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의 주얼리 브랜드 기행 49. 다이애나 장(Diana Zhang)
작년 여름 필자는 평소 친분이 있던 홍콩 주얼리 디자이너 다이애나 장으로부터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앤티크 주얼러 ‘마르탱 뒤 다포이(Martin du Daffoy)’의 초청 아티스트로 파리 앤티크 비엔날레(Paris Antique Biennale)에 참가하게 됐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며칠 후에 내 이름이 적힌 VIP 초대장이 도착했고, 그렇게 앤티크 비엔날레 사상 최초의 아시안 여성 주얼리 디자이너로 데뷔한 그녀를 축하하기 위해 나는 파리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프렌치 럭셔리’의 핵심으로 일찌감치 자리잡은 앤티크 비엔날레는 파리 국립 앤티크 조합(Syndicat National des Antiquaires)의 회원에게만 초청 형식으로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 권위 있는 전시다. 출품작 하나하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작년 비엔날레에서 파인 주얼리는 총 14개 브랜드가 참가했다.
1964년부터 참가한 까르띠에와 부쉐론 같은 명실공히 베테랑 하우스부터 2006년 합류한 패션 하우스의 ‘파인 주얼리 레이블’ 샤넬과 디올, 세계적인 주얼리 아티스트, 그리고 앤틱 주얼러까지 파인 주얼리 모든 분야의 핵심 멤버들만 모아놓은 종합 선물 세트다.
중국 북동부에서 태어난 그녀가 광저우에서 성장할 당시 중국은 개혁과 개방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 영향으로 문화 혁명을 겪은 10대 시절부터 다이애나는 패션, 주얼리, 미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창작이라는 작업에 눈을 뜨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사물이든 인물이든 아름다운 존재를 사랑할 줄 알고 그것으로 자신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완벽주의 성향은 그녀의 미학을 발전시키는데 데 주요 요소로 작용했다.
때로는 엉뚱하고 재치 있는 아이디어가 작업 구상에 큰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주얼리 관련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그녀가 추구하는 완벽한 장인정신과 독특한 예술세계는 그녀를 파인 주얼리 업계에서 눈에 띄는 아이콘으로 만들어주었다.
운명과도 같던 2013년, 스위스의 바젤월드(Basel World)에서 만난 마르탱 뒤 다포이의 CEO 시릴 드 포코(Cyrille De Foucaud)는 다이애나의 디자이너로서 혁신성과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2014년 파리 앤티크 비엔날레에 그녀를 협업 디자이너로 초청하면서 다이애나는 까르띠에와 반클리프 아펠 같은 유명 브랜드와 함께 작품을 전시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그전까지는 월리스 챈이 비엔날레의 유일한 아시안 주얼러였다).
그렇게 다이애나는 <중국의 일년>이라는 컬렉션을 통해 중국의 전통 문화와 장인정신을 겨울의 매화, 봄의 난초, 여름의 연꽃, 가을의 단풍과 대나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표현했다. 특히 중국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시 “춘란은 아리따운 사람 같아서/꺾지 않아도 자신의 향기를 바친다”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은 봄에 피는 난초의 나뭇가지와 꽃봉오리의 실루엣을 섬세하게 묘사해 엘리트층의 호평을 받았다.
한편 최근 발표한 오키드 킹(Orchid King) 컬렉션은 오일 처리되지 않은 6.20, 4.08, 1.98 캐럿의 콜롬비아산 에메랄드가 주요 보석으로 쓰였다. 여기에 5,500개 이상의 다이아몬드와 2,700개 차보라이트를 티타늄과 18K 골드, 그리고 화려한 색채의 에나멜 처리된 꽃 모양의 베젤에 더해 럭셔리의 진수를 뽐냈다. 목걸이는 브로치와 초커, 헤어 액세서리로 분리할 수 있어 다용도로 착용이 가능하다. 모든 보석은 그녀가 직접 까다롭게 선별하는데 멜리 다이아몬드조차 동일한 투명도와 컬러, 커팅으로 된 최적의 것을 선택하기 때문에 한 피스 당 10개월에서 2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작년 비엔날레에서 본 그녀의 주얼리 중 지금까지도 필자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한 점이 있다. 옐로 다이아몬드를 정확히 8.88 캐럿으로 연마하고, 8개의 대나무 모티브를 곁들여 총 네 개의 ‘8’을 만들었다는 반지였다. 중국에서는 8이 네 개가 모이면 완전한 의미가 된다는 부연 설명을 듣고서야 나는 그런 그녀의 노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도전 정신이 깃든 참신한 행보와 자국의 고전적인 미학을 하이 주얼리로 승화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출처:주얼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