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마리아님, 주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복되시나이다.”(루카 1,45)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거룩한 사랑의 마음인 예수성심을 기억하는 예수성심성월인 6월의 첫 토요일 성모신심미사를 봉헌하는 오늘, 이 미사 안에서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독서와 복음 모두 한 목소리로 하느님께 드리는 기쁨과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모습을 전합니다.
우선 오늘 복음 말씀은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고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들은 마리아가 자신의 친척 누이 엘리사벳을 찾아 유다 산악 지방을 방문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린 처녀의 몸으로, 그것도 아이를 잉태한 몸으로 홀로 산악 지방에 사는 친척 누이를 찾아 나선 마리아는 그 길에서 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혼잡했을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 이제 곧 일어날 그 모든 일들을 내가 과연 모두 감당해낼 수 있을까? 순간순간 떠오른 이 모든 상념들은 마리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때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도 하였을 것입니다. 이에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가 자신에게 말을 건넸을 때 언급했던 자신의 친척 누이 엘리사벳, 곧 모두들 아이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회자되던 엘리사벳이 늦은 나이에 하느님의 능력으로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녀를 찾아 나섭니다. 그녀를 만나 나의 이런 불안한 마음을 이야기하려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엘리사벳이라면 나의 이 모든 마음을 이해해주겠지, 부모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의 이 마음을 그녀라면 모두 이해해 주겠지라는 마음으로 마리아는 그 험할 길을 떠나 마침내 그녀의 집 문 앞에 당도했을 때 그녀의 마음을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뒤덮었을 것입니다. 그 때 문을 열고 나온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인사말을 듣고 바로 다음과 같이 응답합니다. 엘리사벳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42-43)
오늘 복음 말씀을 전하는 루카 복음사가가 분명히 언급하듯이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만나 이 인사말을 하며 성령에 가득 차 기쁨에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합니다. 그 순간 마리아의 마음을 엄습하던 모든 두려움과 불안함은 사라지고 엘리사벳이 성령에 가득 차 기쁨으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것과 똑같이 마리아 역시 엘리사벳의 찬가에 자신의 찬미 노래, 곧 성모찬송으로 응답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느님이 이루시는 일에 직접 동참한 이들, 그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의 아들을, 그리고 그 분을 준비하는 예언자 세례자 요한을 직접 자신 안에 모신 이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기쁨과 희망에 가득 차 찬미가를 부르는 모습을 전하는 오늘 복음 말씀은 오늘 독서의 말씀으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오늘 독서의 사무엘 상권의 말씀은 다윗 임금이 자신은 이스라엘 왕국의 임금으로서 화려한 향백나무 궁에서 살고 있는 반면, 자신을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선택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주시는 야훼 하느님의 계약의 궤는 보잘 것 없는 천막 안에 놓인 것을 부당하다고 여기고 하느님 계약의 궤를 모실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자 결심하고 그 뜻을 예언자 나탄에게 전하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이에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은 결코 인간이 지어 바치는 제한적 공간 안에 갇혀 지내시는 분이 아니심을, 하느님을 모실 외적 성전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지어 바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해 주시는 하느님을 향한 합당한 공경과 굳건한 믿음의 자세, 곧 하느님을 향한 내적인 믿음의 자세가 더욱 중요한 것임을 일깨워주십니다. 이에 다윗 임금은 그 같은 하느님의 뜻을 전해 듣고 주님께 나아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칩니다.
한편 오늘 화답송의 사무엘 상권의 말씀은 늦은 나이에 이르기까지 아이를 갖지 못하던 여인 한나가 성전에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한 후 얻게 된 소중한 아이 사무엘을 얻고 난 후,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전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화답송의 말씀은 그 같은 한나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주님 안에서 제 마음이 기뻐 뛰고 주님 안에서 제 얼굴을 높이 드나이다. 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에 제 입은 원수들을 비웃나이다.”(1사무 2,1)
“힘센 용사들의 활은 부러지고 비틀거리던 이들은 힘차게 일어선다. 배부른 자들은 양식을 얻으려 품을 팔고 배고픈 이들은 더는 굶주리지 않는다. 아이 못 낳던 여자는 일곱을 낳고 아들 많은 여자는 홀로 시들어 간다.”(1사무 2,4-5)
이처럼 오늘 독서와 복음 그리고 화답송의 말씀은 공통되게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그 곳에서 기쁨에 넘쳐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모습을 전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이 그러하고 늦은 나이에 하느님의 전능하심으로 아이를 갖게 된 엘리사벳이 그러하며 하느님의 선택으로 뽑힌 임금 다윗이 하느님 현존의 표지인 계약의 궤 앞에서 부르는 찬가가, 그리고 간절히 바라던 아이를 갖게 된 한나의 모습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오늘 말씀이 전하는 이들의 공통된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이 거하시는 곳,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곳에서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성체가 모셔진 성당에서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지, 과연 나는 오늘 말씀이 전하는 이들처럼 성체가 모셔진 성당에서 하느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느끼며 그 현존으로 기쁨과 희망의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이 전하는 이들은 하느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에 세상이 자신에게 가하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느님 그 분만으로, 그 분을 믿는 그 믿음으로 그 모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함께 하시기에 그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끼고, 그 누구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강하게 느끼고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보여준 이 믿음, 과연 그 믿음이 나는 갖고 있는지, 오늘 말씀은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 같은 점에서 오늘 성모신심미사를 봉헌하며 기억하는 성모님이야말로 그 믿음의 본보기가 되는 분이십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고서도 그 모든 두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신 분, 그 믿음으로 마침내 하느님의 어머니, 모든 믿는 이들의 어머니가 되신 분이 바로 성모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믿음을 기억하는 오늘, 여러분 모두가 성모님의 그 믿음을 본받아 언제나 기도 안에서 성모님의 굳은 믿음의 삶을 따라 사시기를 그리하여 성모님과 같이 여러분의 삶 안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온전히 느끼고 체험하며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동정 마리아님, 주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복되시나이다.”(루카 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