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서울의 봄 - 탄핵 그리고 공직선거법 250조 1항
글쓴이 : 백태웅 화와이 대학교 로스쿨교수
2025년 서울의 봄은 참 잔인한 시간입니다. 3월 하순에 접어드는 시점에도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쌀쌀한 냉기에 몸을 움츠립니다. 사람들은 안국동의 헌법재판소와 광화문과 여의도를 바라보며 한국의 민주주의의 앞날을 생각하고 불면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봄 방학을 맞아 서울에 왔지만 어느 때 보다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미국 대학의 봄방학은 바쁜 대학 생활에 숨구멍 같은 시간입니다. 대학생들은 밀린 공부도 보충하고 짧은 여행으로 재충전을 하기도 합니다. 교수들도 나름 여러 프로젝트 관련 활동을 합니다. 따뜻한 봄을 기대하고 인천공항에 내렸는데 이 땅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울 일정의 하나로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AACC) 연구사무국을 방문하여 지난 수년 간 아시아 여러 지역의 헌법재판소들이 진행해 온 국제연대의 현주소를 들었습니다. 아시아의 20여개의 나라에 헌법재판소 내지 그에 준하는 기관이 있고, 그들이 헌법적 권리를 구체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정을 걸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아시아 각국의 모범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는데, 이번 봄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다시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이어 오랜 벗 남진현 선생의 7번째 전시회, "화가가 된 혁명가"가 열리는 인사아트센터에서 들러, 한결 성숙한 그의 그림들을 구경하고 예술과 인생과 삶의 의미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구비구비 삶의 굴곡이 담긴 다양한 입체파 얼굴 표정, 강렬한 색깔과 이미지를 통해 그가 벼려내는 삶의 얘기를 확인하는 것은 각별한 재미입니다. 강제실종방지협약 이행 입법 관련 연구를 하고 계신 벗과 만나 한국에서의 강제실종 이행입법 현황도 듣고 또 국제규범과 국내법의 상관관계에 대한 얘기를 나눈 것도 뜻 깊었습니다. 또 첨예한 정치 현안이 되고 있는 여러 소송에 깊이 관여하고 계신 벗을 만나 헌법재판소의 재판 상황, 다양한 층위로 진행되고 있는 핵심 정치 사안과 관련한 재판 현안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치열한 현장에서 온몸으로 뛰시는 분 얘기를 들으며 스스로의 생각을 현실과 맞추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한국에 왔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이제 막 정년을 하고 새로운 광장으로 나오신 한인섭 교수님을 만나 지난 회포를 풀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즐거움은 더 말할 것 없지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가 이번 주에는 내려지겠지 하고 기대하였었는데 아무래도 다음 주로 또 미뤄지려나 봅니다. 안국동을 지나가다가 탄핵 반대 집회 현장을 만나서, 한 구석에 자리잡고 여러 연사들의 발언을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애국자이며 계몽된 사람들 아닙니까"라고 외치며, 판사와 헌법재판관, 심지어는 여당 정치인까지 다 적대시하고, 오로지 윤석열의 복귀를 목청껏 외치는 생경한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에 심각한 질병이 닥쳐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속히 탄핵 선고가 내려져야 하겠습니다. 당연히 탄핵 인용되겠지요. 탄핵이 끝이 아니고 거기에서 그동안사회 전체에 걸쳐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사회적 가치의 씨줄과 날줄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전국민적 대화가 시작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사회 비전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김문기와의 관계 및 백현동 용도변경과 관련된 발언에 대해 검찰은 항소심에서 다시 징역 2년을 구형했고, 오는 수요일 3월 26일 항소심 선고 공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1심 판결에서는 이 대표가 해외출장 중 김문기와 찍힌 사진이 조작되었다고 말한 것이 골프를 친 것을 부인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이것이 허위사실공표죄로 판단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직선거법상의 당선목적의 허위사실공표죄가 성립하려면 해당 발언이 유권자의 당락의 판단을 결정적으로 왜곡할 정도로 중요한 사항이어야 하는데, 김문기와의 골프 여부가 대통령선거 당락을 좌우할 중대한 사안인지에 대해 의문이 있습니다. 또 백현동 용도변경 관련하여, 이 대표는 용도변경이 국토부의 압박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한 것을 허위사실공표로 판단했습니다. 국회증언감정법이 국회에서의 증언을 보호하는 취지를 고려할 때, 이 대표의 국회에서의 발언을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본 것은 잘못입니다.
백현동 사건은 특히 국회증언감정법 제 9조 제1항과 제 3항에 따라 증인이 국회에서의 자유로운 증언을 허용하고 그에 따른 발언은 기타 형사법적 처벌을 면제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에서의 증언을 "국정 감사의 목적과 무관한 발언"이라고 하여 공직선거법상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에 어긋나는 판단입니다. 또 백현동 관련 국토부의 협박 유무에 대한 진술은 토지용도지역을 변경한 행위 자체를 부인하기 보다는 용도지역 변경이 진행된 배경을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정치적 발언이었고, 이러한 정치적 발언은 본인의 추측 등 주관적인 관점을 표명한 것으로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일부로서 보호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여러 연방법원의 판례에 의해 실제적 악의에 의한 진술, 즉 허위 사실임을 알면서, 또는 중요한 사실에 대한 비상식적인 무시 속에서 허위의 진술을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전통적인 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정치적진술의 규제가 “엄격한 심사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보호의 폭을 한결 넓혀 나가고 있습니다. 선거에서 설령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진술이 행해지더라도, 정부와 법원이 나서서 이를 규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선거와 정치적 자유를 근본적으로 제약할 수 있으므로 그에 대한 규제는 매우 신중하고 엄격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1심 판결은 선거시기의 발언이 허위사실 표명인지 여부에만 초점을 두고 있고, 그 발언이 허위이면 무조건 250조 1항 위반에 해당한다고 간주하고 있어서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공직선거법의 목적에 비추어 허위사실 공표의 처벌은, 선거공보에 경력이나 활동 내용 등에 대해 허위의 내용을 공표하여 선거와 직접 관련이 있는 내용에 대해 후보자가 직접 책임을 져야 할 허위 진술을 한정적으로 처벌하는 조항으로 보아야 합니다. 공직선거법은 해당 허위사실공표를 통하여 선거의 결과 낙선되어야 할 사람이 당선되는 것을 막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고, 그래서 허위의 사실 공표의 내용이 당선 또는 낙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정도의 중대한 발언에 한정되어야 합니다. 이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여 그 내용상의 적실성과 형식상의 직접성과 무관하게 당선과 낙선을 좌우할 정도의 사안이 아닌 부분에 대해 허위진술을 한 것을 모두 처벌하게 될 경우,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하여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법이 됩니다. 그래서 공직선거법 관련 항소심 선고결과가 1심과는 다르기를 절실히 기대해 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정리한 글이 있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은 다음 링크를 클릭해서 보시지요 ( https://1drv.ms/b/c/f6d932dd8a02bea7/Ea1FRsHFqt1OrU7wNZfXaNMBt36v_znDuY5Rirv7wcxP9A?e=cC4imk ).
오늘은 햇살은 좋은데 미세먼지가 자욱한 날이군요. 2025년 3월 서울의 봄이 화창한 꽃피는 시절로 바뀌는 순간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여러 벗들께 따뜻한 마음의 인사를 보냅니다.
화와이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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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화와이대학교 로스쿨
백태웅 교수님의 글을
백광철이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