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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우리나라 좋은 나라(2)
(시편 33:8-12)
(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9)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11)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12)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지 10개월이 넘었는데, 다시 똑같은 제목으로 설교를 합니다. 작년에 제가 한국에 갔다가 와서 했던 설교로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인 이유로 활기가 넘치는 나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돈을 벌려고 한국에 왔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는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교회를 짓고 전도하는 사람들이 되니 우리나라는 세계 선교의 모판이기에 좋은 나라, 셋째는 새벽이슬 같은 좋은 청년들이 많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 등이었습니다. 세계지도를 놓고 다 찾아보아도 우리나라처럼 복을 많이 받은 나라가 없고, 앞으로도 우리나라처럼 귀하게 쓰임 받을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기적의 나라입니다. 일제 36년과 6.25 동란으로 인한 폐허 속에서 오늘의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 못지않은 자유와 희망이 넘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인 증거들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주에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허성도 교수가 우리나라에 대해서 쓴 글을 읽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면서 주님의 은혜를 받으려 합니다.
1. 우리 민족은 문화민족입니다.
1) 금년은 조선이 망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왜 망했는가? 그 이유 네 가지는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班常)제도 등 때문에 망했다.” 그러면 우리는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다.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다.”라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됩니다.
① 그러나 좀 달리 생각해야 합니다.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고 부끄럽게 여김이 마땅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이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또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를 찾아보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② 1300년대의 역사 구도를 놓고 보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고,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만 그 나라들은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이니 간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③ 또 위로 올라가 보면, 고려가 500년,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는 900년, 백제도 700년 갔습니다. 그때에 중국은 어떠했습니까? 진시황의 나라는 겨우 15년, 유방의 한 나라는 서한과 동한을 합하여 400년, 송(宋)나라가 59년, 수(隨)나라가 37년, 당(唐)나라가 289년입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중국이 우리 고구려를 자기들의 지방정권이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속이지 못합니다. 보세요. 우리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가 아닙니까?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9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2) 이집트에는 피라밋이 있고,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중국에는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있습니다. 왕 한 사람을 위해 피라밋을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세요. 그러니 이런 것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그런 어마어마한 건축물 뒤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이 희생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실은 그런 것들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산 사람도 아니라, 죽은 김일성을 위해 9억 달러를 들여서 금수산기념 궁전이라는 것을 만들어 김일성의 시신을 안치해 놓고, “수령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신다.”라고 써 놓았습니다. 그 동안에 북한 백성들은 300만 명이 굶어죽었습니다. 그런 일은 우리 선조들에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피라밋이나 만리장성 같은 것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같은 악독한 자들이 만드는 것이고, 이런 것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①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물 제1호는 무엇입니까? 숭례문(崇禮門)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를 100일쯤 남겨놓고 화재를 만나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노무현 씨는 국보 1호를 불태워먹은 대통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그것을 복원한다고 하지만, 생각해 보면 숭례문이 정말 우리의 국보 1호의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② 이스라엘의 국보는 무엇일까요? 솔로몬이 지은 화려한 성전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몽땅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성전에 두었던 온갖 귀한 보물들도 다 가져갔습니다. 눈에 보이는 보물들은 다 빼앗긴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에는 보물이 없습니까? 천만의 말씀이지요. 오늘날 세계 제1의 보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성경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물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국보 제1호라면 당연히 성경이 되지 않겠습니까?
③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도 국보1호는 남대문 같은 건축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피라밋이나 스핑크스, 만리장성 같은 것들 옆에 놓으면 초라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국보1호는 아무래도 훈민정음, 곧 한글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 훈민정음은 참으로 세계에 가장 자랑할 만한 놀라운 발명품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글자가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세계 제1의 보물은 하나님의 말씀 책인 성경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제1의 보물은 훈민정음이요, 또한 우리 역사를 기록한 책이어야 합니다.
3) 우리 조상들은 우리에게 기록의 정신을 남겨 주었습니다.
① 피라미드나 만리장성보다 값진 것입니다. 왕이 있는 곳 바로 곁에 史官이 있었습니다. 그가 왕이 하는 말을 다 적고, 왕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는 것도 다 적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다음 달에도 적었습니다. 여하간 죽는 날 아침까지 적었습니다. 왕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經國大典에 적혀 있습니다. 이『경국대전』은 조선왕조 500년 간 이용된 기본 법전으로,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각 분야의 법규를 포괄적으로 규제한 종합적 성격을 가진 법전입니다. 조선초기부터 이루어져 오던 법전 편찬이 세조와 성종 대에 이르러 집대성하여 완료되었으며, 편찬에 참여한 관료들은 당대의 巨儒 문인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왕조실록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기록의 내용을 확인합니다. 그렇게 한 후에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는데, 이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거나, 잘못 쓰거나, 하나 더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들어 네 책이 똑같게 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 자(字)입니다.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② 그러면 “사관은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요?”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 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라는 교지(敎旨)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놓았습니다.
③ 또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라는 것이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의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이게 무려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해도 앞으로 50년 후에, 아니면 80년 후에나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것을 남겨주었습니다.
④ 또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국방, 경제, 과거, 교육 등에 관한 사항들을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150년 동안 제왕의 일기입니다. 이런 책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것입니다.
⑤ 이렇게 기록한다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첫째로, 이렇게 기록해 놓으므로 정확한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영어로 history라고 하는 역사는 곧 ‘His Story’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역사를 사랑하는 민족은 살아 있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무시하는 민족이나 개인은 죽은 민족, 죽은 사람입니다. 성경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닙니까? 이 성경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되지 않습니까? 이 기록이 중요한 둘째 이유는 이렇게 기록함으로 왕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습니다. 항상 조심하면서 살면서 바른 정치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왕은 그 누구보다도 신중해야 합니다. 그의 결정 하나하나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지 않습니까? 또한 왕은 “누군가 나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 내 말과 행동을 다 적어놓는 사람이 있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므로 절대로 죄를 짓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지켜보고 계신 것을 알지 않습니까?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님이 다 찍어놓으셨고, 다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이것을 믿으십니까? 이렇게 했기에 이 나라가 500년 이상 오래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들도 이런 의식을 가지고 살면 이 땅에서 장수합니다. 더 나아가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하셨습니다.
2) 우리 조상들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습니다.
①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을 쓸 줄 알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글을 쓸 줄 알아야만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은 불만입니다.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 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격쟁(擊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라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가 형식적인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정조의 행적을 보면, 정조는 24년 간 통치했습니다. 그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것이 5,000건입니다. 이것을 재위 연수 24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 이상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이 있었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볼 수도 있겠고, 또한 왕들은 이렇게 백성을 사랑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 왕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생긴 제도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아닙니까?
②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3심제는 없었지만,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고려 말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처음에는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는 관찰사로 가고, 마지막 재판은 한양 형조에 와서 받았는데 거의 다 왕이 직접 재판했습니다. 왕이 신문할 때 그것을 모두 옆에서 받아썼는데, 그 책을 <審理錄>이라고 합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책을 출판했습니다. 왕이 신문(訊問)한 특징이 있는데, 왕들은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를 조사했습니다. 또한 고문에 의해서 거짓으로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했습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③ 조세제도를 봅시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왔습니다. 세종이 “왜 이런 일이 나는가?” 물었더니,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종12년에 개정안을 완성시켜 조정회의에 걸었고, 백성들이 직접 찬반투표를 했습니다. 4:3 정도로 찬성이 많았습니다. 아직 반대가 많다고 해서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고치고 또 고치고 하기를 여러 차례 하여 법을 정했습니다. 이것이 조선의 제도였습니다. 농민을 사랑하는 정신이 있지 않습니까?
3) 하나님을 경외하면 과학도 발달됩니다.
① 역사를 보면 왕이나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나라가 평안하고, 과학도 발전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 때에 왜 이렇게 과학이 발달하게 되었는가? 훈민정음 창제 후 처음으로 쓴 노래가 용비어천가입니다. 그 첫 장은 “海東(해동) 六龍(육룡)이 샤 일마다 天福(천복)이시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의 여섯 용이 날으시어서, 그 행하신 일마다 모두 하늘이 내리신 복이시니”라는 뜻입니다. 또한 마지막 장이 125장인데, 거기에 말씀하기를 “聖神이 이으셔도 敬天勤民하셔야 더욱 굳으시리이다.” 해석하면 “성스러운 임금이 이으시어도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부지런히 돌보셔야 더욱 굳으실 것입니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세종대왕의 정신이었습니다. 경천근민(敬天勤民)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백성을 부지런히 돌보면 놀라운 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멘입니까? 이 정신이 깔려 있으면 만사에 복을 받습니다.
②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이것을 물리학적으로 증명한 것은 갈릴레오였는데 1632년의 일입니다. 동양에서는 지구가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다고 얘기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성리학자 주자(朱子)입니다. 그는 지구가 둥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종 때에 李純之라고 하는 학자가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日蝕)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月蝕)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고 말했습니다.
③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인데,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이순지를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그의 나이 약관 29살이었습니다. 그는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났습니다.
③ 밀률(密率)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에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세종 때의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밀률’이 원주율 π를 말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복을 받아 과학도 놀랍게 발전시켰습니다.
2. 우리는 우리나라는 더욱 좋은 나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1) 오늘의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① 미국의 한 국립공원에 예쁜 꽃사슴 무리가 있었답니다. 너무 예뻐서 관광객들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꽃사슴을 즐겁게 구경하면서 늘 늑대에게 쫓기며 잡아먹히는 슬픈 초원의 규칙도 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관광객들이 늑대를 없애라고 청원했습니다. 어쩔 수없이 공원측은 사냥꾼들을 동원해 모든 늑대를 잡아버렸습니다.
그런데 늑대가 사라진 다음 해부터 오히려 사슴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더 이상 쫓길 필요가 없던 사슴들이 늘 편하게 쉬면서 당뇨병, 동맥경화 등의 각종 성인병에 걸려 오히려 단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늑대를 풀어놨는데 사슴들이 다시 힘차게 도망 다니며 건강해져 오히려 숫자가 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후에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역시 늑대만한 게 없어!” 늑대는 사슴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유익한 동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네 삶속에도 우리를 긴장하게 하고, 아프게 하는 늑대가 많습니다. 당신의 늑대는 무엇입니까? 원망하고, 한탄하기보다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② 사람이 그림자만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등 뒤에서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없습니다. 비구름을 품고 있는 먹구름만을 탓한다면 구름 뒤의 멋진 태양도 볼 수 없습니다. 좋게 볼 수 있는 능력은 종이를 뒤집는 것같이 쉽습니다. 단지 뒤집으려는 마음먹기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불쾌지수 80%입니까? 아닙니다. 상쾌지수 20%라고 말해보세요. 왠지 기분이 윤택해지지 않습니까?
③ 우리나라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에는 대한민국 안에 붉은 사상을 가진 자들이 우글우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기에 겁을 내지 않습니다. 악인은 속히 없어질 것입니다. 또한 악인으로 인해 의인들이 깨어서 기도하게 되고, 거룩하게 살게 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도모가 굳건히 서게 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여호와의 도모는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열방의 뜻은 폐해질 것이고,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그 신비를 깨달으려고 했던 사람들은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찾아왔던 동방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모는 우주 순환의 이치 속에 다 들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주가 운행되는 것을 보는 속에서, 대자연 속에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에 심취하여 거룩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3)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지어다.”라고 하십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백성이 이제 예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삼고 예수님을 경외하며,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게 되면 얼마나 놀라운 복을 받겠습니까?
요즘 한국에서는 국무총리실에서 누구를 내사(內査)했다고 해서 야단입니다. 내사하는 것이 그렇게도 두렵습니까? 사람이 떳떳하게 살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남이 모르게 죄를 짓고 사니까 이렇게 아우성을 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눅 12:5)라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가 주님과 동행하기를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 날에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다가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천국의 영생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기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새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0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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