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이라도 임과 함께라면 여한이 없겠소.
솔향 남상선/수필가
목청을 돋우던미가 귀뚜라미에게 배턴터치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경쟁이라도 벌인 듯 요란했던 매미 떼의 울음소리가 가을의 전령사 실솔(蟋蟀:귀뚜라미)의 처량한 소리로 바뀌었으니 말이다.‘세월 앞엔 장사 없다’더니 이제서 그 말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침 도솔산 맨발 걷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월평정수장 울타리 분기점까지 왔다. 내려가는 길 하나는 만년교를 거쳐 유성고로 가는 것이고, 또 다른 두 길은 도솔산 상봉으로 향하는 것이오, 다른 하나는 한밭고등학교로 내려가는 길이다. 얘까지 온 게 무엇에 홀린 기분이었다.
이 지점은 나한테 잊을 수 없는 역사적 현장이 되고 말았다. 아내와 함께 걷던 길이니 자그마치 15년 전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라 이 울보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었다. 한편 이 길은 내가 유성고등학교 재직할 때 1주일에 3일 정도는 걸어서 출퇴근을 했으니 그냥 무덤덤하게 보아 넘길 길은 아닌 듯싶었다.
그 때 아내가 하는 말이‘책가방 지고 땀나면 수업 못 한다’며 아내는 그걸 예까지 져다 주고, 도솔산 정상으로, 나는 유성고등학교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분기점이다.
이런 사연이 있는 역사적 장소였으니 내 어찌 무감각으로 지나갈 수 있겠는가!
나는 오늘 아침 종이를 가위로 오려내어 봉투 몇 장을 만들었다. 종이를 오려내는 가위의 양날을 보고‘서로 힘을 모아 협력하고 마음을 같이 한다’는 육력동심(戮力同心)이 떠올렸다. 부창부수(夫唱婦隨)란 말도 있지만 우리 부부는 육력동심을 대변하는 부부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협화음이 없는 한 쌍이었다. 평생에 부부싸움 한 번 않는 사랑으로 살았으니 말이다.
‘시경(詩經)’에‘해로동혈(偕老同穴)’이란 말이 나온다.‘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도 한 무덤에 묻힌다.’는 뜻이니 세상의 부부들이 동경하는 단어일 것이다. 나는 팔자가 사나웠던지 그걸 못하고 아내를 먼저 보내게 되었다.‘부부가 되어 한평생을 같이 살며 함께 즐거워한다.’는‘백년동락(百年同樂)’이란 말도 있지만 우리는 운이 없어서인지 아내는 소풍 길 먼저 떠나고 말았다.
아내 없는 15개 성상(星霜)은 인고(忍苦)의 세월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잡초가 더 강인해지듯이 내 자신이 그렇게 되었다. 들판에 나 있는 잡초처럼 굳센 의
지로 살지만 의지와 인내로써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바로 그리움과 보고픔이었다. 명절 기나 좋은 일이 있을 때를 비롯하여 연상의 매체나 회상의 매체가 눈앞에 나타날 떼에는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보고픔과 그리움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리라.
감정이 무뎌질 만한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리움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꿈속에서라도 한 번 만나보고 싶은 학수고대의 심정이다. 얼마나 보고 싶던지 100원 어치 만이라도 아내의 얼굴을 보게 해 달라고 넋두리를 한 때도 있었다.
‘하루만이라도 임과 함께라면 여한이 없겠소.’
나는 어떤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잡초가 다 됐지만
보고픔괴 그리움 앞에서는 맥을 못 추겠네.
뵈오려 해도 안 뵈는 아내의 모습 눈 감으니 보이시네.
명절기나 연상, 회상의 매채가 있을 땐 날 괴롭히시니
명절은 없게 하시고 연상도 회상도 못하는 바보 천치로
마음도 몸도 사시사철 마냥 편한 삶이 되게 하소서.
노산 이은상님이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지
그의 양장시조를 모셔다 쓰라 한다.
뵈오려 안 뵈는 임 눈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 되어 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