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산오옥
먹은 글씨를 쓸 때 사용하는 서사용구(書寫用具)이자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이다. 재질이 단단하고 굳으며, 색은 검은색을 띤다. 벼루에 갈아서 액체 상태로 만든 다음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한다.
먹을 뜻하는 한자인 '묵(墨)'자는 '검을 흑(黑)'과 '흙 토(土)'를 합한 글자로, 고대 중국에서는 천연으로 산출되는 석묵(石墨)의 분말에다 옻을 섞어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먹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물은 일본의 쇼쇼인(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의 먹 2점이다. 모양은 모두 배 모양이며, 각각 먹 위에 '신라양가상묵(新羅楊家上墨)', '신라무가상묵(新羅武家上墨)'이란 글씨가 압인(押印)되어 있어 신라 시대에 양가와 무가에서 좋은 먹을 생산하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오래된 먹 관련 유물로는 경남 창령군 의창 다호리 목관묘에서 출토된 붓을 들 수 있다. 붓이 출토된 고분의 연대가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한 시기임에 비추어 일찍부터 우리나라에 먹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중국 문헌인 명나라 도종의(陶宗儀)의 『철경록(輟耕錄)』에 고구려에서 송연묵을 당나라에 보냈다는 기록과 고구려 고분 벽화인 안악 3호분과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에 보이는 묵서명(墨書銘), 그리고 담징이 제묵법을 일본에 전했다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으로 보아 삼국 시대에 이미 좋은 먹이 생산되고 먹의 사용이 성행하였음을 알려 주고 있다.
고려 시대의 먹으로는 청주 명암동 고려묘에서 발굴된 단산오옥(丹山烏玉)이 있다. 먹과 관련한 기록으로는 육우의 『묵사(墨史)』 「고려조(高麗條)」에 나오는 먹 관련 기사를 들 수 있는데, 고려의 맹주(猛州), 평로성(平鹵城), 순주(順州) 지역에서 생산된 먹이 중국에 수출되어 그 명성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송나라 문헌인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 고려의 송연먹이 뛰어났다는 기록이 있어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고려 시대 송연먹은 묵광(墨光)이 번쩍이고 묵향(墨香)이 코를 쏘았다고 한다.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에는 이른바 조선 먹의 황금 시대를 이루었다. 특히 황해도의 해주(海州)에서 만든 먹은 중국, 일본의 먹에 비해 그 질이 월등히 우수하여 나라에 진상하고, 그 두 나라에 수출하였으며, 평안도의 양덕(楊德)에서 만든 송연먹은 향기가 좋기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이러한 우수한 먹으로 조선 시대 우리 선조들은 찬란한 수묵화 및 서예 예술을 꽃피웠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 인쇄 문화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금속 활자와 목판 인쇄술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먹은 송진을 태워서 만드는 송연묵(松煙墨)과 기름을 태운 그을음으로 만드는 유연묵(油煙墨)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주로 목판이나 목활자 인쇄에 사용하고, 후자는 금속 활자 인쇄에 사용한다.
조선 시대인 1554년(명종 9년)에 어숙권(魚叔權)이 편찬한 『고사촬요(攷事撮要)』에는 먹의 제조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아래와 같다.
"물 9근에 아교 4근을 넣고 불에 녹인 다음 순수한 그을음 10근을 넣어 잘 반죽한다. 반죽된 것을 다른 그릇에 옮기고, 남은 물 1근을 적당히 뿌려 가면서 잘 찧는다. 이어서 깊숙한 방에 평판을 깔고 습한 재를 한 치 정도 깔고 종이를 덮는다. 그 종이 위에 먹을 옮겨 놓고, 다시 종이로 덮고 위에 다시 습한 재를 한 치쯤 덮는다. 그대로 3일을 두었다가 각 장을 바르게 네모로 자른다. 자른 먹 위에 마른 재를 한 치쯤 덮고, 2~3일 지난 후 꺼내어 깊숙한 방 평판 위에 놓고 여러 차례 뒤집어 가며 말린다."
아울러 물푸레나무[침(梣)나무] 껍질의 즙을 짜서 아교를 만들고, 계란 노른자와 진주홍(眞珠紅)과 사향을 넣어 먹을 만들면 먹의 색이 좋고 향기롭다고 적고 있다. 날씨가 더우면 썩어서 냄새가 날 수 있고, 추우면 잘 마르지 않으니, 여름과 겨울철은 먹을 만드는 시기로 적당하지 않다고 기록하고 있다.
송연 채취 가마
어숙권의 『고사촬요』에서와 같이 먹은 그을음과 아교로써 만들어진다. 그을음의 주성분은 탄소로써 그을음 속에 함유된 미량의 성분들이 주변 여건 등에 의해 변화되지만, 탄소는 완전한 물질로써 변화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아교는 동물성 단백질로 콜라겐이란 단백질을 분해·정제하여 얻어진다. 그 분자량은 수만 개에서 수십만 개에 이르는 천연 고분자 물질이기 때문에 온도, 습도 등 주변 여건 등에 영향을 받아 저분자가 되면서 오랜 기간 동안 변화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먹을 만들 때에 아교가 많은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먹이 만들어질 때는 36~40% 또는 50% 정도의 수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수분이 건조되면서 서서히 배출되어 완제품이 되었을 때에는 16~18%의 수분이 남게 되는 것이다. 건조된 먹은 수분의 증발로 먹의 내부에 미세한 공기구멍이 형성된다. 이것이 습기가 적은 날에는 수분을 방출하고, 습기가 많은 날에는 수분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먹 속의 아교 물질에도 변화를 주게 되는 것이다. 처음 만든 먹과 1~2년 후의 먹색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좋은 먹은 손으로 들었을 때 느끼는 촉감과 무게, 눈에 보이는 형태, 냄새에 의한 향료, 두드렸을 때의 소리로 판별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벼루에 갈 때 부드러우면서도 미끄러지듯이 쉽게 잘 갈려서 사용에 편리하고 마음 가는대로 붓을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 농담(濃淡)이 좋으면 으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먹의 물리적 특성을 들면, 먼저 색깔이 검고, 오래될수록 빛깔이 퇴색하지 않고 더욱더 깊은 맛이 난다는 점, 그리고 부식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고서화가 잘 부패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아교 성분으로 붓의 움직임을 민첩하고 원활하게 해 주고, 수분의 조절에 의해 농담과 번짐의 조형성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울러 부착력이 강하기 때문에 종이 깊숙이 침투하는 점에서 동양화에 사용되는 흡수력이 좋은 한지에 적합한 특징과 장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고유 먹의 제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까다로운 작업으로 장인의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재료도 천연의 것으로 이들의 구입에도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광물성 그을음 또는 카본 블랙 같은 재료를 이용하여 기계로 제작하는 공업먹이 주로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장인들도 그 맥이 끊어지고 있으며, 고유 방식에 의한 조묵법(造墨法)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따라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로 우리 먹의 재현을 위한 고유 먹의 서지학적 분석, 성분 분석, 조묵법 분석, 재료의 특성 분석 등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곧 고유 먹에 대한 복원은 물론이고, 나아가 현대 첨단 과학 기술과 접목함으로써 신소재 개발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고유 먹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진다면 송연먹의 탄소 성분과 음이온 및 향료를 활용한 소화·해독·지혈·테라피 효과를 갖는 약재 개발, 도자기와의 접목에 의한 고 신선도 기능 함유 기능성 신소재 개발로 연결되어 고유 먹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