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의 90%(최소한 통계학적으로는) 이상이 카톨릭을 믿는 국가 이탈리아. 헌법상에 국교와 동일한 위치를 갖는 카톨릭에 대한 법적 보장을
하는 대표적인 카톨릭 국가이다. 특히 올해 쥬빌레오(Giubileo)를 맞아 로마 교황청은 종교적 행사이외에도 다양하고 상징적인 여러 문화적
행사들을 준비하고 조직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10월 29일) 치러진 '2000년 스포츠 쥬빌레오'였다. 로마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이탈리아를 빛낸 스포츠 스타들과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 등이 모여 함께 미사를 보고 상징적인 경기를 거행한 종교적인 스포츠 행사로, 미사 뒤에는 이탈리아 대표팀과 이탈리아
Serie A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올스타팀과의 친선경기가 있었다. 이 친선경기가 우리 국민들과 축구 팬들에게, 그리고 안정환 선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큰 의미를 갖는 경기였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안정환 선수는 바로 이 외국인 올스타팀에 속해 있었고, 당연히 한 번쯤은
기용되리라는 기대를 가졌던 경기였기에 친선경기라 하지만 자못 그 의의가 깊은 시합이었다.
물론 어째서 안정환 선수가 바띠스뚜따(Batistuta)나 세브첸코(Shevchenko) 등과 같은 세계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 한 팀에 선발될 수 있었던가에 대한 이유에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작용된 것이긴 했지만, 안정환 선수 개인에게나 한국 축구에게도 크나큰
영광일 것이다. 이는 현재 안정환 선수의 팀 내의 활약 정도나 개인적인 이름 값만으로는 외국인 올스타에 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될
정도이지만, 어쨌든 안정환은 당당하게(?) 올스타팀에 선발되어 이탈리아 전역에 생중계 되는 첫 경기를 임했다.
안정환, 첫 이탈리아 전역 생중계
경기는 친선경기인데다 교황의 건강상의 여건 등으로 전후반 25분씩을 뛰는 특별 경기였다. 전반은 바띠스뚜따,
세브첸코, 미하일로비치 등이 주축이 된 올스타팀과 말디니, 델 삐에로, 또띠 등이 주축이 된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이 경기를 치렀는데, 긴박감은
없었을지라도 스타 개개인의 기량을 보여주는 훌륭한 전반 25분이었다.
이어 시작된 후반전에는 모든 선수들이 교체되어 우리가 기다리던 안정환 선수가 나카타, 튀랑 등의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경기는 여러 차례
득점 기회가 있었음에도 모두 불발로 끝나 결국 0-0 무승부를 기록한 채 시합을 마쳤다.
안정환
선수는 그리 눈에 띄는 화려한 플레이는 아니었지만, 비교적 차분히 경기를 소화해 냈고 특히 플레이가 팀에서 보여주었던 것보다는 안정되어
보였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후반전 내내 아나운서가 나카타의 이름은 몇 번 거론했지만 안정환 선수의 이름은 한번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점과
안정환 선수에게 다른 동료들이 그다지 커다란 협조를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특히 한 번도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던 것은 상당한 아쉬움으로
남는데, 이는 이 경기가 이탈리아 전역에 생중계 되었기에, '꼬레아노 안(coreano Ahn; 한국선수 안)'이라는 말을 한 번 만이라도
거론했다면 안정환 선수의 이름을 이탈리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는 그에게도 커다란 위안과 힘이 되었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지난 21일에 벌어진 파르마와의 경기에서 벤취를 지키고 있는 단발머리 안정환]
안정환 선수가 개인적으로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는지 필자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 날의 경기는 안정환 선수 개인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단지 예의 있음직한 카톨릭이라는 종교 행사의 일환인 자선경기에 출전하여, 속된 말로, 대충 시간을 때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해냈다는 사실은 앞으로 안정환 선수가 침체해 있는 자신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절호의 전기로 삼아야할 뿐 아니라, 다음에는 교황과 교황청의 정치적 배려나 한국 카톨릭의 종교적 위상에 기대지 않더라도 보다
당당하게 올스타에 선발 될 수 있는 대(大)선수 안정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전국민의 열망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수요일에
있을 비첸짜(Vicenza)와의 경기에는 그러한 싹이 움트고 있는 새로운 안정환 선수를 볼 수 있기를 한국의 팬들은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