뤄양(낙양 洛陽)을 보고 싶어 일정을 변경했다. 당일치기라 고속열차 시간에 맞춰 여행할 곳을 선택해야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룽먼(용문 龍門)석굴과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기다리는 용문 지구, “낙양성 십리허에”란 북망산과 삼국지에 나오는 낙양성, 중국 선종의 본산 소림사와 소림무술 공연 관람을 두고 의견이 다양했으나 룽먼석굴로 결정했다. 가이드 비용을 비롯해 고속열차와 택시비, 입장료 등 추가 비용은 공동 경비에서 지출하기로 했다.
알리페이에 지하철과 버스, 택시를 탈 수 있도록 여권을 등록하고 사용 방법을 숙지했다. 내일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해 자유여행을 할 예정이라 지하철을 갈아타고 이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시안의 지하철 노선은 중간에 빠진 호선을 포함해 1호선에서 16호선까지 있다.
7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해 3호선 장채공원(長采公園) 역으로 걸어갔다. 출근길의 시안은 우리나라와 다름없이 북적인다. 알리페이를 준비하지 않은 친구가 있어 공동으로 매표했다. 지하철을 타려면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를 사용해야 하고 까다로운 검색대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을 제외하고는 우리와 비슷하다. 한 정거장을 가서 통화문(通化門) 역에 내려 1호선으로 갈아탔다. 안내 서비스가 알기 쉽게 배치되어 있고 시안의 중심 노선답게 활기차다. 도심지에 있는 북대가(北大街) 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고 아홉 정거장을 지나 시안북점(西安北站) 역에 도착했다. 고속철도 탑승 시간에 여유가 있어 커피를 마시며 발전하는 시안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매표와 탑승 과정은 공항과 비슷할 정도로 복잡하고 보안 검색이 철저했다.
9시 30분에 출발한 고속열차는 한때 301km/h를 찍으며 뤄양을 향해 달렸다. 객실에서 산 커피를 마시며 차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일은 여행의 별미다. 중국의 고속철도망 길이와 이용자의 수는 세계 1위라고 한다. 한 시간 삼십 분 남짓 걸려 뤄양룽먼(洛陽龍門) 역에 도착했다.
봄날치고 햇살은 따갑지만 여행하기 좋은 날씨다. 역 앞에서 여덟 명이 탈 수 있는 승합 택시를 60위안에 흥정하여 룽먼석굴로 갔다.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많고 대부분이 내국인이다.
룽먼석굴 관광은 전동차를 타고 용문 입구에서 내려 서산석굴(西山石窟)을 둘러보고 용문남교(龍門南橋)를 건너 동산석굴(東山石窟), 향산사(香山寺), 백원(白園)을 관광한 후에 전동차 타고 용문북교(龍門北橋)를 거쳐 나오는 코스로 반나절 정도 걸린다.
패키지 입장료 90위안과 전동차 10위안이 포함된 입장표를 사서 전동차를 타기 위해 줄을 길게 섰다. 줄 맨 앞에서 오십 대로 보이는 여자와 여직원이 시끄럽게 다투고 있었다. 짐작하건대 함께 온 노모와 같은 전동차에 타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싸움이 난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전동차를 타고 용문 입구에 내려 기념사진을 찍고 걸었다.
룽먼석굴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허난성 뤄양의 명소로 중국 석조예술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중국 3대 석굴 중의 하나이다. 조성 시기는 북위부터 당나라를 거쳐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허(伊河)강을 중심으로 서편에는 서산석굴이 있고 동편에는 동산석굴, 향산사, 백원이 있다. 피곤한 발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면 잔잔한 이허강과 용문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서편길을 따라 걷다 보면 2,300개가 넘는 동굴과 10만 개가 넘는 조각상이 밀집되어 있는데 마치 천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거대한 전시회장 같다. 주먹 정도의 불상부터 시작해 크기와 모양, 표정과 자세 등 각양각색의 석굴과 석불이 서산암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석굴만 있고 불상이 없는 곳, 아직 채색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 불상의 일부가 훼손된 곳, 황즉불 사상의 북위 시대 불상, 당나라 불상 등 규모와 숫자가 엄청나다.
후한 명제 때 수도 뤄양에 최초의 불교사원인 백마사가 세워진 이래 불교는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며 퍼져나갔다.
룽먼석굴 중 대표적인 봉선사(奉先寺) 동은 길이와 나비가 각각 30m가 넘고 석굴 중 가장 크며 9개의 큰 석불과 작은 석불들이 조각되어 있다. 당 고종과 그의 황후인 측천무후가 자금을 대서 만든 황가 사원이기도 하다.
주불인 노사나불(盧舍那佛)을 비롯해 부처님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두 명의 천왕과 두 명의 역사로 이루어진 봉선사의 조각은 중국 석각 예술의 최고봉이자 당나라의 시대적 상징이라 불린다.
노사나불은 비로자나불이라고도 한다. 비로자나불은 산스크리트어 바이로차나(vairocana)에서 나온 말로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 모든 곳을 비춘다.”라는 의미로 일명 광명불(光明佛)이라 한다. 높이가 17.14m의 좌상으로 보는 사람을 압도하며 손은 파손 흔적만 있고 없다. 이상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부처님의 손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유물이 일본에 있고 이집트의 유물이 대영국박물관에 있는 것과 비슷하리라 추측해 본다.
노사나불은 내가 알고 있는 석굴암 본존불과 느낌이 완전히 다른 것 같다. 풍만하고 아름다운 얼굴, 넋을 빨아들이는 듯한 눈, 온화하고 너그러운 기상은 보는 사람을 떨리게 한다. 나선형 머리 모양의 거대한 불두는 오늘날 중국의 불교예술 및 동양문명의 상징이 되었고 코는 전형적인 고대 그리스 조각법을 사용했다. 동서양의 이곡동공(異曲同工)을 가지고 있는 노사나불은 동양의 아테나처럼 단정히 앉아 있다. 생각에 잠긴 듯한 신비한 미소에는 외래문화를 수용하는 당나라의 기상이 서려 있다.
여성처럼 아름다운 얼굴과 고대 부처는 당대 최고 권력자의 모습과 비슷하게 표현되었다는 학설로 인해 노사나불의 모델이 측천무후라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 석굴암 본존불의 표정은 무뚝뚝하고 근엄하며 남성적인 느낌 있어 신라 경덕왕이 모델이라는 설도 있다.
한 시간 이상 서산석굴을 오르내리다 용문남교 입구에서 오이를 나눠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백거이는 “낙양 4대 성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용문이다.”라고 했다. 석양이 드리워진 이허강에 유람선을 띄우고 어둠에 물들어가는 용문산을 바라보면 백거이가 아니더라도 시 한 수 정도는 나올 만하다. 강을 건너 반대편에서 노사나불을 바라보면 또 다른 풍경과 종교적인 감흥을 준다.
어제의 화산 트레킹과 오전의 서산석굴 관광으로 체력이 바닥나 동산석굴은 가지 않고 바로 향산사로 갔다. 향산사는 향갈 나무가 많이 자라는 향산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말년을 보낸 절로 북위 시대에 건립되었다. 가파른 계단을 보고 향산사를 포기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으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좁고 높은 계단을 숨이 차도록 올랐다.
이허강의 은빛 물결과 서산석굴이 어우러진 수묵화 속에서 술잔을 든 백거이가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불꽃처럼 순간의 삶이거늘, 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지니, 입 벌려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라고 읊조리는 것 같다.
백거이 묘가 있는 백원으로 갔다. 룽먼석굴 코스의 마지막이라 쉼터 같은 느낌이 들고 아담한 정원과 연못이 운치를 더한다. 차를 마시며 주전부리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백거이 묘로 가는 길에는 시비와 한국 백씨 전국종친회의 기념비도 있다. 한국의 백씨가 백거이의 후손인가 보다.
룽먼석굴 관광을 마치고 고속열차 시간에 맞춰 뤄양룽먼 역에 도착했다. 역내 식당에서 낙양의 대표 음식인 우육면과 중칭사오면을 먹었다. 여행자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우육면은 꿀맛이다.
오후 4시 40분에 고속열차에 올라 가이드와 여행경비를 정산했다. 그동안 먹었던 반주와 음료수, 화산 트레킹, 뤄양 관광비 등 8,770위안이 추가되었다. 가지고 있던 돈으로 계산하고 모자라는 금액은 통장으로 송금하기로 했다. 공금 통장에서 가이드 통장으로 송금하려는 순간 “이 계좌는 금융사기 위험이 있으므로 확인될 때까지 사용이 중지됩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당황하는 사이 금융기관의 전화가 두 번이나 왔지만 받지 못했다. 중국 계좌로 이체하려는 순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돈은 송금해야 하는데 돈줄이 막혔으니 막막했다. 다행히 가이드가 한국의 은행 계좌번호를 가지고 있어 다른 통장의 돈으로 송금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일부터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에 등록한 통장이 거래 중지되었으니 해결되지 않으면 공금은 사용할 수 없고 다른 통장으로 변경해야 한다. 일단 여행자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는 친구에게 자금관리를 넘기고 관련 문제는 내일 해결하기로 했다.
여행자의 하루는 한 시간처럼 흘러간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라는 비로자나불의 현몽을 기대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2025.4.12.(58)
첫댓글 낙양의 룽뭔석굴에 있는 노사나불의 모습이 연상이 되네요~간접여행 잘 했습니다
여행은 즐거운 것입니다 특히 마음맞는 찬구들과 여행은 더 좋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