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4.09~10]
꽃향 분분한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봄날의 하루,
소속 등산학교 교육의 2주차가 진행중인 금정산 장군암을 찾았다.
교육생들의 새벽 찬 공기를 가르는 거친 숨소리와 암벽을 대하는 앙다문 입술, 긴장의 눈짓이
마치 모의를 마치고 곳곳에서 터져나는 꽃들의 함성을 마주한 양 가슴 뜨거운 하루였다.
아무렇게나 생겨 어리숙한 졸참나무 숲에 서서 잘난 체 피어난 한그루 철쭉을 본다.
사는 게 바빠 마음을 다해 돕지 못하고 허둥지둥 오르고 내릴 뿐인 나의 처지가 그와 같구나.
봄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매순간 이렇게 내밀하게 익어가고 있었던 것을.
이윽고 오른 따신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저 멀리가 과연 봄.
<봄빛>
가만히 생각해 보면 봄빛은 여명을 닮았다.
심장을 데우고 시선을 흔든다.
그 빛 한줄기, 내게 오면 그제사 봄.
그러므로 봄빛은 역동의 단초다.
산의 새벽을 달리는 청춘(靑春)
저마다의 거친 호흡, 굵은 땀방울이 그야말로 푸르른 봄이로구나.
오~ 아름다워라!
심장이 터질 듯 올라선 안부에서 붉게 타오르는 오늘 아침의 해를 바라보는 것.
일러 꿈이라 할까, 인생이라 할까.
아니, 적어도 이 순간 만큼은 인생과 꿈은 닮았다.
그래야 옳다.
여명의 무명암.
구상나무 숲 너머 상계봉.
기름기 빠진 억새밭도 저 청춘의 역동에 이르러
기어이 다시 한번 가을의 불꽃 같은 삶을 꿈꾸는가.
<봄소리>
우리는 잘 웃지도 속삭이지도 않지만
자일에 맺은 정은 레몬에 향기에 비기리오...
어설픈 산악가 소리에 봄도 놀랐나 보다.
봄소리가 숲 가득 왁자하다.
여기 저기서 툭툭 터지는 꽃망울 소리,
앙상한 가지를 마구 흔들어대는 봄바람 소리.
가벼운 슬랩으로 슬랩 등반의 기초를 체험하기에
맞춤의 코스인 하늘길을 등반하는 교육생.
50cc 바이크를 탄 듯 덜덜 떨리는 다리며
경직되어 펌핑현상인 팔이며
긴장을 더하는 강사의 호령이며 만만치 않음에도
기어이 이겨내려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누구는 이 나이에 웬 기합이냐 싶은지도 모른다.
누구는 정말이지 이제 그만두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가슴 한 켠, 그 마음을 꾹꾹 누르는 무엇 있다.
오기일까. 꿈일까.
침니 코스인 선비길을 선등하는 강사.
그저 말없이 물흐르는 암벽을 선등하여
내 갈 길을, 내 가야할 길을 앞서 열어주는 고마움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오리걸음 실시,라는 불호령에도
얼렁뚱땅 꾀인 교육생을 짐짓 못본 체 하고 마는 강사의 온기를 느낀 때문이리라.
힘겹게 완등한 그의 손을 무언의 미소로 잡아주는
아직은 알지 못하는 뜨거운 악우의 정이 그를 지탱하게 한 때문이리라.
훌쩍 올라 훌쩍 내려서는 이름 모를 강사의
툭 던지는 웃음 하나도 어쩌면 힘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리 어찌어찌 사력다해 올라선 절정(絶頂)에서 바라본
수려한 풍경이 그의 가슴에 불현듯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일상의 도심 너머 보일 듯 말 듯 한반도를 닮은
회동수원지를 호위하는 부엉산과 병풍 두른 아홉산,
우측의 윤산과 그 너머 우뚝한 실루엣의 장산까지
시원한 능파가 그를 피끓게 하였기 때문이리라.
등반은 길이 아닌 곳에서 시작된다 하더니
어느덧 길이 아닌 곳을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스스로 대견하였기 때문이리라.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였던 내가
당차게 교육생 누구누구라는 내 이름을 얻은 심사가 절절도 하였기 때문이리라.
그리 새로운 인연과 둘러 앉아
자유롭게 길 내어 유영하는 봄바람과
우듬지에 마구마구 물오르는 봄소리 찬삼아 뜨는 한 술 밥이
참말 맛나기 때문이리라.
<봄향기>
그리 봄빛, 봄소리에 취한 하루였다.
그리 봄이로구나 하였다.
한데 웬걸, 터벅 터벅 마음 두고 내려서서 뒤돌아 보니
봄은 빛과 소리 앞서 이로써 봄이었구나 싶다.
묵묵히 고추를 썰고 달래를 다듬는
저 투박하여 고운 남자의 손길이 바로 봄향이며
내 청춘의 현신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가.
연륜의 깊은 주름 속 피어나는 격려차 자리한 선배들의 밝은 웃음꽃이 바로 봄향.
행여 동기들 목 마를까
봄 한 줌 수통에 담는 학생장의 저 다정이 바로 봄향.
흡사 내 청춘의 순간 순간을 기록하여 꽃피운 듯 만발한 하얀 목련 아래
붉고 푸른 소녀의 수줍은 시선이 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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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 교육을 마친 교육생들에게 응원의 박수 보낸다.
때로 가시밭길 때로 돌부리인 인생사의 한페이지를
봄과 같이 화사하게 망울 맺고 있음이 얼마나 좋은가.
어쩌면 힘도 들겠지.
아직은 악우가 아니지만
외줄에만 생명을 담보하는 것이 아님을 요만치는 알지도 싶어 악우라 불러도 보고 싶다.
그리 남은 3주도 기약해 본다.
그런 즈음에는 봄도 속속들이 익어 우리네 심장 처럼 타오를테지.
그런 날에 소주 한 잔에
분분한 꽃잎 띄우고 산(山)사람 정을 채워 나누면 좋겠다.
길 / 윤도현
이상 행복팍팍 사랑팍팍 팬다
첫댓글 소속 등산학교가 어언 2주차인데 사는게 바빠 예년과 달리 마음을 다해 지원을 못하는 처지네요. 그래도 짬 내어 산을 찾고 지원하는 마음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오지캠핑 회원님들도 모두 행복한 봄 되세요^^
등산학교에 한번 다녀봐야 겠다는 생각은 간절한데
매 주말만 되면 '한번 와서 자고 가라'는 산들의 꾐에
놀러 다니느라 아직까지 꾀만 부리고 있네요 ^^
조만간,,,정말로,,,
한번 제대로 배워는 봐야 겠지요? ㅎㅎ
교육은 실상 별 것 아닐텐데 짤벡는 5주에서 길게는 8주 정도 소요되는 일정이 대체로 잘 안맞으니 교육 한번 받기가 난망입지요. 언제고 그런 기회 있길 기대합니다^^
참...음악과 사진이 너무 어울어져서 어째 이렇게 잔잔해지는지요...
과찬입니더^^ 즐거운 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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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님~ 활동엔 지장 없는거죠? 행복한 봄 되세요~~~
락** 산악회 시즌 교육중인 모양이군요,옛 추억이 떠오르네요
취사 금지 지역일텐데...도시락을 이용하는 깊이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욱 감동적이지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락** 산악회는 금정산에선 교육이 없고 신반 등에서 하는줄 압니다만... 취사는 송구합니다~~~~
옛기억이 생각나는군요 ^^열씸히 배워서 안전등반 즐거운 등반이 되길 바랍니다
천성의 게으름으로 차츰 등반은 시들해지네요. 그래도 매년 교육엔 조금이라도 지원하려고 애씁니더~~~
어느덧 등산학교 계절이 왔네요
추억속으로 ....
올해는 꼬옥 바위에 도전해바야지 ㅎㅎ
채식님 교육 받던 시절도 어언 추억이 되었네요. 간혹은 바위에도 붙어보세요~~~
팬다님의 서정적 후기를 부산산악문화전시관에 전시하려합니다. 넒은 혜량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