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여름철 안부로 더위를 어떻게 식혔는지 여쭙는다. 우리 집은 별다른 휴가 없이 지남이 남다르다. 시골이 고향이라 틈 내어 한 번 다녀온 정도였다. 세월 따라 양친이 세상을 뜨니 허전함은 떨칠 수 없다. 마침 어머님 기일이 여름철이라 형제와 조카들이 자연스럽게 한 자리 만날 수 다행이다. 여름밤 별빛 쏟아지는 평상에 성씨 다른 사위나 외손까지 둘러앉을 수 있다.
우리 부부에겐 방학이면 기다리지는 자리가 하나 더 있다. 총각 때부터였으니 결혼 당시 집사람은 모임이 있는 줄도 몰랐다. 대학동기 여덟 명이 졸업해 흩어지면서 의기투합했다. 우리들은 청년교사가 되어 모두 교단에 섰는데 여름과 겨울 방학이면 얼굴을 한 번 보기로 했다. 처음엔 자기 집에서 한 차례씩 어른께 인사를 드리는 모임을 가졌다. 이후 각자 근무지나 명승지에서 만났다.
우리들은 결혼해 식솔을 불려가면서 계속 만났다. 서로는 고향이 다르고 나이 차가 두세 살 있어도 스스럼없이 만났다. 여름엔 계곡이나 바닷가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즐겁게 했고 겨울엔 놀이동산이나 역사고적을 둘러보기도 했다. 지리산 산골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했던 아련한 추억이 있다. 모닥불을 피우고 놀다 남은 숯불에다 은박지로 싼 고구마와 옥수수를 구워먹었다.
나와 같이 나이 쉰이 넘은 친구가 한 명 더 있고 아래로 두세 살 차이가 난다. 섬마을 벽지근무 마쳐 놓고 승진을 제일 먼저 할 듯 보였던 한 친구가 있었다. 봉사정신과 리더십이 남달라 스카우트 지도자 강습이면 강사로도 활약했다. 이 친구가 대학원을 다니던 어느 날 문득 교단생활에 회의가 왔나보았다. 사십대 중반에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자영업으로 인생의 이모작을 살고 있다.
첫 임용을 대구로 받아간 친구는 중간에 사립학교로 옮겨 근무하고 있다. 나와 같이 야간과정 대학을 마친 친구는 나처럼 중등으로 전직을 했더랬다. 그런데 이 친구는 중등근무가 생리에 맞지 않아 다시 초등으로 돌아갔다. 아기자기한 초등보다 중등은 밋밋하고 삭막했던 모양이다. 친구한테는 보충수업이다 자율학습이다 하면서 교사의 시간을 옥조이는 근무형태도 마음 들 리 없었다.
금년 봄 울산과 창원에 근무하는 두 친구가 교감으로 승진했다. 둘 다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열심히 살아온 친구다. 잠재된 역량을 발휘할 친구의 교육활동이 기대된다. 고향을 지키면서 순박하게 살아온 함양 친구도 올여름 교감자격 연수를 받아두었다. 뚜벅뚜벅 성실하게 살아온 교단의 모범이 되는 친구들이다. 여덟 명 친구 모두는 한 집안 가장으로써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우리들은 지난 겨울방학 때 가지산 너머 운문사 가까운 산장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심산유곡 염소를 방목하는 농원이었다. 바깥 공기는 몹시 차가워도 방안은 지글지글 끓었다. 이튿날 운문사를 둘러 언양 자수정동굴에서 헤어졌다. 그때 여름엔 통영 바닷가에서 만나자고했다. 그제 모임을 주선하는 친구로부터 전자우편이 오고 전화가 왔다. 거제대교 가까운 펜션서 보자고 했다.
나는 운전을 못해 이런 모임이면 곁에 있는 친구의 신세를 입는다. 창원에 사는 친구가 운전하는 차로 두 집 부부가 함께 다닌 지 오래다. 말복이 지난 광복절이었다. 올여름은 장마가 길어 서늘하게 보낸다싶었는데 막바지 늦더위가 왔다. 전국 곳곳 폭염주의보가 내리고 우리 지역 더위도 만만찮았다. 마침 피서지 한번 다녀오지 못한 우리에게 바닷가 걸음이 더위를 식히는 길이었다.
풍광이 아름다운 바다정원에 여장을 풀었다. 각처에서 온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리 밑 자연산 횟집에서 감성돔과 도다리회로 잔을 주고받았다. 숙소 뜰로 옮겨 숯불에 전어를 구워 밤 이슥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튿날 아침은 서호시장에서 복국으로 속을 풀고 활어와 건어물 가게를 둘러보았다. 미륵산 케이블카는 너무 붐벼 타지 못하고 겨울은 팔공산자락에서 보자면서 헤어졌다. 09.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