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특별시의 중심. 종로구에 300 미터가 조금넘는
진산이 2좌 버티고 있습니다.
바로 인왕과 북악 입니다.
인왕산은 서울중심의 서쪽을 등지고 서서
과거의왕궁 경복궁과 지금의왕궁 청와대를 발치에두고 굽어보고있습니다.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그 자태가 늠름하고 당당합니다.
그런데..이산은 묘하게도 그 바위의 형태가
암벽등반을 위하여 누군가가 갖가지 모양의 난이도별로 일부러 설계한듯한
10여개의 자연적 등반루트를 갖추고 있습니다.
60년대에 한참 등산운동이 보급될당시
각학교의 산악부학생들의 좋은 암벽훈련 교장이 된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시의 명문고교들이 거의 이 산자락아래 위치하고 있었으며
시내 어디서든 접근이 쉬웠기때문에 인왕암장에는 늘~학생들로 붐볏습니다.
모두들 교복에 워카 그리고 유일한 등반구인 군용쟈일을 들고
학교 또는 단체별로 경쟁심을 갖고 기량을 겨루는 열띤 훈련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터줏대감들이 있었습니다.
산아랫동네 누상동에 살고있던 고교생들로 이루어진
인왕톱크럽, 피톤크럽, 키크럽, 등이 늘~인왕산에 살다시피하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던중...모두 인왕산에서 쫒겨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대통령의 목을 따러 왔다는 김신조를 포함한 30여명의 북쪽 특수부대와
교전이 인왕과 북악 사이에서 벌어졌습니다.
이후 인왕산 허리를 잘라 작전도로인 스카이웨이를 만들고
산에는 군인들이 주둔하면서 입산금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당시 학생들중 인왕톱크럽의 이인정 선배는
80년대초 김정섭형제의 비극으로 한국인에겐 비운의산인
마나슬루에 원정대를 이끌고가서 등정에 성공하였으며
지금은 대한산악연맹 회장과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을 역임하고있습니다.
키클럽의 최선웅 선배는 거기 그런 칼날능선이 숨어있는줄 아무도 몰랐던
인수봉 서북쪽의 숨은벽을 찾아내고 암벽등로를 개척하였으며
한국산악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지도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후 김영삼정부가 들어서고 산은 다시 개방 되었지만
암벽의접근은 여전히 출입금지 상태입니다.
다만 인왕톱의 노인네들이 (저를 포함하여) 관계기관에 탄원을 넣어
사전 허가후 어렵게 출입하고있습니다.
지금도 인왕산은 여전히 그자리에 있지만
김광규 시인의 시처럼..
왠지 숨차 보이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