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나라 水軍을 거느린 내호아는 상륙후 卑沙城에서 고구려 군사를 물리치고 平壤으로 향하려 하였고.
2) 당나라 水軍 장량은 등래로부터 바다를 건너 卑沙城을 습격하며 卑沙城은 平壤으로 향하기 적지로 卑沙城을 점령한후 총관 구효충 등과 군사를 鴨綠水로 보내어 전방의 고려군사들에게 후방 鴨綠水가 당나라 水軍에 점령된 사실을 시위하였다. 이를 보면 卑沙城과 鴨綠水는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 당시의 지리적 개념을 알기위해서 등주와 래주의 위치를 알아야하는데 국사학계나 밖에서 한문좀하고 역사책보았다는 사람들의 글을보면 등래주를 현재의 산동성 등래주로 보고 여기서 당수군이 황수양 흑수양을 지나 요동반도로 처들어간것으로 기술하는데 이는 송,명나라 이래 원래 위치에서 북동진한 지명이동을 계산하지 않고 지리해석의 오류를 범하는 착각이다.
당나라 시기에 구당서와 송사지리를 보면 등주와 래주는 하남의 동북과 산동의 내지 즉 양산박으로 알려진 산동성 대야택 부근이었으므로 이방면의 황하 내륙수로를 타고 고구려의 평양을 직공하려했을것으로 본다. 평양을 치는 경로에 백암성과 남으로 건안성 북으로 안시성이있고 비사성 오골성을 딛고 압록을 넘어 바로 평양성이 있었을것이다.
고구려의 수도 이동기록 (역사문에서 발췌)
1. 추모왕 원년 BC 37년 졸본 40년간
2. 유리왕 22년 3년 국내성 207년간
3. 산상왕 13년 210년 환도성 38년간
4. 동천왕 21년 248년 평양성 94년간
5. 고국원왕 12년 342년 환도성 1년간
6. 고국원왕 13년 343년 동황성 28년간
7. 고국원왕 41년 371년 국내성 56년간
8. 장수왕 15년 427년 평양성 150년간
9. 평원왕 28년 587년 장안성 81년간
고려대제국증거의 필명으로 활약하는 이성근박사가 비정하는 비사성(패주를 해주로 볼때)
운영자가 비정하는 안시성은 독사방여기요나 명일통지에 기록된 기록을 근거로 안시폐현인 하북성 향하현인근으로 볼수있고 고구려시기 산서성 중부에 위치한 태원과 곽태산이 실제로 그 당시에는 산서성 남단이었으므로 실제는 이를 유념하여 고려하여야하고 정확한 지명을 찾을 단서는 좀더 연구해야 할것으로 보이나 향하현이나 보저현에 고구려 후기 평양성(장안성)이 있을것으로 보는것이 합리적으로 생각된다.
이 당시 요하는 영정하로 비정되니 그 넘어 바로 보저와 향하현이 위치하기 때문이다. 고려원정에 실패한 당태종 이세민이 요택을 넘어 퇴각할때 추위와 늪지대로 인해 엄청난 고생을 하였다 기록되었으니 아래의 루트대로 철군하다 요택에서 고생했을것이다.
步騎의 침공과 철수 역시 윗 지도 서안-산서-정형관-진정-보정-순천루트로 이동했을것으로 본다.
심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