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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운에세이] 나도 귀성행렬에 한몫 끼었다
살다 보니 온갖 경험을 다 하게 된다. 대체로 경험은 나이와 비례하는 것이 기에 사람은 일단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살아온 세월이 짧은 것이 아닌 데도 지금의 내가 스스로 오래 살았다 하자니 아직은 어딘가 좀 격이 맞지가 않는 것도 같다. 내 자식들이나 나를 아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이상하게 여길 지도 모르겠다.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일찍이 그의 시 <곡강(曲江)>에서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하였거늘, 아무리 지금이 21세기로서니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설과 추석 양대 명절 때가 되면 으레 주요 뉴스 거리로 등장하곤 하는 것이 귀성 및 귀경에 관한 교통정보 소식이다. 한때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라고만 여겼던 사건이라 그 문제가 나 자신의 관심사가 되리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귀성행렬에 드디어 내가 한몫 끼어들게 된 처지가 되었다. 그야말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팔자인가 보다. 젊었을 때라면 몰라도 늘그막에 그 귀성전쟁에 나까지 동참을 하게 되다니! 죽을 때까지 줄곧 살아온 곳에 그대로 눌러지내면야 이런 소동은 겪지 않아도 될 터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나 자신도모를 일이다. 역마살(驛馬煞)이 낀 사람의 삶이 이런 것인가.
어쨌거나 새로운 경험은 어떤 형태, 어떤 성격의 것이 됐건 다 그것대로 소중한 것이다. 파란만장한 생애도 좋고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 하는 인생도 모두 의미가 있다. 무사태평하게 탄탄대로만 걷는 인생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인생을 살자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며 그런 인생이란 존재할 수조차 없다. 세상만사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좋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좋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게 긍정의 힘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나의 귀성전쟁 참가도 의의가 없지는 않겠다.
설명절이 좋기는 좋다. 어찌 생각하면 귀찮고 성가시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마음을 고쳐 먹으면 명절의 진미를 만끽할 수 있다. 무사안일주의만 고집하게 되면 삶 자체의 의의가 없어진다. 그것은 독불장군의 행태요 이기주의의 발로다. 뿌리 없는 나무는 없다. 생즉동(生卽動)이다. 무슨 일이든 새로운 일거리를 자꾸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명절도 그래서 생긴 것이 아니겠는가. 설은 조상 대대로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전통이요 자랑스런 역사다. 콘도에서나 외국에 나가 호텔에서 제사 지낸다는 해프닝을 연출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조상모독행위다. 귀신도 헷갈려 찾아 가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일가족 형제들이 반갑다. 차례 지내고 세배하고 덕담을 건네고 음식을 나누는 자리가 여유롭고 참으로 보기 좋다. 아무리 생활전쟁이 치열해도 쉼과 휴식이 있어야 하고 멈춤도 있어야 한다. 질주만 하는 열차를 상상해보라. 이런 명절이라도 없으면 멀리 사는 사촌은 그야말로 이웃만도 못한 삭막한 세태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눈에 없으면 마음에도 없다'는 말은 허투루 여길 말이 아니다. 사람 사이에 인정과 정서가 메말라가는 세상에서는 정상적인 성장이며 올바른 인격형성을 기대할 수 없다. 그 출발점은 우선 원만한 가족관계에서부터이다.
설 하루 전 귀성길은 약간의 지체가 있었으나 귀경길은 한결 수월했다. 내려갈 때는 영동과 중앙고속도로를 번갈아 탔다. 아들이 운전하고 나는 중간에 한 구간 정도 거들기만 했다. 귀경길은 집사람과 이틀 늦게 오는 바람에 내가 시종일관 운전대를 잡아야만 했다. 오랜만에 43년 전 개통된 우리나라 고속국도 1호 경부고속도로를 택했다. 지금은 중간중간에 '졸음쉼터'가 여러 개 새로 만들어져 있다. 황간을 지나 대전 좀 못 미쳐까지는 아직 옛날 그대로 2차선으로 남아 있는 구간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도 428, 429, 430이라는 수치를 경부고속도로와 관련 지어 기억하고 있다. 거리, 경비, 소요시간이 그것이다.
귀경길은 신나는 드라이브가 되어 좋았다. 지체 구간은 거의 없었다. 대구 성서 형님댁을 10시경 출발해서 안양집에 도착한 시각이 2시도 체 못 되었다. 도중 옥천과 안성 두 군데 휴게소에 잠깐 들렸을 뿐이다. 아직은 인천 대구 구간 정도의 운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봄이 멀지 않았다. 올봄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자동차 여행을 할까 구상 중이다. 섬진강 매화마을도 다시 가보고 진해 벚꽃이며 육군대학 뒤산의 진달래도 보고 싶다. 고흥의 소록대교도 건너봐야 겠다.
2013. 02. 14. 인천 송도/草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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