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론 서바이버
당신이라면이 소년을 죽일 것인가살릴 것인가
임무 도중 지나가던 양치기 소년에게 발각되었다
소년을 풀어주면 부대원 전체의 목숨이 위험하다
2005년 실제 아프간서 펼쳐진 美 ‘레드윙 작전’ 소재
전투 중 교전수칙과 그에 따른 복잡한 윤리문제 다뤄

출처=유니버설 픽처스

실제 레드윙 작전의 전사자들. 왼쪽 셋째는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서 하사.
|
전쟁은 판단을 강요한다. 자칫 오판은 치명적인 화를 부른다. 때론 죽음을 자초한다. 전시에 우선되는 판단 기준은 교전수칙이다. 하지만 돌발 상황이 끊이지 않는 전쟁터에서 교전수칙에 전적으로 매달릴 순 없다. 민간인과 적군이 분간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하면 더 그렇다. 여기에는 복잡한 윤리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면 상부 지시를 따르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상부와도 연락이 끊긴다면?
영화 ‘론 서바이버’는 2005년 실제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에서 펼쳐진 미군의 ‘레드윙 작전’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교전수칙과 그에 따른 복잡한 윤리문제를 다루고 있다. ‘론 서바이버’는 유일한 생존자란 뜻. ‘레드윙’은 탈레반 부사령관 ‘아마드 샤’를 제거하기 위해 미군 네이비실 정예요원 4명이 투입된 작전명이다. 영화는 실제로 누가 적군이고 누가 민간인인지 식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전수칙을 지키는 것은 앞으로 있을 위험과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영화는 실존 인물인 미군 네이비실 마이클 머피 대위가 세 명의 부사관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에 투입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찰 전문 매튜, 통신 담당 대니, 의무병이자 저격수 마커스 하사가 그들이다. 이들 4명은 적지에 떨어지자마자 낙하지점이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한다. 불길하다. 아니나 다를까 4명의 대원이 본격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잠복해 있던 중, 양치기 일행에게 정체가 발각된다. 불길함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다. 완벽한 작전 수행을 위해 이들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살려줄 것인가?

영화 속 4명의 정예요원.
|
논쟁 끝에 현장의 최고 상급자는 그들을 민간인으로 보고 교전수칙에 따라 살려준다. 하지만 그 판단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이때부터 탈레반 무장 세력과 1박2일 동안 혈투가 벌어진다. 이들은 잘 훈련된 최정예 군인들이었지만 통신이 끊기고, 수적으로도 절대 열세하고, 지형도 모르는 사면초가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전투를 벌인다. 암벽을 맨몸으로 구르며 끝까지 싸우지만 한 명씩 부상을 입고,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4명의 대원이 산악지대에서 벌이는 전투 장면은 사실감이 있다. 극한 상황에서도 동료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전우애와 한순간의 선택이 가져온 외롭고도 처절한 사투가 영화 전편에 실감 나게 담겨 있다.
영화 후반의 반전은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동료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아 사경을 헤매다 웅덩이에 빠진 마커스 하사. 이때 아프가니스탄 파슈툰 부족의 굴랍이라는 사내가 그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다. 마커스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굴랍은 음식물을 주며 보호한다. 하지만 마커스를 발견하고 죽이려는 탈레반. 이때 굴랍은 탈레반에게 총을 겨누고, 자신들의 율법에 입각해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내 손님이다.” 탈레반과 일전도 불사한 굴랍과 마을 사람들은 미군에게 마커스 하사를 무사히 인계한다. 뜨거운 인류애가 빛을 발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영화는 대원들 간의 희생정신과 전우애를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식의 영웅주의로만 그리지 않는다. 작전의 임무도 끝까지 수행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원 중 한 명만 겨우 살아 탈출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자신이 공격당하고 전사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교전수칙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꽤 복잡한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있을 수도 있는’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공격 무기를 갖고 있지 않은 적대국 민간인을 상대로 군사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가? 정당한 전쟁을 치르기 위해선 하는 수 없이 그들을 살려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쟁 상황에선 이런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그때마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마커스 하사는 율법에 따라 자신의 손님을 지킨 굴랍 덕분에 살아남았다. ‘위험에 처한 사람은 끝까지 지켜줘야 한다’는 파슈툰 부족의 율법 ‘파슈툰왈리’는 미군의 교전수칙 이상으로 인간적이고 도덕적이다. 이 아프가니스탄 율법은 2000년 동안 내려온 것이며 지금까지도 이 마을 사람들은 이 율법에 따라 탈레반과 싸우고 있다고 한다.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Based on a true story)란 자막으로 시작하는 ‘론 서바이버 (Lone Survivor)’는 제목 그대로 혼자 살아남은 마커스 러트렐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무기와 장비들은 실제 미군의 전폭적인 협조로 사실대로 재현됐다. 시누크·아파치 헬리콥터와 차량, 실제 해병대원이 직접 참가했다. 영화는 보는 사람이 싸움터 한복판에 있는 듯 사실적이다. 레드윙 작전은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모가디슈 전투만큼이나 무모했던 전투로 기록되고 있지만 우리에게 성공한 작전 이상의 교훈과 감동을 주고 있다.
영화 시작 부분에 나오는 미군 네이비실의 혹독한 실제 훈련 영상과 ‘레드윙 작전 전우에게 바친다’라는 글이 나오는 영화 엔딩 부분의 전사한 실존 인물들과 동료, 아내, 가족 등의 영상은 보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김병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
추억의 영화 음악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