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발, 황등행 열차는 20시에 떠나네 12회
....................................................
....................................................
그 사이, 서울에 있는 선옥의, 신변은 평화스럽지 못했다.
그 것의 원인은 국내의 정치 상황이었다. 즉, 1971년 4월 27일에 실시한 제 7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가 승리하자, 학생들은 그것을 인정 할 수 없다며 다시 부정선거 규탄투쟁에 나섰다. 그러자 당국의 조치로 5월 28일 서울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에 휴강 령이 내려졌다. 선옥이가 다니는 연세대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박선옥과 그의 애인 송민호는 반정부 투쟁 지하 서클을 조직했다. 그 아지트는 신촌 선옥의 집이었다. 그들의 투쟁 방식이란 길거리에서 최루탄 가스를 마시는 투쟁이 아니라 지하에 숨어 문화예술을 통한 투쟁 방식이었다. 그 것의 뿌리는 단연 김지하였다.
송민호와 박선옥이 그 투쟁방식에 적극 가담하게 된 것도 김지하에게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의 목적이란 하나의 이념 투쟁으로서 참다운 민주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려 민중이 골고루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즉, 박정희의 개발독재에서 파생된 여러 분야의 모순을 타파하고 민족통일, 민중해방, 민주쟁취의 구현을 행동목표로 하는 지하투쟁조직이었다.
그것의 물결은 흘러~흘러~ 전두환 정권시절에 '삼민투'라는 이름으로 다시 꽃을 피웠고, 당시, 학생운동의 모체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1970년대 민주화 학생운동의 그 취지와 근본은 어디서 나왔는가? 그것은 1960년대 학생운동의 대표적 예인 4,19와는 그 취지가 사뭇 다르다.
"4,19,그땐, 말이다. 학생과 시민들이 그냥 교정이나 가두에서 모였다가 즉석에서 시위행렬이 이루어 졌다고, 그리고 그 취지는 단순히 3,15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지금은 그 목적이 다양 해 졌다고."
이 것은 그 어느 날, 신촌, 박선옥의 집에서 그 뜻을 같이 하는 각 대학의 대표들이 모여 토론을 하던 중 송민호가 한 말이다.
"그렇지, 쌩콩의 말대로 4,19 그땐, 학생운동을 함에 있어서 무슨 조직 같은 것도 없었고, 또 뚜렷한 리더도 없었다. 좀 비하하자면 오합지졸이었지,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 뜻을 같이하는 모임을 갖는다는 것은 비단실의 날실과 씨실이 밀도 있게 짜여지는 것 같은 조직체다. 그렇다면, 그 명칭이 있어야 된다."라고 하는 녀석은 중앙대학 대표, 김영태였다. 그는 미술을 전공하고 있다.
"비단실의 날실과 씨실 같은 조직체!?! 과연 미대생다운 느낌표다. 헌데~그 명칭 문제는 좀 더 있다 논의하기로 하자, 그 먼저 우리가 이런 조직을 하자고 모인 그 원인을 분석해 보자고..." 송민호가 회의 진행상의 선후를 밝혔다.
"그것의 원인제공자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중앙정보부다. 에~ 그러니까 그들은 무력으로 학생들의 투쟁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용공조작도 서슴지 않았단 말이야, 그 구체적인 예로 1964년 8월 중앙정보부는 소위 인민혁명당 사건을 발표했잖아!? 인민혁명당 이라는 것이 도대체 뭐야? 그 실체가 있었냐고!? 그자들이 그냥 급조 한 것이다, 이거야!!" 라고 하며 분통을 터트리는 녀석은 서울법대에 다니는 민중태였다.
"인민혁명당 이라? 허허허, 그걸 누가 지어냈을까? 박정희, 아니면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아니면 미아리의 어떤 작명가가 지었나? 허허허 인민혁명당이라!? 자식들이 좀 지어내도 그럴 듯하게 지을 것이지 촌스럽게 인민혁명당이 뭐야,
그렇다면, 그 본부는 어디에 있나? 평양에 있나? 서울에 있나? 남산에 있나? 아니면 이문동 정보학교에 있나? 허허허 나 원 참 기가 찰 일이지, 허허허" 라고 하는 녀석은 서울 문리대에 다니는 허진우였다. 그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너털웃음을 잘 터트린다고 해서 '허너털'로 불리 운다.
"에~ 그러니까 그 사건은 검찰조차 공소할 수 없다고 거부한 전형적인 용공조작 사건 이 되었다. 그 후, 용공조작은 학생들의 대규모 투쟁이 일어날 때마다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처럼 사용된 단골 메뉴가 되었고..." 좀 전의 민중태가 다시 나섰다.
"민중태, 역시 범생이 다운 분석이다. 아하~ 그래서 우리는 학생운동을 하려면 조직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니냐고!?"다시 송민호의 말이다.
"그렇게 된 것이지, 그래서 우리가 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서울대의 한국사회연구회, 후진국사회연구회 같은 이념서클이 조직되어 운동을 과학화, 조직화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어 오늘 우리가 이곳에 모이게 된 이유다." 라고 하는 녀석은 고려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하는 유인수였다.
"자, 그렇다면, 아까 환쟁이 영태가 말 한대로 명칭문제를 거론하자." 송민호가 진행을 서둘렀다.
"그렇지, 내가 그 명칭을 하나 말해 볼까?"라고 하는 녀석은 경희대학 대표 설응수였다, 그는 음악을 전공한다.
"해보셔." 송민호가 고개를 까딱했다.
"양산박, 어때?"
"양산박?? 틀렸다, 우린 문화예술을 통해 정의롭지 못한 정권에 저항하는 단체다. 그런데 그런 폭력조직의 명칭은, 아니다. 라고, 생각된다. 음악을 한다는 녀석이 어째 그런 명칭을 생각했냐?" 송민호의 일갈이었다.
"그럼, 게르니카는 어떠냐?"하고 묻는 녀석은 김영태였다.
"오호!! 게르니카, 넌 환쟁이라서 그 생각을 한 것이냐? 괜찮은데!"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녀석은 설응수였다.
"게르니카?? 틀렸다. 그런 비참함의 상징을 왜 우리의 명칭으로 쓰냐?" 라고 하는 녀석은, 한양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는 손창민이었다.
"아무래도 양산박이 젤 나을 것 같은데. 아무리 좋은 이념과 정의의 쟁취도 힘이 있어야 된다. 힘없이 그것들을 우리 것으로 한다는 것은 공염불이다." 라고 하는 녀석은 동국대학에서 불교철학을 전공하는 유정민이였다.
"이봐 땡초, 불교철학을 공부한다는 녀석이 범법자들의 온상인 양산박을 추천하나? 또 그곳은 살상을 당연시했던 곳이 아닌가? 우린 그런 피비린내하고는 멀어야 된다. 우리의 뜻이 쏠리는 곳엔 문화예술을 통해 그 향기를 진동시켜야 된다." 라는 이유로 송민호가 또 반대했다. 여기에~
"쌩콩,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이 뭔 줄 알아?"박선옥이 물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