첫 번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낼 때는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령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으실 때도 명령하셨습니다. 막 9:25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에게 들린 귀신을 쫓으실 때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며 명하셨습니다.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우리도 예수님처럼 명령하는데 우리의 인격이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못 걷던 사람을 치료해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명령기도를 했습니다. 행 3:6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이렇게 명령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가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저는 명령기도를 교회 개척 초기에 배웠습니다. 제가 도봉동 열린교회를 담임 하시던 이건희목사님이 인도하는 전도훈련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들은 이건희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교회 앞에 있는 큰 가로수가 교회를 막고 있었습니다. 이건희 목사님은 성경을 읽으시다가 눅 17:6 말씀을 보고 명령기도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주님이 아니라 제자들이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고 명령하면 순종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목사님은 이 말씀에 도전을 받고 그대로 해봤습니다. 목사님은 교회 앞에 있는 가로수를 향하여 명령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가로수는 사라질지어다.” 하지만 가로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구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교회 앞에 있는 가로수를 베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이 간증을 듣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약 29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풍납동에서 목회를 하다가 오금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사할 예배당은 로 비워져 있는 상태여서 이사 전에 내부공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그동안 장모님 댁에서 생활을 했는데 교회를 이전하면서 강단 뒤에 방을 하나 만들어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살림살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이건희 목사님 간증이 생각나기에 아내와 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기도를 시도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공기방울 세탁기가 들어올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탱크 냉장고가 들어올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개벽 X5 TV가 들어올지어다.” 놀랍게도 사람들이 우리 부부가 명령했던 제품들을 사 주었습니다. 저는 그 사건이 후에 적극적으로 명령기도를 시도하여 많은 병자를 고쳤고,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한쪽 무릎을 11번이나 수술하여 그쪽이 4cm나 짧아졌는데 스스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여 두 다리의 길이가 같아지기도 했습니다.
대전에 가면 한밭제일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를 개척하신 이영환목사님은 기도목회로 대교회를 이루셨습니다. 제가 이영환목사님이 진행하시는 장자선교회 세미나에 한 번 참석했습니다. 그 세미나는 “장자권을 누리자”는 주제였는데 주로 명령기도를 훈련시켰습니다. 며칠간 예수 이름을 선포하며 자신과 세상과 마귀에게 선포하고 명령하는 명령기도훈련이었습니다. 굉장히 흥미롭고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수많은 목사님들이 그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다는 간증을 하였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명령기도를 시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마 11:12입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습니다. 이 말은 좀 과격하게 표현 되었는데, 천국은 사모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누린다는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기도에 도전해보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기도가 안 되는 분들은 명령기도에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남들이 해서 됐다면 나도 해보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과 축복은 사모해야 하고 도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터 와그너 박사님은 풀러 신학대학의 교회성장학 주임교수였는데, 오랫동안 편두통으로 고생했습니다. 뚜렷한 병명이 없었습니다. 교수님은 문득 이 편두통이 귀신의 장난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는 기도를 해야 되겠다고 결심했으나 자기 부인이 교수가 무슨 그런 짓을 하냐고 비웃을까 싶어서 샤워를 하면서 물소리 때문에 부인이 못 듣도록 하고 “편두통의 귀신아 물러가라! 편두통의 원수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라고 명했습니다. 그랬더니 물이 비눗물을 씻듯이 편두통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분은 그 일을 계기로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명령기도를 할 때는 나의 기도제목이 성경적인가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를 따져봐야 합니다. 욕심만 가지고 시도하면 악한 영이 역사합니다. 명령기도는 한 가지에 집중해서 반복적으로 하십시오. 혹시 편두통으로 고생하는 분이 있다면 이번 한 주간 내내 편두통이 떠나도록 명령하십시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편두통은 사라져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편두통을 일으키는 모든 부정적인 몸의 상태는 정상이 될지어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편두통을 일으키는 귀신은 떠나갈지어다.”이런 식으로 편두통이 떠나갈 때가지 명령해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기도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몇 주에 걸쳐서 좀 더 다양한 기도 방법을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기도의 방법 중에 네 가지를 나눴습니다. 1. 레파토리 기도입니다. 2. 방언기도입니다. 3. 드러내는 기도입니다. 4. 명령기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이번 한 주간 기도에 집중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응답을 풍성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