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울리는 노래
김소현
요즘 일요일 오후가 즐겁다.
텔레비전에서 마음을 울리는 노래들을 들을 수 있어서다. 그 중에서도 실력파 가수들의 노래 경합은 세간에 화제가 된 지 오래다. 매주 새로운 미션으로 다양한 노래들을 자신의 스타일로 편곡하여 색다른 매력을 주는 노래를 들을 수 있어 나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단순히 노래만이 아닌 춤과 볼거리를 준비하여 한껏 기량을 발휘하는 모습에 청중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최고의 노래에 최상의 반주는 필수다. 평소 가요 반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브라스, 해금, 아코디언 같은 악기들이 노래를 예술로 만든다.
비슷한 가창력이라면 선곡이 중요한 듯하다. 낯선 노래보다는 익숙한 노래가 좋고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애절하고 감정이 실린 노래가 유리하다. 그러나 누군가 한 사람은 탈락을 해야 하는 서바이벌 형식이기에 순위 발표 때는 그 긴장감이 화면 밖까지 전달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편하게 노래를 부르던 가수들이 탈락을 면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에서 단순한 공연이 아닌 경쟁구도의 치열한 생존본능이 엿보인다.
‘나는 가수다’라고 순수하게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던 가수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나도 가수다’를 강조하려는 듯 노래 외적인 장치로 대결하려는 양상으로 바뀌는 것 같다. 은근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자기세계를 간직하고 있던 중견 여가수가 로커로 변신하여 생목소리를 내지르는 장면은 연민마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할수록 청중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한 노래 속에는 한 가수의 인생이 담겨있다. 출연가수 중 남다른 삶을 살아온 한 사람은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듯 눈물을 흘리며 열창을 해서 청중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누구인들 쉽게 그 자리에 선 사람은 없겠지만 가창력과 기교만이 아닌 그의 지난했던 인생이 녹아 든 눈물의 의미를 알기에 청중은 특별한 관심과 박수를 보낸 듯하다.
혼신을 다 해 노래를 끝낸 가수가 호흡을 가다듬고 눈을 감는다. 잠시 정적 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뒤를 잇는다. 마치 내가 그 무대에서 박수를 받는 듯 희열과 열기가 전해진다.
무대는 나의 ‘로망’이고 동경의 장場이었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하던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 모 극장 무대에 섰던 경험이 있다. 당신의 딸이 노래를 곧잘 한다고 판단한 엄마가 데려갔는지, 어린 내가 떼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건 초등학생들이 청중이던 그 무대에서 동요 ‘꽃밭에서’를 불렀던 것 같다. 중간에 가사를 잊고 고개를 떨어뜨렸을 때 단아하게 머리를 올린 여자 아나운서가 다가와 포근하게 위로를 해준 기억이 있다. 참가 선물로 받은 사탕봉지를 들고 아쉬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나의 무대에의 갈망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본 서커스단의 공연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본격적인 곡예가 시작되기 전 무대에는 전속(?)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는데 피에로처럼 그들 모두 화장이 짙었다. 지금도 기억에 새로운 남자가수의 노래는 ‘아빠의 청춘’이었고 여자 가수는 ‘동백아가씨’를 청승맞게 불렀다. 어설픈 악극단 반주에 맞춰 부르던 그 노래들은 어린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슬픔과 설렘을 안겨주었고, 그 달콤하고 유혹적인 느낌은 숙명처럼 내 안에 자리하게 되었다.
나는 노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사양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다. 노래를 잘 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때문이다. 때로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 부르며 사는 노후를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의 운명이란 정해진 것인지 끊임없이 음악을 듣고 음악을 사랑하며 살아왔으나 그것이 직업이 되지는 않았다. 여러 갈래의 인생길에서 한 길을 택했을 때 가지 않은 다른 길에 미련을 두지 않을 자신이 내게 없어서였을 게다. 그동안 수없이 보고 들은 예술 공연은 억척스레 그 숙명을 떠안지 못한 약한 의지에 대한 보상인지도 모른다. 때로 여성 밴드의 공연을 볼 때면 가슴 한 편이 아릿하지만 그런 방송을 보면서 동요 없이 편안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나는, 나이 들었다.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들고 있다. 요즘 그곳에서 노래, 춤, 연기, 밴드 등 각종 오디션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 아마추어 할 것 없이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재능을 뽐내기 위해 속속 방송국으로 모여들고 있다.‘청춘합창단’을 만들기 위한 오디션도 그 중 하나다. 50세 이상 응모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늦게나마 꿈을 이루어 보겠다고 저마다 사연 하나씩 들고 나온 신청자들이 오염되지 않은 노래를 부른다. 자식을 저 세상에 먼저 보낸 엄마, 음대를 나오고도 몇 십 년 동안 살림만 한 주부, 자식들 뒷바라지에 머리가 허옇게 된 할머니….
신선하고 가식 없는 맑은 노래가 로커 심사위원도 내 마음도 울린다. 진정성 있는 노래만이 마음을 울릴 수 있다. 성장盛裝한 도시여성 같은 프로 가수들의 노래도, 순정한 시골처녀 같은 일반 참가자들의 노래도 모두 다 아름답다. 무대에 선 순간의 기쁨은 그들만의 몫일 것이다. 일요일 오후엔 순수한 감동으로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고 싶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오늘은 나도 가수가 되어본다. 아무도 없는 무대에서 단 한 사람의 청중, 나만을 위해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어본다.
김소현 / 2005년 『현대수필』로 등단 했으며 에세이집 『김소현의 회색탁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