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상수훈 강해노트 (35-2)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원저자: 김성수 목사 / 편집자: 카이로스
’기도‘는 진리의 말씀을 잘 깨달아 그것을 마음으로 갖고 (마음에 새겨), 그것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것을 이웃에게 흘려주는 것 전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기도는 내가 받아야 할 대상(주는 자)이 있고, 흘려주어야 하는 대상(받는 자)도 있어야 한다. 바로 그 두 가지 대상이 이 비유에 등장한다. 광야의 여정에 있으나 아직 밤중을 사는 한 친구(받을 자)가 등장하고, 세 떡을 가진 또 다른 한 벗(주는 자)이 등장한다. 그 둘 사이에 중보의 역할을 하는 친구는 떡을 가진 친구가 여행중에 있는 친구에게 필요한 ’세 떡‘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 중보의 역할을 하는 친구(A)는 자기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고, 누가(B)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 떡을 가진 친구(B)에게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그 중보하는 친구(A)는 여행 중에 자기에게 찾아와 떡을 구하는 친구(C)에게 건네 줄 세 떡을 가진 친구(B)에게 찾아가 그 세 떡을 빌려서 친구(C)의 생명을 살리게 해달라는 간구를 하고 있다. 이게 바로 ’기도‘이다. 친구는 바로 이런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진리의 말씀을 흘려 주고 흘려 받아 생명으로 소통하는 관계가 친구이다.
(요 15:15)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친구(벗)는 내 안에 있는 마음을 그도 가지게 되어 둘이 한 마음으로 연합될 때 친구가 된다. 친구에게는 반드시 생명이 될 하늘의 양식이 있어야 한다. 6절에 “내 친구가 여행 중에 내게 왔는데 내가 그에게 먹일 떡이 없다”는 주인공의 말이 나온다. 거기서 ’먹일‘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파라티데미‘이다. ’ 티데미‘는 성전의 기명이나 기구들을 횡적으로 전시하듯 차서 있게 세워 놓은 것을 말한다. 그래서 ’파라티데미‘는 ’제시하다, 진설하다, 보여주다‘라는 뜻이고, ’파라티데미 아르토스(παρατίθημι ἄρτους)‘는 진설병이다. 성전 안의 진설병은 열두 개의 떡, 아들의 떡, 진리의 떡을 가리킨다.
여행중에 있는 친구를 맞이한 그 주인공 자신에게는 떡이 없다. 그 떡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세 떡을 가지고 있는 친구, 지금 산 위에서 ’이렇게 기도하라‘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계신 그 참 친구에게로 가서 세 떡을 구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너희는 진리를 담고 온 나에게 떡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떡을 가지고 있는 친구는 문을 닫고 아이들과 잠자고(안식하고) 있다. 그는 ‘진리의 성령’ 예수님이시다. 그에게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자는 마치 자기가 떡을 맡겨 놓은 것인 양 떡을 내놓으라고 강청하고 있다. 그 사람은 ‘아이테오’하면 당연히 그분이 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이다. 그 친구가 빌리러 간 ‘떡’은 ‘말씀’이다.
헬라어에 ‘프로슈코마이(기도하다)’, ‘아이테오(구하다)’와 비슷한 용례로 쓰이는 단어로 ‘휘페렌팅카노(ὑπερεντυγχάνω)’라는 단어가 있다. 그 단어는 ‘중재하다, 중보하다’라는 뜻이다. 로마서 8장에 “성령이 우리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한다.”라고 할 때의 그 간구가 ‘휘페렌팅카노’이다. => 기도는 진리이신 하나님과 생명이 필요한 피조물 사이에서 구하고 얻어내는 작업을 거쳐, 흘려주는 역할을 하는 모든 성도의 중매 역할을 가리킨다. 받아서 전해주어 하나로 만드는 것을 ‘휘페렌팅카노’라고 하고, 그게 기도(‘프로슈코마이’)이고 ‘아이테오’이다.
(눅 11:9-10)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여기에서 ‘구하라’가 ‘아이테오’이다.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빚 갚으세요’ 하고 요구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친구가 무례하게도 한밤중에 친구 집에 찾아가 마치 떡을 맡겨둔 사람처럼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그 친구는 자기가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았던 사람이다. 술도 아니고 고기도 아니고, 떡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와 같이 자기가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그것을 간절히 구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가진 자는 반드시 넘겨주게(‘디도미’) 되어있다.
그리고 찾으라(ζητέω, 제테오)고 하신다. ‘제테오’는 비밀로 감추어 둔 것의 껍질을 벗기고 그 내용을(알맹이를) 가지라는 말이다. 그 말은 감추어 두신 이가 찾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구하는 자는 반드시 찾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휴리스코(εὑρίσκω)’라고 한다. 반드시 찾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구하지도 않는 이들이 어떻게 감추어 둔 것을 찾을 수 있겠는가? 복음은(진리는) 열정을 가지고 찾는 이들에게 스스로를 열어준다. 그러나 아무 관심도 없는 이들에게는 자기를 감춘다. 그래서 ‘말씀이 살았다’고 한다.
(요 5:44-47)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면 또한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44절의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에 쓰인 단어가 ‘제테오’이다(‘피스티스(믿다)’가 아니다). -> 정확히 직역하면 “어찌 너희들이 나를 찾을 수 있느냐?”이다. 나를 찾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 즉,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의 영광 즉, 율법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 모세와 그리스도가 대조되어 나오고 있다. 모세로 대표되는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담고 오신 진리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 모세로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이(모세를 믿지 않은 사람들이) 어찌 예수로 진리에 도달하겠느냐. 율법으로 믿음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예수의 말로도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 보이는 세상과 육신과 율법에 묶인 사람들은 자기들이 구해야 할 바도 알지 못하고, 그래서 찾지도 못한다.
(요 7:34-36)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제테오’)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유대주의 속의 유대인들은 예수 안에 담겨 있는 진리를 절대로 찾을 수 없다.
(눅 12:29-32)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호 코스모스 에뜨노스’ = 이 세상의 이방인들)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31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바실레이아, 통치’)를 구하라(‘제테오’)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세상 속에서의 육적 양식과 음료, 먹을 것과 마실 것은 구하지 말고, 오직 그의 나라(‘바실레이아), 그분의 통치를 구하고 찾으라 하신다. 그러면 반드시 네 앞에 그 진리를 세워 주신다(’프로스티데미, προστίθημι‘).
(마 13:44-46)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제테오)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성경에서 ‘밭’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항상 ‘성전’이라고 바꿔 해석하면 된다. (막벨라 굴이 밭에 있었다. ‘아겔다마, 피 밭’도 옛 성전을 말한다.) 성전에 감추어져 있는 것은 진리이다. 성전에서 진리를 찾았다는 것은 열심히 그 진리를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밭(성전)에서 열심히 찾다가 마침내 거기서 진리를 발견하면 그 사람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자기의 소유’는 이 세상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맘몬’ 전체를 말한다. (자기의 소유 = 아담들이 자기의 가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육신의 행복을 위해 이 세상 것으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 / ‘맘몬’ = 팔아서 돈이 되는 모든 것의 총화 / 거기에는 우리의 지식이나 노동, 재물, 생각까지 다 포함된다. 인간이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맘몬이다. 그 맘몬이라는 단어의 영어 명사형이 ‘머니(Money)’이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그 돈 얘기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 인간적인 것, 육적인 것, 은혜의 반대편 쪽의 모든 것이 맘몬이다.) 성경에서 ‘돈’이나 ‘돈 사랑’이라는 말이 나오면 아담들의 자기 사랑이라 해석하면 된다. 진리를 깨달은 자들은 바로 그 소유를 다 팔아 진리를 택한다.
바로 밑의 진주 장사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진주를 구하는 장사’라는 어구에서 ‘구하다’가 ‘제테오’이다. 진주를 구하는 장사는 값진 진주를 만난다. 그게 ‘휴리스코(εὑρίσκω)’이다. 그도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산다. 율법과 행위를 팔아버리고 은혜와 진리를 붙든다. 그 진주는 두말할 필요 없이 진리의 말씀을 가리킨다. 세 떡이다.
(민 11:7) 17 만나는(말씀은)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만나는 하늘의 떡이라는 내용을 가진 광야의 떡이다. 그래서 만나를 진주라고 한다. 진주가 무엇인지를 잘 깨달아 그것을 구하고 찾으면 그것이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생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님은 그 반대의 경우도 말씀해 주신다.
(마 16:26)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여기서 ‘온 천하’라고 번역된 단어가 ‘호 코스모스’이다. => 세상, 율법, 성경, 육신, 인간 등 진리의 모형들. / 그 모든 것은 진리의 복음을 위한 모형에 불과한데 그것들을 다 얻고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진리의 생명이 없으면 이 세상 그 무엇이 소중한가?
진리의 말씀이 그렇게 소중하고 값진 것인데 율법주의와 인본주의로 말씀을 곡해하여, ‘행함으로 내어놓는 것’을 신앙이라고 믿는 자들에게 그 진리의 말씀을 흘려주면 그들은 도리어 그 말씀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해하게 되어있다. 주님은 그것까지 경고하셨다.
(마 7:6)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을 올바로 깨닫고 제대로 구하라 말씀하셨고, 제대로 구하는 것은 반드시 찾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구하고 찾는 이들에게는 골방 안의 은밀한 것 안에서 분명한 것으로 넘겨주어 살려 주신다. 그런 사람은 염치불구하고 진리의 문, 예수라는 문을 두드리게 되어있다. 그게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공부할 주기도문 바로 뒤에 붙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배경을 알고 주기도문을 공부해야 한다. 정확히 말해서 기도의 내용은 이러한 진리의 울타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골 4:2-6) 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5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
3a: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 우리와 함께 기도하되
3b: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 말씀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로고스’라는 단어를 썼다.
(註) ‘소금으로 고르게 함’ = 음식을 만들 때 소금으로 적절히 간을 맞추어 맛을 내듯, 성도의 대화와 인격이 은혜와 지혜로 잘 다듬어져 세상을 정화하고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는 상태를 뜻한다.
-•-
‘전도의 문’은 ‘뒤라 호 로고스, (θύρα τοῦ λόγου, thyra tou logou)’이다. 말씀의 문이 열려 그리스도의 비밀을 잘 말할 수 있게 기도하라. 너희의 말도 은혜 안에서 언약의 소금으로 잘 정리하라. 그러면 마땅히 할 말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 기도를 이야기하면서 결국은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말 즉, 진리의 선포로 연결시킨다.
성도는 ‘호 코스모스’의 세상(성경, 성전, 예수) 안에서 진리를 깨달아 그 진리의 문을 두드려서 진리를 구하고 찾아(아이테오 & 제테오), 또 다른 진리를 구하는 자에게 흘려주는(전달해 주는) 참 기도를 하는 자로 살아야 한다. 이 현상계의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밖에 없다. 세상의 천지 만물이 다 성경이고 진리인데 그 진리를 안 사람이 진리 말고 다른 무엇을 구하겠는가? 바꾸어 말하면, 진리가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이 어떤 기도를 할 때 그의 기도가 진리가 아닌 기도일 수가 있는가? 어차피 하나님은 진리의 아들들의 모든 것을 합력시켜서 ‘구하는 자’에게 하늘의 복음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의 모든 기도는 결국 진리로 수렴되게 응답될 것이다. 그때 그는 형식적인 기도로부터도 자유로워지게 된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진리로 읽어내야 하고, 진리로 말하고, 흘려줘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성전을 가리켜 (그 성전은 우리의 모형이다) ‘기도 집’이라 하셨다. ‘기도하는 집’이 아니다. 그냥 ‘기도’라는 정체성을 가진 ‘기도 집’이라고 부르신다. (기도만 있는 집. 받아서 흘려주고, 받아서 나타내고, 받아서 밝히는 집)
(사 56:7) 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여기서 ‘기도하는 내 집’이 히브리어로 ‘베이트 테필라티, (בֵּית תְּפִלָּתִי, Beit Tefillati)’ 즉, ‘기도 성전’이다. 인간이 마땅히 구해야 할 것을 잘 깨닫고 열심히 찾아서, 그것으로 하늘 문을 두드려 하나님께 간구하고, 그것을 잘 배우는 곳 그곳이 성전이고, 세상이고, 성경이며 예수이다. 하나님은 진리로 예수 안에 거하시고, 말씀 안에 거하시며, 세상 안에 거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게 하나님의 집이다. 그 집은 기도 집이어야 한다. 그것이 되지 않는 집은 강도의 굴혈이다.
(막 11:17)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도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여 엉뚱하게 전달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성전이 강도의 굴혈이다. 여기서 ‘강도의 굴혈’과 ‘기도 집’이 대조되어 있다. 그것은 ‘기도 집’은 단순히 우리의 요구나 원함이 우리의 강청함으로 성취되고 응답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교훈되고 그 뜻이 우리의 구함이 되고 찾음이 되며, 우리의 두드림이 되는 곳이다. 다음 주부터는 그 기도의 내용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강도는 하나님이 주지도 않은 말을 자기 마음대로 가져가서, 주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써버리는 것이 강도이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내 집은 기도 집이다. 생수, 하늘의 떡, 진주만으로 소통이 일어나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왜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 너희들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어? 이게 강도의 굴혈이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은 그동안 하나님이 절대 듣지 않으시는 엉뚱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제자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까지 “너희들은 내게 한 번도 구한 적(‘아이테오’)이 없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 기뻐하시는 기도를 우리가 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