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안에 광개토경 평안호태왕비가 있다고 해서 집안에서 고구려가 시작 했다고 볼 수 없다 진흥왕 순수비처럼 확장한 영토의 끝에다 세운 것이 광개토경 평안호태왕비 이다 충주에 있는 중원 고구려비 역시 고구려 의 동남방면 변경에 서 있는 것이다 광개토경이라는 말 자체가 토지의 경계를 넓게 열었다는 말이다 호태왕비 때문에 집안이 고구려의 국내성이라는 오해를 하게 되고 그 오해를 기초로 하여 12000여기의 적석묘를 고구려 것 이라고 보는데 적석묘는 이집트에도 있고 남미에도 있다 고구려만 적석묘를 한것이 아니라 태양신 숭배를 하는 일종씨들은 돌을 잘 다루었고 그들은 단순한 적석묘에서 부터 거대한 피라미드까지 만들었다 집안이 고구려 중심지가 아니고 고구려의 동쪽 끝이라고 가정하면 집안에 있는 12000여기의 적석피라미드는 당에 의해 동쪽으로 밀린 후고구려의 종족들인 고구려 와 말갈인들이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시기는 해동성국이 완전히 기틀을 잡은 후라고 볼 수 밗에 없다 집안이 고구려의 동쪽 변경이라면 그렇다면 고구려는 어디에서 시작 했을까? 영국에 있는 대영박물관에 가면 고구려 복장을 한 사카무니가 초상화가 있다 사카무니는 간다라 양식의 사카무니도 있고 어깨 벗은 남인도 자이나교의 마하비라도 한국에서는 사카무니라고 한다 그러나 오리지날은 우랄 알타이의 벨루하(부루한)산 에서 성불한 고구려 복장의 사카무니이다 벨루하 산이 불한산이고 불한산이 백두산이고 이 산에 대동여지전도에 명기 한 둘레 80리 의 천지가 있다 한반도에 있는 김일성이 악용하는 가짜 백두산의 천지는 둘레가 15키로(35리) 밗에 안된다
우랄알타이어를 쓰는 우리 아닌가? 우랄 알타이에 있는 벨루하산에는 우리의 전래 동화도 공존하고 있다 백의 관음보살이 산다고 하는 도태산도 백두산이다 관음보살 역시 새거란의 앞댕기 머리를 하고 계신다 전한서의 곽거병전에 나오는 새거란의 제천금인 역시 우랄 알타이 지역이다 오리지날 불교는 새거란(사카키타이)이다
그리스희랍의 알랙산더의 동방원정에 의해 로마양식의 간다라 불상이 전해지고 그 세력들에 의헤 새거란의 불교의 중심 보좌에 그리스로마의 왕이 앉아 있는 변태 된 불교가 하화족 불교이고 이들이 용을 숭배하므로 이들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탄불교인 것이다
우랄에 사카라는 지명이 있고 이곳이 사카무니와 연관이 있는 지역이다 이곳의 사카무니는 원형의 큰 귀걸이를 하고 물결 머리의 장발을 하고 몽골로이드의 얼굴이다 이곳이 북부여 이고 고구려는 이곳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고구려 가 집안에만 있었다면 사마르칸트에 있는 벽화에 나오는 고구려 사신도는 무엇인지 한참 고민 해야 한다 적국인 한나라를 무슨 방법으로 지나와 사마르 칸트까지 왜 왔을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고구려의 발상지는 북부여 이고 북부여는 우랄 알타이이다 이곳으로 부터 추모가 금와왕의 태자 대소에 밀려 남쪽으로 내려와 엄리대수(엄니강 =어머니강)을 건너 백제와 일본의 기원이 되는 소서노라는 과부에게 장가들어 기반을 다지게 되는데 소서노의 아버지가 부족장 이였기 때문이다 이곳의 남쪽에 페르시아 그리고 아라비아가 있었다 페르시아 남쪽에 박트리아 (대하국)가 있었다 신라가 사막화를 피해 동진 하고 뒤를 이어 고구려가 동진 하고 고구려를 이어 박트리아(수당)가 동진 한다
이들은 동진하면서 더 좋은 곳을 차지하기 위해 끝없이 전쟁을 해야 했다 이 과정의 마지막이 나당대군과 대조영의 동모산 전투 신성 전투이다 이지역은 현재의 베이징 동북방에 있다 나당 전투는 사실상 이 전투를 끝으로 하며 고구려의 유민들은 해동성국 발해를 건국하게 된다 따라서 길림성 집안에 있는 적석묘(피라미드)는 반드시 고구려 거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해동성국 발해의 국립묘지이고 그 국립묘지에는 고구려와 해동성국 발해의 장군들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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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인삼매59 원문보기 글쓴이: 최남석
첫댓글 발해가 블라디 보스톡 연해주 동북삼성에 있지 않았다는 견해를 가지신 분들의 댓글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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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좋은 글 아주 잘 보았습니다. <백두산=장백산=불함산=벨루하산>으로부터 출발하는 부여와 고구려에 대한 내용은 대략적으로 동의합니다. 발해를 햔 북방삼성지대로 한정하는 주장엔 동의할 수 없군요. 발해는 신라와 함께 남북조시대를 열었습니다. 그 상대의 영토가 중원 땅을 포함했고, 남(南)조라고 하면, 북방엔 북(北)조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북조는 발해국입니다. 발해의 영토가 현 북방삼성지대를 포함했으며, 그 서쪽 한계는 중아지방의 당과 접경을 이뤘다는 사실관계입니다. 당은 발해와 거란과의 전투로 말미암아 요동지방과 요서지방을 잃었습니다.거란이 흥성하기 전에는 발해가 요서지방에서 당과 대치합니다.
발해국 당시에 신라는 차이나 를 반분하여 그 남쪽에 있었고 발해는 그 북쪽에 있으면서 동북삼성 까지 영유하고 있었다고 보시는군요
발해가 거란에게 망하고 난 후, 왕실과 군부의 주요인물들과 일부 백성들이 동쪽으로 이동해 현 북방삼성지대에 자리를 잡고 살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거란은 서토종족이란 사실이며, 이들은 중원 동쪽지방엔 그림자도 비치지 않은 종족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숙신=읍루=말갈=여진은 분명 조선의 영토내에서 기원하며, 거란(글란)은 조선 영토 북방과 서북방에서 시원한다고 봅니다. 흉노에게 격파되고 돌궐에게 격파되는 수모를 겪으면서, 부족의 힘이 약해져, 고구려에 의지, 고구려의 일원이 되기도 한 것이 거란이며, 유연 또는 연연이란 종족은 <신강성과 중아지방>에 있었던 종족입니다. 이런 점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역사통설에서는 유연(연연)을 하북성 북방과 내몽고나 외몽골 땅에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역사조작으로, 현재의 대륙측 동북공정 프로젝트일환으로 발표된 논문에서도 "유연=연연"이란 종족은 신강성지방에서 살던 부족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연연은 황실간에 혼맥을 이루고 주변의 나라들을 압박하고 침략합니다. 유연=연연은 후에 고구려에 밀려 중아지방과 그 서쪽으로 이동하며, 그렇다면 고구려의 서쪽변경은 어디쯤일까요? 그 후대의 발해는? 이런 점을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만약, 현 낙양이 신라의 경주라면 신라의 주요부는 현 중원 지방이고 그 북쪽이 발해란 이야기가 되는데 그러면 현 산서성과 내몽고일대가 발해가 아닙니까..? 발해는 신라와 함께 남북조를 열었으니여...
유하집에 있는 통군정(統軍亭)이란 시를 다시 올립니다.
統軍亭勢壓龍灣。俯視全遼朔漠間。靑草不生皆磧地。黑雲常結是胡山。長江一帶華夷界。~~~~후략
전략~~~~~~行人萬里迷歸路。鴨水滔滔日夜東
장강(압록강)은 화이의 경계이고, 압수(압록강)은 밤낮으로 동으로 흐른다....
대륙사의 원전과 조선사의 원전에서 말하는 조선사의 강역은, 알타이산맥과 천산을 기준으로 해서, 그 동쪽으로는 넘어 올 수 없습니다. 청나라의 감숙과 섬서, 토노번, 서장, 사천, 고창, 청해등은,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서쪽에서부터, 그 서쪽 지역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명들이 지금은 모두 동쪽으로 이동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의 집안 지역까지 발해의 영역은 아니였을 것입니다. 집안에 있는 만여기에 달하는 고대의 능과 묘들은, 무덤의 형태로 보아 북방에서 내려온 민족의 것임은 의심 할 여지가 없습니다.
현재에도 이러한 능의 형태가 남아 있는 곳은, 알타이 산맥의 북방, 카자흐스탄 지역, 천산 지역, 오늘날의 청해 지역, 중국 전역, 집안등지가 대표적으로 많은 곳 입니다. 오늘날의 한반도와 동북 삼성 지역은, 조선사선의 영동 지역이며, 고려의 동계, 조선의 강원도 지역 입니다. 이는 조선사의 기록들에서 분명히 들어나고 있습니다. 강릉도의 한부가 1200리의 지역을 관장 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데, 조선의 한도는, 오늘날, 중국의 몇개 성을 합친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대다수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중간, 중간의 중요한 대목에서, 반도에 맞추어저 고친 흔적들이 수 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식민사관인 반도사관은, 이렇게 왜곡되고 조작된 기록들을 가지고 반도사관을 주장하며,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역사서에서 말하는 중요한 지역의 한 두 지역만 현지를 조사해도, 그 거짓과 위선이 그대로 들어 납니다. 비록 왜곡과 변조로 피폐해진 조선사의 역사 기록들이지만, 역사서와 그에 관계된 기록들을, 통째로 변조하지는 못했을 것 입니다. 그 살아남은 기록들이 말하고 설명하는 조선사의 서쪽 변계는, 반도에서 볼때, 만리의 저편을 말하고 있으며, 그 기록들이 말하고 설명하는 모든 것은, 서쪽의 만리 저편과 모두 일치하고 있습니다.
불함산인 백두산, 장백산은 벨루하산이 맞습니다. 음산도 이들 산의 북쪽 지역을 말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은 정확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 조선의 당시에, 여진, 청, 조선의 변경이 맞물리던 이 지역은, 지금도, 러시아 몽고, 카자흐스탄, 중국 등 4개국의 국경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점들을 살펴 보시면, 참고가 되시리라 사료 됩니다. 올리신 글 감사히 보았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