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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주현대불교 원문보기 글쓴이: 염화미소
상․중권 |
책 크기 |
31.3㎝ × 20.6㎝ |
제명 |
상권은 서외제와 내제 없이 첫 장의 제1행에 ‘육조법보단경서’라고 되어 있고, 중권은 표지 다음의 첫장 1행에 바로 章名인 ‘정혜일체 제3’이 나온다. | |
판심제 |
단경(상/중) | |
반곽 |
24.2㎝ × 15㎝ | |
판식 |
사주단변, 활자본이어서 사우공극(四隅空隙)이 있다. | |
판심 |
상하 대흑구, 상하 내향흑어미. | |
행관 |
유계8행 17자, 언해문: 16자, 협주: 작은 글자 쌍행 16자, 정음. | |
구결 |
방점 없이 작은 글자 쌍행. | |
하권 |
책 크기 |
26.5㎝ × 20㎝ |
제명 |
소장자가 최근에 개장한 뒤 서외제를 壇經下라 하고 오른쪽에 묵서로 “가정30년 신해”라 써 놓았다. | |
판심제 |
단경 하 | |
반곽 |
24㎝ × 16㎝ | |
판식 |
사주단변(복각본이어서 四隅에 空隙은 없다). | |
판심 |
상하 대흑구, 상하 내향흑어미. | |
행관 |
유계 8행 17자, 언해문 : 16자, 협주 : 작은 글자 쌍행 16자, 정음. | |
구결 |
방점 없이 작은 글자 쌍행(계선이 있으나 뚜렷하지 않다). |
언해 양식은 경 본문을 분단하여 정음 작은 글자 두 줄로 구결을 달고 언해문을 두었다. 언해문은 한 글자 공란을 두고 시작했다. 원문의 정음 구결은 오른쪽 줄 아래부터 작은 글자 두 줄로 적었으나 방점은 두지 않았다. 언해문의 한자에는 오른쪽 아래에 한자와 같은 크기의 글자로 독음을 달고 방점을 찍었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점은 한자의 注音이 당시까지 관판본 문헌에 주로 쓰이던 이른바 동국정운음이 아니고, 당시에 실제 발음되던 현실 한자음이라는 사실이다. 이 책의 간행 이전에도 단편적으로 현실 한자음이 쓰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 문헌에서는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언해문의 중간에 설명이 필요한 한자어나 불교용어가 나올 경우에는 작은 글자 쌍행으로 협주를 두되, 아무런 표시가 없이 삽입했다. 해설 부분과 하권의 守塔沙門 令韜의 후기도 작은 글자 쌍행으로 되어 있다.
육조법보단경언해 상․중․하 3권에 실려 있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상권: 서문 24장 (1ㄱ-24ㄴ)
오법전의 제1(悟法傳衣 第一) 83장 (1ㄱ-83ㄴ2행)
석공덕정토 제2(釋功德淨土 第二) 20장 (83ㄴ3행-103ㄱ, 103ㄴ 훼손)
중권: 정혜일체 제3(定慧一體 第三) 13장 (1ㄱ-13ㄴ6행)
교수좌선 제4(敎授坐禪 第四) 5장 (13ㄴ7행-18ㄴ6행)
전향참회 제5(傳香懺悔 第五) 30장 (18ㄴ7행-48ㄴ3행)
참청기연 제6(參請機緣 第六) 64장 (48ㄴ4행-111ㄱ, 이하 한두 장 낙장)
하권: 남돈북점 제7(南頓北漸 第七) 30장 (1ㄱ-30ㄴ4행)
당조징조 제8(唐朝徵詔 第八) 11장 (30ㄴ5행-40ㄴ5행)
법문대시 제9(法門對示 第九) 12장 (40ㄴ6행-52ㄱ7행)
부촉유통 제10(付囑流通 第十) 34장 (52ㄱ8행-85ㄱ, 85ㄴ/ 1면 공백)
후기(後記) 6장 (86ㄱ-91ㄴ3행)
간기(刊記) 및 각수질(刻手秩) 5행 (91ㄴ4행-91ㄴ8행)
Ⅳ. 어학적 고찰
육조법보단경언해는 훈민정음이 창제․반포되고 정확히 50년 후에 만들어진 불전언해서이다. 이 책은 인수대왕대비의 주도 아래 왕실의 內帑으로 간행되어서 관판본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반세기라는 시간의 경과가 반영된 듯, 정음 창제 초기에 간행된 관판 언해본들30)과 비교하면 표기 등 몇몇 예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음운 변화 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표기 원칙 같은 어떤 인위적인 기준의 변화가 더 강하게 작용한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선 초기 문헌에 등장하는 ‘ㅸ, ㆆ’ 등의 문자가 쓰이지 않고, 원각경언해(1465년) 이후 간행된 다른 정음문헌31)에서처럼 各自竝書 표기가 이 책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실제로는 원각경언해 이후에 간행된 문헌인 내훈언해(1465년), 두시언해(1481년), 불정심다라니경언해(1485년), 영험약초(1485년) 등의 책과 육조법보단경언해 이후에 간행된 책인 개간 법화경언해(1500년), 속삼강행실도(1514년), 번역노걸대․번역박통사(1517년 이전) 등의 문헌에는 各自竝書 중 ‘ㅆ’이 보이는데, 1496년에 간행된 책인 육조법보단경언해에는 예외 없이 ‘ㅅ’으로만 나타난다. 合用竝書는 앞 시대와 같이 쓰였다.
종성은 8종성에 의한 표기가 대체로 지켜졌으나 ‘ㅿ’이 쓰인 예가 있고, 체언의 음절말 자음 중 유성자음 ‘ㄴ, ㄹ, ㅁ, ᅌ’은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와 통합될 때 월인천강지곡(1447년)에서처럼 일부에서 분철한 예가 나타난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언해문에 쓰인 한자의 注音이 바뀐 점이다. 일부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32) 정음 창제 후 관판 문헌에서 일관되게 지켜지던, 개신음인 동국정운에 근거한 한자음 표기가 폐기되고, 그 당시에 실제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현실 한자음에 의한 주음 표기가 전면적으로, 그리고 정연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정음 초기 문헌에서 보이던 동국정운 한자음 주음 표기원칙에서 현실 한자음 주음 표기로의 일대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 책은 ‘法語’를 언해한 불전언해서이다. 훈민정음 초기에 간행된 대부분의 불전언해서들은 단조로운 문장 구성과 제한된 어휘 사용을 보이는데, 이 책도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다만 法門을 集錄한 ‘法語’라는 문헌의 성격 때문에 이 책만이 가지는 독특한 문장 구성에 의한 문체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물론 이러한 문체적 특성은 底本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이 점 다른 불전언해본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이 언해본의 문장 구성은 대부분 惠能이 깨우침과 관련하여 주변 사람들이나 門人들에게 묻고 대답하는 문답 형식과 說話者(집록자, 또는 책 편찬자)가 중간에 끼어들어 설명을 가하는 해설 형식으로 되어 있다. 묻는 이는 깨달음을 얻고, 배우기 위해 최대한 예의를 갖춘 공손한 표현을 할 수밖에 없어서 겸양법 선어말어미 ‘--’의 출현이 빈번하다. 또 話者인 惠能이 문인들을 부르고 설법하는 내용이 많아서 ‘善知識아 ~’ 云云의 호칭과 평서형의 설명법 어미 ‘-니라/리라’로 끝을 맺는 종결형식의 문장이 주로 쓰였다. 그런가 하면 설화자가 주어 명사인 혜능을 높이는 표현으로 인해 존경법 선어말어미 ‘-으시/으샤-’의 쓰임이 잦고, 역으로 혜능이 청자일 경우 듣는 이를 높이는 공손법 선어말어미 ‘--’가 많이 쓰이는 등 대체로 경어법 문장 사용의 폭이 넓다. 또, 물음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설정한 듯한 문형인 ‘엇뎨 ~ -고/오’식의 묻고 그것에 답하는 구성으로 된 의문형 문장도 다수 보이는데, 이는 저본인 한문본 육조법보단경에서 ‘何 ~’로 되어 있는 문형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육조법보단경언해가 보이는 문체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장에서는 앞에서 열거한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육조법보단경언해의 표기법, 음운 현상, 문장 구성, 어휘 등을 살필 것이다. 이 책의 언어 사실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는 남광우(1976), 김동소(2000ㄴ), 김양원(2000) 등이 있다. 남광우(1976)은 중권의 해제를 통해 서지 사항과 표기법 등 일부 언어 사실을 고찰한 것이다. 김동소(2000ㄴ)에서는 하권을 대상으로 하여 서지 사항, 표기법, 음운 현상, 어휘 등에 대해 정치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김양원(2000)은 상․중․하 3권을 대상으로 표기법 및 음운 현상을 폭넓게 살핀 것이다. 각각 이 책의 서지 사항, 표기법, 음운 현상 등에 대해 논의한 것인 바, 이 방면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다.33)
1. ‘ㅸ’과 ‘ㆆ’
육조법보단경언해에는 ‘ㅸ’과 ‘ㆆ’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정음 초기 문헌에 보이던 ‘ㅸ’은 이 책에서 예외 없이 ‘ㅇ, 오, 우’로 바뀌었다. 자립형식이나 活用形 모두에서 마찬가지다. ‘ㆆ’은 ‘-ᇙ+전청자’ 표기가 쓰이지 않고, 동국정운 한자음의 폐기로 이 문헌에 쓰인 예가 없다.
(1) ㄱ. 역[礫] <하: 23ㄱ> / <능엄 5: 72ㄱ>34)
ㄴ. 두려이[圓] <중: 91ㄴ> / 두려 <월석 9: 21ㄱ>
ㄷ. -와 <상: 1ㄴ> / - <석보 9: 31ㄴ>
ㄹ. 더러운[汚] <중: 76ㄴ> / 더러 <월석 2: 59ㄴ>
‘ㅸ’은 능엄경언해(1462년) 등 刊經都監 간행 문헌부터 전면적으로 폐기되어 이후 문헌에서는 일부의 예외[목우자수심결언해(1467) 등]를 제외하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몽산법어약록언해(?1459)35)와 능엄경언해에 예외적으로 쓰였던 ‘’이 여기서는 ‘역’으로 실현되고, 이후에 간행된 문헌의 활용형에 단편적으로 쓰였던 ‘ㅸ’은 모두 ‘ㅇ, 오, 우’로 바뀌었다. ‘ㆆ’은 정음 초기 문헌에서부터 국어의 초성 표기에 쓰인 적이 없고 사이글자나 동명사어미 ‘-ㄹ’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ᇙ’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문헌에서는 ‘-ㄹ+전청자’형 표기로만 나타나서 ‘ㆆ’의 용례가 없다.
(2) ㄱ. -가 <상: 27ㄱ>
ㄴ. -ㄹ디어다 <상: 55ㄴ>
ㄷ. -ㄹ제 <상: 1ㄴ>
동명사어미 ‘-ㄹ’과 의존명사 ‘’가 통합된 ‘ㄹ’ 등은 ‘-ᇙ’ 같은 형태로 적은 적이 없이 정음 초기 문헌부터 ‘-ㄹ’로만 적혔는데, 이 책에서는 각자병서 폐기로 ‘-ㄹ’ 형으로 표기되어 있다.
(3) 그럴 <상: 64ㄴ>, 이실 <중: 13ㄱ>
2. 초성병서
이 책에는 各自竝書 표기가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각자병서 표기는 원각경언해(1465) 이래 폐지되었으나, 원각경언해 이후에 간행된 일부 문헌과 단경언해 이후에 간행된 일부 문헌에 쓰인 예가 보인다. 그러나 이 문헌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合用竝書는 10가지(ㅺ, ㅼ, ㅽ, ㅻ; ㅳ, ㅄ, ㅶ, ㅷ; ㅴ, ㅵ) 중 2가지(ㅻ, ㅷ)가 보이지 않는다. <석보상절>에서 실현되었던 ‘ㅻ’(, 19:14ㄴ)은 이후 문헌에 나타나지 않으며, ‘ㅷ’은 이 문헌에 해당하는 어휘가 없어서 목록에 빈칸이 되었다.36)
1) 각자병서
원각경언해 전까지는 각자병서로 적혔으나 이 책에서 단일자로 바뀐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4) ㄱ. 말[言] <상: 12ㄴ>, 스니[書] <상: 26ㄴ>
ㄴ. 도혀[却] <중: 4ㄴ>, 드위혀[翻] <중: 89ㄴ>
ㄷ. 害가 <상: 27ㄱ>
홀딘댄 <상: 25ㄱ>, 마롤디어다 <상: 55ㄴ>
入定제 <중: 104ㄴ>
이실/그럴 <중: 13ㄱ>, 시라 <상: 3ㄱ>
각자병서는 정음 초기 문헌에는 8가지(ㄲ, ㄸ, ㅃ, ㅆ, ㅉ, ㆅ, ㆀ, ㅥ)가 나타나지만, 이 문헌에는 ‘ㅆ, ㆅ, ㄲ, ㄸ, ㅉ’이 쓰일 수 있는 어휘나 환경에서 모두 단일자형으로 실현되었다. (4ㄱ)은 정음 초기 문헌에서 각각 ‘말’과 ‘쓰니’로, (4ㄴ)은 각각 ‘도’와 ‘드위’로 표기되었었다. (4ㄷ)은 문헌에 따라 ‘-ᇙ가 ~ -ㄹ까’, ‘-ᇙ딘댄 ~ -ㄹ띤댄’, ‘-ᇙ디어다 ~ -ㄹ띠어다’, ‘-ᇙ제 ~ -ㄹ쩨’로 실현되고, ‘-ㄹ’는 ‘-ㄹ’로만 나타나던 형태이다.
2) 합용병서
이 문헌에는 합용병서의 사용이 활발한 편이다. 그 목록을 보이면 아래와 같다.
(5) <ㅺ> 거리[滯] <상: 75ㄱ>, 리[尾] <하: 28ㄴ>
<ㅼ> [又] <상: 3ㄴ>, 해[地] <중: 54ㄴ>
<ㅽ> 리[速] <상: 31ㄴ>, 얼굴[形骸] <하: 65ㄴ>
<ㅻ> (없음)
<ㅳ> 러듀믈[墮] <상: 23ㄱ>, 들[義] <중: 50ㄱ>, [茅] <하: 29ㄱ>
<ㅄ> 디[用] <상: 12ㄱ>, [種] <상: 30ㄱ>, [米] <상: 27ㄴ>
<ㅶ> [隻] <상: 33ㄱ>, 논디라[薰] <중: 23ㄱ>
<ㅷ> (없음)
<ㅴ> [時] <상: 58ㄴ>, 어[貫] <하: 82ㄴ>
<ㅵ> 라[刺] <하: 15ㄱ>
위의 예에서 우리는 초성 합용병서의 경우 정음 초기 문헌과 비교할 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 중성표기
이 책에는 <훈민정음> 해례 중성해에 제시된 中聲字가 대부분 쓰였으나, 중성 29字 중에서 ‘ㆉ, ㆇ, ㆊ, ㆈ, ㆋ’ 등 5자는 용례가 없다. 이 중 ‘ㆉ([牛] 등)’의 경우는 이 문헌에 해당 어휘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고, 그 외는 주로 한자음 표기에 사용되었던 중성자들이다. 특히 ‘ㆊ, ㆋ’는 16세기 초에 간행된 <훈몽자회>(1527년)의 한자음에 실례가 나타나는 점으로 미루어, 이 책에는 해당 한자가 없기 때문에 빈칸으로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37) ‘ㆌ’는 이 문헌에서 한자음 표기에만 사용되었다.
(6) 聚:落락 <상: 64ㄱ>, 宗趣: <중: 58ㄴ>, 取:次․ <하: 25ㄱ>
4. 종성표기
종성표기는 훈민정음 종성해에 규정한 ‘ㄱ, ᅌ, ㄷ, ㄴ, ㅂ, ㅁ, ㅅ, ㄹ’의 8종성과 ‘ㅿ’이 보인다. 초기 문헌에서 ‘유성후두마찰음’ ‘ㅇ[ɦ]’ 앞에서 ‘ㅅ’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ㅿ’은 ‘워’에서 보인다. 이러한 9종성 외에 합용병서의 ‘ᇇ(←ᆬ), ᆱ, ᆲ, ᆲ(←ᆵ)’이 보이고, 사이시옷과 통합 표기된 ‘ᆳ, ᇝ’이 나타난다.
(7) ㄱ. 맛나[逢/遇] <상: 31ㄴ>, 긋디[斷] <중: 3ㄱ>, 븓디[關] <중: 50ㄱ>
ㄴ. 워[獦獠] <상: 7ㄴ>, [邊]업스니 <중: 27ㄴ>
cf. [邊]업스시니 <용가: 125>
ㄷ. 고[座] <하: 5ㄴ>; 옮디[遷] <하: 37ㄱ>; 여듧[八] <상 : 9ㄴ>, 앏[前]
<중: 51ㄴ>
ㄹ. 믌결[波浪] <상: 58ㄱ>; 간[暫] <중: 49ㄴ>, 장[盡心] <하: 3
ㄴ>
5. 한자음 표기
단경언해는 동국정운 한자음의 사용을 지양하고 당시에 실제 사용했던 현실 한자음, 이른바 전통 한자음에 바탕을 둔 주음방식을 전면적으로 취한 최초의 문헌이다. 김동소(2000ㄴ: 7-14)에서는 이를 ‘전통한자음’이라 규정하고, 15세기에서 20세기까지의 전통 한자음 변화 유형을 8가지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한국어 자체의 음운 변화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김양원(2000: 26-28)에서는 단경언해 상․중․하 3권 모두의 한자를 찾아 이를 김동소(2000ㄴ: 10-11)의 분류기준에 따라 정리하였다. 자세한 논의는 두 선행 연구에 미루고 여기서는 평음의 유기음화와 관련된 한자어 및 불교용어 독음의 표기 변화에 대해서만 논의하고자 한다.
(8) ㄱ. 讚:잔嘆:탄 <서: 19ㄱ> / 讚:찬야 <중: 53ㄴ>
ㄴ. 讖:記․긔 <서: 14ㄴ> / 讖:記․긔 <중: 97ㄱ>
<8ㄱ>은 상․ 중․ 하 전권에서 모두 8회 출현하는데 ‘잔’으로 주음된 곳이 7회, ‘찬’으로 주음된 곳이 1회이다. 이로 미루어 이 시기에 유기음화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8ㄴ>의 용례는 많지 않지만 역시 일부 유기음화가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김동소, 2000ㄴ: 12-13)참조.
불교용어의 한자음은 동국정운음이라고 하더라도 몇 차례 변개가 있었는데, 그 변화의 모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9) [解脫]의 [解]
ㄱ. ․ <석보 23: 9ㄴ>
ㄴ. :갱 <월석 17: 48ㄱ>, 활자본 <능엄 6: 22ㄱ>, 목판본 <능엄 6: 25ㄴ>
ㄷ. : <법화 6 : 8ㄴ>, <금강 : 131ㄱ>
ㄹ. :하 <단경 상: 43ㄱ>, cf 涅․녈槃반解: <중: 93ㄱ>, 見:견解: <상:
19ㄴ>
(10) [般若]의 [般]
ㄱ. 반 <석보 23: 15ㄱ>, 목판본 <능엄 1: 20ㄱ>
ㄴ. ․ <법화 5: 188ㄴ>, <금강서: 9ㄱ>
ㄷ. 반 <단경 상: 10ㄴ>, ․반 <중: 31ㄱ>
이러한 변개는 梵語로 된 陀羅尼의 유입과 불경언해 작업의 활성화 등으로 梵語나 巴里語에서 音借한 불교용어나 한자로 조어한 용어의 한자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의 결과, 보다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고자 노력한 데서 온 것으로 보이나, 이 문헌에 이르러서는 현실의 독음을 수용한 결과로 짐작된다.38)
오늘날 쓰고 있는 불교용어로서 일반 한자어의 독음과 다르게 실현되는 ‘波, 婆, 便, 布’ 등이 현실 한자음이 주음된 최초의 문헌인 이 책에서 이미 일반 한자음과 다르게 주음되어 있어서 주목을 하게 된다. 불교용어의 한자음이 일반 한자음과 다르게 실현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이겠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 주는 문헌으로서 이 책의 한자음 표기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1) ㄱ. 波바羅라蜜․밀 <상: 57ㄴ> / 波파浪:랑 <상: 97ㄱ>
ㄴ. 婆바舍:샤斯多다 <하: 71ㄱ> / 婆파 <훈몽 상: 31ㄱ>
ㄷ. 方便․변 <하: 23ㄱ> / 便편․히 <서: 24ㄱ>
ㄹ. 布:보施․시 <상: 85ㄴ> / 流류布포 <상: 30ㄱ>
<11ㄴ> ‘婆’의 일반 한자음은 이 책에 용례가 없어서 29년 후에 간행된 책인 <훈몽자회>(1527년)에서 가져왔다. <11ㄷ>은 오늘날의 한자음이 [방편]인 점으로 미루어 후에 유기음화하여 ‘편(便)’으로 된 듯하다.
6. 방점표기
단경언해의 방점표기는 일관성이 없다. 같은 문헌 안에서의 서로 다른 표기는 말할 것도 없고, 초기의 문헌과 비교해도 차이가 많이 난다. 김동소(2000ㄴ: 14-18)과 김양원(2000: 33-35)에서는 같은 문헌 안에서 보이는 차이와 앞 시기에 간행된 문헌과의 비교를 통해서 나타나는 차이를 검증한 바 있다. 이 문헌에서의 방점표기는 어떤 원칙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혼란하다.
7. 사이글자
사이글자는 체언이 결합할 때 음성적 환경에 따라 체언 사이에 끼어드는 자음 글자인데, 용비어천가와 훈민정음언해에는 각각 ‘ㄱ, ㄷ, ㅂ, ㅅ, ㅿ, ㆆ’과 ‘ㄱ, ㄷ, ㅂ, ㅸ, ㅅ, ㆆ’의 6자가 쓰였으나, <석보상절>에서는 ‘ㅅ’으로 통일되었다. 이후 문헌에서는 ‘ㅅ’이 주로 쓰였으나 간혹 ‘ㅅ’ 외에 다른 글자가 쓰인 적도 있다. 이 문헌에는 예외 없이 모두 ‘ㅅ’으로 나타난다.
(12) ㄱ. 믌결 <상: 58ㄱ>, 오날브터 <중: 32ㄱ>, 뎘지블 <하: 40ㄴ>
ㄴ, 中을브터 <상: 69ㄴ>, 간 <중: 49ㄴ>
8. 분철표기
15세기에 간행된 대부분의 정음문헌은 주된 표기 방식이 연철이었다. 다만 월인천강지곡에는 체언의 말음이 ‘ㄴ, ㄹ, ㅁ, ㅿ’ 등일 때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와 통합하면 분철 표기했다. 용언의 경우에는 어간 말음 ‘ㄴ, ㅁ’이 어미 ‘-아’와 만나면 분철 표기했다. 이 책에서는 체언의 말음이 ‘ㄴ, ㄹ, ㅁ, ᅌ’인 경우에만 조사와의 통합에서 일부 분철 표기한 예가 보인다.
(13) ㄱ. 자음 ‘ㄴ’ 뒤: 돈 <상: 3ㄴ>, 신을 <상: 27ㄱ>, 서너번이러라 <하:
88ㄴ>, 간이나 <중: 56ㄴ>
ㄴ. 자음 ‘ㄹ’ 뒤: 뎔이라 <서: 20ㄱ>
ㄷ. 자음 ‘ㅁ’ 뒤:
① 연철: 으로 <서: 3ㄴ>, 사을 <상: 68ㄴ>, 일훔은 <하: 14ㄴ>
② 분철: 미 <하: 74ㄴ>, 사미 <상: 16ㄴ>, 일후미 <하: 12ㄱ>
ㄹ. 자음 ‘ᅌ’ 뒤: 스이로소다 <상: 38ㄱ>, 이 <중: 108ㄱ>
예 (13ㄱ-ㄹ)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체언의 말음이 ‘ㅁ’인 경우에는 연철된 예와 분철된 예가 각각 절반 정도이다. 이 문헌에 체언의 말음이 무성자음이면서 분철한 특이 한 예가 하나 있는데, 하권의 ‘도을[賊]<87ㄱ>’이다. 이는 이 어휘가 한자어 ‘盜賊’에서 온 때문일 것이다.39)
9. 주격과 서술격 표기
이 문헌에서 주격조사는 선행체언 말음의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이, ㅣ, ∅’로 실현되었다. 서술격조사도 ‘이-, ㅣ-, ∅-’로 실현되어 초기의 문헌과 차이가 없다. 구결문과 언해문 모두에서 동일하다. 다만 다음의 경우는 예외이다.
(14) ㄱ. 一切般若智ㅣ 다 自性을브터 나논디라 <상: 55ㄱ>
(一切般若智ㅣ 皆從自性야) <상: 54ㄴ>
ㄴ. 곧 이 偈ㅣ 本性 보디 몯호 알오 <상: 22ㄱ>
(便知此偈ㅣ 未見本性고) <상: 21ㄱ>
여기서 주격조사 ‘ㅣ’는 ‘∅’로 실현되어야 하나 굳이 ‘ㅣ’를 적어 놓았다. 이는 앞문장과 뒷문장 사이에 아무런 표지가 없으면 자칫 해독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 배려로 보인다. 같은 음운론적 조건임에도 서술격의 ‘ㅣ’는 ‘∅’로 실현되었다. 서술격의 위치에서는 ‘∅’로 실현되어도 읽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미루어서도 굳이 격 표지 ‘ㅣ’를 실행한 배려가 짐작이 간다.40)
(15) ㄱ. 곧 일후미 四智菩提니라 <중: 73ㄴ>
(卽名四智菩提니라) <중: 72ㄱ)
ㄴ. 곧 일후미 般若智니라 <상: 57ㄱ>
(卽名般若智니라) <상: 56ㄱ>
10. 모음조화
모음조화는 대체로 혼란한 모습을 보인다. 모음조화에 관한 한 정음 초기 문헌부터 혼란상을 보여 왔다. 이는 기저형의 실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김동소(2000ㄴ)에서는 하권을 대상으로 연결모음 ‘-으/-’, 목적격조사, 관형격조사, 부사격조사, 대조보조사, 선어말어미 ‘-오/우-’, 연결어미 ‘-어/아’, 관형사형어미 ‘-/는’ 등의 경우를 면밀히 살폈다. 비록 하권에 국한한 것이라고 해도 단경언해의 모음조화 양상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11. 문장 구성
육조법보단경언해는 다른 불전 언해본들에 비해 문장 유형이 다양한 편이다. 法語를 底本으로 하고 있는 이 문헌의 성격 때문에 나름의 독특한 문장 구성이 보인다. 그렇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단조로운 문장 구성과 제한된 어휘 사용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여타의 불전언해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불전의 원문을 분단한 후 구결을 달아서 언해한 형식, 이른바 ‘對譯’ 형식의 번역이 가지는 한계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이 문헌이 보이는 문장 구성의 특징을 살피려고 한다.
(16) ㄱ. 大師ㅣ 니샤, “善知識아 다 조히 야 摩訶般若波羅蜜을 念라.”시고, 大師ㅣ 良久시고(良久 오래 시라), 다시 衆려 니샤, “善知識아 ~알리라.” <悟法傳衣 第一, 상: 2ㄴ>
ㄴ. 이 卷을 자바 字 무른대, 師ㅣ 니샤, “字 곧 아디 몯거니와 드란 곧 請야 무르라.” 이 닐오, “字 오히려 아디 몯거니 엇뎨 能히 들 알리오.” 師ㅣ 니샤, “諸佛妙理 文字애 븓디 아니니라.” <參請機緣 第六, 중: 49ㄴ>
<16>은 說法을 請한 것에 대해 답하거나 답하면서 다시 묻는 형식의 문장이다. 이 책의 문장은 대부분 이러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16ㄱ>은 혜능이 韶州의 韋刺史 일행에게 法門을 하는 내용이고, <16ㄴ>은 혜능이 한 비구니에게 행한 법문인데, 문답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중간에 설화자(집록자, 또는 편찬자)가 끼어들어 해설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혜능이 문인을 부르는 “善知識아 ~ ”형 문장이 많고, 門人이 묻는 유형의 문장인 “엇뎨 ~ -오/고”식의 구성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저본의 의문문 구성 “何/豈/寧~”으로 되어 있는 문장을 번역한 때문이다.
(17) ㄱ. 秀ㅣ 호, ‘廊下 향야 서 뎌 和尙이 보시게 홈만 디 몯도다.’ 믄득 다가 ‘됴타’ 니거시든, 곧 나 저고 닐오, ‘이 秀의 作이다.’ 고… <悟法傳衣 第一, 상: 15ㄱ>
ㄴ. 祖ㅣ… 무르샤, “偈 이 네 지다? 아니다?” 秀ㅣ 오, “實로 이~간대로 求논디 아니다. 온… 보시니가? 아니가?” <悟法傳衣 第一, 상: 19ㄱ>
ㄷ. 達이 닐오, “… 엇뎨 宗趣 알리고?” 師ㅣ 니샤, “나~ 사겨 닐오리라.” <參請機緣 第六, 중: 58ㄱ>
(17) 역시 문답식 문형이다. (17ㄱ)은 神秀가 五祖弘忍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게송을 지어서 전할 방법을 생각하는 장면이고, (17ㄴ)은 弘忍과 神秀의 대화 부분이다. <17ㄷ>은 혜능과 門人 法達의 대화 부분이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단경언해>에는 의문문의 유형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의문문의 문답에 등장하는 청 ․ 화자에 따라 話階 等級이 달라져서 존경법의 ‘-으시/으샤-’, 겸양법의 ‘--’, 공손법의 ‘--’ 등 경어법 선어말어미의 출현이 매우 잦다.
종결형식 중에는 ‘-니라’나 ‘-리라’로 맺음을 하는 평서형 문장이 많이 보인다. ‘-니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 중 원칙이나 당위에 해당하는 진술에 나타나고, ‘-리라’는 미래에 대해 예측하거나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등의 진술에서 주로 보인다.
(18) ㄱ. 녜 괴외야 妙用이 恒沙ㅣ리라 <하: 38ㄴ>
이 作을 브트면 곧 本宗을 일티 아니리라 <하: 50ㄴ>
ㄴ. 다가 正면 十八正을 니르왇니라 <하: 44ㄱ>
이브터 서르 쳐 심겨 宗旨 일티 마롤디니라 <하: 52ㄱ>
12. 어휘
이 문헌에는 15세기에 간행된 여타의 정음문헌과 다르게 표기되어 있거나, 여기에서만 쓰인 어휘가 몇몇 보인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 ㄱ. -ㄹ뎐: 作法홀뎐 네 이리 자 리니 <서: 12ㄴ>
ㄴ. 워[獦獠]: 獦獠 워라 <상: 7ㄴ>
ㄷ. 아닔 아니며[莫非]: 여러 劫ㅅ因이 아닔 아니며 (莫非累劫之因이며) <상: 47ㄱ>
ㄹ. 어옛비[矜恤]: 외이 가난닐 어옛비 너교미 일후미 慧香이오 (矜恤孤貧이 名慧香이오 <중: 21ㄴ>
ㅁ. 가야[憍]: 가야 소교 믈 드로 닙디 마오 (不被憍誑染고) <중: 24ㄴ>
ㅂ. 지[了然]: 三身을 보아 지 自性을 제 알에 호리니(見三身야 了然自悟自性호리니) <중: 35ㄴ>
ㅅ. 데-[浮游]: 녜 데미 뎌 하 구룸 니라 (常浮游호미 如彼天雲니라 ) <중: 38ㄴ>
ㅇ. [痕]: 돌해 師ㅅ 趺坐신 무룹 과 (石에 於是有師趺坐膝痕과) <중: 51ㄴ>
ㅈ. 셔히[諦]: 내 이제 너 爲야 니노니 셔히 信고 (吾今에 爲汝說노니 諦信고) <중: 73ㄱ>
ㅊ. 그리나[然]: 그리나 (然이나) <하: 2ㄴ>
ㅋ. 져조니[鞫問]: 져조니 (鞫問니) <하: 87ㄱ>
위의 어휘들은 이 책에만 나오는 유일한 예이거나 다른 문헌에 용례가 드문 것들이다. ‘셔히’는 상․ 중․하 3권 모두에 용례가 있으나, 15세기 정음문헌 중 이 책에 처음 나오고 이후 문헌에서는 널리 쓰였다.
Ⅴ. 결 론
지금까지 조선조 연산군 2년(1496)에 간행된 정음문헌인 육조법보단경언해의 底本, 간행 경위, 서지 사항, 국어학적 특징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책의 한문본은 당나라 시대에 在世했던 禪宗의 육대조사 惠能의 법문을 門人인 法海가 집록하고 뒷사람들이 첨삭․편찬하여 오늘에 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이래 이 책의 유통과 간행이 매우 활발했던 듯하다. 특히 元나라 때의 승려 蒙山 德異가 편찬(1290)한 책인 ‘德異本’이 고려조에 유입(1298)되었고, 이후 고려 승려 萬恒에 의해 간행(1300)된 덕이본 육조법보단경이 지속적으로 重刊되었다. 언해본 육조법보단경의 底本도 바로 이 덕이본이다.
육조법보단경언해는 훈민정음 창제 후 꼭 50년 만에 仁粹大妃의 명을 받은 당대의 고승 學祖에 의해 3권 3책으로 인간되었다. 간행 부수는 모두 300질이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이 책이 경전 간행만을 위해 특별히 조성된 ‘印經木活字’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당시까지 간행된 정음문헌의 한자에 주음했던 東國正韻 한자음이 전면 폐기되고, 이른바 현실 한자음이 주음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논의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육조법보단경언해의 저본, 간행 경위, 서지 사항, 언어 사실 등의 특징을 밝힌 것이다.
제Ⅱ장에서는 한문본 육조법보단경의 조성과 현전 異本들에 대해서 살폈다. 한문본 육조법보단경은 혜능의 高足弟子인 법해에 의해 집록되었고, 이후 계통에 따라 부분적으로 첨삭이 있어서 판본에 따른 품의 분장과 표현 방법 등 일부 내용에 다소의 차이가 있다. 最古本인 돈황 석굴 발굴본, 이른바 돈황본은 천 여 년 동안 석굴에 비장되어 있다가 20세기에 발굴․공개되어 육조대사 당대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전 판본은 돈황본 계통, 혜흔본 계통, 종보본 계통으로 나뉜다. 혜능의 법어집을 ‘壇經’이라고 불러온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는 이 어록에 실려 전하는 혜능선사의 가르침이 중국불교 선종의 근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혜능선사가 講說한 禪의 요체가 경전과 같은 존숭을 받았고, 이러한 진리를 후인들이 높이 받들어 모신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러왔던 것이다.
제Ⅲ장에서는 육조법보단경의 언해본 간행 경위와 형태서지를 밝혔다. 이 책의 현전본 중에는 간행당시의 刊記가 없어서 자세한 간행 경위를 알기 어려우나, 같은 시기에 간행된 책인 시식권공언해의 발문에는 이 책과 관련된 기사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동일한 발문이 이 책의 원간본 하권에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 발문에 의해 육조법보단경언해는 인수대왕대비가 內帑으로 간행 경비를 부담하고, 당시의 고승 학조로 하여금 번역․간행케 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문헌에 쓰인 목활자는 경전 간행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져, 이 책 간행 1년 전인 연산군 1년(1495)에 刊經都監 후쇄본으로 간행된 선종영가집언해 등의 발문에도 사용되었었다. 현전하는 상․중권은 원간본이고, 하권은 명종6년(1551)에 간행된 복각본이다. 각 책들의 현전 현황과 영인 사항, 그리고 형태서지를 밝혔다.
제Ⅳ장에서는 이 문헌에 실려 있는 언어 사실 중 특기할 만한 내용을 살폈다. 본론에서 논의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ㅸ, ㆆ’ 등의 문자는 이 문헌에 쓰이지 않았다.
2) 各自竝書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合用竝書는 ‘ㅺ, ㅼ, ㅽ; ㅳ, ㅄ, ㅶ; ㅴ, ㅵ’ 등이 보인다. ‘ㅷ’이 쓰이지 않은 것은 이 문헌에 이 글자가 쓰일 어휘가 없었기 때문이다.
3) 중성 표기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중성글자들이 대부분 쓰였으나 동국정운 한자음의 폐기로 ‘ㆇ, ㆊ, ㆈ, ㆋ’ 등 4자는 용례가 없다. ‘ㆉ’는 다른 문헌에 고유어에도 쓰인 예가 있으나([牛]<월석1:27ㄱ>) 이 책에는 해당하는 어휘가 없어서 빈칸이다.
4) 종성표기는 ‘ㄱ, ᅌ, ㄷ, ㄴ, ㅂ, ㅁ, ㅅ, ㄹ’의 8종성 외에 ‘ㅿ(워, 상 : 7ㄴ)’이 쓰였다.
5) 한자음 표기는 정음 창제 후 官版 문헌에서 일관되게 지켜지던 改新音인 동국정운에 의한 한자음 注音 표기가 폐기되고, 그 당시에 실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현실 한자음이 주음되어 있다. 평음과 유기음으로 주음되어 있는 ‘讚(잔/찬)’과 ‘讖(잠/참)’을 통해 당시에 이 글자들의 유기음화가 진행 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불교용어 중 ‘解脫’의 ‘解’자와 ‘般若’의 ‘般’자가 정음 초기문헌에서부터 이 문헌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살폈다. 또 오늘날 쓰고 있는 불교용어로서 일반적인 한자음과 다르게 실현되는 ‘波(바/파)’, ‘婆(바/파)’, ‘便(변/편)’, ‘布(보/포)’ 등이 이 문헌에 이미 다르게 주음되어 있는 사실을 살필 수 있었다.
6) 이 문헌의 방점표기는 매우 혼란하여 같은 문헌 內에서도 서로 다르게 표기된 예가 많고, 정음 초기 문헌과 비교해 보아도 다르게 나타난 예가 상당수 보여서 어떤 원칙을 찾기가 어렵다.
7) 사이글자는 예외 없이 ‘ㅅ’으로 통일되었다.
8) 선행 체언이나 어간의 말음이 자음일 때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나 어미와 만나면 대체로 연철했으나, 선행 체언의 말음이 ‘ㄴ, ㄹ, ㅁ, ᅌ’일 경우에는 모음 조사와의 통합에서 일부 분철표기한 예가 보인다.
9) 주격과 서술격표기는 각각 선행 체언 말음의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이, ㅣ, ∅’나 ‘이-, ㅣ-, ∅-’로 실현되었다. 언해문과 구결문 모두에서 동일하다. 다만 ‘이’나 ‘ㅣ’ 다음의 주격표기에서 ‘ㅣ’를 실현시킨 예가 있는데(一切般若智ㅣ <상 : 55ㄱ>/ 곧 이 偈ㅣ <상 : 22ㄱ>), 이는 앞뒤 문장이 이어질 때 오는 해독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10) 이 책에서 모음조화는 혼란한 양상을 띤다.
11) 문장 구성의 유형이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 이 책의 이러한 문체적 특성은 법어라는 底本의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이 점 다른 언해본들과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의 문장은 혜능이 깨우침과 관련하여 주변 사람들이나 門人들에게 묻고 대답하는 문답 형식과 說話者(집록자, 또는 책편찬자)가 중간에 끼어들어 설명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의문문의 유형이 매우 다양하다. 특히 ‘엇뎨 ~ -오/고’형이나 ‘엇뎨 ~ -가/고’형 의문문이 많이 보인다. 평서형 문장은 대체로 ‘-니라/리라’형 종결형식이 많다. 경어법 사용이 활발하여 존경법 선어말어미 ‘-으시/으샤-’, 겸양법 선어말어미 ‘--’, 공손법 선어말어미 ‘--’의 쓰임이 잦은 편이다.
12) 이 문헌에는 15세기에 간행된 여타의 정음문헌과 다르게 표기되어 있거나 여기에서만 쓰인 독특한 형태의 어휘가 몇몇 보인다.
주제어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 혜능(惠能), 덕이(德異), 언해(諺解), 인경목활자(印經木活字), 언어 사실(言語 事實), 국어학적 특징, 동국정운음(東國正韻音), 현실 한자음(現實漢字音)
[부록]
眞言勸供․三壇施食文諺解 跋
金甲起 역
無私一着, 箇箇圓成, 迷倒妄計 向外空尋 祖祖間生 指出當人衣中之寶, 令直下薦取, 其語巧妙, 明白簡易, 如淸天白日, 爭奈時人當面蹉過。若六祖大鑑禪師 言簡理豊, 祖席中卓然傑出, 故古人稱語錄 爲經者 良有以也。
我 仁粹大王大妃殿下, 嘆時流之急縛, 着名相煩煎, 域內, 不知世外有淸涼底一段光明。所以 命僧以國語翻譯六祖壇經 刊造木字 印出三百件 頒施當世 流傳諸後 使人人皆得披閱 反省自家廓大之面目, 其爲願王, 豈文言口議之 所能髣髴者哉。當與法性相爲終始, 究竟至於無窮無盡之域者, 無疑也歟。且施食․勸供 日用常行之法事, 或衍或倒, 文理不序, 學者病之。詳校得正 印出四百件 頒施中外焉。
弘治九年 夏五月日 跋。
사사로운 한 가지 집착도 없이, 낱낱이 원융한 불도를 이루어 망령된 계책에 기울어 밖에서 부질없이 (진리를) 찾지 아니하셨다. 여러 조사들이 간간이 나서 그 시대 사람들의 몽매함을 깨우칠 귀중한 가르침을 제시하시고, 하여금 곧장 천거하고 취함에[모두 거둬들여 설법할 때], 그 말씀은 교묘하고, 명백하며, 간결하고 쉬워서 마치 맑은 하늘에 밝은 태양과도 같으나, 당대 사람들의 저지르는 과오를 어쩌랴.
(이를테면) 육조 대감선사는 말이 간결하고, 이치가 넉넉하여 여러 조사들 가운데 탁연히 빼어난 분이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語錄’을 일러 ‘經’이라 한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는 것이다.
우리 인수대왕대비전하께서 시류의 급박함과, 이름에 얽매여 번뇌하고 안타까워 할 뿐, 域內 세속의 밖에 청량한 일단의 광명이 있는 것은 알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그래서 소승에게육조단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나무에 글자를 새겨서[木活字] 삼백 부를 찍어 당세에 반포하시고, 후세에 전할 것을 명하시어,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보고 반성하고, 스스로 확대한[일신한] 면목을 갖게 하셨으나, 그것이 부처님을 위해 어찌 文言과 口議가 능히 방불하다고만 할 것인가. 마땅히 法性과 더불어 서로 끝과 처음을 궁구하면, 끝내 無窮無盡한 경계(경지)에 이르러 의심나는 바가 없게 될 것이다. 또 시식권공은 일상생활에서 평소 행해지는 法事(佛事) 따위들이 혹 빠지거나, 혹 바뀌어서 문장의 결이 순서대로 되지 않아 배우는 자들이 그것을 병통(단점)으로 여겼었는데, 자세히 교정하여 바른 것(바르게 된 것)을 얻어, 사백 권을 찍어 내어 중외(조정과 민간)에 반포하노라.
弘治 9년 여름 오월 일에 발문을 쓰다.
A Study on Yukjobeopbodangyeongeonhae (六祖法寶壇經諺解, The Platform Sutra in Korean)
Kim, Mu-Bong (Dongguk University)
There are several versions of The Platform Sutra. The version compiled by Te-i (德異), a Buddhist monk of Y¨uan (元), was translated into Korean by Hakjo (學祖) who was a Buddhist monk under the reign of King Yeonsan (燕山君) of the Joseon Dynasty. It is called the Eonhae edition (諺解本). Queen Insu (仁粹王妃) defrayed the expense of its publication. It was published in three volumes. A special wooden printing type was made for the publication of the sutra.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iscover some philological and linguistic characteristics of the Korean translation of The Platform Sutra. The publication project of Korean translations of Buddhist texts in 15th century is reviewed, and some characteristic features of the Korean language at that time are revealed through analyses of the Korean translation of The Platform Su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