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주에서는 매년 10월 31일 핼러윈(Halloween) 이라 하여, 특히 여자 아이들이 마귀할멈으로 변장하여 집집마다 다니며 캔디 동냥을 한다. 이 마녀(魔女)들은 길고 검은 옷을 입고 창이 넓은 고깔모자를 쓰며 코는 크나큰 매부리코를 하고 긴 빗자루를 들고 다닌다.

이것이 일반이 알고 있는 마녀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만들어 낸 마녀상일 뿐이지 진짜 마녀와는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는, 완전히 창작해 낸 마녀이며, 어떤 면에서는 그리스도 교회가 이미 심어 놓은 마녀상을 영화 제작하는 사람들이 반영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진짜 마녀는 어떻게 생겼는가?
진짜 마녀는 앞집 옆집 아주머니나 우리 집 어머니나 이모 삼촌 등 아무런 표가 없는 자연스런 보통사람들일 뿐이다. 그 사람들이 만약 다른 점이 있다면, 그리스도교 교회는 갈지언정 진실로 크리스천이 아니라는 점뿐이다. 한국의 경우에 비유하여 이야기한다면, 무당이나 점치는 사람, 산소 자리 보는 사람, 토정비결 보는 사람, 불공드리는 사람, 제사 지내는 사람, 산신령에게 아기 낳게 해달라고 비는 사람, 부적 붙이는 사람, 손금이나 관상 보는 사람, 점치는 사람 등등 모두가 마녀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마녀라 하여 마녀는 여자로 생각하지만, 이는 여자가 많았다 뿐이지 반드시 여자만이 마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마녀의 근본에 대하여 설명을 좀 해보자. 마녀를 영어로 위치(Witch) 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가장 가까운 유사 단어는 무속인(巫俗人)이라 하면 될 것 같다.
이 단어의 어원은 켈트(Celt)어로서 남자는 위차(Wicca), 여자를 위체(Wicce)라고 불렀던 것이 영어로 옮겨지면서 음을 따 위치(Witch)로 표기된 것이다. 이것은 영어권에서의 이야기이며, 아이슬란드 등 다른 지역에서도 vita, vitki, vizkr, wischard, guiscart 따위로 부르고 있었으며, 결국 발음이나 뜻은 모두 비슷하여 같은 내용을 내포하였던 것이다.
위치들은 지식층이었고 현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영어에서 현명하다는 말을 wise 또는 wisdom 이라 하고, 재치 있는 것을 wit 라 하는데, 그 어원은 모두 켈트어 wic 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영국계 성(姓)으로 Whittaker 라는 이름이 있다. 이 성은 Witakarlege에서 왔고, 그 어원은 wizard나 witch에서 온 이름이다.
여하튼 켈트 민족은 현재 영국의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와 프랑스의 브리통(Briton)에 사는 민족으로서 앵글로색슨족인 잉글리시 민족에게 점령당하여 살고 있는 피지배민족이고, 그런 이유로 지금도 이 사람들은 영국인에 대하여 대단한 적개심을 갖고 있다.
켈트족은 한때 지금의 중서부 유럽을 장악하여 지배한 경험도 있는 민족으로 고대 때부터 남녀평등사회를 유지하였고, 특히 여자들의 특수성을 높이 평가하여 존중하고 있던 사회였다. 어떤 사람들은 모계사회였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실제로는 여자들이 남자의 상위(上位)에서 지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같은 지역에서 드루이드교(Druidism)이라 하여 대개 남자들이 드루이드(Druid)라고 부르는 제사장이 되었고, 사회의 정치·종교의 지도자가 되어 같은 사회에서 공존하고 있을 정도였다.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하는 드루이드
물론 이 사람들도 파간(Pagan), 토속종교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역시 마녀로 취급되었었다. 위치들이 사회활동에서 주로 관심을 가진 면은 여신을 섬기면서 여자들의 본분인 애를 낳는 일, 즉 산파(産婆)로서 해산하는 일을 도우며, 어린아이와 산모의 건강을 위시하여 모든 질병을 고치는 의사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한방의(韓方醫)가 했던 일을 그 곳에서는 위치들이 담당했던 것이다. 또 이들은 병을 고치기 위하여 점성학을 잘 알아야 했다. 왜냐하면 태어난 시와 장소에 따라서 체질이 정해지고, 그 체질에 따라서 특정한 병에 걸리기 쉬운 사람이 있으므로 육체의 기능에 따라 강하고 약한 점을 가려내 진단에 도움도 되고 예방도 미리 할 수 있었던 것이고, 점성학을 잘 알면 사람의 점도 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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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한국에서 사주팔자나 점치고 손금 보는 것이 사회에 깊이 뿌리를 박아 없애기 어려운 것이나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었던 것이 바로 위치의 신앙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모두 잡아죽이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못나도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그리스도교의 남권우월주의 사상을 들여오면서 의사역할을 모두 남자가 떠맡게 되었고, 여자들이 병을 고치는 것은 마땅히 마녀이기 때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런 여자들은 불태워 죽여 마땅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불과 백수십 년 전까지도 서양에서 의사가 되려면 점성학 공부부터 시작한 것이다. 여하튼 유럽은 기독교화되면서 엄청난 피의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위치가 틀림없다는 증명이 있어서 죽인 것이 아니었다. 밉거나 이상하거나 하면 모두 위치로 몰아 붙이고 죽여 버렸다. 특히 가장 심하게 마녀사냥을 하던 15세기에서 18세기 초까지는 교회가 돈 버는 방편으로 마녀를 만들었다.
애당초 1184년 교황 루시우스 3세(Lucius III.)가 마녀를 없애야 한다고 시작된 것이 1484년 12월 5일 교황 이노센트 8세(Pope Innocent VIII.)가 위치들을 더욱 샅샅이 잡아 뿌리를 뽑으라는 칙령을 내린 후부터 극에 달하였고, 특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전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마치 열병이 퍼지듯 광란적으로 퍼져 나갔다.
그는 칙령에서 가톨릭 신앙을 통하여 구원받는 일은 마다하고 교회를 이탈하여 주문을 외우고 해코지를 하며, 미신과 부적을 만들어 마귀를 부르고, 마귀와 교접(交接)하는 남녀가 많이 있다… 라는 식으로 시작해서, 위치들은 유아와 동물들에게 질병과 고통을 주어 살해하고 곡식도 못 자라게 만들 뿐 아니라 남자는 아내와, 여자는 남편과 성교를 기피함으로써 성기능을 저하시키고 잉태를 못하게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혼음(混淫)과 난음(亂淫)을 하여 신성을 모독하고 있다고 그들의 죄상을 열거하였다.
이 칙서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 덕으로 전 유럽에 인쇄되어 전달되었고, 동시에 독일의 성서학자이며 교리 전문가인 크래머(Heinrich Kramer)와 스프렝거(Jakob Sprenger)를 시켜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 라는 마녀사냥 지침서까지 만들어 전 유럽에 보급되도록 하였다.
마녀사냥 지침서
위치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85% 정도가 여자였기 때문에 위치 하면 여자를 생각하게 되는데, 대개는 어느 사람이 위치 같다라는 밀고로 잡혀 들어가게 된다. 밀고를 받을 때에는 그 사람이 마녀라는 증거는 필요치 않았다.
다만 그런 의심이 간다고 하면 충분했던 것이며, 다만 보충참고자료로 왜 그렇게 믿게 되었는지 정보를 제공받았던 것이다. 일단 잡힌 용의자는 자기가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러니까 무죄가 증명될 때까지는 유죄였던 것이다. 그런데 증명하는 방법이 기가 막힌다. 무조건 자기가 위치가 아니라고 하면, 위치라고 고백할 때까지 계속 고문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도 아니라고 부인을 할 때에는 사실인지 아닌지 증명하는 실험을 하게 된다.

마녀판정 실험:일단 왼쪽 그림과 같이 묶은다음 물속에 빠뜨린다
즉, 사지를 꽁꽁 묶어서 강이나 호수나 바다의 물에 빠뜨린다. 그리고 만약 몸이 물에 가라앉으면 위치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인데, 물에 가라앉을 때에는 숨을 쉴 수 없어 죽은 다음의 일이기 때문에 증명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고, 물에 뜨면 위치라는 것이 증명되어 불에 태워 죽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 앙심으로 밀고만 하게 되면 빠져 나올 길 없이 죽게 마련이었다.
화형
그리고 인퀴지터(Inquisitor)라고 부르는 마녀사냥꾼은 마을에 다니면서 수소문하고 협잡까지 하여 그럴싸한 사람을 잡아들이는 것이 그의 임무였고 그의 사업이었다.
일단 마녀로 입건이 되면 그 때부터 그 마녀를 잡아간 사람이나 고문한 사람들의 임금을 마녀 자신이 지불해야 되었다. 지금도 지불내역이 실린 상세한 장부기록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마녀로 확정되어 화형을 당하게 되면 그녀의 재산은 모두 몰수하여 그 자산의 3분의 1은 교황청으로 가고, 3분의 1은 지방 관청과 교회에서 갖고, 나머지 3분의 1은 마녀사냥꾼 몫이었다.
그래서 마녀사냥꾼은 그야말로 돈벌이하러 나섰던 것이고, 교회도 이렇게 하여 많은 돈을 빼앗아 모두 부자가 되었다.
1343년에는 아마 교황청에 가야 할 돈이 제대로 입금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교황 클레멘트 6세는 플로렌스(Florence)와 루카(Lucca)에 군대를 보내 자기네 몫을 완력으로 가져가기도 하였다.
이런 것이 비난이 높아지자 1630년에 신성(神聖)로마 황제가 자산차압을 못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예를 들어 반버그(Banberg)란 한 마을의 경우는 1620년대에 연평균 100명 정도 마녀를 잡아내던 것이 1630년에는 25명으로 줄고, 1631년에는 한 명도 없는 통계가 나왔다.
다시 말해서 생기는 것이 없기 때문에 마녀를 만들 이유가 상실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녀사냥이 한창일 때의 사회상은 남자보다 여자 인구가 훨씬 많았었다.
그 이유는 남자들은 십자군, 질병 등 많은 전쟁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철저한 일부일처주의의 사회에서 결혼 못한 잉여 여자들이 미혼으로 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또 대부분 이 여자들은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었다. 철저한 남존여비 사회에서 미혼 여자가 나서서 돈을 벌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자연히 그들이 주로 나서는 일은 임신한 여자들이 출산하는 일을 돕는다든가, 특히 아이들이나 여자들의 병을 관리하는 일, 점치는 일 등 대개 가정 여자들 사회를 통하여 돈을 버는 방법을 취했고, 독신으로 늙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또 남편 없는 독신 여자들을 겁탈하려는 못된 남성들이 많은 사회에서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을 조심해야 했기 때문에 이들의 생활방식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이기 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먼저 희생자가 되었다. 또 마녀사냥꾼들은 어린아이들을 무척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10∼12살 정도의 어린이들도 많이 희생을 당했기 때문이다. 1629년에는 뷔츠버그(Werzburg)에서 7살짜리 어린이들도 죽여 가장 어린 나이의 마녀가 되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불타죽어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