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한지 읽기
가끔 마음이 어지러울 때
한지를 펼쳐 놓고 붓글씨를 씁니다.
마음에 새기고 싶은 글귀를 옮기거나
여백이 많은 그림을 그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쓰지도 않고 그리지도 않고
묵묵히 앉아 있다가
한지만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자리를 벗어날 때도 있습니다.
억지스럽게
무엇을 그리거나 쓰는 것보다
그냥 묵묵히 앉아서
흰 여백을 들여다보는 게
더 마음 편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텅 빈 여백,
그것 자체로 이미 충만한 느낌이라
쓰고 그리는 행위마저 무색해집니다.
동양적 여백이 완성되는 순간,
행하지 않고도 완성되는 신비,
그것은 오직 한지라는
독특한 세계성 안에서만
가능한 경험입니다.
요즘 들어, 우리 주변에서
한지를 경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한지가 우리에게 외면당하고
우리 삶의 영역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종이 제품을 엄청 많이 쓰고 있지만
우리 고유의 종이인 한지가 아니라
펄프 제지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외국에서는 한지의 우수성을 뒤늦게 발견하고
다양한 찬사를 보내는데 정작 우리는
그것을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가볍게
취급하고 있어요.
참 섭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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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상우의 한지 읽기
靑原 任基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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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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