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
양 순 례
드럼통을 보면 울퉁불퉁한 마디가 있다. 대나무의 강인한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원래는 표면이 매끄러웠는데, 보기는 좋았지만 굴릴 때 쉬 찌그러지고 부서졌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대나무 마디였다. 대나무가 모진 바람에도 휘지 않고 똑바로 성장할 수 있는 요인은 마디가 있어서다. 인간도 뼈마디로 구성되어 몸을 지탱한다. 자유자제로 움직일 수 있어 건강을 유지한다. 뿐이랴, 언어에서도 말마디가 있다. 말한 마디에 꿈을 키우기도 하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희망을 불러올 수가 있다.
운동화 바닥을 본다. 마음이 환해진다. 바닥 뒤축이 고르게 닳았다. 예전에는 바른쪽 신은 바른쪽으로 좌측 신발도 바른쪽으로 닳았었다. 그가 말해준 한마디를 귀담아 들은 덕분이다. 자신의 자세가 바른지 알려거든 뒤축 닳은 모양을 보라했다. 고루 닳지 않았다면 잘못된 자세라고, 한쪽으로 닳으면 반대쪽으로 의식하며 걸어보라고 하였다.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전에는 허리 협착증으로 한의원에서 침에 의존했다. 거기서도 자세를 언급했다. 앉으나 서나 걸을 때도 바른 습관을 들이라는 거였다. 감염증 위험에 차타는 걸 줄였고, 그 말 한마디도 병행해서 걸었다. 걸을 때 신발 뒤축이 닳았던 반대 방향으로 눌러주는 느낌으로 발을 디뎠다. 시나브로 허리 무릎이 괜찮아졌다. 고양이 자세도 자주 취하고, 의자에 앉을 때도 바른 자세를 하다 보니 이제는 습관이 됐다. 말한 마디에 실천을 더하니 잘못된 자세는 빠져버리고 기쁨의 맛은 배가 되었다. 더하기 빼기에 코로나도 한 몫 한 셈이었다.
나와 같은 증상인 사람을 만나면 나도 받은 그 말 한마디를 건네준다. 말한 마디가 좋은 약이 되는 체험을 해 보았으니까. 좋은 건 자꾸 전염시켜야 더 좋은 결과를 나을 테니까. 허나 잘못된 말한 마디는 자칫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생각한답시고 무심코 나오는 말들이다. 살찐 이한테, 마른 이한테 살을 운운한다든가, 아기 없는 기혼녀한테 아기 운운하는 말한 마디는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받아들이는 입장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말은 때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입 밖으로 뱉는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니다. 쉬운 거 같으면서도 어려운 게 말이다.
말한 마디에 기분이 좌우될 수가 있다. 귀 기울이게 하는 말과 귀를 막고 싶은 말도 있다. 말에는 예의가 있고 배려도 있다. 도움을 주는 말에는 몸 둘 바를 모르게도 한다. 추운 날 은행 문이 아직 열리지 않은 시간, 서성이는 어르신에게 한마디 건넸다.
“추우신데 현금자동인출기(ATM)실로 들어가셔서 기다리셔요.”
별것 아닌 작은 말 한마디 건넸을 뿐인데, 미처 몰랐던지 “감동이에요.”라고 해서 순간 웃음이 나왔다. 웃음 앞에는 여간 고마워하지 않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이가 들면 자연 그리 됩디다.” 하던 어느 할머니 말씀이 오버랩 됐다. 나 또한 눈 덮인, 언 길에서 내손잡아요 하면서 안전하게 이끌어주던 낯선 청년에게 감동을 받아 잊혀 지지가 않는다. 일상에서의 남모르는 이에게로부터 도움을 받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우리는 대인관계에서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진실한 말한 마디에 감사가 배어 나오는가하면, 무시하는 말투나 고립시키는 말에는 기를 꺾어놓기도 한다. 특히 지적장애인한테는 놀림조로, 함부로 대하는 언행은 팔매질하는 형국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고 했다. 곱게 들어오는 말한 마디는 존경스러워도, 칼날처럼 들어오는 말한 마디는 상처를 주고 우울하게 만들기가 십상이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지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내 말이 고운데 그대 말이 나쁠 수가 없다. 불 때는 아궁이는 가까이 다가가야 따습다.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내가먼저 건네는 좋은 말한 마디는 서로 간에 유유愉愉하다. 돈 안 드는 유익한 생각과 언어는 티슈 뽑아 쓰듯 아낌없이 써도 좋겠다. 생각마당에서 뒤돌아보고 되돌아본다. 삶의 마디마디 숨고르기 하면서 자리는 달라진다. 보송해질 수도 척척해질 수도 있다. 괜 시래 손가락 관절마디에 깍지를 끼어 본다.
흔들릴지언정 곧게 뻗은 대나무의 속성을 그려 본다. 힘차게 굴려도 쭈그러지지 않는 드럼통을 떠올린다. 날 궂은 날이면 삭신이 마디마디 쑤신다는 어머니의 소리를 듣는다. 산통으로 뼈마디가 으스러지게 아팠던 기억들이 스쳐지나간다. 행복마디는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는 건강이다. 좋은 사람과의 말 한마디가 좋은 관계로 유지 되듯, 머문 자리가 데면데면해지면 안 되겠다. 혹여 내 안에 불협화음이 흐르는 골은 없는지, 불행 뒤에서 행복을 꿈꾸는 건 아닌지, 마디마디 진동을 느껴 볼 일이다.
첫댓글 깊은 사유가 담긴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