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일과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컴텨 앞에 앉아 글을 읽고 있을 때였다. 띠리리~ 휴대폰이 울린다.
" ㅇㅇㅇ 님 맞으신가요? 여기 우체국 택배인데요 택배가 왔습니다 "
" 아 네~, 책이 왔나보군요. 여기에요~ 지금 마주 보고 있네요 "
지난 8월 초순 원주 따뚜 공연장에서 故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인 <토지> 국악 뮤지컬을 엄니와 관람하고 출구를 빠져나오는데, 공연 후기를 써 채택되면 부상으로 '토지' 한 질(전집)을 준다는 안내문이 내걸려 있었다. 두 시간 반 동안 진행된 배우들의 화려한 퍼포먼스에 넋을 놓고 몰입하다가 눈에 번쩍 띄는 제안을 발견하자, 솔깃한 제안으로 집에 돌아오자마자 일기도 쓸 겸 겸사겸사 감상평을 써 우편으로 응모하였다. 잊고 지내기를 근 한 달여 지났을까? 문학공원으로부터 후기가 선정(당선)되었다며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느냐, 는 전화를 받았었다.
속마음은 엄니를 모시고 시상식장에서 직접 엄니와 상을 받으며 기쁨을 드리고 싶었지만, 주말이면 특별히 시간 내어 멀리서 자동차의 주치의를 보러 오는 손님들을 생각해 택배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곤 책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참 이럴 때는 전문 서비스업을 운영하는 일이 말고삐에 매인 몸이란 걸 뼈저리게 느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학교나 직장에서 혹은 자치단체의 각 기관장이 수여하는 시상식에 불려 나갔지만, 고객과의 사회적 약속을 지키려고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엄니를 모시고 단상에 올라 엄니에게 상장을 건네드렸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택배 아저씨로부터 책이 가득 든 묵직한 상자를 건네받고 기쁜 마음에 포장지를 부랴부랴 풀어보았다. 다시 전집이 들어있는 출판사 포장 상자를 조심스레 들어내자, 박경리 선생님의 사진이 정면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순간 울컥 눈물이 솟았다.
그 인고의 세월을 오직 정신력 하나로 버티며 25년 만에 대한민국 출판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소설로 탄생시킨 주인공이 바라보고 있었다. 살아계셨다면 손이라도 덥석 잡아드릴 텐데, 한동안 선생님 사진을 어루만지며 무언으로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보냈다.
문학을 사랑하는 한 독자로서 박경리 선생님을 사진으로나마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하고 기쁘든지. 살아계실 때 한 번 뵈었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교차한다.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문학공원도 조성되고 책 속에 들어 있는 소설 속 배경지, 티브이 드라마 촬영 세트장, 선생님이 남기신 흔적은 두루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을 직접 뵐 기회가 없어 오늘 그 감동을 맛볼 수 있다니. 비록 이젠 고인이 되어 아무 말 없이 그저 환하게 웃는 사진만 바라보아도 내겐 커다란 위안이자 행복한 순간이다. 조심스레 전집이 든 상자를 열어 선생님의 혼이 밴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놓고 그 옆에는 선생님 사진과 상장을 올려놓고 사진을 담았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치 선생님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는 기분으로 말이다.^^
문학은 인간의 심성을 아름답게 길들이는 마력이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 인간의 이성을 지배하는 뇌과학 구조를 캐낸다고 하여도 조물주가 만들어 주신 인간의 심성까지는 침범할 수 없기에 문학은 인문학의 한 축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문학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세계가 인간이 추구하는 내면세계의 유토피아적 파라다이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박경리 선생님은 일찍이 문학 세계에 발을 디뎌 생의 모든 열정과 혼을 불살랐고, 우리에게 아름다운 정신적 문화유산을 남기고 가신 분이다. 그래서 더더욱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을 사랑하게 되고 오늘 그녀와의 첫 만남이 내겐 더없이 소중하고 기억되는 순간이다.
한동안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을 꼭 껴안고 묵상에 잠겼다. '토지' 공연 후기에서 밝혔듯이 선생님과의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것은 박경리 선생님이 집필하신 <토지>를 인터넷에 널리 알려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 소설 <토지>가 우리 근현대사를 조명하는 문학작품으로 자리 잡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조국의 소중함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돌 하나, 물 한 방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기도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토지> 전집을 품에 안고 집으로 향했다. 엄니가 거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가 맞아주신다. 내가 안방으로 바로 들어가자....
" 그게 뭐야? "
" 엄마~, 빨리 이리 와봐. 나, 상 받았다. 이거 봐 "
전집 속에 들어있는 상장을 꺼내어 엄니에게 보여드리자, 엄닌 무척 기쁜 표정을 지으며 좋아하신다.
평소 같으면 맛난 과일이나 먹을 것을 사 왔나 두리번거리시던 엄니가 상을 받았다고 하니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안방으로 들어오신다.
" 뭔데 그래? 책이잖아, 누가 선물했어?
아유~ 많기도 해라. 이 사진은 누구야? "
" 엄마, 이 상은 엄마랑 원주에, 왜 그때 밤에 놀러 갔었잖아. 그때 엄마 모시고 와서 착하다고, 글구 엄마 오~래오래 살라고 준 상이래ㅎㅎㅎ"
" 음~ 그랬겠지. 이 늙은 외미를 델구 다닌다고... 저 사람이 준 게야? "
" 아니 그 사람은 이 책을 쓴 사람이야. 돌아가셨어 안 됐지, 엄마. 좋은 분인데, 작년에 돌아가셨어..."
" 그러게, 아주 인물이 올차고 훤한데... 여자 같은데, 맞아? 어디 살았는데? "
" 어~ 맞어. 여자고 서울에도 살았었고, 경상도에서도 살았었고, 강원도 원주에도 살았었고, 그랬어. "
"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지. 인사를 했어? 이 늙은이를 생각해 주니 고맙지. 선물도 주시고. "
" 어, 인사했어. 또 구경 오라던데 엄마랑. 그래야 또 선물을 주시지. ㅎㅎㅎ "
엄니는 점심상을 받고도 박경리 선생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신다. 남달리 인정이 많으시고 예의가 깍듯해 우리끼리 밥을 먹는 게 영 마음이 편치 않아서다. 엄닌 자식들이 해 드린 변변찮은 음식을 드신 후에도 꼭 하는 말씀이 있다.
' 잘 먹었다 ' 혹은 ' 맛있게 해 줘서 자~알 먹었다. 고맙다 ' 하며 인사를 빼놓지 않는 울 엄니...
아무리 사진이라 하여도 박경리 선생님 사진을 옆에 놓고 우리끼리 식사를 하니 영 미안해하는 눈치다.
" 엄마, 괜찮아. 나중에 맛난 거 사 들고 또 원주에 가서 찾아뵈면 되지."
식사를 마치고 엄니와 쎄쎄쎄를 하며 손뼉을 맞춘 뒤 일터로 향하기 전 귓속말로...
" 엄마, 집 잘 봐~. 저 책, 아주 귀한 거야~, 알쥐 "
" 그래서 잠이 와도 엄마가 잘 못 잔다고. 누가 와서 쌀자루 집어가지 앉는지 걱정도 되고 해서 "
" ㅋㅋㅋ 엄마~, 요즘은 거지도 우리보다 잘 입고 잘 먹고 살아서 그런 건 안 가져가니까 걱정하지 마 ㅎㅎㅎ "
" 어여 잘 갔다 와. 넘 늦지 말고... 엄마 기다리다 애 마르게 하지 말고... "
" 엄마~ 갔다올께~ "
빨리 가라며 손을 내젓는 엄니를 뒤로한 채 현관문을 나서며 난 다시 손을 흔들어 하이파이브를 외친다.
감사하는 하루다. 비록 뇌출혈로 엄니의 기억력이 많이 사라져 때론 어린아이 같은 이야기로 마음을 안타깝게 하지만, 아직 엄니가 내 곁에 살아계시니 행복하고, 내가 좋아하는 박경리 선생님의 혼이 깃든 <토지>를 늘 바라볼 수 있어 행복하고, 거실에선 어머니가, 하늘에선 박경리 선생님과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고 있어 행복하다.
오늘은 무지무지 행복한 날 그래서 좋은 날...^&^
" 박경리 선생님 사랑합니다~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꼭 찾아뵐게요~♡ "
엄니~ 아버지~ 그리고 박경리 선생님 사랑해요~ ♡
↗ 국악뮤지컬 '토지'의 한 장면...어둡고 서러웠던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 뮤지컬이 끝나고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나누자,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함께 일어나 인사를 나누며 서로 감사의 표시를 한다. 마지막 휘날레는 '국악한마당잔치'로 모두가 하나 되는 아주 흥겨운 시간이었다.♡
2009년 9월 10일(목) 맑음 ^^
추신:박경리 문학작품을 야러 예술 장르로 알리는 원주시와 토지문학공원 관계자 여러분과 박경리 문학작품을 사랑하는 모든 이웃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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