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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傷處(상처)에 새 살이 돋아 나게 하신다는 것을 아는가?(렘 30:12~1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창상은 중하도다. 네 송사를 변호할 자가 없고, 네 ✔상처를 싸맬 약이 없도다.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허물이 크고, 네 죄가 수다함을 인하여, 내가 대적의 상하게하는 그 것으로, 너를 상하게 하며, 잔학한 자의 징계하는 그 것으로, 너를 징계함이어늘, 어찌하여 네 ✔상처를 인하여 부르짖느뇨? 네 고통이 낫지 못하리라. 네 죄악의 큼과, 죄의 수다함을 인하여,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였느니라. 그러나 무릇 너를 먹는 자는 먹히며, 무릇 너를 치는 자는 다 포로가 되며, 너를 탈취하는 자는 탈취를 당하며, 무릇 너를 약탈하는 자는 내가 그로 약탈을 당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한즉,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 미국의 여성 소설가 마가렛 미첼이 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wind)라는 장편 소설이 있다. 마가렛 미첼은, 이 소설로 1937년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영화로도 제작이 되어서 상영이 되었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오스카상 여덟개 부문을 수상한 걸작이다.
여자 주인공인 "스칼렛"은, 아주 오만하고, 매혹적인 미모 때문에, 여러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스칼렛은 사촌 동생인, 멜라니의 약혼자인 애슐리를 사랑했다. 그러나 거절을 당했다. 그러자 홧김에, 찰스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북 전쟁으로 인해서, 찰스는 전사를 하고야 말았다. 미망인이 된 스칼렛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 스칼렛의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는 정신착란으로 고생했다. 세금도 내지 못하자, 케네디라는 돈 많은 노총각을 유혹하여, 그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스칼렛이 흑인들에게 성추행을 당하게 되었다. 이를 보복하기 위해서, 흑인 거주지를 공격했던 프랭크는, 그만 흑인들에게 살해를 당하고 말았다.
✔ 다시 혼자가 된 스칼렛은, 오랫동안 자신을 사랑한, 레트 버틀러와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애슐리를 잊지 못했으나, 레트 버틀리와 결혼을 했다. 두 사람 사이에, 딸 보니가 태어 났다. 그러나 보니는, 5살 때에 말에서 떨어져 사망을 했다.
멜라니가 유산을 하고 사망을 하자, 애슐리에게 다가 갔다. 그러나 거절을 당하게 되었다. 결국 스칼렛은 레트에게 다시 다갔다. 그러나 레트는 이미 결혼을 정리하고, 떠날 것을 결심한 후였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애슐리가 아니라 레트였음을 깨닫고, 레트에게 애원을 했으나, 레트는 떠나가 버리고 말다.
✔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 레트가 떠나 버린, 허공과 같은 곳을 바라 본다. 스칼렛에게는 모두다,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 자신의 오만과, 매혹적인 미모 때문이었을까? 욕심때문이었을까? 상대적으로 그녀가 받았던, 괴로움과 상처는 너무나도 컸다.
그러나 모두다,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 누구도, 스칼렛의 상처를 싸매어 주지를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독백(獨白)을 했다. 그리고 스스로 위안을 얻었다.
✔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 사실은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다(Tomorrow is another day). 이 말을 의역해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라고 표현한 것이다.
나의 모든 것들이,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한 내일이 있고, 그리고 내일은, 또한 태양이 뜨는 것이다.
✔ 우리네 인생사는 상처를 안고, 상처를 경험하고, 상처를 안고서 살아 간다. 몸에도 상처가 있고, 마음에도 상처도 있고, 우리 영혼에도, 영적인 상처가 있다.
상처는 고칠 수 있는 상처와, 고칠 수 없는 상처가 있다. 본문 말씀 30장 12에 보면,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크도다”라고 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으로 인해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그들이 겪었던,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말한다.
물론 상처의 원인은, 그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 우리가 배운대로, 하나님의 허용적 작정(Permissive Decree, 許容的 作定)이었다.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에, 나는 네 원수가 당할 고난을, 네가 받게 하며 잔인한 징계를 내렸도다”(렘 30:13~14).
✔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동안,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을 뽑히고, 아들들은 살육을 당했다. 가족과 동족간의, 잔인한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 성전 제사를 그리워 했고, 그발강 수로 공사를 하면서, 비파를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 놓고, 목을 놓아 울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상처는, 하나님의 공의의 징계였다. 그래서 네 상처는, 고칠 수 없는 상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렘15:18)
고칠 수 없는 상처는, 심히 부패한 죄악의 비참한 상태를 말한다. 욥이 겪었던 상처와 같이, 사랑하는 가족과, 모든 사람들도 떠나가 버렸다.
사랑하는 여인이 사랑이 식어져서, 더 이상 기억을 하지 않고, 찾아 오지 않는 것처럼, 국운이 다 기울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누가 돌보며, 누가 도와 주겠는가?
일시적으로 애굽이 도와주기는 했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 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사 30:2~3)
✔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아 주지(care for)는 못했다. 이스라엘의 상처를 치료하지를 못했고, 상처를 치료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놀라운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 온다. 스칼렛이 음미했던 말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 성도들에게 내일에 뜨는 태양은, 지구의 어둠을 비추는 태양이 아니다. 의(義)로운 태양이다.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상처를 치료해 주신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 할렐루야! 의로운 태양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 주신다. 몸의 상처와, 마음의 상처와, 우리 영혼의 상처와, 우리의 아픔을,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신다.
우리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싸매어 주신다. 가물가물 거리는, 꺼져가는 심지도, 북돋아 주셔서, 다시금 밝게 비추도록 하신다.
✔ 사랑의 하나님은, 백성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신다. 상처를 치료하시고, 새살이 돋아 나도록 하신다.
새살이란 무엇인가? 새살은 새싹이다. 새 생명이다. 부러진 고목나무의 그루터기에서, 다시 새싹이 돋아나는 것이다.
우기 철에 솟아나는 고사리를 보면, 갓난 아이가 주먹을 불끈 쥔 모습으로 힘차게 솟아 난다. 그래서 어른들은 갓난아이 손을 가리켜서, “아이고, 고사리 같은 손 좀 봐!”라고 한다.
✔ 40년 묵은 부리를, 바윗돌에 짓이겨서, 새 부리에 새살이 돋아나면, 또 다시 40년의 세월을 창공을 날아 다니는 독수리처럼, 새 살이 돋아나게 하신다.
코로나 19의 전염병으로 인해서, 고생을 하신 분들이 더러 있으나, 상처를 치료하신 후에, 다시금 새로운 세포가 살아 나게 하는 것이다.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렘 30:19).
✔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온다. 즐거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번성하는 축복을 주신다. 존귀하게 해주신다. 결코 비천해 지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의 상처를,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면, 상처에서 새 살이 돋아 난다. 그렇다면 새 살이란 무엇인가?
1. 찬송을 하도록 하신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시 137:1~4).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슬퍼 울었다. 너무나 슬퍼서, 어찌 주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
그러나 주의 은혜로, 고국 땅으로 귀국을 할 때에는,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혀에 찬양이 찼으며, 그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마치 꿈꾸는자 같았던 것이다.
2. 번성케 하신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번성의 언약을 지키셔서, 아브라함의 후손과,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신다.
3. 존귀하게 하신다
존중을 받는 민족과, 머리가 되는 민족이 되게 하시리니, 영화롭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4. 회중 앞에 굳게 서게 하신다
견고케 하신다는 말씀이다. 말씀을 듣고 무리 앞에서, 견고케 세우신다는 말씀이다.
✔ 우리는 지금,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다. 말 못할 상처로 인해서, 가슴 아파 할 수도 있다. 모든 상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모든 상처는 바람과 함께 사라 질 수도 있다. 밖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양파 속에 감추어진 노란 싹처럼, 그런 가슴앓이가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우리의 내일과, 우리의 미래에는, 의로운 태양이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의 종국(終局)에는,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우리의 영원한 본향(本鄕)이 있는 있다. 우리의 상처를, 주께서 치료하시므로 새 살이 돋게 하신다.
🔥 역지사지
✔ 인조 임금 때에, 온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서, 농작물이 모두다 타들어 가고 있었고, 민심은 흉흉해 가고 있었다.
✔ 인조 대왕은 베옷을 입고, 신하들과 함께 남한 산성에 올라가서 기우제를 올렸다.기우제에 하늘이 감동을 했는지,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 오더니, 굵은 빗방울의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 했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던 비인가? 더욱이 임금님이 친히 베옷을 입고, 기우제를 드린 후에, 오랫만에 내리는 비가 아닌가?
만조백관들과 백성들은, 얼싸안고 비를 맞으며 춤을 추며 기뻐했다. 인조대왕도 기뻐서, 같이 비를 맞으며 춤을 추며 기뻐했다.
✔ 바로 그 때에, 임금의 눈에 아주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자가 보였다. 한 선비가 갑자기 비가 내리자, 황급히 갓 끝을 붙잡고, 비를 피해서 처마밑으로 후다닥 피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비를 맞으면서, 춤을 추어도 모자랄 판에, 그 비를 맞지 않겠다고, 비를 피해서, 처마 밑으로 피하다니, 저런 고얀놈이 있단 말인가?
✔ 화가 난 인조 임금의 불호령이 내렸다. "저놈을 당장 잡아서 끌어 내려라!". 선비는 졸지에, 비를 피한 죄로 잡혀 왔다.
"네 이놈. 지금 오는 이 비가, 무슨 비 인줄을 아느냐? 3년동안 내리 가물어서, 짐이 신하들과 함께 베옷을 입고, 이곳에 올라와서, 하늘에 죄를 청하고, 지성을 드리니 하늘이 감복하시어 비를 내리셨다.
만조백관들과 백성들은 너무나도 기뻐서, 이렇게 비를 맞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데, 너는그 비를 피해서 처마에 피하다니, 비를 맞는게 그렇게 싫은거냐?
✔ 여봐라! 저놈을 당장 형틀에 묶고, 주리를 틀도록ㅊ하여라!. 그 때에 잡혀온 선비가 외쳤다. 전하! 소인의 말을, 한 번만 들어 주시옵소서!.
✔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느냐? 그래 무슨 말이냐? 전하! 지금 오고있는 이 비가, 얼마나 귀한 비 입니까? 내리 3년동안 내리지 않던 비가, 임금님께서 베옷을 입고 기우제를 드리니, 하늘이 감복하시어 비를 주셨습니다.
✔ 빨리 한 방울의 비라도, 메마른 땅을 적셔야지, 이토록 소중한 비를, 저같은 비천한 몸이 맞을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처마밑으로 피한 것이옵니다.
인조 임금이 그 말을 들으니, 자기의 생각도 틀렸고, 비를 맞으며 춤을 춘 신하와 백성들 보다, 비를 피한 선비가 더 충성스런 백성이 아니던가?
어리석은 사람이 현명해 지기도 하고, 악한 사람이 착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 의외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자신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하는 분들이 많다.
▪정치인들은 이념의 잣대로.
▪종교인들은 신앙의 잣대로.
▪지식인들은 학문의 잣대로.
▪상식의 잣대로.
▪경험의 잣대로.
▪지역의 잣대로.
▪모두 한 가지씩 잣대를 가지고, 주관적인 판단을 내린다.
섬에 사는 사람과, 도시의 빌딩에 사는 사람과, 첩첩산중에 사는 사람이, "해는 어디서 떠서, 어디로 지는가?"의 논쟁이 벌어젔다.
✔ 섬에 사는 사람은, 해는 앞 바다에서 떠서, 뒷 바다로 진다고 하고, 도시의 빌딩에 사는 사람은, 해는 앞 빌딩에서 떠서,
뒷 빌딩으로 진다고 하고, 첩첩산중에 사는 사람은, 해는 앞 산에서 떠서, 뒷 산으로 진다고 했다.
각자가 자신의 경험만이 옳다고, 서로가 주장을 하고 있으니, 소리만 높아 지고, 결론이 내려지지를 않는 것이다.
우리의 주관적인 생각과, 경험과, 지식 등은 이렇게 오류가 많다. 내 입술이라고 상대방을 내 잦대로 판단하고, 배우자를, 자녀들을, 또는 주변의 사람들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았는는가?
✔ 내가 가진 생각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가진 지식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가진 신앙이, 전부가 아니다.
그러므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런 다음에 말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이다.
🔥 중상모략
✔ 퀴즈를 내겠다. 다음의 나는 누구일까?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을 갖고 있다. 나는 죽이지 않고도, 승리를 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파괴한다. 나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파괴했다”.
✔ 여기서 나는 누구일까? 정답은 "중상모략"이다. 이 글은 수년 전에 미국 애틀란타저널에, 모건 블레이크가 쓴 기사였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민 중상모략의 파괴력은 너무나도 큽니다.
✔ 법무부에 따르면, 2000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기소된, 무고사건의 비율은 일본의 1,483배이다. 인구비를 고려하면, 일본의 4,151배에 이른다.
✔ 위증도 마찬가지이다. 기소된 위증 피의자는, 일본의 240배이다. 인구비를 고려하면, 671배에 달한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다(요 8:44). 거짓말, 위증, 무고, 중상모략은, 다 마귀의 유혹에 속은 것이다. 거짓말과 중상모략으로, 타인을 해치는 것은 마귀의 생각이다.
✔ 컴퓨터 용어 중에, "GIGO"라는 단어가 있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 GIGO).
✔ 그런데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좋은 것이 들어가면 좋은 것이 나온다”(Good In, Good Out!).
우리 마음에 하나님 말씀을 가득 채우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좋은 생각으로, 마귀의 쓰레기의 생각을 몰아내고 이길 것이다.
🔥 문둥이 아들
✔ 한 노인이 문둥이 마을에 찾아와서, 예수님을 믿고 살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막내아들이 어릴 때에, 문둥병에 걸리자, 강물에 던져 죽이려고 했다.
✔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나만 죽고 아버지는 잘 사십시오"라고 말하면서 울었다. 그래서 죽이지 못하고, 문둥이 마을에 보냈다.
40년이 지난 후에, 남은 자녀 둘이 다 독립을 했다. 아내가 죽자, 자녀들의 집에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죽으려 하니, 40년 전에 버린, 문둥이 아들이 생각나서 찾아 갔다.
✔ 그랬더니 문둥이 아들이, 반갑게 맞아 주면서, 며느리와 손자를 인사시켰다. 예수 님을 믿고, 아버지를 위해서 40년 동안 기도를 했다고 했다.
이어서 문둥이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 우리가 판안하게 잘 모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로 했다고 고백을 했다.
✔ 문둥이 아들은, 예수님을 믿은 후로 지금까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도록 기도를 했다고 했다.
🔥 사유화와 나르시시즘
✔ 잘 나가던 초인류 회사가, 별안간 흔들리고 부도가 나서 파산을 하고, 무너지는 이면에는, 오너의 "회사 사유화"가 있다.
✔ 종종 불거지는 대형 교회의 세습과, 권력 분쟁과, 성범죄와, 공금횡령 등은, "교회 사유화"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권력과 회사와 교회는, 본래 개인의 것이 아니다. 개인의 것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것으로 삼는 것은, 사유화 를 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사유화의 결말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큰 고통을 당한다.
그 바탕에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조종하려는, "나르시스"(Narcissus)적 자아가 있다.
✔ 나르시스는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잘생긴 목동이 이름이다. 아무도 사랑할 줄을 모르던 그는, 어느 날 호수에 비친, 생전 처음 보는 아름다운 얼굴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 그것이 자신의 얼굴인 줄을 모른 그는, 결국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숨을 거두고 만다. 이러한 자기 사랑을 나르시시즘이라고 한다.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맡겨진 것임을 깨달을 때에, 자기 안에 깃든 나르시시즘을 극복하고, 사유화의 덫을 피할 수 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대상 2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