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지역의 한국불교계와 연꽃축제
김형근 발행인
워싱턴DC는 미국의 수도로 행정도시로 미국의 행정상으로 중요한 도시이지만 미주한국불교계으로서도 뉴욕, 켈리포니아 로스 엔젤레스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도시라고 생각한다. 이 지역에는 일찍부터 한국불교 스님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은 1969년 버지니아 뉴포트에서 서경보 스님이고, 뒤를 이어 볼티모어에서 1973년에 지금은 뉴져지에 사는 서울대학교 의대 출신인 최종일 박사를 비롯한 의사들과 버지니아 거주하는 배용분 보살 등이 성불사라는 절을 건립하여 스님을 초청하여 절을 한 적이 있다. 이 뒤를 어어 지금 한국사 주지 고성스님이 불국사라는 절을 열었다.
1970년대에 절을 개원한 사찰들은 대개 오랫동안 운영되고 있는데 이 지역 사찰들은 그러하지 못했다. 고승스님은 불국사를 정리하고 메렐렌드에 한국사, 경암스님이 버지니아에 보림사, 제원스님이 메릴랜드에 법주사를 열었다. 이 3 사찰이 이 지역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지역의 거점 역할을 할 사찰들은 뿌리가 송두리째 뽑아지고 있다. 보림사는 2014년에 경암스님 입적 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최근 연꽃축제 하러 갔다 만난 이 지역 신도들은 어느 사찰을 팔려고 한다고 분개를 한다.
필자가 보고 들은 이 지역의 한국불교에 관련된 것들은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볼티모어 성불사 창건의 주역인 최종일 박사는 뉴욕으로 이사를 와 뉴욕원각사 신도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뉴져지 포트리에 살고 있다. 최박사님께 성불사 창건과 문을 닦은 전말에 대해 글을 써 달라고 청탁을 하려고 한다. 필자가 1989년부터 미국불교계에서 활동하면서 목격하지 못하고 전해들은 이야기 중 가장 슬픈 이야기도 이 지역에 관한 것이다. 한국에서부터 신심있는 신자 가족과 친척들이 이 지역으로 이민을 왔다. 1970년대는 대개 가족들이 함께 이민을 오는 시절이었다. 이 가족.친척들은 불교신앙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스님으로 인해 불교에 절망을 하고 20여명의 동시에 타종교로 개종을 하였다고 한다. 사정이야 어쨌든 개종한 것을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그 심정을 헤아릴 수는 있겠다.
필자는 뉴욕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저녁이면 돌아올 수 있는 이 지역을 자주 방문하였다. 이 지역은 한국인도 많고 사찰도 많아 출장을 가장 많이 다녔다. 또 워싱턴 연방수생식물원에서 하는 연꽃축제 때문에 이 지역에서 며칠간 머무르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 지역 신자들과 많은 대화를 할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이 지역에 제대로 된 사찰을 건립하고 수행을 잘 지도할 수 있는 스님과 만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된 자녀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그들에게 불교와 한국어를 지도할 수 있는 사찰을 절실하게 원했다. 하지만 그런 사찰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들은 낙담하고 워싱턴 지역의 한국불교계 상황에 대해 탄식을 했다. 또 다른 신자도 자녀들의 불교 교육을 절실하게 원했다. 그런 절실함이 반영되어 2008년에 뉴욕에서 미주현대불교에서 여름방학에 청소년 불교캠프를 시작하는 광고를 보고 가장 먼저 연락이 온 사람도 이 지역 신자였고, 워싱턴에 살던 황인수 거사가 15명 정도의 청소년을 데리고 왔다. 35명이 참가했으니 거의 절반이 워싱턴에서 온 것이다. 그 다음해에도 역시 더 많이 오기도 했다. 이렇게 여름 청소년 불교캠프가 잘 운영되자 왜 지도스님을 서부에서 초청해 오느냐면 우리에게 불만을 표시하던 뉴욕지역 사원연합회 회장 원영스님이 필자와는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앞으로 모든 청소년 포교는 뉴욕불교사원연합회에서 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를 무시하고 할 수도 있었지만 불교계 화합을 고려하여 어쩔 수 없이 여름 불교캠프를 중단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이 지역 청소년과 학부모였다.
10여년전에 연꽃축제를 시작할 때 부모님 따라 행사를 돕기도 했던 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었고 그들은 연꽃축제 행사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자녀들이 어린 시절 그들에게 불교와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싶어하던 부모들은 행사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필자의 하소연에 공감하면서 최근 워싱턴 지역의 한국불교계 현실에 개탄한다.
이런 한국불교계 현실과는 정 반대로 연방수생식물원과 연꽃축제는 그 규모가 커지고 이 행사를 보려는 사람들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많은 부분은 수생식물원 측의 노력에 의해서다. 공원에서 홍보도 많이 하고, 이 행사 진행인원을 증원시키고 있다. 이런 부분에 우리는 한계가 뚜렸하다.
2004년 시작하면서 우리는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연등과 컵등이 기본이고, 연병풍과 연문양 사찰 문짝 전시, 연 음식 소개, 연차 소개, 부채에 그림 그리기 등으로 프로그램이 증가했다. 앞으로 더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더 추가할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하려면 많은 행사 진행요원이 필요하다. 지금은 연병풍, 연문짝 등을 운반할 엄두가 나지 않아 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연등 만들기 마져 하지 못했다. 인기가 좋은 이런 프로그램을 하려면 이 행사를 담당할 자원봉사자가 필요한데 사람이 부족한 것이다. 올 해 행사에 뉴욕에서 15명의 공연자와 자원봉사자가 참가하였고 워싱턴 지역에서는 20명 정도가 비빔밥도 만들고, 행사 진행을 도왔다. 뉴욕에서 이 행사에 참가하려면 아침 5시에 집을 나와서 저녁 8시 이후에나 들어 갈 수 밖에 없다. 뉴욕에서 그곳까지는 250일 마일 왕복 500마일이다. 뉴욕에서 많은 인원이 참가하여 행사를 진행하고 돌아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부분은 워싱턴 지역 불교인들이 담당해 주어야 한다. 2016년에는 최소한 3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가 참가하면 좋겠다. 워싱턴 지역의 불교계가 정비되고 단 하나의 사찰이라도 규모있는 사찰이 들어선다면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