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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호의 모든것
차호(茶壺)의 등장은 차(茶)의 제다방법(製茶方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명(明)나라 때에 잎차가 발달되면서 잎차를 넣고 물을 부어 우려낼 차호가 필요했으며, 차호를 이용한 행다법(行茶法)이 새로이 등장하게 되었다. 중국인들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차호는 자사호(紫沙壺)로 오룡차(烏龍茶)를 비롯한 발효차(醱酵茶)를 우려낼 때 쓰는 차호로서는 최적(最適)이다. 자사호는 청차(靑茶)와 보이차(普 茶)를 즐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수장가(收藏家)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다기(茶器)로 그 조형(造形)이 특이하고, 예스럽고, 우아하며, 차의 진미를 더해주기 때문에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다인들에게도 사랑받는 차호가 되고 있다.
중국의 강소성(江蘇省) 의흥(宜興)에서 생산되는 자사호는 북송(北宋) 중기(中期) 때 시작되어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명(明)·청대(淸代)에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하여 다기(茶器)의 개념에서 어느 정도 분리되어 독립적인 예술의 경계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자사호(紫砂壺)는 원료가 일반 자기와 다른 의흥의 오색토(五色土)를 원료로 하는데 가소성(可塑性)이 강하고, 인체에 유익한 미량원소(微量元素)들이 포함되어 있다.
다관(茶罐)에 많은 미세한 기공(氣孔)이 있어 공기를 잘 통과시키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형과 함께 투기성(透氣性)과 흡수성(吸收性)이 좋아 다른 재질로 만든 다관보다 차의 산화속도(酸化速度)가 현저히 느리고, 오랜 시간 동안 매변( 變)이 일어나지 않는다. 자사호(紫砂壺)는 유약(釉藥)을 바르지 않았으나 오랜 시간동안 쓰면 차유(茶油 : 차 기름)가 다관의 기공에 스며들면서 오래된 옥처럼 은은하고 아름다운 윤택이 생기고, 광이 나며, 쓰면 쓸수록 더욱 더 고아한 광택을 발하는 특징이 있다.
특히 다관에 차의 향이 잘 배어들어 다른 재질(材質)로 만든 다관보다 차의 향을 잘 살려내는 기능은 차를 우릴 때 숙탕(熟湯) 맛이 나지 않고, 차의 색·향·미(色香味)를 잘 발휘하고 보존시키는 장점(長點)이 있어 예부터 차인(茶人)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모든 다인(茶人)들이 자사호를 우선적으로 선호(選好)하는 것도 자사호가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우수한 효능 때문이다.
1. 자사호(紫砂壺)의 이해(理解) 자사호(紫砂壺)는 중국다예(中國茶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강소성(江蘇省) 의흥(宜興)의 자사(紫砂)로 만들어진 차호(茶壺)로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물의 온도가 높아야 좋은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는 발효차 계통의 청차(靑茶)나 보이차(普 茶)를 우리는 데는 자사호보다 좋은 것이 없다. 일반 도기(陶器)에 우려내어 마실 때와 자사호를 이용하여 우려냈을 때의 차이는 극(極)과 극(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발효차는 자사호에 우려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자사호는 넓은 의미로는 자사(紫砂)로 만든 차(茶)를 우리는 그릇을 가리키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자사호는 중국 강소성 의흥에서 나는 독특한 광물질인 자사를 재료로 삼아야 하고, 자사공예의 제작규범을 따라야 하며, 의흥에서 만들어진 차호여야 한다. 대만이나 중국의 광주(廣州) 일대에서 생산되는 붉은 빛의 차호 등은 엄밀하게 자사호라고 볼 수 없으며, 대만의 자사차호는 의흥의 자사차호와 다른 독자적인 도예(陶藝)의 한 갈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광주의 자사차호는 의흥의 자사호가 상대적으로 고가인 점을 감안하여 품질도 떨어지고 질이 낮은 도토(陶土)를 쓰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구분이 쉽지 않은 점을 이용하여 가짜 의흥 자사호로 행세하고, 그 뒤 상해(上海)와 천진(天津) 일대에서도 많이 생산되어 가짜 자사호를 더 많이 만나므로 구입시에는 주의를 요한다.
의흥 자사호는 그 이름과 달리 자색(紫色)의 차호만이 아니다. 같은 성질을 가진 자사 원료일지라도 그것으로 만들어낸 차호의 색상은 니료(泥料)와 소성(燒成) 온도에 따라 붉은색, 자주색, 검은색, 녹색, 배껍질 색깔 등의 여러 가지 차호가 나오는데 이것들도 모두 자사호라고 부른다. 즉 자사호는 겉으로 드러나는 차호의 빛깔을 가리키는 말이기 이전에 자사라는 특정한 재료로 인해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볼 수 있다.
질이 좋은 자사호는 재료의 채취과정과 제련과정이 복잡하고, 산출량도 적을뿐더러 최근에는 자사원석 채취를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어 원료 자체가 희소가치(稀少價値)를 지니고 있다. 진품 자사호는 제작기법이 섬세할 뿐 아니라 원칙적으로 수공작업에 의존해야 하며, 고온으로 굽는 과정에서 수축(收縮)을 견디지 못하고 파손되는 것도 적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가품이다.
그러므로 겉모양과 빛깔만 자사호를 닮은 가짜 자사호와 진품 자사호 사이의 가격 차이는 결코 만만치 않으며, 대만이나 그 외 중국의 일반 진흙에 염료를 섞은 질이 나쁜 자사호를 대량으로 유통시키고 있어 구입에 주의를 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사호는 그 성질의 우수성으로 말미암아 더욱 더 주목을 받고 있을뿐만 아니라 수공작업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특징 때문에 예술적 가치가 높은 수장품(收藏品)으로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1) 다호(茶壺)의 등장(登場)과 그 배경(背景) 중국인들은 약 2천년 전부터 차를 마셨으나 처음에는 약용(藥用)으로 이용했으며, 야생관목(野生灌木)으로 방치되었던 차나무는 한(漢)나라 때에 이르러 비로소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당(唐)나라 때에 이르러 집 안에 옮겨 심기게 되었다. 송(宋)나라 때까지 중국인들이 마셨던 차는 단차(團茶)로 덩어리를 갈아서 그릇에 넣고 물을 부은 뒤 솔로 저어서 거품을 내는 지금의 말차(末茶)와 같은 것이었으나 명(明)나라 때에 이르러 차호(茶壺)를 이용하여 잎차를 우려내는 행다법(行茶法)이 등장하게 되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개국 후 당(唐), 송(宋), 원(元)을 거쳐 당시까지 전해져 내려오던 용봉단차(龍鳳團茶 : 긴압차의 일종) 제조법이 백성을 괴롭히고, 사대부(士大夫)들의 사치(奢侈)를 조장한다고 판단하여 칙명(勅命)을 내려 다법을 제정하고 상인들의 밀거래와 밀수출을 금지하는 한편 긴압차(緊壓茶) 및 말차(末茶)의 제조를 금지하고, 산차(散茶 : 엽차) 제다법으로 개혁하였다.
차호(茶壺)의 등장은 제다방법(製茶方法) 및 행다법(行茶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러한 다법(茶法)의 개혁은 다기(茶器)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쳐 잎차를 넣고 물을 부어 우려낼 차호가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말차나 병차(餠茶)에 주로 사용되던 다완(茶碗)의 사용은 점차 적어지고, 잎차를 마시기에 용이한 소호(小壺)의 사용이 점차 흥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나온 차호는 명나라를 지나 청(淸)나라에 이르기까지 크게 유행하였으며, 중국 그림에 차호가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의흥(宜興)의 도자기업(陶瓷器業)은 예전부터 범익(范 )을 "도주공(陶朱公)"으로 명하고, 도자기의 시조(始祖)로 간주(看做)하고 있다. 의흥의 자사호(紫砂壺)는 최초에는 항아리와 같은 큰 용품에서 변화되어 현재의 여러 가지 형태에 이르게 되었다. 자사호의 기술은 문헌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는데 북송 말기의 매효신(梅堯臣), 구양수(歐陽修), 소동파(蘇東坡) 등 시인의 시구(詩句)에서 모두 도자기에 관한 유래를 기록하였었다.
또한 이러한 기록은 고대 의흥에 이미 자사도자기 제작업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자사호는 북송시대에 시작하여 명나라, 청나라에 이르러 흥성(興盛)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원인은 다법의 변화에 따른 차호의 등장에 기인(起因)한다고 볼 수 있다. 명대에 크게 유행하게 된 의흥의 자사호는 주로 의흥 특산의 자니(紫泥), 홍니(紅泥), 단산니(團山泥)를 사용하여 구워 내는데 이들 삼자(三者)를 합칭하여 통상 자사(紫砂)라고 한다.
자사호는 청대에 이르러 화려한 문양(紋樣)과 문식(紋飾)은 극(極)에 달하여 이미 단순한 다기(茶器)의 실용적인 범주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화려하고도 다채(多彩)로운 형태의 고급 예술품으로까지 승화되었다. 평생 차를 즐겨 마셨다는 청나라 건륭제(乾隆帝)도 의흥 자사호를 가리켜 [세상 다기(茶器) 중에서 최고로다]라고 극찬(極讚)을 아끼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한편 중국인들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의흥 자사호는 명나라 말기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유럽에 들어가서 붉은 자기(瓷器)로 불렸는데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중국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이 한창인 시절 의흥의 자사기(紫砂器)는 중국 자기를 애호하는 그들의 호기심(好奇心)을 자극하여 유럽인들은 자사도기(紫沙陶器)를 모방한 자기를 만들었다. 또한 의흥 자사는 에도(江戶)시대 말기 일본에 전해져서 많은 인기를 모았으며, 청나라 때에 들어서서는 유럽, 일본뿐 아니라 멀리 중남미까지 전해졌다.
(2) 의흥(宜興) 자사호(紫沙壺)의 역사(歷史) 자사(紫沙)는 자홍색(紫紅色)에 유약(釉藥)을 바르지 않은 도기(陶器)로 중국 강소성(江蘇省) 의흥(宜興)의 특산품이며, 명나라 이후로 여러 문인(文人)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명·청 양대(兩代)를 통해 의흥 자사를 칭송한 글이 수없이 많아 자사의 발전과 예술적인 분위기는 명·청 양대 문인들의 취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의흥(宜興)은 태호(太湖)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남쪽과 북쪽을 잇는 대운하(大運河)가 편리한 교통을 제공한다. 북으로는 양주가 2백여리, 남으로는 항주(杭州)가 2백여리, 동으로는 명나라 문화의 중심지였던 소주(蘇州)가 백여리 떨어진 곳에 있다. 이 부근은 명나라와 청나라를 거쳐 중국의 무역과 농업의 중심지였던 덕분에 경제적으로 풍족한 동시에 문화적인 중심지로도 부상했던 곳이다.
문인들은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차를 마시고, 꽃을 감상하고, 물고기를 기르고, 학을 키웠다. 명나라 중기에 이르러서는 옥기(玉器), 죽각칠기(竹刻漆器), 동로(銅爐), 가구(家具), 장신구(裝身具) 등 모든 것이 최고의 발전기를 누렸다. 의흥의 자사호가 문인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그 지리적 위치 뿐 아니라 자사 자체의 질박(質朴)하고 편리한 특성 때문이다. 일찍이 명나라 때부터 사람들은 자사가 오랫동안 쓸 수 있고, 문지를수록 윤이 나서 문인의 방에는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소박하고 질박하고 단순한 자사의 멋은 중국 문인들의 미학적 요구와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자사를 평가하는 기준이기도 했다.
자사는 당시의 문화적 면모를 보여주며, 자사를 썼던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들의 예술적 취향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했다. 자사의 역사를 살펴봄에 있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사와 자사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맺었던 관계이다. 이러한 각도를 초점으로 {다담(茶談, 2001년 가을호)}에 게재된 박영환(朴永煥) 씨의 논고(論攷)를 참고로 하여 살펴보면 자사는 몇 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1) 자사호(紫砂壺)의 창조(創造) 명(明)나라 정덕(正德) 년간(1505∼1521년)에 비롯된 의흥 자사호의 예술적 창조는 중국 다기 발달의 과정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중국 전체 도자기사(陶瓷器史)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일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강소성 의흥현 동남쪽 40리 밖에 위치한 금사사(金沙寺)란 절에 자사(紫砂) 진흙을 이용하여 차호(茶壺) 만들기를 좋아했던 어느 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차호를 완성한 후 낙관(落款)이나 인장(印章)을 남기지 않았음은 물론 서명(署名)조차도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안타깝게도 후인들은 그의 작품을 식별해낼 길이 없었다. 최초로 다호 밑바닥에 서명(署名)을 한 사람은 명나라 가정(嘉靖) 년간(1521∼1566년)에 살았던 의흥명호가(宜興名壺家) 공춘(供春, 春 또는 공공춘( 供春)이라고도 함)으로 후세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의흥(宜興) 자사호(紫砂壺)의 창제자라고 한다. 또 일설(一說)에 의하면 공춘이 금사사의 노승(老僧)에게서 자사호를 만드는 기예(技藝)를 익혔다고 전하고 있다. 공춘은 명대(明代) 사천성(四川省) 참정(參政)이었던 오이산(吳 山)이 금사사에 공부하러 갈 때 몸종으로 따라갔던의 노비(奴婢)로 그는 본래 손재주가 비범하여 금사사의 노승이 차호를 만드는 것을 보고는 금방 흉내내어 차호를 만들어 내었다. 그는 노승에게 차호 만드는 법을 열심히 배웠고, 마침내 자신만의 독특한 풍의 차호를 예술의 극치로까지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2) 초창기(初創期) 남송(南宋) 후기에서 명나라 만력 년간(萬曆年間, 1573∼1620)에 이르는 동안은 자사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다. 이때에 비로소 도공(陶工)들은 자사의 특성을 파악하고 가구(家具)나 칠기(漆器) 등으로부터 기술을 빌어와서 물레성형, 잘라 붙이기 등의 기본 성형기법을 익히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자사는 가마에서 유약(釉藥)을 바른 다른 도자(陶瓷)들과 함께 구어졌기 때문에 구워지는 동안 유약이 튀어 생긴 얼룩이 많이 보였다.
이 시기의 자사호로는 1965년 강소성에서 발견된 유약이 둘러진 옥춘호형 자사주전자와 1966년 남경시 중화문 밖 오경(吳經)이라는 사람의 무덤에서 발견된 손잡이가 달린 호(壺)가 대표적이다. 무덤에서 출토된 호는 손잡이가 없고 굽, 아랫부분, 윗부분, 입구를 각각 따로 만들어서 붙인 것으로 표면에 붙인 흔적을 없애기 위해 대나무 칼로 문지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오경은 명나라 때 사례태감(司禮太監)이라는 벼슬을 했던 선비로 그의 무덤에서 나온 호는 이미 보다 완숙한 단계지만 겉에서 볼 때는 완전하게 다듬어져 있어 두 조각을 붙여서 만들었다고 보여지지 않을 정도이며, 뚜껑의 꼭지는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물레를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부리의 아랫부분에는 네 잎짜리 감모양을 붙여 몸체와 연결시켰는데 이것은 장식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몸체와 부리를 붙이고 고정시켜주는 실용적인 역할까지 하고 있다.
초창기(草創期)에서 제일 먼저 나열할 명장(名匠)은 역시 앞에서 거론한 바 있는 금사사(金沙寺)의 노승(老僧, 이하 금사승(金沙僧)이라고 칭함)과 공춘(供春)이다. 그외 주목할 만한 인물로는 후인들에 의해 사대천왕(四大天王) 혹은 사가(四家)로 존칭되는 동한(董翰), 조량(趙梁), 원창(元暢), 시붕(時朋)을 꼽을 수 있다. 금사승(金沙僧)은 사람들을 위해 차호(茶壺) 만들기를 즐겨했는데 그의 특징은 차호(茶壺)의 표면에 많은 지문(指紋)만을 남길 뿐 낙관(落款)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으므로 지문만이 금사승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공춘은 금사승의 기법 위에다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창출하면서도 금사승의 지문을 남기는 방법을 취하였는데 차호 표면에 지문이 안보일 듯 나타나는 것이 금사승의 것과는 사뭇 달랐으며, 색채는 짙은 밤색이라 마치 고철(古鐵)의 빛깔을 보는 듯 하다. 여기에 차를 우려 마시면 원래의 차맛을 잃지 않아서 고관대작(高官大爵)은 물론 고사(高士), 묵객(墨客)들까지 모두 다투어 공춘호(供春壺)를 찾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 워낙 극소수라 만금(萬金)을 주어도 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공춘의 뒤를 이어서 동한(董翰), 조량(趙梁), 원창(元暢), 시붕(時朋) 등 "사대천왕(四大天王)" 혹은 "사가(四家)"로 존칭되는 많은 명가(名家)들이 배출되었는데 이 중에서 동한의 작품이 비교적 공춘의 기법을 잘 전승하여 중후(重厚)하면서도 섬세하고 신기(新奇)하며, 그외 3가(家)는 대체로 고아(古雅)하며 졸박(拙撲)하다.
이외에도 이무림(李茂林) 같은 이도 있었는데 그는 원형의 소형(小型) 차호를 잘 만들었다. 3) 발전기(發展期) 만력년간(萬曆年間)에서 명말(明末)에 이르는 기간 동안은 의흥 도기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자사호는 첫 번째 발전기를 구가하였으며, 이때 뛰어난 도공(陶工)들이 수없이 배출되고 자사의 모양도 천태만상의 다양성을 이루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때 종조(宗祖)격인 공춘(供春)의 기법을 제대로 계승한 시대빈(時大彬)이라는 뛰어난 도공의 노력으로 합리적이고 완전한 자사 제작 공예와 도구가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 수없이 많이 등장했던 뛰어난 도예가들 중에서 시대빈(時大彬)은 이중방(李仲芳), 서우천(徐友泉)과 더불어 "3대국수(三大國手)" 혹은 "3대(三大)"로 병칭된다.
이들은 초창기의 사가(四家)를 이어서 나온 명장(名匠)들로 시대빈은 바로 시붕(時朋)의 아들이고, 이중방은 곧 이무림(李茂林)의 아들이다. 시대빈(時大彬), 진중미(陳仲美), 진용경(陳)用卿), 서우천(徐友泉) 중에서 가장 주의해 볼만한 사람은 역시 시대빈이다. 그는 자사공예(紫沙工藝)를 완비하는 한편 흙에도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에 유행하던 대호(大壺 : 큰 찻주전자)와 고신호(高身壺 : 키가 높은 길쭉한 다호)를 작은 다호(茶壺)로 개량하여 만드는데 일인자(一人者)로 진계유(陳繼儒) 등의 문인들과 교류를 가지면서 차호를 작은 크기로 축소해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듦으로써 문인들의 요구를 만족시켜주기도 한다.
이로써 자사호와 문인들의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시기 차호의 특징은 근문형(筋紋型)으로 이때 제작된 대부분의 차호는 호박의 표면처럼 근육이 불룩불룩 나온 형태로 만들어 진 것이다. 근년 들어 발굴된 시대빈의 낙관(落款)이 찍힌 자사 네 점 중 하나는 조씨의 무덤에서 발굴된 육각형의 호로 바닥에 대빈(大彬)이라는 글자가 해서(楷書)로 찍혀 있다. 두 번째는 고궁의 칠기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발견된 방형호(方形壺)로 이것은 겉에 칠이 되어 있었는데 바탕이 자사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이것도 바닥에 대빈이라는 낙관이 찍혀 있다.
이 두 가지는 만들어진 수법이 매우 비슷한데 둘 다 어깨가 나오고, 목이 올라와 있으며, 뚜껑도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져 있다. 세 번째는 1984년 무석(無錫)에서 발굴된 것으로 몸체는 원형(圓形)이고, 바닥에 다리가 세 개 달려 있다. 뚜껑에는 구름모양의 문양(紋樣)이 붙어 있고, 손잡이 밑에 대빈(大彬)이라는 낙관이 찍혀 있다.
네 번째도 역시 1985년 무석에서 발견된 것으로 부리가 곧게 달렸고, 바닥에 대빈의 낙관이 찍혀 있다. 이 네 작품은 모두 정밀하게 만들어졌고, 선이 정확해서 발전기 자사(紫沙)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3대명장(三大名匠)들 외에도 매우 많은 명장(名匠)들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바로 이 시기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는 혜맹신(惠孟臣)이다. 그가 바로 중국 4대 명호(名壺)의 반열에 들어있는 그 유명한 맹신호(孟臣壺)의 제작자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대체로 대호(大壺)는 소박하고, 소호(小壺)는 아주 정교하여 시대빈 이후로는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후세에 전해지는 혜맹신의 작품 중에는 소호가 비교적 많아 그는 소호의 대가로 유명하며,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의 작품 중에는 이 시대의 특징인 근문형(筋紋型)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만든 소호(小壺)의 종류는 둥근 것, 길쭉한 것, 납작한 것 또는 밑이 평평한 것 등 아주 다양하다. 이것은 훗날 후세의 도공들의 소호제작의 표준이 됨은 물론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을 모방하여 만들었다. 그러나 발전기를 구가하던 자사호도 청(淸)나라에 들어서 강남(江南) 일대의 가마가 불에 타면서 그 막을 내리게 된다.
4) 번영기(繁榮期) 강희 년간(康熙年間, 1662∼1722)의 초기에서 건륭 년간(乾隆年間, 1736∼1795) 말기에 이르는 동안의 번영기는 사회적, 경제적 안정기를 거쳐 최고의 번성기를 누린 시기였으며, 더구나 강남 일대는 중국 전체 경제의 심장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의흥(宜興)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양주(揚州)는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는데 이곳의 갑부(甲富)와 고관 선비들은 모두 의흥자사를 좋아하여 이곳에 의흥자사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도매상이 생겨날 정도였다.
또한 강희(康熙) 24년(1685)에 해상운수가 허가되면서 외국으로 수출된 자사(紫沙)가 뛰어난 조형미로 유럽인들의 찬탄(讚嘆)을 한 몸에 받기 시작하자 자사의 대외수출이 급격히 늘었으며, 유럽인들의 취향(趣向)이 자사에 반영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번영기는 건륭년간 말기까지 지속되다가 수출항이 점차 남부의 광주(廣州)지역으로 국한되기 시작하면서 자사의 수출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자사(紫沙)는 유약(釉藥)도 칠하지 않고 그 형태도 매우 소박하여 고래로 화려한 멋을 추구해온 궁정(宮庭)의 취향과는 어울리지 않는 점도 있었으나 강희년간 때부터는 궁정에서도 자사를 애호하기 시작했다. 대만(臺灣) 타이베이시의 고궁박물관에는 [강희어제(康熙御製)]라는 낙관이 찍힌 법랑(琺瑯)무늬의 자사가 소장되어 있다. 옹정년간(擁正年間)에는 어용(御用)의 자기를 생산하는 경덕진(景德鎭)에 자사 모양을 모방한 자기(瓷器)를 만들라는 명령이 내려지기도 하였고, 건륭시기에는 황제가 친히 시(詩)를 써넣은 자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시기는 양적, 질적으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발전을 이룩한 자사의 번영기라고 할 수 있다. 번영기 자사의 모형은 가장 풍부하여 전통적인 원형의 모양, 작고 통통한 모양, 길고 홀쭉한 모양들로 다양한 변신을 거듭하는 가운데 각을 지닌 기형 또한 크게 유행했으며, 한방호(漢方壺)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줄무늬호도 상당히 보편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밖에 조각기술도 발전하여 자연의 모습을 사실에 가깝게 옮겨놓은 자사가 나타난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도예가는 진명원(陳鳴遠)으로 발전기의 명장(名匠)인 진자휴(陳子畦)의 아들이며, 시대빈(時大彬)의 뒤를 계승한 최고의 위대한 의흥도인(宜興陶人)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남과호(南瓜壺 : 호박모양의 차호)는 부드러운 색조와 손질이 잘된 흙과 전체의 기형이 혼연일체(渾然一體)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세부적인 손질이 전체의 조화미를 깨트리지 않고 있어 근문(筋紋)과 자연(自然)의 멋을 겸비한 것이 특색이다.
진자휴(陳子畦)가 만든 자연형 차호는 그야말로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렀을 정도로 자연형 작품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는 진명원의 자연형 차호가 유행의 최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특색 외에도 기타 여러 가지 형태의 차호 특히 기하형(幾何型)도 함께 유행의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는 것이 또 다른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차호 표면의 문식(紋飾)에 치중(置重)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이것은 당시 다인(茶人)들의 차호에 대한 관심의 초점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알 수가 있다.
한편 이 시기에서 또 한명의 주목할 만한 명인으로 사대명호(四大名壺) 중의 하나인 일공호(逸公壺)를 제작한 혜일공(惠逸公)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8세기에 주로 활약한 명장(名匠)으로 차호 제작의 기법 면에 있어 혜맹신(惠孟臣)과 거의 쌍벽을 이루고 있어 세상에서는 그들 두 사람을 가리켜 "이혜(二惠)"라 칭송하고 있다.
5) 전환기(轉換期) 가경년간(嘉慶年間, 1796∼1820)과 도광년간(道光年間, 1821∼1850)으로 비록 근문형(筋紋型)이나 자연형의 제작이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이 시기의 유행의 주류를 이룬 것은 역시 기하형의 차호였다. 이 시기에는 두 가지 특점이 있는데 하나는 문인과 도공들의 결합이고, 또 하나는 기하형(幾何型)의 차호가 유행의 주류를 이룬다는 것이다.
문인들과 결합한 도공들은 차호의 표면에 시화(詩畵)를 새기고, 갖가지 형태의 장식을 위한 차호의 몸체를 특별히 설계하기도 하였으며, 명대(明代) 전각서법(篆刻書法)의 기교와 채색(彩色), 부조(浮彫), 퇴호(槌壺), 시유(施釉), 발광(發光) 등 자사호의 장식 또한 최고조에 이르고 있어 중국 도자예술의 모든 기교(技巧)가 자사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誇言)이 아닐 정도로 모든 기교가 자사에서 선보이는 시기이다.
건륭년간(1736∼1795) 말기에 이르면서 자사의 수출은 점차 줄어들고 경제까지 악화되자 대량 상업화되었던 자사가 점차 쇠퇴하는 경향을 보인다. 건륭시기에 자사(紫沙)의 기교(技巧)에 치중하면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멋이 점차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때에 나타난 진홍수(陳鴻壽)는 눈여겨보아야 할 인물이다.
그는 자(字)가 자공(子恭), 호가 만생(蔓生)으로 3년간 의흥의 현감(縣監)을 맡았으며, 기하형(幾何型)의 유행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간 사람으로 서예(書藝)와 전각(篆刻)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현감을 하면서부터 자사에 심취되어 있었는데 당시의 자사 제작을 지지(支持), 고무(鼓舞)하여 도공(陶工)을 청해 자신을 위해 자사호(紫沙壺)를 만들어줄 것을 부탁하며, 호의 모양과 어울리는 시구(詩句)를 적어 넣기도 하고, 자신의 글씨를 장식으로 넣었다.
또 그 자신이 여러 가지 형식의 호를 직접 고안해내기도 하였는데 당시 가장 유명한 도공인 양팽년(楊彭年)과 소이천(邵二泉)을 위해 18개의 호식(壺式)을 설계하기도 하였다. 그는 다른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문인사회로 자사를 전파하여 문인들의 취향인 서법(書法), 전각(篆刻), 회화(繪 ) 등의 창작이 자사에 결합되게 하였는데 문인과 도공의 합작 결정체로써 만생호(曼生壺)가 탄생하였다. 만생호는 양팽년이 제작하고 진홍수가 제자(題字)를 낙관(落款)하였기에 사람들은 이를 가르켜 만생호(曼生壺)라고 하였다.
자사호(紫沙壺)는 진만생(陳曼生)의 영향을 받아 큰 변화를 일으켜 다시 전아(典雅)하고 고전적인 멋을 추구하게 되었다. 대부분이 간단한 기하학적 모양으로 간결한 선을 주로 이용하고 윤이 나는 호 몸체의 면적이 넓어짐으로써 그 위에 글씨를 쓰기에 적합하게 변형되었다. 정란호(井蘭壺), 방두호(方斗壺)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호이며, 이 시기에는 바닥에 찍은 낙관(落款)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건륭시기의 알아보기도 힘들게 대충 찍어 놓은 도공의 도장과는 차이가 나게 아름다운 모양을 갖춘 것이 많았는데 이 또한 진만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18세기의 새로운 한 형식을 창조했으며, 그의 영향은 지금까지도 식지 않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시기 중에서 진만생 이후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로 구응소(瞿應紹)를 꼽을 수 있는데 자(字)는 자치(子治), 호(號)는 월호(月壺)이다.
그의 작품에는 매죽(梅竹)이 차호 표면에 새겨진 것이 자주 보이며, 제호(題壺)로는 행서(行書)가 주로 많이 보이고, 간혹 해서(楷書)도 보인다. 낙관(落款)으로는 자치(子治), 전장(篆章)으로는 월호(月壺)와 길안(吉安)을 함께 사용하였다. 이 시기에도 기하형(幾何型)의 차호 외에 소호(小壺)계통의 차호도 끊임없이 여전히 만들어졌으며, 말기에 이르러서는 소호계통의 걸작품이 하나 출현하였다. 그것이 바로 4대명호(四大名壺) 중의 하나로 육사정(陸思亭)이 제작한 사정호(思亭壺)이다.
6) 쇠락기(衰落期) 함풍년간(咸豊年間, 1851∼1861)에서 광서년간(光緖年間, 1875∼1908)에 이르는 동안 자사는 쇠락기를 맞게 되는데 가장 큰 원인은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이 일어나서 병사들이 의흥에 주둔하고 청왕조(淸王朝)의 병사들과 전쟁을 치른 것이었다. 도요(陶窯)의 불이 꺼지고, 도공(陶工)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멀리 도망을 갔으며, 게다가 광서연간의 경제는 날로 쇠퇴하여 자사호는 예년의 광채를 잃어가고 있었다.
청말(淸末)의 자사는 기본적으로 가도시기(嘉道時期, 1796∼1850)의 조형을 그대로 이어 받았는데 기술이 낙후되어 볼만한 것이 별로 없으며, 몸체에는 대부분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넣었다. 이 시기의 이름난 도공으로는 황옥린(黃玉麟), 진광명(陳光明), 왕동석(王東石) 등이었다. 그들의 작품은 아취(雅趣)가 있으며, 단정한 멋을 지니고 있는데 그 중에서 진광명과 왕동석의 작품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 부흥기(復興期) 대부분의 사람들은 20세기 초 자사도예(紫沙陶藝)의 성취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은 청나라 말기부터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민족자본이 봉건자본을 대치하면서 대량으로 나타나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이때 자사(紫沙)의 수출은 다시 활기를 띄게 되어 상해(上海)에는 자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개인적으로 작은 규모의 가마를 가진 사람들도 나타났다.
이 시기에는 의흥 자사호의 생산이 점점 상업화 추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대량생산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예전과 같이 전심전력(全心全力)을 기울여 만들어내던 예술적 가치를 지닌 차호는 상대적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에 이르러 의흥의 자사호가 세계 여러 국가에서 개최한 국제박람회에 참가하여 입상(入賞)을 하게 되자 이에 자극을 받은 도공(陶工)들은 뒤늦게나마 가장 중국적인 것만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연형, 근문형, 기하형 등의 문식(紋飾)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서로 앞을 다퉈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도공들 사이에는 다시 복고풍(復古風)이 일기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는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상해 일대에 무역과 상업이 발달하고, 문화예술이 지원을 받아 생기를 띄며 발전하는 가운데 상해파(上海派)와 같이 중국의 근대 회화사(繪畵史)에서 뛰어난 한 유파(流派)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1920∼1930년대 상해에서는 소장(所藏)이 매우 유행했는데 많은 골동품(骨董品) 상인들이 도공들을 상해로 데리고 가서 옛날 기형을 본뜬 자사를 만들게 하였다. 이런 작품들은 하나에 3∼4 개월의 시간을 필요로 할 정도로 매우 섬세하게 만들어졌다. 이것들은 고대 명인(名人)들의 작품이나 고고학적인 문물을 기본으로 했으며, 그림이나 책에 나온 것들을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 도공(陶工)들은 옛날의 우수한 작품들을 들여다보고 연구하고 본떠서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 내면서 자신의 예술적 시각과 공예기술을 향상시켰다.
이 시기의 대표적 명장(名匠)으로는 왕인춘(王寅春)을 첫 손가락에 꼽을 수가 있고, 그 외의 명장(名匠)들로는 범장농(范莊農), 정수진(程壽珍), 기도( 陶) 등이 있다. 1916년 공업화학원료의 적절한 배합으로 검푸른 색을 내는 흙과 짙은 자주색을 내는 흙이 만들어졌고, 파란색과 고동색 등 각종 색조의 유약(釉藥)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밖에도 성립(省立) 도자공업학교(陶瓷工業學校)와 여러 군데의 기술훈련원이 들어서면서 인재를 배양했다.
이 시기에 자사는 세계 각국의 전람회 등에서 입상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으나 1930년대 말기 중일전쟁(中日戰爭)이 일어나면서 도업(陶業)은 잠시 멈춘다. 1954년이 되자 국가에서 임감정(壬 庭), 고경주(顧景舟), 배석민(裵石民), 주가심(朱可心), 왕인춘(王寅春), 오운근(吳雲根), 장용(蔣蓉) 등 뛰어난 도공들을 불러모아 학생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했으며, 새로운 도예가(陶藝家)들은 전통을 흡수하고, 신시대의 사조를 반영하여 참신한 작품들을 만들면서 의흥 자사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3) 자사호(紫砂壺)의 형태(形態)와 장식(裝飾) 자사호는 기본 형태에서 차호의 몸통과 뚜껑으로 구성되며, 이 두 가지는 자사호의 절대적인 구성요소이다. 차호(茶壺)의 몸통은 취(嘴 : 찻물을 토해내는 부분인 부리), 파(把, 제提, 병柄, : 손잡이 부분), 호구(壺口 : 뚜껑과 맞물리는 부분), 호저(壺底 : 차호의 바닥)과 차호의 배 부분(어깨와 배)이 있고, 찻물을 토해내는 부분은 다시 몸체와 연결되는 구비 부분과 찻물이 나오는 부리 부분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뚜껑은 개연(蓋沿 : 몸체와 맞물리는 입술 부분)과 기공(氣孔 : 공기구멍) 및 뉴( : 공기구멍을 포함하는 뚜껑구슬 부분) 등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구성요소(構成要素)를 가진 자사호들은 명(明)나라 정덕시대(正德時代, 1506∼1521) 금사사(金沙寺) 승려와 공춘(供春) 이후 수많은 형태의 모양과 종류가 나타났으며, 각기 독자적인 품격(品格)과 조형미(造型美)를 갖추고 있다. 자사호의 모양은 천태만상(千態萬象)인데 역대(歷代)의 자사도인(紫沙陶人)들이 자연계를 관찰하고, 중국 회화(繪畵)와 공예품(工藝品)의 아름다운 모습을 흡수해서 만들어 낸 결과였다.
자사호의 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눌 수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크게 기하형(幾何形), 조각형(彫刻形), 줄무늬형(筋紋器形), 수평호형(水平壺形)의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원형과 네모진 형은 자사다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으로 기하학적(幾何學的)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구형(球形), 원주형(圓周形), 입방형(立方形), 장방형(長方形)은 여기서 변화되고 파생(派生)된 모습이다. 자연형(自然形, 일명 조각형(彫刻形)이라고도 함)은 자연계의 동식물을 본떠서 만든 것들이고, 줄무늬형은 화훼(花卉), 과(瓜), 과(菓)의 모습을 규격화한 것이다. 한편 [호지삼절(壺之三絶)]로 일컬어지는 혜일공(惠逸公), 혜맹신(惠孟臣), 시대빈(時大彬) 등 역사상 유명한 자사도공(紫沙陶工)들의 작품을 모방(模倣)한 것을 방고호(倣古壺)라고 부르며, 많은 도공(陶工)들이 만들어 왔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1) 기하형(幾何形) 기하형태는 곡선(曲線)과 직선(直線)의 변화에 중점을 두어 선이나 길이의 비례(比例)를 변형하거나 전체의 비례에 변화를 가지면서도 안정적인 균형을 갖추고 있다. 기하형태는 원형(圓型)을 기본으로 하는 원호(圓壺), 편호(扁壺), 직통호(直筒壺) 등의 원호(圓壺)와 다면체의 각으로 이루어진 사방호(四方壺), 육방호(六方壺), 한방호(漢方壺) 등의 방호(方壺)가 대표적이다. 원형 자사호(圓型紫砂壺)로는 수진철구호(壽珍綴球壺), 저선원구호(底線圓球壺), 문단호(文旦壺) 등이 대표적이며, 방형 자사호(方型紫砂壺)로는 방종(方鐘), 승모호(僧帽壺), 육방능화호(六方菱花壺), 정육방호(井六方壺) 등이 대표적이다.
① 원형(圓形) 원형은 주로 다른 방향과 각도를 가진 곡선이 다기의 외형을 이루며, 조화로운 비례, 부드러운 선의 변화, 뛰어난 균형은 오래 동안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멋을 풍긴다. 방고호(倣古壺), 한편호(漢扁壺)가 원형자사(圓形紫沙)의 전형(典型)이다.
② 방형(方形) 방형자사(方形紫沙)는 길이가 다른 직선이 다기의 외면을 이루는데 예를 들어 4각, 6각, 8각과 여러 가지 비례의 장방형 다기가 있다. 자사호는 흙의 특성상 수작업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물레작업으로는 불가능한 방형이 만들어질 수 있다.
2) 조각형(彫刻形) 역사적으로 기록된 자사호의 첫 번째는 조각형으로 조각적인 기형(奇形)이거나 부조(浮彫)가 되어 있는 장식적인 자사를 가리키는 통칭(通稱)이다. 자사도공(紫沙陶工)들은 생활 속에서 발견한 자연과 동물의 모습을 예술적인 작업을 통해 같이 만들어 냈으며, 이것은 물레에 의존하지 않고 100% 수작업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늙은 나무의 기둥이 호의 몸체를 이루기도 하고, 호의 부리와 손잡이는 그대로 생기 넘치는 나뭇가지가 대신하기도 하며, 참외나 피망 등의 과일 야채가 차호로 표현되기도 한다. 몸체에 묻어 있는 생생한 지문은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고아한 멋을 내는데 오히려 도움을 준다. 모양은 매우 천연적이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한 손길은 예로부터 조각형 자사호가 인간의 기교를 벗어난 신의 작품이라는 찬탄을 받게 하였다.
조각형 자사호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나타났는데 손으로 만들고, 조각하기 쉬운 자사의 독특한 특성과 맞물려 계속 뛰어난 작품이 만들어져 왔다. 조각형 자사호는 대략 네 가지 모습으로 만들어지는데 자연형(自然形), 기하형(幾何形), 사실형(事實形) 그리고 고대의 옥기(玉器)나 청동기(靑銅器) 및 일상생활용기를 본떠서 만든 모양이다.
자연형은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현상이나 동물의 모양에 예술적인 가공을 가해 만든 모양을 말하는데 나무의 가지, 줄기, 잎 등을 소재로 조형과 장식에 이용한 수목형(樹木形), 과일이나 꽃잎 등을 소재로 하여 조형 및 장식에 응용한 과일형, 그리고 동물 형태나 혹은 신체의 일부분을 소재로 하여 조형 및 장식에 응용한 동물형 등이 있다. 기하형은 자연의 형상 중 일부분을 빌어온 호의 부리와 뚜껑, 꼭지 등이 기하학적인 몸체에 붙어서 전체의 모양에 완성도를 더하는 것으로 몸체에 간결한 무늬나 도안화된 조각을 부조(浮彫)로 표현해 넣기도 하는데 이런 기형은 전체적으로 간결한 기하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밖에도 청동기와 같은 고대의 각종 기물 형태와 기물에서 나타나는 도안을 자사호의 조형과 장식에 이용하거나 옥기, 칠기와 일상용품의 형태를 본받아 약간의 장식을 가미한 모양이 있다. 자사(紫砂)는 조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원료이기는 하지만 한 점의 조각형 자사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노련한 성형기술과 공예적 기교가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한다.
첫째, 다른 색깔을 내는 흙은 서로 다른 수축성(收縮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마에 들어갔을 때 열에 반응하는 정도도 다르므로 제작과정 중에 각기 다른 흙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게 된다. 둘째, 일반적인 자사보다 독특한 모양을 한 것들, 예를 들어 긴 손잡이나 부리가 달린 주전자는 소성과정(燒成過程)에서 쉽게 변형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손잡이나 부리를 몸체에 붙이는 과정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다음으로는 건조과정에서 조심해야 한다. 소성 전의 자사호는 평형이 되게 놓아두어야 하고, 그늘에서 말려야 하며, 절대로 강한 햇빛 아래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좋은 도구는 좋은 자사호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요소로 몸체가 큰 호(壺)는 가마에 앉힐 때 방석이나 받침을 깔아 평형을 유지하도록 해준다. 또 이렇게 함으로써 소성시(燒成時)에 호의 아랫부분으로 발망( )이 통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복숭아잔과 같이 특이한 경우가 있는데 이 잔은 몸체의 전부가 복숭아 잎처럼 얇고 부리가 넓은데가 복숭아 줄기로 표현된 부분이 부리보다 높기 때문에 가마에 넣을 때에 평형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다. 물론 엎어놓아서도 안되고, 반드시 갑발(匣鉢)이나 시렁과 같은 장치를 설치해서 하나 하나의 자사(紫沙)가 똑바로 설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자연은 자사호에 끝없는 창조적 원천(源泉)을 제공해 주는 풍부한 바탕이었다. 조각형자사(彫刻形紫沙)는 자연계의 현상을 간결하게 혹은 치밀하게 묘사해 내는 생활예술품이다. 그러므로 조각형 자사호를 만들 때는 예술적인 변화와 통일, 생동감과 조화,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드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고죽호(古竹壺), 송죽매호(松竹梅壺), 호호(葫壺) 등이 대표적이다.
3) 줄무늬형 줄무늬형의 가장 큰 특징은 자사의 표면을 선과 면을 이용해 같은 간격으로 나누어서 정확하고 엄격한 구조(構造)를 지니고 있는 데 있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호박 등의 야채나 꽃잎, 물결무늬 등에 착상(着想)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자연 속의 꽃잎이나 과일 등의 모양들을 변형시켜서 굴곡진 근육문양으로 자사호의 조형과 장식에 응용한 형태를 말한다. 깨끗하고 정확하게 그어진 줄무늬가 몸체와 뚜껑에 정확하게 맞게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기술에 속한다. 줄무늬는 조각형이 나타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지만 역시 매우 빠른 시기에 출현했으며, 추국호(秋菊壺), 반남과호(半南瓜壺), 어화용호(魚化龍壺) 등이 대표적인 줄무늬형 자사호이다.
4) 수평호(水平壺) 수평호는 주둥이가 곧은 직선형이 가장 보편적인데 찻물의 유수(流水)와 절수(折水)가 잘 되게 만들어 졌다. 수평호의 규격은 잔수(盞數)의 수량에 의해 정해지는데, 반배(半杯), 2배, 4배, 6배, 8배, 12배 등이 있다. 5) 자사호(紫砂壺)의 장식(裝飾) 자사호의 장식기법에는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은 광화기법(光貨技法), 자사호 전체나 특정부위에 소조(塑彫), 부조(浮彫), 문양 등의 각종 장식을 하는 화화기법(花貨技法), 시유(施釉) 및 옻칠, 포석(包錫) 등의 다양한 장식기법 외에도 여러 가지 장식기법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장식기법들은 그 당시의 사회풍토와 작가들의 정서를 잘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사호에서 한층 더 높은 정취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① 광화기법(光貨技法) 호(壺)에 아무런 문양이나 장식을 가하지 않아 자사 본래의 순수한 색채와 질감을 감상하기에 적합한 장식기법으로 기하형류에 속하는 자사호에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다.
② 화화기법(花貨技法) 각종 문양으로 장식된 자연형의 자사호나 기타조형의 자사호 중 일부를 소조(塑彫) 및 부조기법으로 장식하는 것을 말하며, 이로 인하여 매우 다양한 양식의 자사호를 감상할 수 있다.
③ 채색유약(彩色釉藥) 장식(裝飾) 채색유약 장식기법이란 1차 소성(燒成)한 자사호의 몸체에 각종 채색유약으로 그림이나 시문(詩文) 등을 그려 넣은 후에 다시 800℃ 정도의 저온가마에서 2차 소성하는 장식기법을 말한다. 이 장식기법은 청대(淸代)의 옹정(擁正), 건륭(乾隆) 연간에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며, 그 화려한 장식의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아 당시에 벌써 궁중의 공물(貢物)이 되었다.
④ 시화(詩畵) 및 명문(銘文) 장식기법 자사호의 몸체에 시문이나 그림 등을 조각하는 방식으로 주로 문인들이 애용하던 자사호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일부 문인들은 자사호 작가와 공동으로 제작에 참여하여 명문이나 시화를 직접 새겨 넣기도 하였다.
(4) 자사호(紫砂壺)의 특징(特徵) 의흥(宜興) 서남부 지역에서만 나는 자사(紫砂)는 도자기(陶瓷器)를 만드는 데 쓰이는 일반 재료와 달리 독특한 광물질이다. 자사니(紫砂泥)는 굽지 않은 상태에서도 강도가 높고 건조시 수축율이 비교적 적고, 가소성(可塑性)이 좋아 소성시 수축률(收縮率)이 매우 적어 제작단계에서 소성 후의 완성미를 미리 파악(把握)할 수 있어 정교(精巧)하고 아름다운 조형미(造形美)를 가능하게 하며, 제작단계에서 그 완성미(完成美)를 미리 파악할 수 있어 자유롭고도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색상이 풍부하고 다채로운 자사니(紫砂泥) 중에서 자주색(紫朱色), 주홍색(朱紅色), 미황색(微黃色)은 자사 다기(茶器)의 삼원색(三原色)으로 기본 색깔이다. 자사는 재료 자체의 특성 때문에 색료(色料)를 섞지 않아도 삼원색인 주홍색과 자주색의 짙고 옅음의 차이와 미황색에 의해 색깔의 변화가 풍부하여 배합비율과 가소성(可塑性)에 따라 소성 후 천청색(天靑色), 철청색(鐵靑色), 율색(栗色 : 밤색), 석류피색(石留皮色), 이피색(梨皮色 : 배껍질색), 해당홍색(海棠紅色), 청회색(靑灰色), 흑록색(黑綠色), 주사색(朱沙色), 벽록색(碧綠色), 황색(黃色), 암갈색(暗褐色) 등 수십 가지 색상을 나타낼 수 있다.
또 자사호는 원칙적으로 수공제품이기 때문에 대량생산(大量生産)이 불가능하며, 유약(油藥)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므로 찻잎의 향기를 차호(茶壺) 자체가 흡수하므로 차호를 길들이는 양호(養壺)의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자사를 사용해 구운 그릇에는 "개구기공(開口氣孔)"과 "폐구기공(閉口氣孔)"이라고 하는 2종류의 기공(氣孔)이 생기는데 개구기공은 자사호의 본체 주위에 모이는 기공군이고, 폐구기공은 내부의 기공이다. 이것들이 차를 우릴 때 차가 내는 떫은 맛을 흡수하고, 보온성도 유지하여 맛있는 차를 우려내는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자사호는 자사니만의 특성에 의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① 다향(茶香)을 뺏거나 찻물을 쉬게 하지 않아 차의 색·향·미(色香味)를 잘 보존한다. 차의 기운을 잘 보존한다는 것을 전통적인 관점에서 현대적인 측면으로 바꾸어 살펴보면 좋은 차호는 웬만한 고온에서도 특별한 내부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는데 고온에서 구워낸 자사호는 뛰어난 장점을 갖추고 있다.
② 차의 진액(津液)을 흡수하여 축적시키므로써 빈 차호(茶壺)에 맹물을 부어도 다향과 맛이 우러나온다.
③ 다기(茶器)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잡냄새가 배이게 되는데 자사호는 뜨거운 물로 2∼3번 씻어낸 다음 차를 우리면 잡냄새가 없어진다.
④ 온도의 적응력(適應力)이 좋아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뜨거운 물을 부어도 깨지지 않는다. 또 열의 전도성(傳導性)이 낮아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바로 자사호를 잡을 수 있다.(그러나 한국에서는 겨울에 바로 자사호 안에 뜨거운 물을 붓지 말고 뚜껑을 조금 연 후 전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다호를 데운 후 물을 부어야 깨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⑤ 유약을 사용하지 않아 양호(養壺 : 차호 길들이기)를 할 수 있으며, 잘 길들여진 자사호는 차의 맛과 다향을 더 좋게 한다.
⑥ 통기성(通氣性)이 좋다. 열전도율이 높은 대개의 물질들이 숨을 잘 쉬지 못하는 것과 달리 자사호는 제대로 만든 옹기(甕器)처럼 차를 우리는 짧은 시간 사이에도 숨을 쉬어 우려낸 차의 맛, 색, 향을 다르게 만든다. 이는 자사의 재질이 갖추고 있는 광물적 성질과 제작기법의 정교함으로 말미암아 자사호가 매우 얇기 때문이기도 하다.
⑦ 건강(健康)에 유익하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자사에 함유된 광물성분에는 인체에 유익한 요소들이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⑧ 보온성(保溫性)이 좋다. 차를 우리면서 차의 성질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 차호에는 반드시 적정 온도를 길게 유지하는 성질이 있어야 하는데 자사호는 상당히 얇으면서도 우수한 보온성을 갖추고 있다.
2. 자사호(紫砂壺)의 원료(原料) 자사호의 원료가 되는 자사니(紫砂泥)는 중국 강소성(江蘇省) 의흥(宜興) 지방에서만 나오는 모래 찰흙의 일종으로 질박(質朴)하고 편리한 특성이 있으며, 지표면에서 깊게는 약 200m까지 파 내려가 채광(採鑛)을 해야 얻을 수 있다. 자사는 그 외형이 자주색에 약간의 주홍색도 띠고, 반짝이는 미세한 은색의 별과 같은 점이 보이며, 엷은 녹색 반점도 은은히 보인다.
자사는 자니(紫泥), 주니(朱泥, 홍니紅泥), 녹니(綠泥 : 가열하면 미황색을 띈다)를 통칭하는 이름으로 광맥(鑛脈)이 벌써 고갈(枯渴)되어 버린 원료도 있고, 다른 좋은 광맥도 점차 고갈되어 가고 있다. 선명한 주홍색의 홍니(紅泥), 흑색의 흑니(黑泥), 채굴했을 때는 청색(靑色)이지만 소성 후에는 독특한 보라색으로 완성되는 천청색(天靑色)의 천청니(天靑泥) 등의 원료는 이미 극히 희소(稀少)한 원료가 되었다.
천청니(天靑泥)는 과거 의흥 정촉진(鼎蜀鎭) 중심의 대수담(大水潭) 광산에서 생산되었으나 지금은 광맥이 고갈되어 자니(紫泥) 혹은 주니(朱泥)에 코발트나 석청(石靑)을 혼합하여 천청니(天靑泥), 흑니(黑泥), 녹니(綠泥) 등을 생산한다. 또 자사니와 별점 모양의 녹니(綠泥)가 섞여 있는 단산(段山)에서 나오는 단산니(段山泥 : 불에 태우면 구리색을 띤다)도 있었는데 지금은 자니(紫泥)와 본산녹니(本山綠泥)를 섞어 만든 것을 단산니 또는 단니(段泥)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러한 원료들은 일반작가 이상의 우수한 대사급 작가들만이 사용하며, 그들 작품 세계의 전유물(專有物)이 되고 있다.
(1) 자사니료(紫砂泥料)의 이해(理解)
중국 강소성 의흥(宜興)의 정촉진(鼎蜀鎭) 서북의 작은 구릉으로 이루어진 곳에 청룡산(靑龍山)과 황룡산(黃龍山)이라는 두 산이 있는데 황룡산 사암층(砂岩層) 아래에서 출토되는 양질의 광물질인 자사니(紫砂泥)는 황석광(黃石鑛) 아래에 있는 주로 거친 도자기 등을 만드는 협니층(夾泥層)의 가운데에 들어있다. 암중암(岩中岩) 또는 니중니(泥中泥)라고 불리는 매우 귀중한 것으로 두꺼운 층이라도 2∼2m 정도이고, 얇을 경우에는 1m도 되지 않거나 겨우 몇 십cm 정도에 불과하여 채굴한 원토(原土) 1,000t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자사니는 겨우 1t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자사니 가운데 가장 핵심(核心)에 들어있는 의흥 자사도자(紫砂陶瓷)의 중요한 원료가 되는 갑니(甲泥, 니중니(泥中泥) 또는 갑급니(甲級泥)라고도 한다.)는 황룡산에서 나므로 황룡산을 자사(紫砂)의 본산(本山) 또는 갑산(甲山)이라고도 부르며, 그 외에 청룡산(靑龍山), 단산(段山), 양각산(羊角山)이나 향산(香山) 등의 각 산들에서 나는 자사의 재료는 성질이나 빛깔에서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원료들을 통칭(統稱)하여 자사니라고 한다.
(2) 니료(泥料)의 색상(色相) 자사(紫砂)는 크게 자니(紫泥), 홍니(紅泥, 주니(朱泥)라고도 함), 녹니(綠泥)의 세 종류로 나뉘지만 자니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3종류의 자사니료는 모두 단독으로 도기(陶器)가 될 수 있고, 또 서로 섞어 다른 색으로 제조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황니(黃泥), 금사니(金砂泥),저간니(猪肝泥) 등의 여러 가지 색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자니(紫泥), 주니(朱泥), 그리고 녹니(綠泥, 단니(段泥) 또는 본산녹니(本山綠泥)라고도 함)의 니료가 자사다기의 기본 삼원색(三原色)이며, 자색(紫色)을 띠는 자니, 붉은빛의 주니, 회흑색의 남니(藍泥, 중국 사람들은 이것을 흑색(黑色)이라고 하여 흑니(黑泥)라고 표현하고 있다.), 풀빛의 녹니, 배껍질색의 단니(段泥)를 자사의 5색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에 석청(石靑)이나 코발트 등을 혼합하여 배합비율, 가열 온도를 달리하면 철청(鐵靑), 천청(天靑), 밤색(栗色), 암갈색(暗褐色), 자동색(紫銅色), 주사색(朱砂色), 벽녹색(碧綠色), 황색(黃色), 청회색(靑灰色), 이피색(梨皮色), 석류피(石榴皮), 흑색(黑色), 해당홍(海棠紅) 등 여러 가지의 다양한 색상이 나오게 된다.
(3) 자사니료(紫砂泥料)의 생성(生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사기(紫砂器)의 원료는 자주색의 도토(陶土)라고 오해하고 있으며, 황토(黃土)처럼 반죽하여 다기(茶器)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자사(紫砂) 원석(原石)의 본래 모습은 단단한 석괴(石塊) 형상의 광물질로 그 촉감은 암석(岩石)과 같지만 곧바로 부스러진다. 이것을 그대로 자사기의 제작에 사용할 수 없으며, 원석을 바람과 비에 노출(露出)되도록 노천(露天)에 진방(陳放)시켜 원석 안에 있는 유황성분 등 불순물들이 씻겨나가야 한다. 암석모양으로 채광한 자사니는 자연에서 오랜 시간 방치하여 둘수록 그 질이 더욱 좋아진다.(작가들에 의해 사용되는 소위(所謂) 고니(古泥)라고 하는 것은 이 기간이 매우 긴 것이다.) 채굴할 때에는 외관이 암석과 유사한 모양이나 자연스레 방치하여 숱한 세월의 풍화작용(風化作用)을 거친 후에 비로서 자사 재료로 가공할 수 있는 과립(顆粒)형태로 만들 수 있다. 전통적인 가공방법은 돌절구로 빻아서 부수고, 체를 친 다음에 물을 부어 섞은 후 수작업으로 다시 두드려 정제하여 가소성을 거쳐 완제품의 자사니로 만들었지만 현재는 레이몬드 분쇄기로 분쇄(粉碎)를 하고 있으며, 이후에 다시 물을 붓고 수차에 걸친 공정을 거쳐야 완제품의 자사니(紫砂泥)가 된다.
① 쇄니( 泥) 광산에서 채굴한 원석을 노천(露天)에 방치하여 자연의 감화(減化)와 붕괴(崩壞)에 그대로 노출시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유황(硫黃)을 비롯한 불순물이 씻겨나가고, 풍화(風化)작용을 거쳐 구조가 느슨해지면서 작은 덩어리들로 분해되어 더욱 질좋은 자사니로 거듭나게 되는데 이것을 쇄니( 泥)라고 한다. 그 다음에 상·중·하 등으로 등급을 분류한 다음 철분(鐵分)이 산화(酸化)되면서 부착된 이물질(異物質)들을 제거하고, 분쇄기(粉碎機)로 분말을 낸다. 이전의 분쇄작업은 엄청난 육체노동을 요하는 것이었지만 1960년 전후에 분쇄기를 사용한 석마마니분(石磨磨泥粉) 제법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돌로 된 분쇄기 대신에 기계화된 뇌몽기(雷蒙機)를 써서 분쇄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니료는 진공화가 되어 생산량과 효율성이 높은 편이다. 이 결과 수작업으로 분쇄하는 흙의 섬세함이 60눈 전후인데 비해 분쇄기의 것은 100눈 이상이 되었으며, 100눈에 해당하는 것은 지나치게 섬세하여 기포(氣泡)가 들어갈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60눈의 진흙은 구웠을 때에 알갱이의 황세(荒歲)로부터 오는 수축율 차이에 의해서 자연히 표면이 울퉁불퉁 한 귤피(橘皮)와 같은 기분이 들고, 자사기의 안쪽에는 세세한 내향성 구멍이라고 불리는 틈새가 생겨 이것에 의해 3% 전후의 흡수율을 유지한다. 그러나 기계로 분쇄한 것은 소성 후 자연스러운 이피(梨皮)의 느낌은 사라지게 되고, 내부의 흡수율도 1% 정도로 감소된다. 다구로서의 자사 다기의 우위성은 이 자사니의 섬세함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는데 고호(古壺)가 진귀(珍貴)하고, 고호로 우려낸 차의 맛이 다르다는 것도 이러한 점이 원인이 된 듯 하다.
② 소성(燒成) 소성을 하지 않은 자사 원석은 모래와 같이 점성( 性)이 없어 물과 배합을 하더라도 차호를 만들 수 있는 니료(泥料)가 되지 못하므로 원석을 채광하여 자연에 그대로 방치하여 진화(陳化)가 된 자사를 다시 잘게 부수면서 불에 굽는 과정을 소성이라고 한다. 소성과정을 통해 일반 도토가 가지는 점성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사라는 암석만이 가진 독특한 특성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소성을 하고 나면 그것을 가루로 내어 곱게 만들고 물과 배합하여 진흙덩어리와 비슷한 형태로 만든다.
③ 양토(養土) 채굴 후의 자사니 원광석은 노천(露天)에서의 풍화작용을 거친 후 잘게 부수면서 소성하여 분말(粉末) 상태로 만든 다음에 필요로 하는 굵기의 체를 이용한 선별작업을 거쳐 물을 부어 반죽하여 진흙덩어리와 비슷한 형태로 만든다. 진흙 같은 형태의 니료(泥料)를 가지고 곧바로 차호(茶壺)를 만들 수도 있지만 습도를 유지하면서 묵히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여 건조되지 않은 점토(粘土) 상태로 보관하는 것을 부니(腐泥), 존방(存放) 또는 진방(陳放)이라고 한다. 존방을 함으로써 불완전하게 공존하고 있던 흙의 성질과 암석의 성질이 서로 작용하여 독특한 성질을 가진 물질이 된다. 수분이 균등하게 분포되고, 자사니료의 숙성(熟成)으로 유기물질은 분해되어 그 성질이 변화되는데 이를 양토(養土)라고 하며, 오래 묵힌 니료일수록 더 좋은 가소성(可塑性)을 가진다. 그러나 묵히는 시간이 너무 길면 산화에 의한 변질이 생길 우려가 있으므로 오래 묵힌다고 반드시 더 좋은 니료가 되는 것은 아니며, 1년 정도 묵히면 충분히 쓸 만하다. 양토의 장점은 가소성을 향상시킬 수 있고, 가마에서 소성과정 중에 변형(變形)이 적고, 자사호로 성형한 후에 자사호 표피(表皮) 결정(結晶)의 온화한 색감이 장시간 지속되는 등 양토에 따라 변화가 매우 크다. 따라서 오래 존방한 니료일수록 자사차호를 만드는 좋은 재료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자사니료를 일러 노니(老泥)라고 부른다.
(4) 자사니(紫砂泥)의 특성(特性)
자사니(紫砂泥)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국 의흥지방에서만 생산되는 독특한 도기의 재료로 일반 도자기 재료와는 다른 특수한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도자기(陶瓷器) 제작에 필요한 화학적 광물질 요소를 구비하고, 점토 광물의 함량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양질의 자사니로 만든 자사호는 냉열(冷熱)의 급변성이 좋고, 쉽게 파열되기 않으며, 일반적인 자기다기와 비교를 할 수 없는 최상의 다구로 자사호의 형태미는 독특한 조형의 아름다움이 장점인데 제조 후에 흡수율과 배기율이 알맞아 차를 우려내면 색, 향, 맛이 모두 훌륭하다. 중국 남방의 자기 원료와 유사한 특징을 가진 자주색의 모래 점토인 자사니는 고령토, 석영, 운모 계통의 점토로 화학적인 성분으로는 산화규소, 산화알미늄, 산화칼륨, 산화철, 산화칼슘, 산화마그네슘, 산화나트륨, 산화티타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퇴적형(堆積形) 점토에 속하고, 가소성(可塑性) 지수는 10.47∼17.5 사이로 중고(中高) 가소성에 속한다. 또 점토상으로 정형(定型)하기 쉽고, 보수성(保水性) 역시 우수하여 미완성인 채로 장기간 두어도 곧바로 재가공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자사니(紫砂泥)는 이상적인 가소성(可塑性)을 가지고 있으며, 강도가 높고, 수축률(收縮率)과 건조율(乾燥率)도 낮아 소성시 쉽게 변형되지 않는 소성(燒成)에 가장 알맞는 조건을 갖추고 있어 1,100℃∼1,200℃의 고온에서 구우면 광택이 나고 견고한 자사기(紫砂器)가 된다. 10% 이하로 낮은 수축율은 호개(壺蓋)와 본체의 일체감을 내기 위한 주된 요인이 되고 있으며, 운모 입자(粒子)가 돈의 알갱이와 같이 반짝반짝 빛이 나서 높은 품위를 갖추고 있다.
① 가소성(可塑性)이 높아 다양한 제작방법을 통해 자기의 창작의도를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다. ② 건조 및 소성시 수축률(收縮率)이 적다. 자사 도기는 성형된 상태에서 소성 과정에서 약 8∼10% 정도가 수축하는 낮은 변형율을 가지며, 찌그러지거나 건조시 갈라져 틈새가 생기는 등의 불량률이 낮은 편이다.
③ 자사니에 다른 원료를 첨가하지 않아도 단독으로 그릇을 만들 수 있다. ④ 자사니의 분자구조는 비늘조각 형태의 구조이기 때문에 다구 제작에 적합하다.
(5) 자사니(紫砂泥)의 종류(種類)
의흥(宜興)에서 출토되는 자사(紫砂) 광석은 크게 자니(紫泥), 홍니(紅泥), 녹니(綠泥)의 세 종류로 분류하며, 소성(燒成)을 거친 자사니는 자니(紫泥), 주니(朱泥), 녹니(綠泥), 단니(段泥), 흑니(黑泥) 등 다섯 종류로 분류한다. 그러나 니료를 사용하는 사람과 원석을 중심으로 구분하는 것이 조금씩 달라 같은 명칭을 쓰더라도 구분하는 기준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를 수 있어 자사호를 처음 구입하거나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혼돈(混沌)을 초래하는 등 어려움이 있어 자사 원석과 니료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자사(紫砂) 원석(原石)의 종류(種類) 자사(紫砂)는 자니(紫泥), 홍니(紅泥), 녹니(綠泥, 단니(緞泥)라고도 함)의 세 종류를 통칭하여 자사니(紫砂泥)라고 하는데 자사의 원석(原石)은 자니(紫泥), 홍니(紅泥), 녹니(綠泥)의 세 가지로 지표(地表)에서 가장 가까운 층에 있는 것이 자니이고, 홍니는 자니보다 더 깊은 층에 존재하며, 녹니는 매우 적은 양이 자니와 홍니층 사이에 심지처럼 박혀있다. 자사니(紫砂泥)는 소성(燒成) 과정을 거쳐야 점성( 性)이 생겨 차호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되는데 자사의 원석이 소성 단계를 거치게 되면 점성이 생기는 한편 새로운 색채가 나타나는 색의 변화를 가져 온다. 자니 원석을 소성시키면, 자색(紫色), 이피(梨皮 : 배껍질)색이라고 부르는 황색(黃色), 회흑색의 남니(藍泥, 중국 사람들은 이것을 흑색(黑色)이라고 표현하고 있다.)의 세 가지 최종 니료(泥料)가 나오고, 석황(石黃)이라고도 부르는 홍니를 소성시키면 붉은색인 주니(朱泥)와 남니 두 종류의 최종 니료가 나오며, 외형상 광석의 외면에 녹색을 띠는 녹니(綠泥)를 소성시키면 황니와 녹니 두 종류의 최종 니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양질의 녹니는 거의 없는 형편이이서 과거에 채굴하여 풍화(風化)시킨 것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을 쓰고 있으며, 다른 니료로 만든 차호의 부속물로 치장을 할 경우나 다른 니료와 섞어서 사용할 경우에 소량의 녹니를 쓸 뿐이라고 한다.
2) 자사(紫砂) 니료(泥料)의 종류(種類) 위에서 살펴본 세 종류의 자사는 광산(鑛山)의 지대(地帶), 광층(鑛層)의 차이, 가공 과정의 차이 및 소성시 온도 등에 따라 그 색깔이 예측할 수 없이 변화무쌍(變化無雙)하고, 미묘하며, 기교(技巧)가 뛰어나 많은 색감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대개 5가지 종류의 색상이 나타난다. 이 가운데서 자니(紫泥), 주니(朱泥), 그리고 녹니(綠泥, 단니(段泥) 또는 본산녹니(本山綠泥)라고도 함)의 니료를 자사다기의 기본 삼원색(三原色)이라고 하며, 자색(紫色)을 띠는 자니, 붉은빛의 주니, 회흑색의 남니(藍泥, 중국 사람들은 이것을 흑색(黑色)이라고 하여 흑니(黑泥)라고 표현하고 있다.), 풀빛의 녹니, 배껍질색의 단니(段泥)를 자사의 5색이라 부른다. 한편 진부(陳腐) 과정을 거친 자사는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원석의 5가지 빛깔을 낼 수 있는 부분들이 고루 섞이게 되는데 소성을 하면 대부분 자색을 띠게 되는 자니는 재료의 성질상 청수니(淸水泥), 소성할 경우 원료 자체가 자색을 띠는 진자니(眞紫泥), 주니와 흑니 성분이 일정하게 섞인 병배자니(幷配紫泥, 줄여서 병자니(幷紫泥)라고도 함) 세 가지로 나누어 진다. 그러나 강소성(江蘇省) 공예명인인 판쯔핑(潘持平)은 병자니(幷紫泥)는 1970년대 들어와 천청니(天靑泥)의 양이 워낙 적어 자사공예창에서 원료를 합성하는 방법으로 천청니와 유사한 원료를 재현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① 주니(朱泥) 주니는 의흥시(宜興市) 정산(丁山) 조장산(趙庄山)의 석황눈니(石黃嫩泥) 광산에서 채굴하여 엄선한 부드러운 자사니료로 원석은 석황석이며, 짙은 귤색을 띠고 있다. 주니는 홍니(紅泥) 중의 고급 재료로 이산화규소, 석영 등 여러 종류의 특수한 천연 광물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며, 포다시 탕색(湯色)이 아름답게 변한다. 다량의 철분이 함유되어 있어 열 반응에 민감하고, 소형 차호의 형성만 가능하며, 가마온도 1,080℃에서 만들어진다.
② 자니(紫泥) 자사니(紫砂泥)는 강소성(江蘇省) 의흥 황룡산(黃龍山)에서 생산되며, 광맥 속에 철재 요소가 비교적 높고, 생산된 차호는 소성 과정 중에 작은 융해점(融解點)이 생길 수도 있다. 자사니료 안에 포함된 과립(顆粒)은 비교적 크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명확한 숨구멍 구조를 이루고 있어 공기가 쉽게 대류한다. 이 자사호는 장시간 사용하면 점점 숨겨진 색이 드러나며, 차호의 변화를 양성하는 자사호의 양호에 가장 큰 의미를 둔다.
③ 홍니(紅泥) 황룡산에서 생산되는 홍니는 초기부터 가장 애호하던 자사로 원석(原石)은 오색토(五色土)이고, 오렌지색을 띠고 있어 석황니(石黃泥)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 주니(朱泥) 원료 가운데서 추출한 것이다. 산화철 함량이 많아 열 반응에 민감하고, 소성(燒成)하면 자주색 혹은 해당화색으로 변하며, 차호의 소성 과정 중 작은 융해점이 생길 수 있다. 크고 작은 크기의 차호(茶壺)를 만들 수 있으나 생산량이 적어 고급 자사기 제작에서 색상을 돋보이게 하는 원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자주색 진흙으로 제작된 기면에 이 흙을 바른 다음 소성하면 핑크색을 띠게 된다. 포다(泡茶)시 아름다운 탕색을 띄며, 오랫동안 사용하다보면 점점 숨겨진 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④ 단니(緞泥) 단니는 초기에 가장 흔하게 통용된 의흥 황룡산의 자사니료로 본산녹니(本山綠泥)라고도 하며, 원래 광산으로는 련이성을 든다.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대부분 도자기 외면에 나타나는 도료 등에 사용하며, 자색의 진흙에 이 흙을 넣어 소성하면 분홍색과 녹색이 어울린 색상을 나타낼 수 있다. 자사니료 안에 포함된 과립(顆粒)은 비교적 크고, 구조면에 있어 명확하게 숨구멍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공기가 거침없이 대류한다. 오랫동안 사용하다보면 점점 서슬이 드러나며, 변화를 양성하는 것이 양호하는 즐거움이다. 초기의 가마는 온도가 저온으로 부터 오르기 시작하여 긴 시간을 요했기 때문에 단니 상품을 토흑(吐黑)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최근에 사용하는 가마는 거의가 고온 가마이므로 더 이상 긴 밤을 토론(討論)한다는 뜻의 토흑(吐黑)이라는 말은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⑤ 청수니(淸水泥, 紅淸水泥, 天靑泥) 순자니광에서 나오는 청수사(淸水砂)가 바로 청수니(淸水泥)이며, 고대 도예가들이 가장 선호하며 좋아한 니료로 광산지(鑛産地)는 강소성 의흥 정산 황룡산이다. 원광석의 자사에 적철광, 운모가 더하여진 자사니로 의흥 정산의 도자예인(陶瓷藝人)들은 보니(普泥)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다른 말로는 홍자니(紅紫泥)라고 하기도 한다. 홍자니(紅紫泥), 청수사(淸水砂)라고도 불리고 있으며, 홍청수니, 천청니 등은 극소량이어서 극품(極品)으로 분류되는데 홍청수니(紅淸水泥)는 청수니 중의 청수니로 극품(極品)에 속하는 자사니료이며, 일반 청수니보다 양호(養壺)시의 아름다움은 극에 달하나 생산량은 극히 미미하다. 물과 배합시 안정성과 점성이 높고, 성형이 용이한 것이 특징이며, 소성시에 주의를 기울여 기화철과 석회질을 가려내고, 소성하여 완성된 작품은 자사니의 특징을 모두 갖춘 완벽한 자사호로 탄생된다. 청수니의 색감은 순수하고 부드러워 문인(文人)의 기상(氣相)이 배어 있다고 말하는데 온화한 품질은 고상하고, 우아하며, 양호(養壺)를 할수록 붉은 광채를 띄고, 차를 마실 때 훌륭한 맛과 향을 나타낸다. 사용하는 사람과 쉽게 친숙한 공감이 들게 하며, 명(明)나라 초기의 도공들도 가장 애호하던 니료로 오랜 기간 양호를 거치면 더욱 더 붉은 빛깔에 화사함이 부드럽게 전개됨을 볼 수 있다. 청수니로 제호된 자사호를 장기간 사용한 후 느끼는 농후(濃厚)한 아름다움은 가히 따를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포다시에는 열탕의 온도가 장시간 지속되어 차의 향과 맛을 보존하는 기능이 탁월(卓越)하다.
⑥ 자조청(紫皂靑) 원광은 자사로 강소성 의흥시 정산 황룡산계 4호정에서 생산하고, 자니 원광의 맨 밑바닥부분에서 채광하며, 그 생산량이 미미하기 때문에 그만큼 희소성이 있는 니료이다. 품질은 순수하고, 섬세하고, 아름답고 요염하며, 자홍색을 띠는 희소한 자사니료이므로 근대 자사호의 명인(名人)만이 사용할 정도로 사용자를 규제하고 있다.
⑦ 저조청(底糟靑) 원광은 자니로 분류되며, 이조청과 저조청으로 나뉘는데 저조청과 청수니는 동일하게 자니층면에 속한다. 강소성 의흥시 정산 황룡산계 4호정에서 생산되는데 청수니는 자니광층의 중저부에 분포되어 있지만 저조청은 말 그대로 자니 원광석의 가장 밑바닥에서 극히 소량만이 채광되며, 소성시의 온도에 따라 색감이 달라진다. 황룡산의 저조청은 거의 고갈(枯渴)된 상태이며, 근대 자사호 명인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자사니료의 명품이다. 저조청으로 만든 자사호의 순수한 품질은 섬세하면서도 중후하며, 양호(養壺)시 갈색(褐色)에서 빛이 나는 홍갈색으로 변화됨을 볼 수 있다.
⑧ 대홍포(大紅袍) 작은 탄광 광산지대를 끼고 있는 의흥시(宜興市) 보동향(洑東鄕) 서면(西面)의 임길촌과 훙웨이촌에서 채굴되는 눈니대홍포(嫩泥大紅袍)는 산화철을 포함하고 있는 부드러운 니료로 희소하다. 정제하는 과정은 천연의 연지와분과 같은 적색이며, 가마에 소성시 더욱 진한 적색으로 변화한다. 자사니료의 품질이 섬세하고, 밀도(密度)가 조밀(稠密)하며, 음다(飮茶)시 유순하게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양성의 빛깔과 광택의 아름다움은 차의 음다를 통해 기쁨을 주며, 양호를 하면서 홍색의 즐거움을 준다.
⑨ 난산주니 또는 소홍니(蘭山朱泥 又 小紅泥) 의흥시 동쪽의 광산지대에서 채굴한 부드러운 니료로 난산주니 또는 소홍니라고도 부른다. 니료에 대량으로 포함된 산화철은 가마에서 소성을 거친 후에는 주홍색의 적색(赤色, 중국에서는 이를 샤오홍(小紅)이라고 함)으로 변하고, 니료(泥料)의 품질이 섬세하고, 높은 밀도(密度)를 가지고 있으며, 포다(泡茶)시에 좋은 맛을 음미할 수 있다.
⑩ 흑철사(黑鐵砂) 황룡산의 원래 광산의 자사 중 망간이 다소 포함된 자사인 흑철사는 초기에 가장 흔하게 통용된 자사니료 중의 하나이다. 광맥 속에 철재 요소가 비교적 높고, 차호의 소성과정 중 작은 융해점이 생길 수 있으며, 완성된 차호는 양호과정을 거쳐 새로운 색감의 차호로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새 차호는 양호시 대략 모래의 기체가 나타나고, 차호를 사용하면서 양호를 거치면 거무스름하게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⑪ 내자외홍(內紫外紅) 이 차호는 청수니(淸水泥)를 재료로 제호(製壺)하였으나 제호 후에 다시 붉은 홍니로 차호의 표면을 성형하여 다시 가마에서 소성시킨다. 이 방법은 당시 초기의 자사호에 흔히 있는 방법으로 포차(泡茶) 후 한동안이 지나면서 주홍색으로 변색하기 시작하며, 현대에 와서는 이 방법의 소성은 극히 드물게 사용한다.
⑫ 자가니(紫茄泥) 황룡산맥의 자니에서 선택하여 나온 자사니료 중의 최상품인 특별한 자사니료로 대단히 얻기 어려워서 희소성이 있으며, 석영과 운모, 철의 함량이 높고, 점성( 性)이 매우 훌륭하다. 니료의 색은 자주색의 가지 빛깔로 광택은 온화하면서도 굳게 윤택이 나며, 음다시 평가는 특별하다.
⑬ 흑록니(墨綠泥) 자사니료 중의 하나로 심록색(深綠色)을 띄고 있는데 수공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으며, 본산(本山)의 녹색 니료 중에서 선별하여 자니를 더하여 제조한다. 착색의 금속산화물인 산화코발트, 산화망간을 포함하고 있으며, 가마에서 소성과정을 거치면 흑록니로 태어난다. 철색의 깊이 있는 자사색채를 띠기도 하며, 산화코발트, 산화망간 등의 함량에 따라서 그 색채가 결정된다.
⑭ 황룡산석황(黃龍山石黃) 가장 환영받고 있는 자사니료로 황룡산의 자사광산에서 채광되며, 니료에 들어있는 모래(砂)의 함량이 품질을 좌우한다. 근대에는 주니호 원료를 만드는 것에 사용되었으나 근래에는 방고주니호( 古朱泥壺)를 제호(製壺)하는데 많이 사용된다.
⑮ 철성니(鐵星泥) 황룡산맥의 자니(紫泥) 중에서 선택된 특별한 니료(泥料)로 채광한 자사니료 암석 중 최상품인 니료이다. 가지의 자주색 빛을 띠며, 뼈처럼 굳고, 윤택이 나는 이 니료는 대단히 얻기 어려워서 희소가치가 있는 니료로 점성이 좋고, 석영, 운모, 적철광 등의 함량이 매우 많은 것이 특징이며, 초기에 자사호를 만들어 비교적 많은 디퍼플의 가지색 빛깔과 광택을 얻었다. 생산한 자사호는 밀집한 작은 융해점이 생길 수 있고, 숨구멍 구조가 명확하게 쌍을 이루고 있어 공기가 거침없이 숨구멍에서 대류한다. 사용할수록 점점 서슬이 드러나며, 양호(養壺)하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고, 음다시의 평가는 특별하다.
◉ 세흑성자사(細黑星紫砂) 황룡산맥의 자사니 중에서 선택된 특수한 자사니로 초기 자사호를 만들때 비교적 많이 사용되었으며, 자사 광산에서 채광한 자사 중 최상품에 속한다. 니료의 색은 얕은 갈색과 가는 검은 색의 과립(顆粒)을 띠고, 빛깔과 광택은 온화하게 깊은 맛을 내며, 얻기가 어려워서 희소가치가 있다. 점성이 훌륭하고, 석영과 운모, 적철광의 함량이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며, 생산한 자사호는 니료의 구조가 밀집하여 작은 융해점이 생길 수 있고, 명확하게 숨구멍 구조에 쌍을 이루어 공기가 숨구멍에서 자유롭게 대류한다. 사용하면서 양호를 하다보면 점점 서슬이 드러나며, 음다시의 평가는 특별하다.
◉ 병자니( 紫泥) 현재 자사시장에서 수용도가 매우 높은 자사니료로 성형(成形)이 용이하여 많은 자사호 제호에 사용되며, 가마에서 소성시 자주색이 변색되어 갈색을 띄게 된다. 완성품은 안정성이 있고, 구조가 긴밀하며, 광범위하게 성형이 쉬운 점을 특성으로 들 수 있다.
◉ 갑자년자사(甲子年紫砂) 1984년 갑자년(甲子年)에 강소성 의흥 황룡산을 굴착하여 얻은 자사니의 명칭으로 광맥 속에 철재 요소가 매우 높고, 생산한 자사호는 소성과정에서 가늘고 작은 융해점이 생길 수 있다. 자사니료 안에 포함된 과립(顆粒)은 비교적 크고, 광물 함량이 풍부하고, 구조가 푸석푸석하며, 숨구멍 구조가 명확하게 쌍을 이루고 있어 공기가 거침없이 숨구멍에서 대류한다. 오랫동안 사용하다보면 점점 서슬이 드러나고, 변화는 양호하는 최고의 기쁨을 선사하며, 완성품으로 차를 음다한 평가는 매우 좋다.
◉ 노자니(老紫泥) 자니(紫泥) 계열로 암석층의 하단(下段)에 있기 때문에 채취에 어려움이 있으며, 겉은 자색이나 속은 홍색을 띠고 있다. 최초에 채취할 때에는 암석모양의 덩어리로 되어 있지만 자연상태에서 풍화작용(風化作用)을 거친 후 콩알만한 크기의 덩이로 부수고, 이를 분쇄시킨 후 진흙 형태로 만들어 두드려서 자사호 재료로 사용하며, 1980년대에 정련(精鍊)된 자사이기 때문에 현재는 물량이 거의 소진(消盡)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출처 : http://blog.daum.net/xinawe/15281050/시나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