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구 효목네거리에서 동대구역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대단지 아파트 하나가 눈에 띈다. 도로보다 낮은 지반에 세워져 마치 움푹 패인 듯한 태왕 메트로시티가 그것. 고도 제한으로 인한 고육지책이라지만 오히려 좋은 점도 많다. 무엇보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
그만큼 다른 아파트보다 조용하고 한적하다. 이곳 아파트가 더욱 주목을 받는 이유는 대구에 몇 안되는 재건축 아파트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재건축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효목주공아파트였던 이곳은 1973년 이래 20여년을 지탱해온 건물들이 갈라지고 구멍이 뚫리는 등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주민들은 총회를 통해 재건축을 결정했고 새 아파트를 기약하며 하나둘 이사를 가기 시작했다. 이남연(58) 입주자대표회장은 “대부분 곧 되돌아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멀리 가지 않고 인근에 머물렀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터져 당시 시공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재건축은 커다란 암초에 걸렸다. 이 회장은 “당시 2년 뒤에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던 조합원들 모두에게는 날벼락이었다”라고 했다.
공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빚 때문에 개인 파산을 하는 조합원들도 적지 않았다. IMF 이후 천정부지로 오른 은행 금리를 감당 못해 심지어 조합원 직위를 파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이재선(69) 동대표 위원은 “당시 조합원들이 고생한 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피나는 노력과 대구시나 동구청 등 자치단체들의 도움은 결실을 이뤘다. 2001년 당시 시공사마다 공사를 꺼리던 이곳을 태왕이 재건축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도 너무 오랫동안 재건축이 안돼 다시 입주한 조합원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입주민들 가운데 효목주공아파트 시절부터 살았던 사람은 전체의 30%도 안 된다.
갖은 우여곡절 아픔을 겪기는 했지만 이곳은 이제 남부럽지 않은 아파트로 다시 태어났다. 기존에 살던 조합원들도 지금의 아파트에 대해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주민들은 자랑거리를 열거한다. 단지 내 주도로를 따라 1층에 상가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선희(46`여)씨는 “단지 내에 웬만한 상가들이 자리하고 있어 멀리 나갈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또 건물 사이의 공간이 넓은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신미숙 관리소장은 “대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큼 대지 면적이 넓은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아파트의 매력은 아파트 단지를 빙 둘러가며 만들어진 산책로. ‘휘트니스 벨트’라 불리는 이 산책로는 2.8㎞에 달해 아침, 저녁으로 주민들의 운동코스로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산책로를 따라 연산홍이나 매실, 벚꽃 등 수많은 수목들이 피어있어 봄이면 꽃대궐을 이룬다. 곳곳엔 운동기구나 벤치 등 편의시설도 충분하게 마련되어 있다.
이 회장은 “여러 가지 시설 면으로 봤을 때 이제 이곳은 동구를 대표하는 아파트 단지로 거듭났다”라고 밝혔다.
109동 402호에 사는 정지완(67`사진)씨는 ‘라켓볼의 대부’라 불린다. 라켓볼이란 스포츠가 생소하던 약 20년 전 정씨의 손에 의해 라켓볼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25살 때부터 미 8군 체육관에서 행정을 봤었죠. 그 때 미군들이 라켓볼을 치는 모습을 처음 목격했어요. 그 뒤 라켓볼을 손에 익히기 되었죠.”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못 먹고 살 시절이라 스포츠는 그저 뜬구름같이 여겨졌다. 하지만 정씨는 “언젠가는 스포츠가 우리나라에 인기를 끌 거라고 확신하고 라켓볼을 열심히 익혔다”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모 스포츠센터에서 코치직을 요청했고 지금까지 코치 생활을 17년째 이어오고 있다. 2000년부터는 경북대 체육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라켓볼도 가르치고 있다. 정씨가 지금껏 가르친 사람만 2만 명이 된다고 한다. 42년째 라켓볼을 해온 정씨는 “아마 우리나라에선 가장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정씨는 “라켓볼이 무척 격한 운동이라 인식되어 있지만 배우는 사람들의 60%는 여자일 정도로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라켓볼의 가장 큰 특징을 굉음이라 꼽았다. 정씨는 “벽에 때릴 때마다 나는 굉음으로 스트레스 해소에는 그만”이라고 자랑했다.
환갑이 훨씬 넘었는데도 여전히 라켓볼을 거뜬히 친다는 정씨는 몸이 허락할 때까지 라켓볼 활성화에 힘쓸 거라고 다짐했다.
이곳의 테니스동우회는 아파트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회원 수만 70여명에 이르는 ‘시티테니스동우회’는 그 만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시티동우회의 전신은 효목주공아파트 시절부터 있어온 ‘동그라미’. 1980년쯤 빈터에 테니스장을 만들어 30여명의 회원으로 출발했다. 그러다 재건축을 하는 동안 잠시 흩어졌다 다시 뭉친 테니스동우회가 시티동우회다.
회원들 대부분은 새로 입주한 주민들이지만 그 가운데는 효목주공아파트 시절부터 회원으로 활동했던 사람들도 더러 있다. 권세희(45) 동우회 총무도 그 중에 한명. 권 총무는 “재입주하고 새로 만들어진 테니스장을 찾았을 때 꼭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푸근했다”라고 말했다.
이들 회원들은 언제든 삼삼오오만 모이면 테니스 라켓을 든다. 한 달에 한번씩은 회원들끼리 월례 대회도 연다. 그렇다보니 실력들도 만만찮다. 2004년 동구연합회 단체부 우승, 2005년 동구청장배 준우승 등 화려한 입상을 뽐낸다.
권 총무는 좋은 시설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200평 규모의 테니장이 2개나 된다”라며 자랑이다. 권 총무는 “대구에 아파트 가운데 이만한 테니스 시설을 갖춘 곳은 찾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테니스 시설 때문에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주민들도 있다. 테니스를 친 지 10년쯤 되었다는 교사 김영환(51)씨는 “테니스장이 있는 아파트를 고르다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매일 2, 3시간씩 테니스를 친다는 김씨는 방학 때는 한 번씩 학교 제자들을 이곳으로 불러 테니스를 가르치기도 한다. 김씨는 “이곳 테니스장은 학교 건물에 가려져 특히 여름에 별 부담없이 테니스를 즐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