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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번째 수심결 5장
卽佛性이 現在汝身이어늘 何假外求리요
汝若不信인댄 略擧古聖의 入道因緣하야
令汝除疑하리니 汝須諦信이어다
昔에 異見王이 問婆羅提尊者曰何者是佛이니꼬
尊者曰見性是佛이니이다
王曰師- 見性否이까
尊者曰我見佛性이니이다
王曰性在何處니이꼬
尊者曰性在作用이니이다
王曰是何作用이관대 我今不見이니꼬
尊者曰今現作用이언마는 王自不見이니이다
王曰於我에 有否이까
尊者曰王若作用인댄 無有不是어니와
王若不用인댄 體亦難見이니이다
王曰若當用時하야는 幾處出現이니이꼬
尊者曰若出現時에는 當有其八이니이다
王曰其八出現을 當爲我說하소서
尊者曰在胎曰身이요 處世曰人이요 在眼曰見이요
在耳曰聞이요 在鼻辨香이요 在舌談論이요
在手執捉이요 在足運奔하야
偏現하야는 俱該沙界하고 收攝하야는 在一微塵이니
識者는 知是佛性이요 不識者는 喚作精魂이니이다
王이 聞하고 心卽開悟하다
叉僧이 問歸宗和尙호대 何者是佛이니꼬
宗云- 我今向汝道하려하나 恐汝不信일까하노라
僧이 云和尙誠言을 焉敢不信이리이꼬
師云卽汝是니라
僧이 云如何保任이니꼬
師云一翳在眼에 空花亂墜니라하시니
其僧이 言下에 有省하니라
* 낱자 공부
卽:곧 즉, 汝:너 여, 假:거짓 가, 임시 가, 빌릴 가, 가령 가, 略:가략할 략, 꾀 략,
擧:들 거, 除:버릴 제, 나눌 제, 疑:의심할 의, 諦 살필 체, 昔:옛 석, 難:어려울 난,
幾:몇 기, 낌새 기, 거의 기, 위태할 기, 辨:분별할 변, 奔달릴 분, 胎 아이밸 태
捉 잡을 착 着 붙을 착, 奔 달릴 분, 偏치우칠 편, 俱:함께 구,
該 그 해, 넓을 해, 갖출 해, 攝 당길 섭, 喚부를 환, 微:직을 미, 塵:티끌 진,
喚 부를 환, 精:정할 정, 정신 정, 세밀할 정, 마음 정, 魂:넋 혼, 恐두려울 공,
叉깍지낄 차, 갈래 차, 귀신이름 차, 焉어찌 언, 敢감히 감, 翳가릴 예(깃털), 티끌 예, 墜 떨어질 추, 省살필 성, 깨달을 성,
* 단어 공부
·精魂 ~ ①육체(肉體)를 떠난, 죽은 사람의 혼백(魂魄).
정상(精爽). 정백(精魄). 정혼(精魂). 영혼(靈魂)
②만물(萬物)의 근원(根源)이 된다고 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기운(氣運) ③초목(草木)이나 무생물(無生物) 등(等) 갖가지 물건(物件)에 붙어 있다는
혼령(魂靈). 정기(精氣)
④생활력(生活力)이나 생명력(生命力)의 근원(根源)을 이루는
신성(神聖)하고 초자연적(超自然的)인 존재(存在)로서의
자유자재(自由自在)한 영혼(靈魂)
·이견왕(異見王) ~ 바라제 존자는 중국 선불교의 초조 달마(達磨) 대사가
아직 중국에 오기 전 인도에서 교화한 제자였고,
대화 상대인 이견왕(異見王)은 달마 대사의 조카였다.
이견왕은 남인도 향지왕(香至王)의 아들로서 달마 대사는 이견왕의 숙부였다.
이견왕은 처음에는 불교를 탄압했지만,
뒤에 바라제 존자의 감화를 받아 불교를 후원했다고 한다.
바라제 존자가 달마 대사의 조카인 이견왕을 교화한 대화 내용이 유명하다.
·其八出現 ~ 在胎曰身이요 處世曰人이요 在眼曰見이요 在耳曰聞이요
在鼻辨香이요 在舌談論이요 在手執捉이요 在足運奔하야
眼, 耳, 鼻, 舌, 身(手+足) / 胎, 世
·保任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
·漸修
* 해설
불성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그 불성은 우리 몸 가운데 있습니다.
육근을 작용할 때 그 불성이 들어서 하는 것입니다.
작용할 때 잘 보면 불성을 볼 수 있으며
업에 따라 굽어서 발하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용하지 않으면 알기가 어렵습니다.
실체는 말에 있지 않고 글에 있지도 않습니다.
단지 말과 글을 빌어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않는 것을 형상있는 세계로 그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표현을 하지 않으면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나 말 그리고 닭 등을 그리면
그림이 실물은 아니지만 서로 소통은 됩니다.
마음의 세계도 말이나 글로 표현한 것이
실물은 아니지만 표현을 못하지도 않습니다.
오래 함께 있던 사람은 다 표현하지 않아도
일부만 듣고도 상대의 마음을 알듯이
그림자만 보아도 그 실체를 앎니다.
한 티끌이 눈에 들어가니 허공에 꽃이 어지럽게 떨어진다는 말은
뭔가 한 상이 본성을 가리면 그 상을 통해서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며
마음이 우울하면 모두가 다 부정적으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마음공부를 통하여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원기 109년 11월 2일
제목: 야채 가게 할머니의 퉁명스런 말
아들이 주말이라 카레 요리를 해 준다면서 오는 길에 감자를 사 오라고 하였다. 시장에서 이것저것 사고 야채 가게에 들러 감자 가격을 물었다. 가게 할머니는 1킬로에 3,500원이라고 했다. 야채도 잘 먹지 않는 편이고, 많은 양을 사다 놓으니 싹이 나도록 먹지를 않아 버린 기억이 있어서, 조금만 사려고 1킬로에 대강 몇 개쯤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1킬로를 안 사봤냐고, 그걸 어떻게 몇 개라고 말을 하느냐고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는다.
평소에도 이 할머니는 물건을 팔 때 잔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 순간 마음이 요란해지며, 할머니에게 만만해 보이고 싶지 않은 주착심이 올라온다. 늘 파는 사람이 대략 알 거 아니냐, 많이 필요하지 않아 물어보는 거다
라며 나도 뾰족하게 대꾸했다. 할머니도 내 말에 가시가 있음을 알았는지, 대중 굵기 따라 개수가 다르니 정확하게 말을 못 한다고, 종전보다는 덜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려니 억세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마음도 살짝 올라온다.
가시를 거두고 “그냥 작은 거로만 주세요~” 라고 말하고 감잣값만 주고 그냥 올려다, 요란했던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장사하는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많이 파세요~” 라고 말을 건넸더니 할머니도 순순히 인사에 답을 한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가게에 들를 때는 심지에 아무런 요란함이 없었건마는 할머니의 한마디에 내 마음이 이렇게 작용하는 것을 보니 순간순간 유무념 공부를 챙기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오늘은 내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서 돌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
교무의 의견
오늘의 경계는 할머니의 퉁명스러운 말이네요. 감자를 사러 갔을 때 마음은 평온했는데 감자 1㎏에 몇 개나 되느냐고 묻는데 대답이 퉁명스러우니 요란함이 일어났네요.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었는데 할머니의 말이 퉁명스러우니 요란함이 일어난 거고 그 말이 귀(耳)를 통하여 들어온 성경(聲境)입니다. 외경이지요.
그리고 평소에 지지 않으려는 마음, 남에게 무시당하면 안 된다는 마음,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 등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지요. 이것이 내경입니다. 여기에서 할머니에게 만만해 보이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은 내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성품(靈)에서 영지가 비추는데 외경과 내경을 통과하여 생각을 일으킵니다. 마치 햇빛에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때 일어난 생각을 찾아보면 할머니가 말을 퉁명스럽게 하는구나 그런 생각도 되고, 나를 무시하나 그런 생각도 들며, 할머니의 말투가 그렇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만만해 보이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을 찾으셨네요. 그 마음이 나는 마음입니다. 일어나는 마음은 나의 분별성과 주착심(내경)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일어나는 마음은 각자의 내경이 다르기에 다양할 수밖에 없고 심지에서 경계 따라 일어나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심지 + 경계 = 생각이라는 진리입니다. 일어나는 생각을 잘 살펴보면 내경을 알 수도 있습니다. 또 나에게서 일어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공부입니다.
일어나는 여러 마음 중에서 어느 한 마음을 선택하여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데 선택하는 것이 연구입니다. 사리를 연구하여 하나의 마음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이때 표준이 있으면 선택에 도움이 되지요. 예를 들면 이 마음을 계속하면 낙원으로 가는지에 대조하는 것이지요. 내는 마음은 내가 내는 것이기에 나의 심신작용이 되고 여기에서 인과가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내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면 작업취사가 되겠지요. 취사의 표준은 정의입니다. 나의 행동이 바른 것이냐를 점검하는 것이지요. 마음을 발견하는 것이 수양이고, 일어나는 마음 중에 내는 마음을 찾는 것이 연구이며 내는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면 취사일 것입니다.
내가 경계를 발견하고 부드러운 말로 많이 파시라고 하니 할머니도 순순히 인사를 하여 서로 은혜롭게 되었네요. 끝에 서로 은혜롭게 되는 것이 낙원인 것 같습니다.
또 여기에서도 인과의 이치가 적용되네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인과가 적용된 것 같습니다. 일어나는 마음이 무엇이든지 내는 마음을 잘 내면 선인 선과가 되는 것 같습니다.
경계 경계마다 이렇게 삼학공부를 하면 진급을 하게 될 것이고 매사를 낙원으로 만들면 부처님이 되시겠지요.
원기 109년 10월 31일
제목 : 손가락 다섯과 주먹 하나
문화원에서 수채화 전시회 때 정성 들인 수국작품을 걸었다. 작은 작품이지만 마음에 들었다. 가까운 지인들과 경성대 갤러리에서 작품평가와 더불어 호호 하하 만남을 가지며 서방님께도 자랑했다. 서방님이 그림 앞에서 손가락 다섯과 주먹으로 포즈를 취하자, 오십만원에 입찰 되었음을 축하한다고 말하며 딸은 인정 샷을 누른다.
이렇게 수국작품은 오십만원으로 인정받아 통장에 입금되었고 이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이 축하금을 나의 가까운 분들께 알려서 함께 식사도 하며 신랑의 멋진 취사에 박수를 보내야 할까? 그냥 이 돈을 필요한 곳에 보시해야 하나? 생각지 않은 돈이 생기므로 견물생심이라고 욕심도 생긴다.
일주일 동안 그냥 통장에 넣고 다니다가 수채화 수업 날 옆자리 총무가 나의 사진첩에서 다섯 손가락의 포즈 사진을 보며 이 사진은 뭐냐? 고 물어본다. 그래서 나는 사실대로 고백했다. 총무님은 이 멋진 폼을 알려야 한다며 수채화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고 전체 회원에게 알려졌다. 모두가 환호하며 서방님 멋지다고 박수를 보내주신다. 이에 답례로 나는 회원들께 공개적 으로 말했다. 다음 주에 회원님들께 식사 대접하겠노라고.
이날을 계기로 나는 오십만원 사진을 가까운 지인들께 자랑하며 밥을 사며 즐기는 시간을 가지니 나의 통장 오십만원은 사라지고 나의 비상금까지 마이너스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즐거운 일로 남을 대접하는 추억거리를 만드니 가슴이 뿌듯한 시간이었다. 언제 내가 또 이 호사를 누릴 것인가!
또 이 작품을 자랑할 곳이 또 있다. 우리들의 솜씨 자랑을 마음껏 뽐내며 자랑할 자리를 만들어 주는 전포교당의 교무님과 현정님께 밥을 사며 신랑 자랑을 할 것이다. 나만의 에너지로 인연들과 웃을 수 있고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로운 나의 마음은 부처를 향하고 있다.
교무의 의견
그림도 그리시고 합창도 하시고 원불교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시는 현타원님, 특히 마음공부반에 참여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수채화를 그려 전시회에 출품하셨네요. 이때 뜻밖에도 작품을 인정해 주고 50만원을 주신 서방님이 계셔서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났네요. 어떤 서방님은 아내가 여기저기 쓸데없이 돌아다닌다고 트집을 잡거나 전시회를 해도 가보지도 않고 칭찬을 해 줄지도 모르는데 현타원님 서방님은 전시장에서 작품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후원을 해 주시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50만원이 생기니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났네요. 여기에서는 50만원이 경계입니다. 순경이지요. 보통 사람들은 순경이면 늘 그러는 줄 알고 간사하고 망령된 곳으로 가기 쉬운데 현타원님은 은혜를 발견하고 이 돈을 복 짓는 데 사용하고자 하셨네요. 좋은 곳에 마음을 내고 행동을 하면 선인이 심어지는 것이고 인이 심어지면 업으로 저장되어 있다가 시절 인연을 만나면 현실로 나타나게 되지요. 아마도 과거에 선업이 쌓여 있기에 50만원은 그 선업의 나타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은혜는 어느 곳에나 있는데 우리는 그 은혜를 발견하지 못하고 해와 독은 쉽게 발견하여 간직하곤 합니다. 해독의 마음은 악인을 심고 악인은 악업이 되어 있다가 악과로 나타나게 된다고 대종사님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비록 90%가 해독이고 10%의 은혜가 있다 하더라도 해독은 버려두고 10%의 은혜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견된 은혜는 금덩어리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면 은혜가 쌓이게 되고 마음속에 은혜로 가득 차면 은혜가 충만하게 되어 행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마음속에 은혜가 있으면 심신작용이 은혜롭게 되어 선인을 심고 선과를 받게 되어 선인 선과로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좋은 환경에 좋은 업을 쌓고 좋은 업이 좋은 환경이 되어 순환하게 되면 그곳이 낙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원불교는 인과보응의 이치를 믿고 은혜를 발견하여 은혜를 간직하며 은혜를 갚자고 하고 있습니다. 서로서로 은혜를 알고 보은을 할 때 모두가 행복하게 되니 여기가 용화회상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원기 109년 11월 5일
제목 : 아들의 퇴사
10월을 마지막으로 아들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동안 다니기 싫다던 아들을 그래도 1년은 다녀야 한다면서 다독였는데, 갑자기 퇴사했다는 말에 마음이 요동친다.
엄마랑 1년은 다녀본다고 했는데 갑자기 통보만 하는 거니? 하고 물으니 아들은 나랑 너무 안 맞고 몸도 힘들어서 더이상은 안 되겠어라고 한다. 난, 아들의 말에 인정보다는 속마음에는 "아이쿠, 그렇게 나약해서 어떻게 하니, 또, 참을성이 없는 듯이 느껴지고, 아들이 잘못되는 길을 걷고 있는 듯한 강한 분별심이 올라온다.
그래서 아들에게 흔쾌한 답변보다는 "그래~~, 너의 인생이니 네 맘대로 해~~, 난 모르겠다," 엄마는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서 엄마는 왜 엄마식으로만 생각하느냐고 푸념한다. 난 그 말을 들으면서 맘속으로는 내 생각대로만 하고 있구나 하는데도 아들의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나도 생각 좀 해 보겠다고 말하고 쉬라고 하면서 그 자리를 피했다.
이틀, 삼일 계속 아들을 보면 말이 예쁘게 나가지 않는다. 내가 아들이 내 맘대로 되지 않고, 내 뜻대로 살지 않으니 틀렸다고 하고 있구나! 하고 보고 있지만 그래도 나가는 말과 맘속에는 아직도 탓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아들의 발에 사마귀와 티눈이 9개나 있다. 직장 다니면서 종종 치료했는데, 자꾸 늘어나서 많이 번져있다. 예전에 치료할 때 의사 선생님이 회사를 한두 달 쉬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 들었을 때 아들이 회사 다니기 싫으니 선생님 핑계를 댄다고 생각하고 그냥 흘려보냈다. 아들의 발을 보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그 발로 하루에 3만 보 이상 걸으면서 일을 했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그 발로 9개월을 일한 것이 참 용하다는 마음이 들고 엄마가 발도 살펴주지 않고 그냥 핑계로만 치부했으니 참 서운했겠다 싶다.
병원에 가서 치료했다. 의사 선생님이 더 늘어난 부위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퇴사했다는 말에 잘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아들이 이런 발로 일을 했다는 것에 안타까움과 칭찬을 하신다. 그 모습에 선생님은 사심 없는 마음으로 보니 있는 그대로 아들의 모습만 그대로 인정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구나! 난 내 분별심과 주착심으로 아들을 평가하니 온전히 인정되지 않았구나 아들에게 미안함이 올라온다.
마음공부란 지금 여기서 경계 따라 있어진 마음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들의 퇴사를 들으면서 있어진 마음을 보기는 하였지마는 원래 없는 마음에서 비추어 보지를 못 했다. 그러니 아들의 퇴사가 눈엣가시처럼 느껴지고 자꾸만 탓하고 있었다. 그러니 마음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에게 계속 말이 예쁘게 나가지 않았다.
아들이 퇴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불편한 나의 마음을 제대로 보고 원래 없는 마음에서 비추어 알았다면 어떻게 말을 했을까? "아들~~, 그동안 회사 다니느라 수고했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일 텐데,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으리라 생각해, 네가 앞으로 회사를 다시 정하고 다닐 때 이번 일이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해, 그런데 회사를 퇴사하는 일을 미리 말하지 않고 출근 마지막 날 말을 한 거는 엄마가 조금 당황스럽단다. 한집에서 살고 그래도 우리는 부모인데 미리 말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네, 이렇게 말했다면 아들도 자신의 견해를 잘 이야기하고 미래를 다시 이야기해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아들이 미리 이야기를 안 한 이유를 추정해보니, 그동안 퇴사한다고 했을 때 엄마·아빠가 말도 못 꺼내게 하고 아들의 행동을 철부지 없는 어린아이로만 치부했으니 이번에도 이야기하면 또 그만두지 못하게 할 게 뻔하니 말하지 않았을 것 같다. 만약 내가 아들 입장이었다면 나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아들의 아픈 발을 치료한 후, 아들~~, 엄마가 네가 아프다고 할 때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그냥 어리광부린다고 치부해서 미안해, 너의 발을 보니 엄마였다면 진즉 그만두었을 것 같아~~ 참고 다니느라 수고했고 너도 인내했음을 많이 알겠어, 치료 잘 받고 잘 쉬고 네가 원하는 곳 잘 알아보렴, 네 마음 몰라줘서 미안하다. 엄마도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는데도 너의 마음보다는 엄마 마음만 너에게 강요했었네, 더 열심히 공부해 볼게, 잘 쉬어~~
아들은 엄마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이렇게 원래 없는 마음에서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나의 욕심과 내가 만든 상을 고집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 안에는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다.
부모의 마음에 걱정하는 마음을 인정하니, 내 걱정이 건강한 걱정이 아니니 아들에게 전해지지 않음도 보아진다. 그 마음을 보니 아들의 입장이 온전히 느껴지고 그대로 인정이 되어진다. 그러니 서로 하나의 마음이 되어진다.
겹겹이 싸인 나의 분별 주착심을 보고 벗겨내려면 정말 세밀하게 보고 또 보아야 하는구나! 통만법 명일심이란 말이 있다. 만법을 통하여 한마음을 밝히라는 말이다. 여기서 만법은 가지가지 일어나는 마음을 뜻하는 것 같고 한마음은 본래 마음인 심지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