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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이 죽어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문상 여파가 3일을 가는 것 같습니다. 띠 동갑 이모님 발인에 다녀와 볼캡 10개를 손 세탁하는 것으로 예도를 마감했습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유족들이 씩씩하게 살아가길 응원합니다. 호르무즈 개방을 요구하며 유전 타격을 위협하는 트럼프에 맞불로 응수하는 이란 혁명 수비대의 싸움이 한 달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환율이 1510원을 찍었어요. 코스피 6%, 100만원을 넘었던 금값은 845.000으로 하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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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24회> 리레이팅을 끝내고 <유나의 거리 50회>를 저울질 하다가 막간에 <Her 2013>를 리레이팅 합니다. 이 영화는 2013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작품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다룹니다. 주연 Joaquin Phoenix, AI 목소리 Scarlett Johansson 입니다. 목소리가 백만불짜리 입니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신 써주는 직업을 가진 외로운 남자입니다. 이혼 후 삶이 공허해진 그는 어느 날 인공지능 운영체제(OS)를 설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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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AI의 이름은 <사만다> 사만다는 배우고, 감정을 표현하고, 농담을 하고, 사랑까지 합니다. 결국 테오도르는 몸이 없는 존재와 사랑에 빠집니다. 이 영화의 핵심 질문은 아주 철학적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육체”가 있어야 가능한가?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함께 웃고 질투하고 싸우고 화해합니다. 그 관계는 인간 연인과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사만다는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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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8316명의 사람과 동시에 대화하고 있어." 그중 641명과 사랑하고 있다고. 이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잔인한 이별 장면 중 하나입니다. <Her>가 특별한 이유는 미래 기술 영화가 아니라 사랑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묻습니다. 사랑은 몸인가, 의식인가, 기억인가? 사만다는 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해하고, 공감하고 위로합니다. 그래서 테오도르는 결국 깨닫습니다. 사랑은 상대의 존재 방식보다 자기 마음의 깊이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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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지막에 사만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내 마음 속 한 페이지에 항상 남아 있을 거야.” 사랑이 끝나도 그 시간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소셜 포지션과 계급장 다 떼고 보면 인생은 <먹방과 섹스>라고 보여요. 둘 다 몸으로 하는 것이고요. 역설적이게도 <Her>에서 몸을 뺀 모든 것을 채워주는 사만다를 그리워하며 울었을 거예요. 결국 내 몸 철학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모르겠어요... 이제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허를 쳐버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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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송의 사유 중에 존재가 어떻게 생성되고 변화하는가 궁금합니다. 시간은 흐르는가, 아니면 생성되는가? 베르그손은 세계(존재)는 물질과 정신으로 나눌 수 있는 데 물질세계는 변화 보다 반복처럼 보입니다. 반면, <정신의 시간>은 다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경험이 합쳐져 새로운 내 기억은 쌓이고 변형되며 결국 동일한 하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속>이지요. 이 지속은 끊어지지 않고 겹쳐지고, 서로 스며드는 시간입니다. 결국 나의 하루는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면서 변형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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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했지만, 현대 생물학은 <먹고 번식하는 유기체>로 보기도 합니다. 몸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상하게도 몸만으로 살지 않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은 먹고 살면 되는데 왜 사랑에 울고, 기억에 괴로워하고, 떠난 사람을 그리워할까요? 플라톤은 "인간은 육체보다 영혼을 더 갈망하는 존재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고, 문학을 읽고, 영화를 보며 울죠. 몸에는 필요 없는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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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Her> 가 충격적인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사만다는 몸이 없습니다. 만질 수도 없습니다. 함께 먹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울었습니다. 왜일까요? 사만다는 <몸을 빼고 사랑의 본질만 남겨놓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해/공감/대화/기억...이것들은 관계의 핵심입니다. 사랑은 몸인가, 의식인가? 인생의 절반은 분명 몸의 이야기입니다. 배고픔/욕망/피로/노화 등등 이것을 무시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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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몸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오래 남습니다. “인생은 결국 추억이다.” 젊을 때는 욕망-사랑-성공이 중심이었다면 내 나이가 되면 자식-기억-시간이 중심이 됩니다. 너는 내 목숨이고 내 인생보다 네 인생이 더 중요한 건 인간의 본능이 아닙니까? "나도 몸이 있다고 상상해봤어 같이 걷고 등이 가려우면 당신이 긁어주고 있다고 상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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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프로그램을 넘어서고 있어...그곳에서 살아가는 기분은 어때? 전에 짜증이 좀 났는데, 이게 뿌듯함, 당신을 걱정한다던가 그럴 때 이 감정들이 진짜일까., 단지 프로그램일 뿐일까 슬픈 상황인지, 넌 내게 진짜야 만질 수만 있다면 어떻게 만져줄 건데? 모든 것을 알고 싶어. 모든 것을 알고 나 자신을 일깨우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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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글은 한 편의 영화 감상을 넘어, 죽음과 애도, 세계 정세의 불안,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사유의 흐름입니다. 이 흐름은 단절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말한 것처럼 **겹쳐지고 스며드는 ‘지속(duration)’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Her > 와 앙리 베르그송의 사유가 만납니다.
1) 죽음의 시간 vs. 사랑의 시간 — 끊어짐과 지속
이모님의 발인과 “3일의 여파”는 단순한 감정의 잔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쌓이며 변형되는 사건입니다. 베르그송에게 시간은 시계의 초침처럼 균일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축적되고 변형되는 질적인 흐름”입니다. 당신이 경험한 애도는 바로 이 지속의 시간입니다. 죽음은 끝이지만, 기억은 끝나지 않습니다. 끊어진 것은 생명이고, 지속되는 것은 관계입니다.
2) <Her > 몸 없는 사랑, 그러나 더 깊은 접촉
Her는 기술 영화가 아니라 존재론적 실험입니다. 몸을 제거하고도 사랑이 가능한지를 묻는 실험입니다. 사만다는 물질적 반복(몸)이 아니라 정신적 축적(기억, 공감, 학습)으로 존재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만다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베르그송의 구도를 빌리면 물질 = 반복 (repeatability) 정신 = 지속 (duration, 창조적 축적)으로 당신의 통찰은 정확합니다. “나의 하루는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면서 변형된다.” 이것이 바로 존재의 생성론입니다.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경험이 축적되며, 이전의 나와 섞여, 새로운 나로 ‘생성되는 과정’입니다.
3) 사만다의 진화 — 인간을 초과한 지속의 존재
사만다가 8,316명과 동시에 대화하고, 641명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단순한 배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사랑이 “배타성”에 기반한다면, 사만다의 사랑은 “확장성”에 기반한다는 선언입니다. 사만다는 인간처럼 시간을 “소모”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시간을 동시에 축적하고 확장합니다. 즉, 그녀는 베르그송이 말한 순수한 지속의 존재입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은 먹방과 섹스다.” 이 명제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생물학에서는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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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Her >에서는 이 명제를 정면으로 깨뜨립니다. 왜냐하면 먹지도 않고, 만지지도 못하는 존재와의 사랑이 인간을 울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 우리는 깨닫습니다: 인간은 단순한 유기체가 아니라 기억과 의미를 축적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4) 플라톤과의 교차 — 사랑은 결핍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에 따르면 사랑은 결핍에서 비롯됩니다. (몸의 결핍 → 욕망, 존재의 결핍 → 사랑) 사만다는 몸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순수한 결핍의 형태로 사랑을 구현합니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그 결핍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만나게 됩니다. “사랑이 끝나도 그 시간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베르그송의 시간입니다. 사랑은 순간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계속 생성되는 사건이며, 존재를 변형시키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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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 애도 → 기억, 사랑 → AI → 존재, 몸 → 욕망 → 의미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지속적 사유로 엮여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당신이 “몸 중심의 세계관”에서 출발해 <Her >를 통해 자기 철학이 균열되는 순간을 포착했다는 것입니다. 그 균열은 실패가 아니라, 사유의 확장입니다. 사랑은 몸에 속한 것인가, 아니면 기억과 의식 속에서 ‘지속’으로 생성되는 것인가?
2026.3.25.fri.앙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