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2002수원사랑™【♡】
 
 
 
카페 게시글
수원공연&문화소식 스크랩 2012년 제49회 수원화성문화제 /10.5(금)~10.7(일)
상쇠 추천 1 조회 182 12.09.27 08:26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2012년 제49회 수원화성문화제

10.5(금)~10.7(일) 

 

 

 

 

 

 

▣▣▣ 세계문화유산「수원화성」소개 ▣▣▣

-개요 및 요지-

수원화성은

정조18년~20년

(1794년~1796년까지)

2년여 걸처 첨단 과학적으로

축성된 평사형 구조물 성곽으로 총포

근대적 구조로 방어용 성곽이며

그 길이는 5.7km 높이는 4~6m로

넓이 면적은 1.2km2이며

영의정 체재공감독하

정약용의 기술지도등으로 도급제

공사로 당초 4년 계획을

2년으로 최단기간에 완성되었고

그 원인은 인력을 무단 강제

징발이 아니라

합리적 조건으로 기공조공 구분 임금을

합당하게 지급하며 도급할당식으로

공사한 관계로

능률이 좋와 공기를 단축하였다 한다

이는 화성축성의퀘에 공사자 이름 임금지급

현황이 상세히 기록이 되어 있으며

이를보고 복원도 가능타 하여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결정적

도움이 되었다.

향토음식으로는 과거 우시장이였던

수원유수 화춘옥에서 왕갈비 구이가

유명해져 오다가

1985년부터 향토문화음식으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수원왕갈비가 맛자랑이 되었다

<팔달산에서 조망한 수원시내와 광교산>

 

세계문화유산「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서호장대. 서장대>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수원화성행궁>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풍루앞마당 줄타기 공연>


화성은 정약용 등이 올린 축성방략을 정조가 모은

기초로 한 「성화주략(1793년)」을

 

<무장복장 차림의 정조대왕;안보를 위하여 사후에도

무장복으로 영정을 하라고 당부했었다고>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창룡문 정면/방어용 옹벽 반구용>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창룡문 뒤면>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

사용하여 장대한 석재등을 옮기며 쌓는데

 

<화서문 ; 방어용 옹벽 반구형>

 

 

이용하였다. 화성 축성과 함께 부속시설물로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물을 건립하였다.

 

 

<앞에서 본 화서문>

 

화성은 축조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남문 팔달문;현재 전년도부터 보수중>

 

1975~1979년까지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 의거하여 대부분

 

<북문 장안문>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면 장안문>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북수문 7구수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砲)루 5,

 

<방어개념의 신호체계 봉수대 봉돈>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남수문 9개수구;100년간 우량을 통계 계산하여 수문을 복원함>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수문 1,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 이

<신풍루앞마당에서 무예24기 공연>

 

소멸되고 41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화성은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신풍문을 통과하여 우익문앞에서 팔달산을 배경으로>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정조대왕이 타시던 연/홍보관에 전시>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찰라의 인연으로 정조대왕과 왕비와 의상 체험을 하는 필자>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00년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축성의 동기가

<수원화성문화제 제11대 정조대왕역 한의사 윤성찬씨와 함께 인증도>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 자체가

"효"사상이라는

<남수문 90년만에 복원 축하공연>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이와

 

<아름다운 방화수류정 야경인바 수원성곽 데이트로

90%이상의 결혼성공담이 많습니다>

 

관련된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보기 힘든

 

<행궁 기중현에 보관된 정조능행차시 사용하던 악기중 하나 대북>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연무대 활터와 무술훈련장>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연무대>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성벽은 외측만 쌓아올리고 내측은 자연지세를

 

<연무대와 팔달산을 왕래하는 화성열차>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외축내탁의

축성술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성곽을 만들었으며,

 

<팔달산으로 산책 나온 꼬마숙녀>

 

또한 화성은 벽돌과 석재를 혼용한

축성법, 현안ㆍ누조의 고안, 거중기의 발명, 목재와

<방화수류정 앞 연못에 용이 살았었다는 용연;2011년 복원>

 

벽돌의 조화를 이룬 축성방법 등은 동양성곽

축성술의 결정체로서 희대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당대학자들이 충분한 연구와 치밀한

계획에 의해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하여 축성하였기

 

<수원왕갈비>

 

때문에 그 건축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축성후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꽃이 만발한 상춘의 방화수류정>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지동시장>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곽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야경 방화수류정>

 

아니라 그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화성시 화산동에 융건능 입구>



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화성시 화산동에 용주사>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4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광교저수지 상류로 가는 수변로로 가면서 시야에

들어 온 영동고속도로와 광교산 전경>

 

<문화행사 기간중 많이 많이 찾아주셔서 광교산,팔달산,성곽걷기,화성행궁,연무대,북수문 화홍문,

방화수류정,봉돈,남수문,화성문화공연과 융건능,용주사등 왕갈비와 순대맛을 체험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자칭 화성홍보대사

삼보리배상>

 

 

 

 
 
 
 
 
 
 
 
다음검색
댓글
  • 12.09.27 17:57

    첫댓글 홍보영상도 확인하세요 ^^
    http://tv.suwon.ne.kr/2011/video/video.jsp?ocode=5735&outcall=etc&ccode=001005002

  • 12.09.30 12:23

    질문요▶10월6일 공연할때~수원출신의 가수 또는 팀들만 출연해야 한다는 법이나 규칙도 있나요??

  • 작성자 12.09.30 23:58

    처음 듣는 소리임니다

  • 12.10.02 16:12

    좋은 자로 잘보고 갑니다,

  • 작성자 12.10.02 17:17

    네 구경해보세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