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을 보듬는 일입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신비
생겨난 생명을 품어 키우는 일,
그리고 태어난 생명이 그에 어울리는 삶을 살게 하는 일은
여성성 안에 있습니다.
물론 이 여성성은 생물학적 여성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생물학적 성(性)만 놓고 볼 때에는
여성도 얼마든지 가부장적일 수 있고
남성중심적 사고를 할 수도 있습니다.
여성성의 회복은 그래서 우리 시대의 여러 숙제들 가운데서도
아주 중요한 당면 과제입니다.
생명 중심의 사고를 위해서
다시 말하면 생명이 모든 가치의 중심이라는 것의 회복입니다.
우연히 남의 책꽂이에서 잠자고 있는
고혜경의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책으로서도 좋은 일이었고, 내게도 역시 마찬가지,
그렇게 내게 온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공부했던 심리학적 개념들을 다시 불러내어
소중하게 어루만질 수 있는 계기도 되었고
요즘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설화의 해석’에 대해서도
조금 더 깊은 차원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으며
잠시 밀쳐두었던 여성성에 관한 관심 또한
내 의식의 표면 가까이로 끌어낸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읽으면서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습니다.
설화나 민담을 너무 주관적으로 읽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고
여기서 들고 있는 여러 가지 예(例)의 대부분이
객관적이거나 일반적인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글쓴이의 주관적 경험이거나,
들은 것들에 대한 주관적 이해로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는 점,
어떤 것은 훨씬 합리적인 개념이 있는데도
막연한 자신의 인식을 이야기를 해석하는 도구로 쓴 것도 보였습니다.
민담이나 설화, 또는 신화나 전설을
어떤 특정의 주제를 중심으로 해석하고자 할 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아주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의 전체적 맥락을 억지로 풀어내려고 하지 않아야 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민담을 여성성으로 해석할 때에도
이에 대한 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여성성이라는 주제로 세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절대로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남성을 대상이나 적으로 규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물론 이 책이 그러지는 않았지만,
남성의 문제를 약간 건드리기는 했지만
남성은 야만적이고 파괴적이라는 도식을 벗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곳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비교적 산뜻한 내용이었던 것은
‘여성성을 주제로 하여 민담의 해석’을 시도했다는 점,
더욱이 글쓴이가 이 분야에 대해 전공을 한 것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도
책 읽는 여러 재미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 책이
우리 시대의 가부장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소하고
생명 중심의 세계를 여는 일에
충분히 한 몫을 할 수 있다고 보아
한 번 읽어보라고 제안하면서
읽은 내용을 소개합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키작은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